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아실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대표 저서다. 나는 이 책을 까마득한 초딩 시절에 봤다. 읽었다는 건 아니고 그냥 봤다. 초딩답게 마루에서 뒹굴거리며 놀고 있는데, 응접세트 위에 이 책이 있었다. 프로이트가 뭐하는 양반인지 알 턱이 없던 시절인지라, 그저 "꿈해몽에 관한 책이로군" 하면서 어젯밤 꾸었던 꿈이나 찾아볼 요량으로 책을 펼쳤다. 인상깊게도 '꿈에 나온 뾰족한 것은 다 남자 성기'라고 집요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잠재기 (성에 대한 관심은 억제되고 또래집단을 통해 사회화를 진행하는.. 초딩 나이)'를 거치고 있던 내 눈에는 그게 좀 불합리해 보였다. 당시 궁금했던 건 "개가 나오면 정말 개꿈인가" 따위였고, 그래서 많이 읽지는 않고 덮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교 때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실용적으로 만났다. "영상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라는 수업에서 미디어 분석을 할 때였다. 우리 조는 "CF 분석"을 했는데, CF에 등장한 뾰족한 것들을 모두 집요하게 남자 성기로 몰아갔더니 좋은 점수를 받았다. 요즘 것으로 대입해 본다면, 이런 식이다. "빨간 모자를 보면 SK주유소가 생각납니다"라고 말하는 CF를 보세요. 늘씬한 빨간 모자 아가씨가 있는 주유소에 도착한 차들이 주유고 뚜껑을 발딱발딱 열어재끼죠. '발기'의 이미지로 소구하는 것입니다. CF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영리하게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웬만한 인간은 잠재의식 속에 억압된 성의식을 가지고 있다죠. 그걸 이용하는 것입니다. 발표를 마치자, 별 생각없이 등장한 촛대나 감자튀김 전봇대 같은 것들한테는 좀 미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프로이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건 "김형경의 심리여행 에세이 - 사람풍경"을 보고 나서다. 외부를 여행하며 내부를 사유한다는 책의 컨셉이 매력적이어서 책을 구입해 읽었는데, 글쎄 결론적으로 나는 그저 그랬다. 작가가 하는 말에 공감이 전혀 안 갔던 것은 아니다. 질투 :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신감 없음, 투사 : 내면의 부정적인 면을 타인에게 옮겨 놓기 등 충실하면서도 독특한 정의는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상처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는 작가가 지나치게 자학적으로 보였다. 소매치기에게서 '시기심'을 진단해 내는 것에서는 개별적 인간에 대한 예의없음조차 읽혔다. 무엇보다도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라는 집요하게 일관된 결론이 불편했다. 어쨌든 엄마한테 좀 미안하지 않은가. 읽으실 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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