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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ㅣ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이라부 선생,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꽤나 유명할게다. 일본에서 태어나 대한민국까지 이름을 떨친 걸 보면 그 치료법이 괜찮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그 유명세를 타고 이라부 선생을 보기 위해 서점으로 달려간 사람도 많았을 것이고, 그 대단한 입소문으로 아마도 정신과라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사람들의 심리적 부담감도 많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한참 전이었을 것이다. 그 이라부선생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사 이라부 선생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라부선생이 정말 실질적인 존재였다면 이제사 자신을 찾아온 나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세상을 너무 버겁게 보시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얘기했을거란 생각이 들면서 푸시시 웃어버린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세상을 너무 버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뻑뻑해진 눈에 인공눈물을 넣어가면서 눈알을 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책을 읽고 난 뒤 자체진단을 하게 만들었던 이라부 선생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이 책 <공중그네>가 입소문을 탔을 때 내게는 왠지 거북스러움부터 생겨났다. 어쩌면 쓸데없는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학생들에게 필독서로 읽힐 정도로 가랑비처럼 젖어드는 일본소설에 대한 반감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거나 나는 궁금했다. 무엇이 그토록이나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었는지... 답은 간단했다. 긍정적인 마인드. 자기 자신만의 껍질속에서 탈피하기. 인정하기, 자신속에 있는 또하나의 자신이 무엇때문에 아파하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자신이니 그 아픔에 대하여 솔직하게 인정하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자고 떠들어대는 책들은 참 많다. 이렇게하면 되지 않을까? 그 방법까지 제시해주는 책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왜 그토록까지 인기가 있었던 것일까? 아무래도 이라부 선생의 그 능청스러움때문인 것 같다. 문제를 문제시하지 않는, 곪아버린 아픔에 대하여 수선떨지 않은 채 그것이 곪아버리게 된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 방법들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
배꼽잡게 만들었다는 말을 사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우습게 설정된 몇몇 장면들만 그랬을 뿐이니까. 웃긴다는 생각보다는 그 이라부 선생이 자신을 찾아온 고객들과 똑같은 설정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정말 이런 의사가 있을까? 정말 이런 의사가 있다면 눈물나게 고마운 일일것만 같다. 언제였던가, 잘 다니던 병원을 어느날 불쑥 생겨난 새로운 병원으로 옮겨버렸더니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었다. 그래도 다니던 병원이 낫지 않을까? 새로 생긴 병원이 어떤 곳인줄 잘 모르잖아!...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형식에 얽매인 질문이 있는 곳은 싫다고.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 환자의 상태에 대해 마음을 다해 다가올 수 있다면 그런 의사가 진짜가 아니겠느냐고. 그랬었던 나에게 이라부는 바로 그런 의사의 이미지로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엉뚱하고 별스럽게 보이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랴 싶을 정도로.. 머뭇거림없이 환자의 아픔속으로 들어와 환자 자신이 스스로 치유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라부 선생의 모습이 마치 실제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으니...
이제는 선입견으로 다가왔던 그 거부감을 떨쳐버린다. 그리고 나의 편협함에 대하여 다시한번 질책한다. 작은 것을 내세워 큰 것을 잃곤하던 나의 편협함이라니... 무거운 이야기들을 재미있는 설정을 통하여 무겁지 않게 보여주었던 작가의 섬세함이 눈물겹다. 세상에 무서울 것 없어보이는 야쿠자의 중간보스가 이쑤시개의 뾰족함 앞에 무릎을 꿇었던 상황, 보잘 것 없는 보통의 삶을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귀족적인 허울에 갇혀버려야 했던 의사선생의 간절함, 변해가는 현실속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과거로의 향수만을 꿈꾸던 공중그네타기의 명수, 연일 승승장구하는 후배의 모습에 주눅들어버린 질투심을 어쩌지 못하던 야구선수.. 그 하나하나의 환자들은 바로 우리들이었을 게다. 속내를 드러내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들.. 행여나 약점으로 작용할까봐 두려움에 떨며 자기 자신의 올무에 걸려버린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 이라부 선생을 통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상황들이 참으로 두렵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자신만의 거울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던 이라부 선생의 그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정말 좋았던 시간이었다. 뭣도 모르고 그냥 괜히 거부했었던 시간만큼이나 좋았던 책읽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라부 선생을 만날 수 있다면 나도 그의 환자가 되어 그와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 이라부선생조차도 내 안에 있는 것을.... 느닷없이 친구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 유명한 함석헌 옹의 ' 그사람을 가졌는가'라는 글이 떠오르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 /아이비생각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