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후우~~~ 이제 마지막인가? 그렇다면 나도 내 심장을 쏴야 하는가?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가슴 한쪽이 먹먹했다. 알싸하게 아파왔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일까? 이건 뭐지? 알 수 없는 감정하나가 내 가슴 저 밑에서부터 스멀거리고 올라왔다. 순간적으로 눈을 깜박거렸다고 생각했는데 왠걸? 눈물이다. 툭하면 운다고해서 어렸을 적부터 내 별명은 울보였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울지 않으려고, 최소한 타인에게만큼은 내 울음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내게는 너무도 명확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말, 사람은 저마다의 동굴을 하나씩 끌어안고 산다는 그말이 누군가의 손을 빌어 내게로 다가왔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속이 쓰렸다. 다시 신경증!

감동적인 휴먼드라마라는 말이 있다. 감동적? 웃기네! 대체적인 내 반응은 그랬다. 도대체 뭐가 감동적이라는 거야? 그렇다고 그 흔한 눈물조차 짜내지 못하면서? 그랬는데, 정말 그랬던 내가 책을 읽으면서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만큼 진하다. 삶이,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시간의 존재 의미가... 정신병원에서 살아가는 정신병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감동적이라는 말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이러니다. 미쳐서 갇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갇혀서 미쳐가는 사람도 있지요. 잘 아시잖아요? 최기훈을 향해 내뱉던 수명의 그 한마디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세상속에서 나를 건져내고 싶어했던, 아니 시간의 굴레속에서 헤어나고 싶어했던 수명은 어쩌면 우리 자신일것이다. 자신의 시간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래서 자신만의 삶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했던 승민은 어쩌면 우리속에 내재되어져 있는 한올의 머리카락같은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명을 끌어안은 채 승민을 바라보아야 했던 나는 정말이지 참 많이도 아팠다. 수명이 나였다. 그 깊은 눈속에 한가닥 절망조차도 숨기고 싶어하지 않던 승민을 도와주기 위해 마지막 탈출을 시도했을 때 우울한 세탁부는 수명에게 물었었다. 선생님은요? 왜 같이 안가시나요?... 거기에서부터였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가 너 자신을 한번만 돌아보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병에 걸린 선생님을 이해하게 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말하던 우울한 세탁부의 말처럼 이제는 자신의 껍질속에서 나와야만 한다고 말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를일이었다. 껍질속에만 있으면 질식사한다는 것도 모른 채 힘겨운 세상살이를 막연하게 거부해서는 안되는거라고 누군가가 말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정신병원의 일상을 낱낱이 꿰고 있는 수명과 정신병원이라는 곳엘 처음 와보는 승민의 만남은 정신병원을 향해 가고 있던 길목에서였다. 그리고 그 정신병원의 복도에서 그와의 끈이 얽혀버리고 만다. 느닷없이 공조자가 되어버린 수명은 승민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친 새끼, 저러다 죽지.. 였을 뿐이었다. 관심갖지 말자고, 다가가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던 수명이 끝내 인정해야 했던 것은 승민이 자신이고 자신이 승민이라는 거였다. 끝도없이 밀려오는 현실의 파고속에서 힘에 겨워 모든 것을 놓고 싶어하는 수명과 그 파고의 물결을 잘 읽어내 파도타기로 즐기고 싶어했던 승민은 하나였다. 그리고 바로 나였다. 수명의 앞길을 열어주던 작가는 잔인하게도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었던 승민의 존재에 대한 의미부여를 나한테 떠밀었다. 시체없는 자살이라고...

자신이 걸어왔던 여정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승민의 지나온 시간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시간속으로 돌아가 자신과의 재회를 꿈꾸었던 승민이 시력을 잃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의 기억속에서 찾아낸 먼 날의 아픔을 끌어안은 채 살아야 했던 수명이 당당하게 그 아픔과 마주서고자 했을 때 나는 눈물이 났다. 지극히 당연한 현실속에서 일어났던 두 남자의 사건은 결국엔 얻어터지고 깨지는 탈주극이었지만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다. 수명과 승민이  적으로 간주하여 싸워댔던 것은 현실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오롯이 싸워야할 적으로만 보지 말라고 충고해주고 있었다. 싸움은 하되 설득과 관심과 이해도 필요하다고.. 내 삶이지만, 내 시간이지만 나의 판단과 선택과 통제력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라고.. 모두가 정신병자들이었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룰로써 정을 나누었던 병동사람들의 그 살가운 표현을 외면해서는 안되는거라고..

어느 쪽일까? 멀쩡했지만 정신병원안에 갇혀버렸던 수명과 승민을 바라보면서 나는 물었다. 타의에 의해서 그곳으로 갔는가, 아니면 자의에 의해서 그곳으로 갔는가. 그리고 현실의 시간에게 떠밀려 그곳으로 갔는가, 아니면 내 스스로가 그 시간밖으로 걸어나오듯 그곳으로 갔는가. 생각해보면 정말 愚問이다. 멍청한 질문! 답이 있어도, 답이 없어도 멍청한! 지금처럼 끝없는 愚問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다시 만난다는 건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수명과 승민은 묻는다. 너는 어느쪽이냐고. 내 시간에 떠밀려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니냐고. 모든 족쇄로부터 풀려난 자유로운 존재인 '나'를 만나기 위해 글라이더를 타고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던 승민이 나는 궁금하지 않다. 단지 내 시간속에 나로 존재하고 싶었다고 말하던 승민은 정말 그렇게 되었을거라고 나는 믿으니까. 병원문을 나서며 자신을 묶었던 올가미를 털어내듯이 약과 소지품이 든 가방을,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꼬리표처럼 끌고 다녔던 그 물건을 병원 정문안으로 힘차게 내던졌던 수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족쇄는 많다. 우리를 겨누는 세상속의 총구는 셀 수도 없다. 누군가 쏘는 총에 언제 맞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쭉 째진 가재미눈을 한 채 살펴본다한들 그 많은 것들을 어찌 다 볼 수 있을까?  나는 팔을 벌렸다. 총구를 향해 가슴을 열었다. 그리고 언덕 아래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나야.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 이 책의 마지막 문구다. 그렇게 승민을, 아니 자신만의 희망을 저 멀리로 보내놓고 수명이 했던 마지막 말이다. 눈물이 날만큼 진하게 안겨왔던 수명과 승민의 여정들이 뿌옇다. 어쩌면 아주 오래도록 잊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수명과 승민의 존재를... /아이비생각

추신..
말투가 많이 불손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밉지 않았기에 다음에 해 줄 작가의 이야기를 기다려보기로 한다. 아주 멋지게 강하고 아름다운 펀치를 다시 한번 날려주기를 기대하면서... 기도가 없는 곳은 사탄의 잔칫집. 기도가 있는 곳은 사탄의 초상집. (153쪽) 의 말처럼 은유라는 것은 때로 혹독한 매질로 나에게 다가온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 매력적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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