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한창우 감수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서점에 갔다 한 과학 잡지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뉴턴이란 잡지였는데, 표지에는 대문짝만한 글씨로 “주기율표 완전도해”라고 적혀있었다. 화학 시간에 어쩔 수 없이 암기해야 했던 주기율표의 완전 도해가 마치 축구 잡지의 ‘호날두, 레알 마드리드 이적 발표’, 타블로이드 잡지의 ‘대마초 피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사진 독점 공개’처럼 당당하게 잡지 커버를 장식하고 있다니,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사는 세상 밖에 과학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틀림없이 지구 어느 한 구석에선 이 잡지를 보고 “야 너 서점 가봤어. 드디어 주기율표가 완전 도해됐대.” “뭐라고. 주기율표가 완전 도해됐다고? 이런 도대체 숨어있던 그 원소는 뭐였던거야? 하하.” “몰라. 당장 가서 사봐야겠어.” “나도.”라고 대화를 나누는 소년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사실 초등학교 시절엔 내가 사는 세계에도 과학은 있었다. 만화로 된 과학 책을 종종 읽곤 했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과학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그 때 내 뇌가 과학적 사고를 하는 데 약간의 장애가 있음을 느꼈던 것은 확실하다. 이해가 안 되니 멀리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만약 그 때 누군가가 과학에 대한 다른 접근 방식을 내게 알려줬다면 어땠을까? 그러니까 사랑과 전쟁의 신구 아저씨가 있었다면 나와 과학의 결별이 지금처럼 단호하게 이뤄졌을까? 당시 난 과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 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원소와 원자와 분자가 어떻게 다른지, 힘과 속도의 관계가 무엇인지 몰라 헤맸을 뿐.


갑자기 이제 와서 신구 아저씨를 찾고, 예전 과학 얘기를 꺼낸 것은 얼마 전 책을 읽고, 내가 과학을 좋아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다. 그 책은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E=MC²>.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먼저 공식을 구성하고 있는 각 요소에 대한 설명으로 책은 시작한다. 이후 E=MC²의 탄생과정과 성장과정, 그리고 성숙의 과정을 한 인물의 모습처럼 풀어낸다. 마치 E=MC²의 전기 같다고나 할까. 중간 중간에 다양한 일화와 역사 이야기는 10년 넘게 과학과 떨어져 지낸 인문학도의 서서한 적응을 돕는다. 물론 내용이 쉽지 만은 않다. 나 역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노트에 동그라미 직선 그리기를 반복했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하지만 이제 적어도 카메론 디아즈가 프리미어 기자에게 던졌던 질문, ‘E=MC²이 뭐에요?’에는 간단하게나마 대답할 수 있게 됐다.


E=MC²의 업적은 따로 따로 존재하던 에너지의 세계와 질량의 세계를 연결시켰다는 데 있다. 마이클 패러데이가 에너지의 개념 연구의 장을 열고난 후, 이 세상의 모든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어도 전체 양은 일정하다는 법칙이 도출된다. 마찬가지로 라부아지에의 정확한 측정을 시작으로 지구상의 전체 질량의 총량은 일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이전엔, 불과 소리 나는 전선, 불빛으로 구성된 에너지의 세계와 나무, 바위, 행성으로 이뤄진 질량의 세계가 엄연히 다른 세계로 여겨졌다. 여기에 아인슈타인은 c, 바로 빛의 개념을 통해 두 세계를 연결시킨다. 아인슈타인은 그 어떤 것도 빛보다 본질적으로 빠를 수는 없음을 밝혀낸다. 수의 세계엔 -273도 -274도 있지만 온도의 세계엔 -273℃가 끝이듯, 빛의 세계엔 670,000,001(빛의 속도 670,000,000mph)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의 속력을 높이기 위해 에너지를 가하면 어떻게 될까? 아인슈타인은 속도가 늘어나는 대신 질량이 늘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 결과 c라는 매개를 통해 에너지는 질량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반대로 질량도 에너지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된 것이다.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공식에 따르면 이제 우리는 모든 물체를 통해 무한한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공식 E=MC²에서 M에 1파운드 질량을 넣는다면 뽑아낼 수 있는 에너지는 100억 킬로와트시다. 빛의 속도의 제곱은 448,900,000,000,000,000이다. 원자폭탄의 가공할만한 파괴력은 여기서 온다.)


물론 보더니스의 <E=MC²>를 통해 카메론 디아즈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성과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과학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더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에서 탄생했다. 이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근원은 무엇인가? 등등. 결국 과학은 우리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하나씩 미지의 세계를 지워나가는 것이다. 지금도 강원도의 한 연구실에선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암흑 물질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그 물질의 수수께끼를 풀게 되면 우주에 대한 비밀도 한 꺼풀 벗겨지게 된다고 한다. 우주의 비밀을 파헤친다고 가시적인 이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과 우주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 그리고 이를 충족시키려는 그들의 순수한 활동이야 말로 과학의 목적이 아닐까.


다시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자. 난 왜 원자와 원소를 배우는 지, 왜 힘의 작용을 공부하는지 몰랐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근본 물질과 법칙들을 알게 되면 중간고사 성적이 올라간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이 세상의 수수께끼가 풀린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무릇 과학이란 우주와 삼라만상의 법칙을 파헤치는 커다란 정신의 활동이다. 그러니 성적이라는 작은 세계에 갇혀 살았던 내가 과학의 즐거움을 깨달았을 리 만무하다. 지금이라도 ‘주기율표 완전도해’를 보며 즐거워할 사람들을 이해하게 해준 보더니스 선생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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