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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슬픈 노래는 기뻐지기 위해서 듣는다.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을 우울할 때 슬픈 노래를 찾아 들으며 "저런. 나보다 더 불쌍한 놈도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그 연민과 공감 속에서 펑펑 울고나면 어느새 상처는 조금씩 치유된다. 쇼펜하우어도 그러더라. 살기 힘들때, 더 불행한 사람을 보면서 위로받는 방법도 있다고. 하지만 그 할아버지 말씀이 아니더라도 우린 본능적으로 알고있었고 몰래 실천해왔다. 슬플 때 더 슬픈 노래를 들으며 청승떨기. 행복한 노래는 절대로 듣지 않기.
회사였다. 심난한 표정으로 결과 보고서를 쓰고 있는데, 실장님이 다가왔다. "카오산 로드라고 아니?" 건성으로 카오산 로드요..태국요 하고 있는데 뒤춤에서 쓱 이 책을 꺼내셨다. 그리고 허허 웃으시며 "그렇다고 사표 쓰라는 소리는 아니고!"라고 하셨다. 이미 이 책과 다큐멘터릴 보셨다는 선배님은 갑자기 나타나셔서 책을 뒤척이며 말씀하셨다. 실장님처럼 나이 든 사람이 봤을 때 매우 어린 내가 이렇게 사는 모습이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고. 나는 실장님과 선배님이 동시에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이 들렸다.
책을 받아들고 왔는데, 책장을 넘기기 쉽지가 않았다. 이건 실연한 사람에게 사랑 충만한 노래를 틀어준 격이었다. 첫째 날 젊은 부부의 사연까지만 읽고 책을 닫았다. 역시, 불행한 사람은 더 큰 불행에 허덕이는 이야기나 읽어야 하는 것인가. 둘째 날 수트케이스 든 사람이 촌스럽다고 주장하는 맹랑한 소녀 이야기를 읽다가 덮었다. 아 안되겠다. 못참겠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곧바로 스페인어와 일본어 기초 온라인 강좌를 1강씩 들었다. 뭔 짓이냐고. 나는 나름대로 여행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그제서야 셋째날인 오늘. 비로소 진정하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괴롭다. 이런 문장들 때문이다. 이런 문장들!
우리집 15평 아파트가 아주 크게 느껴지거든요. 물욕이 점점 없어지는 게 한국사회에선 마이너스일지 모르지만 내 삶에는 굉장히 플러스가 되고 있다고 느껴요. 두 사람이 두려워던 것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이제껏 살아온 날들과 다름없이 지루할 것이란 예감이었다. 여행을 하다보니 내가 좋아졌어요. 그리고 사는 게 전보다 조금 더 즐거워졌어요. 여행을 하면 인생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게 되고, 또 이런 경험은 내 안의 불쾌한 잡념들을 모두 깨끗하게 없애줘. 어느 순간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난 대단한 여행가도 아니고 그냥 여행을 좋아하는 평범한 애인데... 회사에서 하루종일 일하며 사는 것, 그런 게 인생의 목표는 아니잖아. 우리 각자가 쓰고 있는 마스크를 과감히 벗어버릴 수 있다는 것. 가끔씩 사람들이 널 평가하려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모두가 서로에게 이방인이니까. 중요한 건 햇수가 아니라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에요. 그들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살고 있지. 작은 방에 침대하나, 부엌, 몸을 씻을 공간, 그뿐이야. 그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행복하다고 대답해. 살면서 의도적으로 찾아야 할 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필요한 건 자연스럽게 다가오거든. '자, 술마시러 가자!'가 아니라, '자! 오늘, 사람 보러 가자'고, '존재하러 가자!'고 말할 수도 있잖아.
나는 이렇게 지독하게 설득적이고 논증적인 책은 처음 보았다. 그리고 나와 비교되는 행복에 크게 상처받았다. 아주 작은 결심만 있으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계속 주입시키는 데 그런 부분을 마주하면 더 슬프다. 듣자하니 잘 쓰여진 여행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괴로움을 심어준다고 한다. 자주 읽으면 안 되겠다. 아니면 결심하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