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 초개체 생태학
위르겐 타우츠 지음, 헬가 R. 하일만 사진, 최재천 감수, 유영미 옮김 / 이치사이언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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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도 포유동물이다? 왜? 포유동물처럼 번식률이 낮고, 자손을 양육하기 위해 젖과 같은 왕유 즉 로열젤리를 분비하며, 안전한 양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벌집을 만들고, 36도의 체온을 유지하는 포유동물과 비슷한 35도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 가장 뛰어난 학습능력과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 조그만 꿀벌을 포유동물로 본다는, 처음부터 낯선 이론과 마주치게 되는 꿀벌의 세계를 들여다본다는 건 분명 흥미로운 일일 것이기에 일종의 설레임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현란한 사진들이라니!  작은 사진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붙어 있는 아주 짧은 설명글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대충 보아 넘기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유럽에서 세번째로 중요한 가축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꿀벌이다. 이번에는 또 가축이라고? 왜? 그것은 농작물의 수분활동에 관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란다. 벌이 사라진다면 4년안에 지구가 망할 것이라는 이론을 뒷받침해주기에 충분한 근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책을 읽다보면 많은 의문점들에 대하여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꿀벌의 탄생부터 벌집을 만드는 과정이나 벌집의 구조, 여왕벌의 혼인비행, 벌들의 언어등등 꿀벌에 관한 새로운 정보들이 놀랍도록 세세하게 잘 설명되어져 있다. 벌집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지키고, 유충을 돌보는 등 많은 일을 하던 일벌이 나이가 들어 가장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꿀을 채집하는 일이라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내가 알고 있던 상식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모든 벌들이 꿀을 채집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는 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분봉을 하는 과정에서조차 나는 새로운 여왕벌이 따로이 분봉을 하는 거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새로운 여왕벌이 태어나면 기존의 여왕벌이 원래의 군락에서 70%가량의 일벌을 데리고 옛벌집을 떠난다고 한다. 일벌의 1/3을, 꿀과 꽃가루. 애벌레로 가득 채워진 벌집을 지참금으로 받는 새로운 여왕벌의 출발은 그야말로 탄탄하다고 한 말이 이해된다. 하지만 아주 어린 일벌과 노쇠한 일벌들만이 남겨지는 것과 여왕벌을 따라 분봉하기 위해 벌집을 떠나는 일벌의 일령이 엇비슷하다는 걸 보면 노동과 이익을 고루 분배하는 사고관념이 놀랍기만 하다.

꿀벌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색깔을 알게되니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던 나에게 곤충들의 습격(?)이 있었던 어느날의 산행이 떠오른다. 여러색 중에서 한가지 색을 골라야 할때 망설임없이 파란색과 노란색을 선택한다는 건 그다지 의미있는 행동은 아닌 듯 보여지지만 파랑과 노랑이 꽃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색이고 다른 색의 꽃에도 파랑과 노랑의 파장이 많이 들어있다는 사실은 몰랐던 사실이다. 또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움직임에 민감한 꿀벌 군락앞에서는 절대로 크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사물은 슬로모션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또하나 꿀벌군락 근처에서는 바나나를 먹지 마라. 공격할 때 쏘는 침에서 경고 페로몬이 분비되는데 이 페로몬은 다른 벌들에게 공격개시를 알리는 신호가 된다고 한다. 이 때의 경고 페로몬은 잘 익은 바나나 향기를 풍긴다고 하니 명심할 일이다.

꿀벌이 꽃을 찾아 날아다닐 때 한동안 똑같은 종류의 꽃만 찾아다닌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은 어떻게 꿀벌이 대부분의 수분활동을 도와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풀리게 한다. 그토록이나 많은 꽃의 형태와 종류를 보면서 내심 그런 점들이 궁금했었던 까닭이다. 또한 꿀벌의 지능에 관한 부분은 정말이지 놀랍다. 오른쪽과 왼쪽, 대칭과 비대칭, 같은 것과 다른 것, 더 많고 적은 것등을 알 수 있으며, 미로에서 길을 찾아야 할 때 어떤 표지를 따라가야 하는지를 아주 빠르게 인식하고 습득할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말이다. 사전에 작업 계획을 세워 효율적으로 작업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하찮은 미물이라고 치부하기엔 우리가 너무 부끄럽기만 하다. 그렇다면 그 많은 꿀벌들이 똑같은 꽃에 앉을 확률이 많지 않을까? 하지만 한번 방문했던 꽃에 '꿀이 없음'이라는 화학적인 표지를 달아두어 다른 꿀벌이 그 꽃에 내려앉는 수고를 하지 않도록 해 준다는 꿀벌의 학습능력이 놀라울 뿐이다. 꽃들도 저마다의 상황에 맞게 꽃을 피워올리지만 그 시간표에 맞춰 식탁앞으로 날아갈 수 있는 시간 감각까지 갖추고 있다는 꿀벌의 학습능력, 그리고 별다른 수확이 없었던 꽃밭은 기억속에서 지워버려 다시 찾아가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한다는 망각기능을 볼 때 꿀벌을 통해 우리도 배울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개미의 세계. 그 개미의 세계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통해 만났을 때 정말 기막히도록 놀라웠었다. 그리고 그 작은 개체군에 매료되어 연구를 하고 정보를 알아내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조직적인 사회를 갖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왠지 두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 책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를 통해서 또하나의 황홀한 개체군을 만나게 되었다. 체계적으로 조직을 이루어나가는 이 두 개체군의 모습을 보면 왠지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개미들이 내뿜는 페로몬과 꿀벌들이 풍기는 나시노프샘의 페로몬이 담고 있는 그들만의 언어는 정말이지 대단하다. 벌들도 말을 한다고? 실제로도 꿀벌은 그들만의 언어를 갖고 있다고 한다. 바로 '춤 언어'라고 한다. 소리도 없는 몸동작만을 할 뿐인데 다른 벌들이 그 메세지를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가 떠올랐다. 백설공주를 사랑했던 일곱번째 난장이는 벙어리였다. 그래서 몸짓과 춤으로 그의 사랑을 표현했지만 공주는 알아듣지 못한 채 떠나버렸다는... 그런데 꿀벌은 달랐다. 달콤한 꿀이 있는 목적지까지의 방향과 거리를 아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그 몸짓만으로! 더구나 춤을 추는 주연벌과 조연벌이 따로 있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은가? 이 때 그 행위의 나침반이 되어 주는 것이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자연과 하나된 꿀벌들의 생태를 알 수 있는 일이다.

꿀벌은 집을 짓기 위한 터를 고를 때도 상당히 까다로운 듯 하다. 벽의 상태가 어떤지, 주변의 환경은 어떤지 살펴보고 자신들이 원하는 여러가지 조건에 충족되었다고 여겨지면 선발대를 편성하여 그 주변 지역까지 알아보는 섬세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집을 지을 때도 알방, 유충방, 고치방은 중앙에 그 주위로는 꽃가루가 채워질 방을 만들며 나머지는 꿀을 채워넣을 방을.. 이렇듯이 벌들은 집을 지을 때도 각 기능에 맞게 집을 짓는다고 한다. 벌집 자체가 다양한 기능을 해야하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지만 뚜껑이 있고 없으며 방의 크기가 큰 수벌의 방에 비해 일벌의 방은 더 작고 납작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 밖에도 꿀벌들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방법으로 질병을 물리친다거나 추위를 막기위해 꿀을 날라다주는 주유벌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벌집의 입구를 지키며 자신의 벌통에 속하는 벌인지 그렇지 않은 벌인지를 식별하여 낯선벌의 출입을 막는 경비벌은 엄격하지만 꿀방울과 같은 뇌물을 넘겨주면 못본척 눈감아주기도 한다고 한다. 조직적인 생활을 하는 군단에게는 비리(?)가 필요불가결한 것일까? 윌리엄 골딩의 작품 <파리대왕>에서 파헤쳤던 조직적인 사회에서 우두머리를 만들고자 하며 군림하고 싶어했던 이기적인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그 많은 개체군속에서도 한마리의 우두머리를 통한 지휘체제가 아닌 꿀벌의 세계는 정말 신비롭기까지 하다. 꿀벌의 직업군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여왕벌은 결코 지시나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수벌, 일벌, 수집벌, 난방벌, 주유벌, 물을 운반하는 벌, 부채질하는 벌, 환기를 담당하는 벌, 건축벌, 통풍벌, 시녀벌, 장례벌 등등 각 상황에 맞추어 저마다의 일을 하는 벌들이 서로 협력하여 그 조직을 이끈다는 것이 참으로 매력적으로 보여졌다.  그야말로 꿀벌의 세계를 탐닉했던 시간이었다.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꼼꼼하게 읽혀지던 책이었다. 그 많은 사진 한장 한장이 나에게는 놀라움을 선사해주었고, 너무나 안일하게 생각했었던 꿀벌이라는 존재를 다시보기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듯 하다. 책의 맨 마지막 구절처럼 '꿀벌을 돕는 일이 우리 스스로를 돕는 일' 이라는 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구의 생태와 경제를 위해 꿀벌이 건강하게 존속해야 한다는 말은 더더욱 잊으면 안되지 싶다. 책을 통하여 꿀벌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점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환경에 따라 수명이 달라지는 것에서 노화연구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듯이, 꿀벌의 복잡한 생물학적 연관들에 대한 것들을 통하여 우리의 젊은이들이 앞으로 살만한 환경을 만들어 가는 데 책임의식을 느끼도록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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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자란다 - 아라이 연작 소설
아라이 지음, 양춘희 외 옮김 / 아우라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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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꿈결같은 이미지를 품고 있는 곳. 하지만 그곳이 왜 그렇게까지 꿈결같은 이미지를 품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죽기전에 한번쯤은 꼭 들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중국의 한 자치구에 속해있지만 그들도 한때는 그들만의 나라일때가 있었다. 단단하게 뿌리박힌 티베트 불교의 단아함속에서 작지만 욕심없이 살아왔던 소수민족이었을거라고 생각되어지지만 어찌되었든 그들이 중국의 침략에 무참히 밟혀 하나의 자치구가 되어버렸을 때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감히 생각해 보게 된다. 포탈라궁이라는 언덕위의 사원이나 현재까지도 어디에 머물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떠도는 그들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존재가 어쩌면 나에게 그 꿈결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낸 건 아니었을까?

아주 오래전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영화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티벳을 보게 된 것 같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그들의 종교생활은 지금 생각해보면 저렇게 무너져내릴 건 아니었지 싶기도 하고.. 환생이라거나 윤회라거나 하는 사상 따위는 믿지 않지만 왠지 무너져버린 그들의 종교적 의미가 안타깝게 느껴졌던 까닭이다. 티베트어로 신의 땅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라싸'라는 지명 하나만 보더라도 그들에게 있어 종교적인 의미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했는가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티벳인이라는 작가 아라이의 시선은 우리가 바라보는 그 꿈결같은 이미지를 거부하고 있다. 당신들이 꿈꾸는 티벳의 속살이 이렇게 생겼습니다, 라고 말하는 듯이.. 그렇게 중국이라는 커다란 장화아래 짓밟혀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꿈틀거리며 아직은 살아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듯이.. 아무리 그랬어도 티베트라는 단어가 안고 있는 그 신비스러움이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처음엔 책속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힘겨웠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앞서고 작가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그들만의 생활을 이해하기가 쉽진 않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다시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그들만의 현재가 책속에 녹아있었지만 왠지 전날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끈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고는 하지만 옛것을 향한 향수를 차마 버릴 수 없었던 때문일까?  이 책속에는 대체적으로 라마, 즉 라마교의 고승으로써 수도만을 목적으로 살다가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의해 철폐되는 사원을 떠나 환속해야 했던 수도승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경전만을 읽을 줄 알았던 그들이 사회의 현실적인 삶에 동화되어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음이다. 그들을 통하여 당시의 티베트인들이 만들어가던 사회상을 볼 수가 있다. 

어디나 다 그렇다. 무너져가는 가정이나 무너져가는 민족 또는 나라의 마지막엔 다시한번 불사르고 싶어하는 한줄기 흐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다 안되면 서서히 현재에 동화되어져 가거나 아니면 체념이나 포기를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들도 그랬다. 마을로 내려왔으나 쉽게 마을사람들속에 섞여들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작가는 그대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1950년대 이후 쓰촨과 티베트 경계의 지촌이라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으면서 그들의 평범한 삶속에서도 변화의 물결에 순응하는 한편 새로움에 대한 기대 또한 놓치지 않는 듯 하다. 몇 편의 짧은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통해서 작가는 그런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국사람이 아닌 티베트사람으로서의 긍지 또한 뚜렷하게 보여주려 한다.

책을 읽다보면 일종의 구도서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작품속의 주인공들을 따라가다보면 왠지 모르게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부분과 자주 마주치는 까닭이다. '현자 아구둔바'라는 단편이 특히나 그런 것 같다. 티베트인이 바라보는 불교적인 특징이라거나 신성화된 시선으로 속세의 감정등을 바라보는 듯한 표현이 그렇다.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현자로써 살아가는 모습만 보더라도 석가모니를 떠올리게 하기엔 충분하다. 석가모니처럼 그도 현실의 근심을 회피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때로는 신처럼 때로는 인간처럼 그렇게.. 이렇듯이 이 작품속에서는 변화에 희생되어지는 모습과 변화를 찾아 떠나가는 모습이 동시에 그려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 또한 숨기지 않는다.

<색에 물들다>라는 그의 작품을 읽고나서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읽어보리라 했었다. 그랬기에 이 책은 주저없이 선택되어졌지만 전작만큼의 느낌은 전해받지 못한 듯 하다. 티벳이라는 나라의 속성을 잘 몰랐기에 그러했으리라.. 그리고 그다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작품의 형태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앞서기도 하지만 작품속의 흐름이 왠지 멀게 느껴졌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만큼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았다는 말도 될 것이다.  순수함이라거나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그들 삶의 형태는 나에게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을 전해주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순수를 받아들이기엔 내 마음도 너무나 멀리 와버린 탓이겠지 한다. 그렇지만 티벳이 품고 있는 라싸의 땅위를 죽기전에 한번쯤은 걸어보고 싶다는 욕심은 여전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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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힘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김은경 옮김 / 북바이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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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세이, 다시 말해서 수필이라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나 역시도 끄적거리는 걸 좋아하다보니 그저 산문형식의 글이 될 수 밖에 없다. 수필이라는 건 아무런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글이 아닐까 싶은데 그러다보면 그 글을 쓴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시작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글쓴이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야말로 개인적인 생각을 표현한 글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게 보여지는 까닭이다. 그래서 나는 수필 읽기를 꺼려한다. 어느정도 그 사람의 작품을 읽어보았다면 한번쯤 도전해 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아니라면 처음 마주친 그 사람의 작품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거나 해서 글쓴이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는 경우다. 이 작품 <망각의 힘>이 바로 수필집이다. 무심코 생각하기엔 망각, 즉 우리에게 있어서 아주 소중하게 다가오는 어떤 기억의 원리에 대해 말해주는 책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읽으면서 바로 수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대체적으로 수필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을 담다보니 너무 어렵거나 혹은 너무 장황스럽거나 하는 느낌을 전해받을 때도 있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글이니 쓴 사람보다는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그 책에 대한 평가를 달리 하게 된다. 너무 어렵거나 장황스럽다면 (쉽게 말해서 잘난체한 듯한 느낌을 전해받게 되면) 두번 다시 그사람의 글을 읽고 싶지 않을테고 그렇지 않고 쉽고 차분하게 다가왔다면, 그리고 나와 같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면 그 사람의 글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의 저자 도야마 시게히코의 생각은 단순명료하게 다가온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풀어가는 문체도 수월하게 읽힌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무언인지를 눈치챌 수 있는만큼의 거리를 주고 있다. 하지만 간혹 일본스러운 것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그 나라의 문화적 속성을 모르니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쳐가야 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 (소개글을 살펴보자면 일본에서는 꽤나 유명한 사람인듯하다)

여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 찬반이론과 호불호의 이론의 보여진다. 그렇다고 딱히 저자의 주장을 강력하게 피력하지는 않는 듯 하다. 단지 내 생각은 이렇다, 라는 것만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보니 딱히 거부감이 일지는 않는다는 말이 맞을게다. 저자가 어떤 사람이었든 내가 모르는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나의 일상적인 것들과 마주하는 글들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그리고 어떤 주제를 놓고 너무 강력하게 말하기보다는 읽고 있는 나에게도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면 더욱 더 좋다. 멀리 떨어져서 바라볼 때에 아름다운 것들을 굳이 가까이 다가가 실망하고야마는 우리의 조급함에 대한 생각이 참 좋았다. 빗나가기 때문에 재미있다는 예측이론은 왠지 작금의 현실세계를 살짝 엿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고, 무서울 정도의 힘을 가진 습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글은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어 좋았다. 아이들의 교육문제라거나 블랙먼데이 혹은 블루먼데이라고 부르는 월요일과 상반되는 휴일의 개념에 대한 그의 생각에는 작은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대체적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느낌이 괜찮았던 에세이집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의 뇌는 서랍처럼 되어 있어서 가끔씩은 정리를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그 비워주는 역할을 해주는 건 아닐까?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좋다. 가까운 곳을 잠시 떠나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해서 잠시 머리를 쉬게 해주기도 하고 저 아래쯤에서 눌려 신음하는 기억이라는 것들을 차분하게 들어내는 것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망각.. 잊혀지는 사람이 가장 슬프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지만 때로는 잊혀지는 것이 오히려 좋을수도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야 하는 것들 혹은 잊고 살았으나 잊지 말아야 했던 것들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잊어야만, 혹은 버려야만 다시 채워넣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마음비우기가 절실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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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루 - Swa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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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배우들의 내면연기가 괜찮았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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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기일을 맞아 일년만에 고향을 찾게 되는 사진작가 다케루.. 기일임에도 불구하고 불협화음이 인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형 미노루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모든 감정을 삭여야만 했던 미노루의 속깊은 서글픔까지도.. 일년만에 찾게 된 고향에서 다케루는 어린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치에코를 만난다. 극의 흐름으로 옛연인인듯한 인상을 풍기지만 왠지 두 사람 사이엔 상당한 간격이 벌어져 있다. 그 치에코를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형 미노루는 치에코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도 못하는데 돌아온 동생 다케루는 치에코의 집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그들이 함께 어울려 찾아갔던 그곳에서 일이 벌어진다. 사진을 찍던 다케루는 우연하게 다리위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야 말았다. 그리고 치에코의 장례식.. 미노루의 재판..

어쩌면 그것이 형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다케루는 자신이 보았던 일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부터 묘하게 변해가는 형 미노루의 태도는 다케루에게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거듭되는 재판 과정에서 마지막 증인으로 나섰던 다케루의 증언.. 결국 그때문에 미노루는 살인자가 되어버리고.. 그들 서로가 숨겨야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미노루가 출소를 하루 앞둔 날 미노루와 함께 일했던 주유소 직원이 찾아와 형을 찾아가 주길 부탁하지만 형을 거부하는 다케루를 보고 그가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고...

항상 그렇다. 형은 언제나 희생자여야 했고 아우는 언제나 저 자신만을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렇다고 부모의 사랑이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쳤던 것도 아니었을 게다. 왜 형에게는 늘 희생을 강요해야 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왜 형이라는 자리는, 장남이라는 자리는 굳이 희생을 하면서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형이었고 동생이었기에 빼앗고 뺏긴다는 것과 믿음과 배신, 그리고 진실과 거짓이라는 전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서로가 서로를 가해자라고 생각하며 서로가 서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형이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아우는 가졌다. 갖고 싶은 걸 다 소유할 수 있는, 자유분방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하지만 그는 외로웠다. 모든 것을 빼앗기기만 하지만 그는 모두에게 친절하다. 그렇게 자신의 삶에 순응해가며 살지만 내면으로는 고통을 맛보아야했던, 그야말로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형의 자리..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우는 자신의 앞날을 걱정했다는 거다. 살인자가 될 형으로 인하여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를 최소한 줄이고 싶었다는 거다. 아주 철저하게 자기식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았던 아우의 존재였다.

형은 형대로 힘들어했고 아우는 아우대로 힘들어 했다. 도대체 그 날 다리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어머니의 유품속에서 어린시절의 한때를 바라보던 다케루는 결국 출소하는 형을 찾아나서게 된다. 이 영화속에는 끈끈하게 젖어드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묘하게 흔들리는 심리상태를 배우들이 잘 표현해주고 있는 듯 하다.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형 역할을 맡았던 배우의 내면연기가 참으로 멋졌다. 자신을 버릴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자신을 지켜내기도 싫었던 형의 입장을 아주 잘 표현해준 배우가 아닌가 싶다. 누구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많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만 상대방을 평가하려고 하지.. 때로는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소리치고 싶은 순간이 누구나에게 있는데 사람들은 모두 저만이 그럴거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가지..

괜찮은 영화라는 평을 많이 보았었다. 진즉부터 한번은 봐야지 했었는데 이렇게나마 만나게 되니 참 좋았다. 특별할 것도 없는 소재였지만  영화속에 담겨진 메세지는 많았다. 생각할 수 있는 여운을 남겨준 영화였기에 OFF버튼 누르기를 잠시 보류해 두기로 한다. 욕망에 대하여, 그리고 진실에 대하여. /아이비생각

 


<영화포스터는 네이버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저작권법에 위배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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