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 패자의 슬픈 낙인 - 피로 쓴 조선사 500년의 재구성
배상열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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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쓴 조선사 500년의 재구성... 제목만 보면 조선사 500년에 대한 이미지가 붉기만 하다. 언제부터였는지 우리는 지금까지 흔하게 알고 있던 것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에 촛점을 맞추기 시작한 듯 하다. 보여주기 싫은, 혹은 보여줄 수 없었던, 그것도 아니라면 보여서는 안되는 그런 이야기들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자명한 일인데도 우리는 왜 지금까지 그렇게 까발리는 일에 대해 무심했던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이제는 숨기고 싶은, 혹은 숨겨주고 싶었던 과거사에 대해 그만큼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가 변했다는 말도 되겠지만 어찌보면 형평성을 잃어버린 우리의 주체성에 일침을 가하는 것처럼도 보여 왠지 씁쓸할 때도 있다. 그만큼 성장한 탓이겠지 생각하며 위안삼기도 하지만 말이다.

책속에서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내게만큼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이미 우리에게는 너무도 잘 알려진 사건과 배경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하여 내내 그타령이라는 말은 아니다. 가끔 정말 그랬을까? 싶은 역사의 한 장면을 앞에 두고도 그래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겠다,하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으니 하는 말이다. 한켠으로 치워두었던 것들을 어디 다시한번 훑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새롭게 느껴지는 맛을 음미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승자가 쓰는게 맞긴 하다. 하지만 그 역사는 승자의 장자방들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머리싸움에서 이기는 자, 누가 더 상황을 잘 읽어내는가 하는 게 관점이다. 이 책속에서 보여지는 역사의 한장면들 또한 치열한 머리싸움의 현장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아비와 아들의 머리싸움, 왕과 신하의 머리싸움.. 하나가 되어도 모자랄 그들이 마음은 모두 다락방에 가둬두고서 서로가 눈을 굴리며 머리만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피로 쓴 조선사 500년이 될 수 밖에...

역사속에서 똑똑하다고, 진보적이라고 불쑥 튀어나왔던 인물들조차도 그 치열한 머리싸움에서 한 수 밀리면 바로 유배요, 사약이다. 그것도 모자라면 죽어 묻힌 뒤에까지 목이 잘린다. 참혹한 부관참시의 대표격이 칠삭둥이 한명회라는 걸 보면 마음없이 그저 머리만 들이미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줄을 알겠다. 권력의 구도앞에서 너무도 허망하게 무너지는 마음이 없는 사회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이긴자들에 의하여 변질되어지는 진실은 우리만 그런게 아니니 어찌보면 그것 또한 또하나의 진실처럼 여겨진다. 만들어지는 것들, 만들어지는 것들은 만드는 자마다 다르게 변화되는 것이 정답일테니 말이다. 

가장 화가 나는 대목은 역시 선조와 인조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어쩌면 그리도 닮은 꼴을 한 아비였는지.. 거기에 덧붙여 어쩌면 그리도 한심한 모습만 지금의 관료들이 쏙 빼닮았는지..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자식도 버릴 수 있다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었을까?  그 못난 왕의 욕심앞에서 느닷없이 화를 당하게 되는 신하들이 가엾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우려가 된다. 그 가여운 신하들조차도 어느날  누구에겐가 그야말로 발가벗겨진 모습으로 내게 보여질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있다고 하지만 때로는 감춰지는 진실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속된 말로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는데 비틀린 세상을 위하여 진정한 목소리를 내었던 사람들조차 어느 순간 발가벗겨질까 두렵다고 말한다면 어불설성일까?

홍길동이나 임꺽정, 그리고 장길산을 다루었던 번외편, 영웅이 된 도적들은 재미있었다. 그야말로 만들어진 의적들이다. 그리고 후세에 글쓰는 이들에 의하여 화려한 옷을 입게 되는 이름들이다. 그런데 가끔씩은 이렇게 만들어진 영웅이라도 있어야 세상에 대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체한듯이 답답한 가슴을, 하소연할 곳이라고는 어디 한군데도 없는 백성들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일갈할 수 있는... 그런 영웅들조차도 못난 왕이나 관료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은 정말이지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네의 모든것들이 우리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소멸되어지는 것을...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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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
정채봉 지음 / 이미지앤노블(코리아하우스콘텐츠)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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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하늘바다위에 솜털같은 잎새로 나를 잠재워주는 곳.. 유유하게 헤엄쳐 다니는 하늘 물고기도 나의 잠을 깨우지 않습니다.. 하얀 구름이 나의 꿈인양 그렇게 흘러가는 곳.. 거기가 어디일까 생각해 봅니다.. 넓게 펼쳐진 책띠의 그림을 보면서 아주 포근한 상상속에 갇혀 봅니다. 내가 당신의 글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참 맑고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당신의 글들을 다시 만난다는 건 행복한 일일겝니다. 적어도 내게는 말입니다. 내가 그토록이나 좋아했던 이야기 <오세암>이 당신의 글이라는 걸 알았을 때 당신께 눈물나도록 고마웠습니다. 지금도 내가 끔찍하게 아끼는 당신의 글들은 지쳐버린 내 마음이 가끔씩 찾아가 쉬어가는 작은 쉼터이기도 하지요.. 채송화 '채'에 봉숭아 '봉'자가 어울린다는 당신.. 평안하신가요?


책꽂이 한켠을 보란듯이 차지하고 있는 정채봉님의 글들을 바라본다. 참 이쁜... 가끔씩 나를 불러 마음 쉼을 권해주는 책이기도 하지만 내 스스로 찾아가는 기회도 꽤나 되지 싶다. 이 책 <내가 잊고 있던 단 한사람>은 냉정하게 말해 새로울 건 없다. 그간 있어 왔던 작품들 속에서 뽑아낸 글들인 까닭이다. 하지만 언제보아도 산뜻한 느낌을 전해주는 정채봉님의 글은 두번 세번을 거듭하여 본다하여도 참 좋다.. 오로지 나 혼자만의 느낌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느낌이 참 좋다. 그야말로 뛰다시피 살아야 하는 바쁜 세상속을 헤치고 나아가면서 우리가 챙기지 못하고 지나치는 그 무엇들을, 잃어버린 채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그 무엇들을 이제는 찾아야 한다고 안타깝게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아주 오래도록, 아주 간절하게...

뛰지마. 그러면 너도 볼 수 있을거야... (209쪽)
바쁜 생활..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왠지 낙오자가 된 듯한 느낌을 버리지 못하는 시간들..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이나 바쁘게 하는지.. 무엇이 우리에게 그토록이나 힘겨운 달리기를 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알면서도 우리는 못내 안그런 척, 모르는 척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를일이다. 우리가 그렇게 안그런 척, 모르는 척 하는 것들이 어디 하나둘 뿐일까? 그러면서도 우리가 추구하며 갈구하는 것들이 그렇게 시선을 비껴갔던 것들이라는 것은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행여 숨겨놓은 내면과 마주칠까 두려워하며, 보다 더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는 그리하여 그 포장되어진 모습이 더 두드러지게 보여질 수 있는 형식과 겉치레에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는 우리의 습성이 어쩌면 우리를 그토록이나 힘겹게 달리라고 말하고 있는건 아닐지....

사람이 가장 많이 미치는 것은 사람한테다.
그리고 가장 많이 빈털터리가 되는 사람 또한 사람한테 미쳤던 사람들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미쳐 있는가? (114쪽)
무엇엔가 미쳤던 사람들, 그들은 얼만큼이나 행복했을까? 무엇엔가 미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행복한 일일것이다. 온 마음을 다해 관심과 사랑을 쏟아 부을 수 있었으니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부럽지 않았으리라. 작가의 글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사람사치를 부려보는 것도 꽤나 괜찮은 일일거라고.. 하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미쳤을 때의 후유증이 가장 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사람에게 미치고 싶은 것일까? 역설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한다.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따스함이 느껴질 수 있는 대상이 사람인 까닭이라고.. 배려와 위안이 함께 머무는 사랑이라는 표현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 또한 사람인 까닭이라고..

한 줄의 글을 읽더라도 급하게 읽지 못한다. 그의 마음이 거기에 담겨 있는 까닭이다. 사랑을 묻는 소녀에게 나무가 말해주듯이 그렇게 말이다. 꽃 피는 봄을 보고, 잎 지는 가을도 보고, 나목으로 기도하는 겨울도 보았다면 사랑에 대한 나의 대답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던 나무의 대답은 한동안 나를 멍하게 했었다. 이 책을 통해 소소한 작가의 병상일지를 보게 된다. 딸에게 전해주지 못한 채 갖고 가야 할 안타까운 사랑이 전해져 온다. (아마도 딸은 아버지의 그 사랑을 가슴 한가득 안아들었을게다. 이렇게 다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면...) 그의 아픔이 담겨진 사적인 공간을 들여다 본다는 것도 왠지 안타까움으로 전해져 온다. 누구나 아픔을 간직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멀리가는 향기, 향기자욱, 참 맑고 좋은 생각, 이 순간, 나는 너다 등등등 그가 남겨준 작품들이 얼마전부터 다시 출판되기 시작했다. 생각하는 동화시리즈라고도 하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 시리즈라고도 하는 글들..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지만  짧은 글이 단순하게 그려진 그림과 어울려 누구나 부담없이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도 책의 장점 중 하나일 것 같다. 그만큼 부담없는 편한 느낌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난다는 사실에 설레였던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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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ㅣ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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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부 선생,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꽤나 유명할게다. 일본에서 태어나 대한민국까지 이름을 떨친 걸 보면 그 치료법이 괜찮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그 유명세를 타고 이라부 선생을 보기 위해 서점으로 달려간 사람도 많았을 것이고, 그 대단한 입소문으로 아마도 정신과라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사람들의 심리적 부담감도 많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한참 전이었을 것이다. 그 이라부선생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사 이라부 선생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라부선생이 정말 실질적인 존재였다면 이제사 자신을 찾아온 나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세상을 너무 버겁게 보시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얘기했을거란 생각이 들면서 푸시시 웃어버린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세상을 너무 버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뻑뻑해진 눈에 인공눈물을 넣어가면서 눈알을 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책을 읽고 난 뒤 자체진단을 하게 만들었던 이라부 선생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이 책 <공중그네>가 입소문을 탔을 때 내게는 왠지 거북스러움부터 생겨났다. 어쩌면 쓸데없는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학생들에게 필독서로 읽힐 정도로 가랑비처럼 젖어드는 일본소설에 대한 반감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거나 나는 궁금했다. 무엇이 그토록이나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었는지... 답은 간단했다. 긍정적인 마인드. 자기 자신만의 껍질속에서 탈피하기. 인정하기, 자신속에 있는 또하나의 자신이 무엇때문에 아파하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자신이니 그 아픔에 대하여 솔직하게 인정하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자고 떠들어대는 책들은 참 많다. 이렇게하면 되지 않을까? 그 방법까지 제시해주는 책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왜 그토록까지 인기가 있었던 것일까?  아무래도 이라부 선생의 그 능청스러움때문인 것 같다. 문제를 문제시하지 않는, 곪아버린 아픔에 대하여 수선떨지 않은 채 그것이 곪아버리게 된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 방법들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

배꼽잡게 만들었다는 말을 사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우습게 설정된 몇몇 장면들만 그랬을 뿐이니까. 웃긴다는 생각보다는 그 이라부 선생이 자신을 찾아온 고객들과 똑같은 설정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정말 이런 의사가 있을까? 정말 이런 의사가 있다면 눈물나게 고마운 일일것만 같다. 언제였던가, 잘 다니던 병원을 어느날 불쑥 생겨난 새로운 병원으로 옮겨버렸더니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었다. 그래도 다니던 병원이 낫지 않을까? 새로 생긴 병원이 어떤 곳인줄 잘 모르잖아!...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형식에 얽매인 질문이 있는 곳은 싫다고.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 환자의 상태에 대해 마음을 다해 다가올 수 있다면 그런 의사가 진짜가 아니겠느냐고. 그랬었던 나에게 이라부는 바로 그런 의사의 이미지로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엉뚱하고 별스럽게 보이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랴 싶을 정도로.. 머뭇거림없이 환자의 아픔속으로 들어와 환자 자신이 스스로 치유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라부 선생의 모습이 마치 실제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으니...

이제는 선입견으로 다가왔던 그 거부감을 떨쳐버린다. 그리고 나의 편협함에 대하여 다시한번 질책한다. 작은 것을 내세워 큰 것을 잃곤하던 나의 편협함이라니... 무거운 이야기들을 재미있는 설정을 통하여 무겁지 않게 보여주었던 작가의 섬세함이 눈물겹다.  세상에 무서울 것 없어보이는 야쿠자의 중간보스가 이쑤시개의 뾰족함 앞에 무릎을 꿇었던 상황, 보잘 것 없는 보통의 삶을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귀족적인 허울에 갇혀버려야 했던 의사선생의 간절함, 변해가는 현실속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과거로의 향수만을 꿈꾸던 공중그네타기의 명수, 연일 승승장구하는 후배의 모습에 주눅들어버린 질투심을 어쩌지 못하던 야구선수.. 그 하나하나의 환자들은 바로 우리들이었을 게다. 속내를 드러내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들.. 행여나 약점으로 작용할까봐 두려움에 떨며 자기 자신의 올무에 걸려버린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 이라부 선생을 통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상황들이 참으로 두렵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자신만의 거울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던 이라부 선생의 그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정말 좋았던 시간이었다. 뭣도 모르고 그냥 괜히 거부했었던 시간만큼이나 좋았던 책읽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라부 선생을 만날 수 있다면 나도 그의 환자가 되어 그와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 이라부선생조차도 내 안에 있는 것을.... 느닷없이 친구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 유명한 함석헌 옹의  ' 그사람을 가졌는가'라는 글이 떠오르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 /아이비생각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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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프 : 불만족의 심리학
존 네이시 지음, 강미경 옮김 / 예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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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진정 이것이면 충분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살면서 그만큼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해주는 사람은 있어도 이만큼이면 되었다고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그리 쉽진 않을 것 같다. 만족한다는 것은 어느 것 하나만을 특정적으로 콕 짚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테니 말이다. 내 삶에 진정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때가 오긴 올까? 내 스스로가 이제 되었다고 말하며 마음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가끔 생각해보기도 한다. 도대체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도대체 지금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뜬금없는 자문속에서도 답은 찾을 길이 없다. 그만큼 정신없이 바쁜 것도 아닌데, 그만큼 무엇엔가에 미친 듯이 푹 빠져 지내는 것도 아닌데...

'원숭이 마음'이라는 말을 보면서 뜻모를 서글픔을 안아든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쉼없이 왔다 갔다하는 그런 상태와 우리의 삶속에 내재된 인간의 속성과 무엇이 그리 다르겠느냐고.. 욕심을 버리고 이제 마음을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라는 말은 눈으로도 귀로도 끊임없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예측해보건데 이제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이지만) 하나의 이룰 수 없는 꿈처럼 아스라한 뉘앙스를 풍기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가장 필요한 것들은 가장 가까이에 머물고 있지만 그것을 멀리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우리의 못된 습관이 눈에 띄지 않게 할테니 말이다. 

뭐,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속에 이렇다하게 특별한 것들은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들이 들어 있을 뿐이다. 책을 읽는동안 내게 살풋 미소짓게 만들었던 자기계발 이야기.. 그렇지 그건 그럴거야. 저자의 말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계발에 성공했다면 이 세상은 어찌 되겠는가 말이다.(어쩌면 모두가 다 도인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를..) 그렇다고해서 저자가 외치고 있는 말 '더 많이'에서 '충분해'로! 를 크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책속에는 자꾸만 변신을 거듭해가는 거대 문명의 비대함을 꼬집고 있다. 그것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들임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묻고 있다.  

더할 수 없이 무서운 정보에 중독되어가면서도 그 중독으로부터 헤어나지 않으려하는 우리들의 모습, 끝도없이 먹고 마시는 폭식이나 무언가를 찾아 쉼없이 두리번거리는 우리의 물질적 탐욕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는다. 그러면서도 영원한 행복추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일중독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선택앞에서 점차 흐려지는 우리의 판단력과 인지력에 대하여(이것은 정보의 다양성과도 문제가 이어진다), 생태계를 파괴하고 우리를 직접적으로 불안하게 만드는 과속성장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상태에 대하여 우리가 불안해하지 않는 둔탁함에 대하여 저자는 아주 큰 염려를 하고 있다. 쓰지않는 물건들이 집 구석구석에 쌓이는, 그리하여 한번도 쓰지 않았던 물건들이 중고상품으로 되팔려나가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자고 절절하게 말하고 있다.

각 장의 말미에 실려있는 실천전략... 저자가 우리에게 내미는 약이다. 심각한 우리의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어떻게하면 되는지 알려주고 있다. 정보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정보 다이어트를 시도하라와 같이 폭식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라, 물질적 탐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고, 일중독에서 선택의 고문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등... 명령어조의 이야기들이 약간 거슬리기는 하겠지만 실천의지만 있다면 도전해 볼만한 사항들이 꽤나 많다. 가령, 폭식을 피하기 위해서 되도록 가짓수가 많은 식사를 피하고, 절제를 아는 친구와 사귀며, 식사 시간을 일정하게 지키고, 햇볕을 많이 쪼여라, 숙면을 취하라, 외식할 때는 작은 식당을 이용하라 같은 말들은 그다지 어려운 조건이 아니란 생각이 드니 하는 말이다. 많이 듣고 보아 왔겠지만 다시한번 생각해본다고해도 과하지 않을 내용이란 생각이 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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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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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후우~~~ 이제 마지막인가? 그렇다면 나도 내 심장을 쏴야 하는가?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가슴 한쪽이 먹먹했다. 알싸하게 아파왔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일까? 이건 뭐지? 알 수 없는 감정하나가 내 가슴 저 밑에서부터 스멀거리고 올라왔다. 순간적으로 눈을 깜박거렸다고 생각했는데 왠걸? 눈물이다. 툭하면 운다고해서 어렸을 적부터 내 별명은 울보였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울지 않으려고, 최소한 타인에게만큼은 내 울음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내게는 너무도 명확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말, 사람은 저마다의 동굴을 하나씩 끌어안고 산다는 그말이 누군가의 손을 빌어 내게로 다가왔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속이 쓰렸다. 다시 신경증!

감동적인 휴먼드라마라는 말이 있다. 감동적? 웃기네! 대체적인 내 반응은 그랬다. 도대체 뭐가 감동적이라는 거야? 그렇다고 그 흔한 눈물조차 짜내지 못하면서? 그랬는데, 정말 그랬던 내가 책을 읽으면서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만큼 진하다. 삶이,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시간의 존재 의미가... 정신병원에서 살아가는 정신병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감동적이라는 말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이러니다. 미쳐서 갇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갇혀서 미쳐가는 사람도 있지요. 잘 아시잖아요? 최기훈을 향해 내뱉던 수명의 그 한마디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세상속에서 나를 건져내고 싶어했던, 아니 시간의 굴레속에서 헤어나고 싶어했던 수명은 어쩌면 우리 자신일것이다. 자신의 시간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래서 자신만의 삶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했던 승민은 어쩌면 우리속에 내재되어져 있는 한올의 머리카락같은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명을 끌어안은 채 승민을 바라보아야 했던 나는 정말이지 참 많이도 아팠다. 수명이 나였다. 그 깊은 눈속에 한가닥 절망조차도 숨기고 싶어하지 않던 승민을 도와주기 위해 마지막 탈출을 시도했을 때 우울한 세탁부는 수명에게 물었었다. 선생님은요? 왜 같이 안가시나요?... 거기에서부터였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가 너 자신을 한번만 돌아보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병에 걸린 선생님을 이해하게 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말하던 우울한 세탁부의 말처럼 이제는 자신의 껍질속에서 나와야만 한다고 말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를일이었다. 껍질속에만 있으면 질식사한다는 것도 모른 채 힘겨운 세상살이를 막연하게 거부해서는 안되는거라고 누군가가 말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정신병원의 일상을 낱낱이 꿰고 있는 수명과 정신병원이라는 곳엘 처음 와보는 승민의 만남은 정신병원을 향해 가고 있던 길목에서였다. 그리고 그 정신병원의 복도에서 그와의 끈이 얽혀버리고 만다. 느닷없이 공조자가 되어버린 수명은 승민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친 새끼, 저러다 죽지.. 였을 뿐이었다. 관심갖지 말자고, 다가가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던 수명이 끝내 인정해야 했던 것은 승민이 자신이고 자신이 승민이라는 거였다. 끝도없이 밀려오는 현실의 파고속에서 힘에 겨워 모든 것을 놓고 싶어하는 수명과 그 파고의 물결을 잘 읽어내 파도타기로 즐기고 싶어했던 승민은 하나였다. 그리고 바로 나였다. 수명의 앞길을 열어주던 작가는 잔인하게도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었던 승민의 존재에 대한 의미부여를 나한테 떠밀었다. 시체없는 자살이라고...

자신이 걸어왔던 여정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승민의 지나온 시간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시간속으로 돌아가 자신과의 재회를 꿈꾸었던 승민이 시력을 잃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의 기억속에서 찾아낸 먼 날의 아픔을 끌어안은 채 살아야 했던 수명이 당당하게 그 아픔과 마주서고자 했을 때 나는 눈물이 났다. 지극히 당연한 현실속에서 일어났던 두 남자의 사건은 결국엔 얻어터지고 깨지는 탈주극이었지만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다. 수명과 승민이  적으로 간주하여 싸워댔던 것은 현실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오롯이 싸워야할 적으로만 보지 말라고 충고해주고 있었다. 싸움은 하되 설득과 관심과 이해도 필요하다고.. 내 삶이지만, 내 시간이지만 나의 판단과 선택과 통제력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라고.. 모두가 정신병자들이었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룰로써 정을 나누었던 병동사람들의 그 살가운 표현을 외면해서는 안되는거라고..

어느 쪽일까? 멀쩡했지만 정신병원안에 갇혀버렸던 수명과 승민을 바라보면서 나는 물었다. 타의에 의해서 그곳으로 갔는가, 아니면 자의에 의해서 그곳으로 갔는가. 그리고 현실의 시간에게 떠밀려 그곳으로 갔는가, 아니면 내 스스로가 그 시간밖으로 걸어나오듯 그곳으로 갔는가. 생각해보면 정말 愚問이다. 멍청한 질문! 답이 있어도, 답이 없어도 멍청한! 지금처럼 끝없는 愚問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다시 만난다는 건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수명과 승민은 묻는다. 너는 어느쪽이냐고. 내 시간에 떠밀려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니냐고. 모든 족쇄로부터 풀려난 자유로운 존재인 '나'를 만나기 위해 글라이더를 타고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던 승민이 나는 궁금하지 않다. 단지 내 시간속에 나로 존재하고 싶었다고 말하던 승민은 정말 그렇게 되었을거라고 나는 믿으니까. 병원문을 나서며 자신을 묶었던 올가미를 털어내듯이 약과 소지품이 든 가방을,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꼬리표처럼 끌고 다녔던 그 물건을 병원 정문안으로 힘차게 내던졌던 수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족쇄는 많다. 우리를 겨누는 세상속의 총구는 셀 수도 없다. 누군가 쏘는 총에 언제 맞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쭉 째진 가재미눈을 한 채 살펴본다한들 그 많은 것들을 어찌 다 볼 수 있을까?  나는 팔을 벌렸다. 총구를 향해 가슴을 열었다. 그리고 언덕 아래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나야.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 이 책의 마지막 문구다. 그렇게 승민을, 아니 자신만의 희망을 저 멀리로 보내놓고 수명이 했던 마지막 말이다. 눈물이 날만큼 진하게 안겨왔던 수명과 승민의 여정들이 뿌옇다. 어쩌면 아주 오래도록 잊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수명과 승민의 존재를... /아이비생각

추신..
말투가 많이 불손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밉지 않았기에 다음에 해 줄 작가의 이야기를 기다려보기로 한다. 아주 멋지게 강하고 아름다운 펀치를 다시 한번 날려주기를 기대하면서... 기도가 없는 곳은 사탄의 잔칫집. 기도가 있는 곳은 사탄의 초상집. (153쪽) 의 말처럼 은유라는 것은 때로 혹독한 매질로 나에게 다가온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 매력적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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