손민호의 문학터치 2.0 - 21세기 젊은 문학에 관한 발칙한 보고서
손민호 지음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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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학담당 기자, 손민호. 책을 읽기 전부터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서울대 불문과 이인 성 교수 퇴임식’ 기사를 통해서다. 기사를 읽고 바이라인을 확인했다. 또 손민호였다. 그랬다. 그 기사가 처음이 아니었다. 예전에도 ‘이 기사 괜찮네’ 싶으면 손민호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문학담당 기자 아니랄까봐, 딱딱한 기사들 사이에서 문학적인 기사를 써내고 있었다. 한 번 만난 적도 있다. 전 직장에 있을 때다. 그 때 만나서 이인성 교수 퇴임식 기사 얘기를 꺼냈다. 그는 부끄러워했다. ‘그냥 평범한 기사였는데..... 어쨌든 고맙습니다.’ 그 뒤로도 그가 연재하는 ‘문학터치’는 거의 빼놓지 않고 읽었다. ‘문학터치’는 ‘소설보다 재밌는 소설이야기’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시도 다룬다.) 그가 연재한 문학터치를 모아 <문학터치2.0>이 나왔다. 그의 기사를 거의 다 읽은 내겐 흥미롭지 않은 책이었다. 허나 그가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한 책이란다. 결국 집어 들고 말았다.

     기자들이 쓴 책은 공통적으로 쉽게 읽힌다는 강점이 있다.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어쓰는 직업 종사자답게, 일단 글을 쉽게 쓴다. 문장도 간결하고 단어 선택도 명확하다. 잘 읽힌다. 반면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학계 전문가보다 깊이 있는 책이 있는가하면, 몇 년 간 몸으로 때운 내용을 글로 풀어내는 경우도 있다. <문학터치2.0>의 경우 물론 전자에 속한다. 글이 쉽다는 것은 둘째 치고, 소설과 시를 자신의 방식대로 분류하고 분석하는 방식이 논리적이다. 소설에 관한 대중서적 중 전문성 분야에서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윤성희 소설을 두고, ‘주어와 서술어의 소설’이라고 분석한다. 적어도 내 경우 윤성희의 소설이 잘 읽히지 않았는데, 아마도 손민호 기자의 말대로 밀도가 높은 소설의 구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김경욱의 소설을 두고 ‘냉정한 논리와 차가운 분석으로 조직한 구조물’이라고 표현한 분석엔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김경욱의 소설을 읽고 떠올린 내용을 한 문장으로 멋있게 압축했다.

기자들이 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일까. 바로 현장성이다. 그들은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이다. 책을 읽고 정보를 얻은 사람들의 책과 달리 기자들의 책엔 현장의 생생한 상황이 펄떡거리는 활어처럼 살아 숨 쉰다. 그리고 <문학터치2.0>은 기자가 지닌 강점을 극대화 한 작품이다. 손 기자의 분석도, 문장도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그가 시인, 소설가들과 술을 마시며 나눈 문학 현장의 이야기였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김연수와 문태준의 축사 복수 혈전(?). 오랜 고향(김천) 친구인 두 사람은 각각 미당 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을 받고, 서로에게 축사를 하게 됐다. (물론 손민호 기자의 기획이다.) 먼저 김연수. 문태준이 자신의 습작시를 들고 선배 시인인 김연수에게 찾아온 이야기를 꺼냈다. ‘“자네. 이대로만 쓰면 곧 등단할 것이네.” 그랬더니 문군은 정말로 다음 달에 등단을 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시에 흥미를 잃고 소설을 써야만 했습니다.’ 다음은 문태준. 잡지에 시 청탁을 받은 김연수가 문태준에게 원고를 보여준 이야기였다. ‘1994년엔 제가 그에게 시를 점검받았지만, 이제는 그가 저에게 점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게 좀 그렇다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생략) 아무튼 오늘로써 김연수의 시에 대한 미련이 상당부분 종료되길 바랍니다. 전문 영역인 소설만 잘 써주기를 친구로서 바랍니다.’ 이 외에도 책에는 손민호가 만나서 경험하고 느낀 작가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도처에 숨어있다. 책을 읽고 놀란 사실 하나 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박민규는 OB(현 두산) 팬이란다. 유주얼 서스펙트급 반전 아닌가. 어쩐지 철전지 원수 같다던 소년 OB팬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 섬세하더라.

     손 기자의 글에는 젊은 한국 문학가들에 대한 애정이 넘쳐흐른다. 그는 젊은 문학가들의 지닌 다양한 강점을 잘 뽑아낸다. 그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사격가다. 동시에 젊은 작가들에 대한 부당한 비판에 대해선 대신해서 맞서 싸운다. 기본적으로 그는 이론을 무기로 문학의 다양성을 침해하는 경직된 사고의 공격을 막아내는, 젊은 작가들의 보디가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아쉽다. 난 책을 읽으며 손민호 기자의 애정 어린 비판을 기대한 게 사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들에 대한 상찬이 이어지다보니, 나중엔 이유 없는 뒤틀림과 함께 삐딱한 시선이 생겨나기도 했다. 외국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실험들과 비교할 때, 과연 박민규가 보여준 작업이 진정 파격을 넘어선 이단일까. (그렇게 우리 문단은 보수적이었나.) 어떤 공식(아마도 논리겠지)에 의해 제작된 것 같은 완벽함이 때론 김경욱의 소설을 한계 짓는 건 아닐까. 정이현의 소설엔 피상적인 생각들로 가득하다는 일부 20-30대 여성의 비판은 마냥 부당한 걸까. ‘난 시 안에서 엄마 갖고 노는 게 재밌으니까, 당신들은 제발 신경 끄셔’ 라고 말한다면, 과연 비평은 남의 집 식탁에 '감 놔라 배 놔라'하는 참견꾼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걸까. 처음부터 삐딱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한한 애정을 이번에 선보였다면, 앞으론 좀 더 의도적으로 비판적인 시선으로 젊은 문학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문학터치 2.0>이 오프라윈프리 쇼 같은 수준 높은 토크쇼였다면, 다음 그의 책에선 무릎팍도사 같은 솔직하고 적나라한 코미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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