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의 풍경
데이비드 리스 지음, 남명성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18세기 영국에서 펼쳐지는 다이하드... 이 책의 소개글중 하나이다. <다이하드>라는 영화가 아마 4편까지 나왔던가?  몸으로 부딪혀가며 악당과 싸우는 주인공의 무모한 대결신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다이하드>라고?  언론상에서 부패의 풍경을 처음 만났던 것 같다. 책을 소개해주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부패의 풍경이란 제목과 꼭 읽어야 할 책 목록이라고 추천하던 대목만이 떠오를 뿐..  500쪽에 달하는 두꺼운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던 책..  데이비드 리스라는 작가를 보며 내가 읽었던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움추렸었다. 와, 이런!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을 너무 딱딱하게 읽었었던 까닭이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이 책을 펼쳐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빠져 들었다. 나는 사실 이 작품의 전작이라고 하는 <종이의 음모>를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해서 전작의 흐름도 이 책과 같았으리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한마디로 흥미진진하다. 막힘없이 한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듯한 착각이 든다.

벤자민 위버.. 그는 교수대에 오르기전 재판을 받게 된다. 자신이 죽이지도 않은 사람을 죽였다는 살인죄다. 거짓 증인들이 나와 증언을 하지만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구린내가 나는 증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감옥으로 끌려가는 순간 아리따운 미녀 하나가 은근슬쩍 그에게 건네준 자물쇠 따는 쇠붙이와 쇠를 자르는 줄.. 이건 또 뭔가? 그렇다면 누군가는 자신이 살기를 바라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죽기를 바란다는 말이 된다.  죽기를 바라는 자와 죽지 않기를 바라는 자의 가운데에서 과연 그는 어느 쪽을 택하게 될까?  결국 그는 탈옥을 한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그런데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책을 펼치면 친절하게도 역사적인 배경을 연도별로 나열해 주고 있다. 18세기 초 영국의 정치 상황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자 했다는... 나에게는 아주 커다란 도움이 되었음을 두말하면 잔소리다. 단지 그 역사적 배경이란 것이 또!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은 사실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정치와 종교, 정말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모양이다.  단지 너무 뻔한 모양새가 역겹게 느껴질 뿐이다. 역사적 배경을 기억해가며 책장을 넘기다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리고 줄달음을 친다. 우리의 주인공 위버가 과연 다음에 취해야 할 액션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손에 쥔 것이라고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우리의 주인공께서 과연 어떻게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으려는지...

그렇게 탈옥하여 그가 휘젓고 돌아다니는 18세기 영국의 풍경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아직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탓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묘하게도 그 시절의 정치적, 사회적 풍경은 지금의 우리시대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의 막무가내식 해결법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니 어찌된 일일까?  사람의 마음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사람의 마음이 상황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섬뜩해져 온다. 우리의 주인공 위버의 활약은 그야말로 <다이하드>라는 영화속 주인공의 모습과  딱 맞아 떨어진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멍청하리만치 단순하게 문제를 파고 든다. 핵심은 하나뿐이다. 자신의 무죄만 밝혀낼 수 있으면 된다는 것..  하지만 잔혹한 삶은 그를 정치라는 커다란 늪속에 빠뜨려버리고 자신도 모르게 발을 들여놓게 되는 정치판에서 그는 되묻고 있다.  도구화 되어가고 있는 자신에게..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치판의 희생양이자 뜨거운 감자로 변해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벤자민 위버. 아니 매튜 에번스.. 위버와 에번스로 자신을 변화시켜가며 알아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그 진실이 과연 밝혀지기는 할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폭력도 불사하며 금품과 뇌물이 빈번하게 오고가는 뒷거래의 풍경들은 그야말로 부패 그자체의 모습이었다. 계급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던 그 시절의 서민들은 살아 있어도 살아있음이 아니었으니 그야말로 처참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살인자인 위버가 탈옥을 하고 느닷없이 군중의 위상으로 떠올랐던 것은 어쩌면 자신들의 처지를 어쩌지 못하는 불행한 서민들의 감정표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성공과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고위층 인사들과 당장 목구멍으로 넘겨야 할 양식과 일거리를 찾아 헤매야 하는 서민들의 모습은 궁극적으로 보면 같다. 살아야 한다는 것.. 그들이 서로가 달랐던 것은 돈이란 이름의 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뿐이다.

하나씩 밝혀지는 위버의 진실.. 그 진실에 묻어나오는 거짓들.. 행복과 불행이 쌍둥이듯이 진실과 거짓도 쌍둥이다. 진실이 있으면 거짓이 있게 마련인데 진실의 얼굴보다 그 뒤에 숨어 나타나는 거짓의 얼굴이 더 더럽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아마도 진실을 아프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하나뿐인 거짓으로 말미암아 아파해야 할 진실이 더 많은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도대체 범인이 누구일까 나름대로 예측해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느닷없는 반전으로 나를 또 실망시키는 건 아니겠지?  위버가 궁금했던 것처럼 그에게 자물쇠를 따는 쇠붙이와 쇠를 자르는 줄을 건네주었던 여인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그 비밀은 참으로 기가막히게 밝혀졌다.  어쩌면..이란 가정조차도 감히 들이댈 수 없었던 그 멋진 결말을 보면서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감히 높은 분의 지시를 어길수가 없었던 탓에 그나마 양심적인 선택으로 행해졌던 일이었다는 것..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를 죽이기 위해 지시를 내렸던 동기가 나를 허탈하게 했다. 질투... 그리고 두려움... 사람이 자신속에 내재되어져 있는 감정을 이겨낼 수 있는 한계는 어디쯤일까?

"바보짓이라기보다는 일이 얄궂게 돌아간 것 같소.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어쩔 수 없는 짓을 하곤 하니까" ... 재미있었던 점은 아무런 특징도 없는 아주 평범한 벤자민 위버라는 사람이다. 정치가 무엇인지도 이념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사람이 자신을 구해내기 위해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던 그 과정은 정말 흥미로웠다. 판사의 말처럼 모든 것은 자신을, 자신이 가진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살인누명을 쓴 벤자민 위버의 모습과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상류층으로 변해야 했던 매튜 에번스는 분명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가 살아내야 하는 삶은 너무도 달랐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내면은 아니었을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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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비밀] 서평단 알림
할아버지의 비밀 작은거인 15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한미희 옮김 / 국민서관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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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의 배경은 2차 세계 대전 전후의 오스트리아이다. 책소개글에서처럼 시대적 배경은 어둡고 칙칙할 수 있겠지만 주인공인 할아버지와 손녀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그것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왠지 동화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할아버지가 주는 느낌과 손녀가 주는 느낌이 내게는 물과 기름처럼 느껴졌던 까닭이기도 하다.
우리의 정서와 맞아 떨어지지 않는 탓일까? 그것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동화라고 보기엔 펼쳐지는 배경들이 너무 어른스럽다. 할아버지의 오토바이와 맺어져 있는 비밀 골짜기라는 설정속에서 나는 왠일인지 비밀결사대의 냄새를 맡는다. 어이없게도 <사운드 오브 뮤직>이란 영화속에서 보여주었던 주인공 가족의 탈출기가 생각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야기속에서 왔다갔다하는 환상세계가 전혀 환상세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너무 맑은 이야기를 기대했던 탓인지도 모를일이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아들녀석을 생각하며 이 책을 선택했기에...

언제나 일요일이면 뒹굴뒹굴 치료를 하는 할아버지.. 이 뒹굴뒹굴 치료시간이면 우리의 이쁜 손녀는 어김없이 할아버지를 찾아온다. 마술사나 예언자들이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수정구슬처럼 바로 앞의 사건을 보여주는 서진이 할아버지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로운 일상의 모습들을 예견해주는 할아버지의 서진.. 그 서진을 통해 막막한 현실을 탈출하고, 그 서진을 통해 그들은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전쟁이 끝나는 꿈을.. 그것이 차라리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꿈과 희망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공습경보가 울리고 방공호로 대피하며 어느날 어느 순간에 떨어져 내린 폭탄에 집이 무너질지 모르른 그런 현실속에서 꿈꾸는 미래.. 그 미래를 할아버지의 서진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비록 수정구슬이 아닌 사과만한 유리구슬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할아버지에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니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다가왔던 어색함이 너무 싫어 옮긴이의 말을 파고 든다. 사랑이 있기에 삶은 아름답다는 말로 시작되는... 글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와는 문화와 정서가 다른 까닭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이 책속에서 나는 그렇게 이쁘고 맑은, 그야말로 동화적 이미지를 찾아내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였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전쟁이 일어나고 물자가 부족해지고, 유태인을 학살하고, 더구나 군에 끌려간 아버지는 소식도 없고, 집이 폭격당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이주명령서도 그렇고, 이주한 뒤 보여지는 그곳 사람들의 생활상이 또 그렇고...
현실을 환상처럼 보여주고 싶었던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현실은 현실일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왠지 책을 읽는 내내 어색한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오스트리아 문학상, 빈 아동문학상을 타게 해 준 작품이란 소개글을 보면서 왠지 한쪽 가슴이 서늘해져 온다. 답답한 마음에 언제나 가장 먼저 찾았던 작가의 프로필을 뒤늦게 찾아나선다. 모두가 당연시 여기던 권위에 도전하거나 어린이 책에서 금기시 하던 주제를 많이 다루며...라는 말이 눈에 띈다. 그제서야  약간의 수긍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나는 너무 맑지 못한 영혼을 가진 모양이다. 지독한 편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 자신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해 준 작품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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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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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상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적 고뇌를 가족과 나누는 것은 무리이다. 일상과 존재의 경계에서 가족간의 절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95쪽)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던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엄마'라는 단어때문이었다고 말해도 틀린 건 아닐것이다. 왠지 내 가슴속에서는 '엄마'라는 단어가 삶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까닭이다. 별로 잘나지도 않은 '엄마',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엄마', 그다지 이쁘지도 않은 '엄마'.. 나이 마흔을 넘어서야 나는 '엄마'라는 단어 앞에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엄마'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지만 우리 가족에겐 늘 그것이 허락되어지지가 않았다. 산다는 거에 쫓겨 시간을 느끼지도 못했던 나의 '엄마'에게도 자신만의 집이 있었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있었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시는 나의 '엄마'의 가슴속에도 '엄마의 집'은 붉은 색의 한을 품은 채 건재하게 살아남아 있다는 거였다. 그랬구나, 우리 엄마에게도 엄마만의 집이 있었구나, 느껴야 했을 때 나는 눈물을 흘렸었다. 고스란히 엄마를 닮아가는 것 같은 나의 생활들이 나는 싫었었는데...

"우린 무언가를 할 때마다 실패도 하고 상처도 입고 후회도 하지. 마음이 무너지기도 해. 사는 동안 몇 번이고 마음이 무너지지. 하지만 중요한 건 다시 하는 거야"
"그럴 때, 난 쉬운 일만 해. 심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만 하지. 쉬운 일도 규칙적으로,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힘이 생겨. 그리고 시간이 가면, 그게 무엇이든, 새롭게 새작할 수 있어.걱정마." (122쪽)
부쩍 부쩍 커가는 아들녀석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마음에 상처입는 것이 싫어서 사실상의 기대감이란 것은 아예 저만치로 밀어버린채 그렇게 살아왔던 날들.. 이 책속에서 끝없이 미워하고 더없이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바라보면서 얼핏, 어쩌면 서로의 존재감속에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순속에서도 피어나던 하나의 실낱같은 희망이란 줄기를 찾아낸다. 나도 엄마니까. 책속의 엄마처럼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엄마라는 거니까. 심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나의 일상은 늘 심각함 투성이였다. 그야말로 별 것 아닌 것들 때문에 나 스스로의 힘을 퇴적화시켜버리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던 나의 시간을 보면서 어느날 남편이 말했었다. 당신, 뭐 좀 해보지 그래?

세상이 아전인수의 장이며 거짓말의 바벨탑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은 성숙일까? 절망일까? 아니면 그게 바로 삶일까? 그런 때면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마음이 차갑게 식곤했다. 겨우 스무살에. (169쪽)
뭘? 내가 뭘 해야 하는데? 오래도록 맞벌이를 하면서 놓쳐버렸던 나의 시간들이 망쳐놓았던 것은 너무도 많았다.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아이곁에 머물지 못했던 거였는데.  엄마라는 직업으로 돌아왔던 나에게 남편이 했던 말은, 그냥.. 뭐 당신이 해서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해보라는거지..거기에 머니가 따라오면 더욱 더 좋고... 말끝을 흐리던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순간 위선을 읽어내 버렸었다. 세상 모든 것들은 가면을 쓰고 산다. 세상 모든 것들은 모두가 겉과 속이 다르다. 이건 내가 일찌깜찌 터득한 진리다. 확실한 진리. 믿어야 한다. 그래서 아프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을 걸어놓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아팠다. 순간순간  제 몸에 집을 달고 다니던 달팽이와 거북이를 떠올려보고 나도 그렇게 내 집을 짊어지고 다닐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무겁겠지? 제 몸하나 들어갈 집일뿐인데도 그것은 분명히 무거울 것이라고 나는 지레 짐작을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나만의 집짓기를 아주 무서워했다. 내 엄마처럼 그렇게 붉게 물들어가고 있는 나의 집을 인지하지 못했다.

진실은 실은 표면에 드러나 있는데, 보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그 많은 진실들을 다 놓쳐버리고, 우린 무지와 오해 속을 살아간다. (176쪽)
진실은 어디에도 있다. 진실은 어느곳엘 가더라도 나를 따라온다. 그렇게 내가 느낄 수 있는 거리에서 내가 만지면 전해줄 수 있는 많은 감정을 가지고 나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피해 시선둘 곳을 찾아 헤맨다. 그래놓고는 안보인다고 그렇게 말해버리고 만다. 그래놓고는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돌아보며 후회를 한다. 책속의 엄마, 미스엔처럼 어느날 문득 산책을 가듯이 그렇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

"넌 타락이 뭐라고 생각하니?"
"타락이란,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사는거야" (229쪽)

서로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사랑이었다고 인정하지 못하는 호은의 엄마와 아빠에게는 어쩌면 호은이라는 다리가 있었기에 그 사랑을 버릴 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의 아픔속에서 스스로 걸어나오지 않으려 애쓰던 아빠의 모습은 어쩌면 두려움이었을까? 자신의 자식도 아닌 승지를 키워가며 참회할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가고 있다던 이념의 투사 아빠에게는 독약같은 의미로 다가왔을 사랑은 어쩌면 삶 그 자체의 모습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내야 할 현재속에서의 정체성은 바뀔 수 밖에 없는데... 굳이 최루탄으로 인한 쓰라림이 아니었다고해도 어쩔 수 없이 변해야만 하는 것들은 너무도 많은데...
"우리가 사랑이라는 개념의 자를 가지고 들이대는 순간, 사랑은 없단다. 어디에도 없어." (206쪽)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랑은 머물러 있기 위해 애를 쓴다. 내가 보아주기만 하면 사랑은 언제나 나를 보고 웃어준다.

"혼자 있는 사람이 외롭다는 건,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오해야"
".....그러면?"
"사람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어서 외로운 거야" (270쪽)

 '엄마의 집'을 읽으면서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러갔다. 눈 앞에 펼쳐지는 글자 하나하나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렇게 묻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뭐냐고. 너에게 있어 너는 무엇이냐고..  늘 혼자라고 생각하며 살아냈던 나의 시간들조차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오는 싯점에서 내게로 찾아왔던 '엄마의 집'은 내게도 어서 집한채를 지을 수 있는 힘을 키워야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386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작가의 글은 그다지 읽고 싶지 않았기에 피해왔었다. 늘 습관처럼 들고나오는  정체성이란 거대한 화두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는 우울.. 한 시대를 배경으로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우울의 시간들이 너무 싫기도 했다. 내 삶의 모티브처럼 언제나 중요한 건 현재일 뿐이라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던 까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나왔던 시간속에도, 지나쳐가야 할 시간속에도 나의 현재는 분명히 존재할 테니까... 하지만, 정말 하지만, ... 모든 사람들은 외로울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어른들이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까지도 저렇게 힘껏 받아들이는 사람들인가... 가슴이 뻐개지도록 밀고 들어오는 진실들을 받아들이고 또, 승낙없이 떠나려는 것들을 순순히 흘려보내려면 마음속에 얼마나 큰 강이 흘러야 하는 것일까. 진실을 알았을 때도 무너지지 않고 가혹한 진실마저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인 것이다. (254쪽)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부터는 어른입니다, 하는 표시선이 그어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속에 흘러야 한다는 그 물줄기가 언제쯤이면 도랑을 지나 개울을 건너 강으로 도착하게 될까? 바다까지는 바라지 않기로 한다. 그저 그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흘려 보내는 그런 강이 내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흐를 때 진정 나는 어른이 되겠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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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마커스 - 인생에 힘이 되는 사람을 얻는 지혜
잭 마이릭 지음, 이민주 옮김 / 토네이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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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신문지상에서 보았을 때 제목때문에 다시한번 보았던 기억이 있다.  또 자기계발서로군! 뭐 이런 마음으로 그냥 넘어갈까 하던 차에 눈사람이란 말이 주는 느낌때문이었던 것 같다. 보통의 이미지로 보아도 눈사람이 풍기는 느낌은 대체적으로 차갑다라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 눈사람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궁금증이 일었었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 배를 잘 만드는 사람 마커스가 있었다,라고 시작되어지는 이야기는 왠지 동화같은 순수함을 전해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해 주었기에 책과 마주했던 순간이 참 좋았다.

어린 시절부터 배를 만드는 일꾼들 틈에서 자라나 결국 배를 만드는 장인이 된 마커스.. 어느날 선원 300명을 태우고 석달간 모자람 없이 항해할 수 있는 배를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부터 제의를 받게 된다. 그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도전이 아닐수가 없었지만 실패할 경우 지원 받은 자금의 세배를 배상해야 하는 위험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단 하루라도 일정을 어겨서도 안되었다. 배를 만들 수 있는 기간은 12주.. 마커스는 일단 그 제의를 수락한다. 그리고 헤아려 생각해 본다. 충분한 자금만 있다면 부족한 시간쯤은 간단히 벌어들일 수 있을거라고.. 2주의 시간이 흘렀어도 그의 작업속도는 더디고 느렸다. 게다가 사람을 구하는 일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언제 떠날지 불안한 상태였다. 자, 이제 우리의 마커스는 어떻게 될까?  그런 그에게 아내 아일리스는 이렇게 말해준다. 사람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고. 그러면서 바나바스라는 스승을 찾아가 볼 것을 권한다.

늘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찾아온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저 그냥 호박이 덩굴째 굴러 온다는 식의 이야기는 그리 흔치가 않다. 여기서 자기계발서들이 들려주곤 하던 첫번째 방식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먼저 행동하라! ... 스승을 만나 스승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마커스는 진정한 마음으로 아직 자신곁에 남아 있는 직원들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한다. 권위를 내세우는 리더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웃어주는 리더로써의 탈바꿈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미심쩍어하던 그의 직원들도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반쯤의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작업의 속도는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왜일까? 고민하던 그에게 스승이 찾아와 준다. 그야말로 천사처럼. 그리고 이렇게 말해준다. 비젼을 제시하라!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그들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스승의 이야기.. 어떻게 했을까? 그는 밤이 늦도록 현수막을 만들었다. '꿈과 미래와 비전을 만드는 조선소!'라고.. '50명의 마커스가 함께'한다고.. 그들 모두에게는 마커스와 같은 장인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음을 간과하지 않은 것이다. 새롭게 직원들이 충원되어졌지만 약속한 기일을 맞추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마커스 조선소의 문을 닫게 되어도 여러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커스의 절규.. 하지만 그와 함께 했던 직원들은 마커스를 배신하지 않았다. 아니 아테네의 꿈으로 자리하게 된 마커스를 아테네가 돕기 시작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완성된 배.. 놀라운 것은 스승 바나바스가 그 배를 수주했던 장본인이라는 거였다. 진정한 장인을 만들기 위한 스승의 배려였다고나 할까?

참 별거 아닌 이야기였는데도 나는 목울대를 울리는 어떤 느낌때문에 잠시 눈물이 고였다. 차가움으로 만들어지는 눈사람의 두가지 배경이 이상하게도 가슴에 남았다. 눈이 내리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눈사람 하나와 그 아이들이 모두 떠나버린 어둠속에 덩그마니 서있던 또하나의 외로운 눈사람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행복한 눈사람이 될 것인가, 외로운 눈사람이 될 것인가는 자신의 몫이란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언제나 항상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언제나 사람에게서 구하고, 사람의 마음과 함께 할 수 있을 때 성공과 행복이 깃들여진다던...

책의 말미에 사람의 마음을 얻는 7가지 지혜라는 부록이 나온다. 그것을 조목조목 이야기하기는 싫다. 왠지 낯간지러운 느낌이 드는 까닭이다. 하지만 스승 바나바스가 마커스에게 해 주었던 이 대목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책장을 덮기전에 이미 수첩에 적어놓은 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 따뜻한 눈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닫혀 있는 사람들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것이야. 그 문을 열 수 있는 가장 좋은 열쇠는 바로 '진심'일세."
"
예부터 지혜로운 현인들은 '진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쳐왔네. 즉 그 마음을 다하라는 뜻에서의 '진심盡心', 그리고 자네가 알고 있는 참되고 진실한 마음으로서의 '진심眞心', 자네에겐 지금 마음을 다하는 의미의 '진심盡心'이 필요하네. 사람들을 위해 자네의 마음을 다하게. 그러면 사람들은 자네에게 '진심眞心'을 선물할 것이네. 사람들의 참되고 진실한 마음을 얻는다면 따뜻한 눈사람이 될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차가운 눈사람이 되고 말 것이야." (-58쪽에서)

盡心을 다할 때 眞心을 얻을 수 있다는 말, 멋지지 않은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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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계절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말해서 나는 요란한 광고문구가 많은 책에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왠지 별스럽지 않은 내용물을 너무 이쁜 포장지로 감싸 감춰주는 것 같은 느낌이 앞서는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몇만부가 팔렸다느니, 베스트셀러라느니, 유명인사 누구누구가 추천했다느니 하는 식의 사탕발림에는 그다지 유혹을 느끼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번역자가 내게 신화의 달콤함을 알게 해 주었던 이윤기씨라는 점에서 나도 모르게  이 책에 대한 나의 마음을 열게 되었다고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쩌면 그로인한 나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책을 읽는 내내 함께 했을 것이다. 책을 받아보고 책표지의 그림을 먼저 바라보았다. 왠지 꺼림직한 느낌을 주는 한사람,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그의 눈동자처럼 어떤 비밀의 문이 열려질까 궁금증이 일었다.

그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나 신화적인 장면들이 요소요소마다 배치되어 있었다. 햄든대학 그리스어과.. 줄리언 교수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수는 헨리와 버니, 프랜시스, 쌍둥이인 찰스와 커밀러 고작해야 다섯명이다. 거기에 주인공인 '나'가 끼어들어 여섯명의 스터디그룹이 된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끌림으로 인하여 전공을 바꾸게 되는 주인공은 사실 주변인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비틀어놓은 장치들로 인하여 주인공인 '나'는 어느새 사건의 중심부에 놓여지게 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조건들이 그들 여섯명의 그룹으로부터 물위에 떠있는 기름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있다. 책장을 넘겨가면서 줄리언 교수와 그들만의 수업장면속에서 나는 오래전에 보았던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런 류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책속의 화자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신과의 소통을  실제적으로 느껴보고 싶어하던  접신의 과정은 실로 놀라웠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보았던 디오니소스를 위한 그 광란의 밤 장면이 머리속에 그려졌다. 몰아의 경지였을까? 무의식의 세계속에서 그들에게는 진정 신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려주었던 것일까?  그리고 살인... 그 무의식의 세계속에서 그들이 만나야 했던 것은 하나의 살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만의 비밀이 된다.

우리는 가끔, 아니 자주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이건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이건 너와 나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거야... 뭐 이런 식의 말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비밀이라는 것은 때로 황홀하게 그러나 때로 고통으로 우리곁에 다가온다. 더구나 그 비밀을 같이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이 생겨난다면 그것은 심각한 사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보는 내내 나는 하나의 심리극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야금야금 남의 사소한 약점을 들춰내며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사람이 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던 것들이 그 사람의 입을 통하게 되면 정말이지 죽고싶을만큼 처절해질 때도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 있다면 그야말로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두번째 살인대상인 버니가 그랬다. 함께 하고자 했던 접신의 과정에서 밀려난 버니는 어떻게해서라도 그들의 의식속에 들어가고 싶었을 게다. 어쩔 수 없이 그를 받아들였던 친구들에게 그야말로 좀벌레처럼 야금야금 그들의 이성과 감정을 자극해가는 그를, 역시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주인공의 말을 빌려 버니를 유추해보자면 가장 인간적이면서 가장 악마적인 존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저마다의 개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던 그 친구들의 모습을 그려보자니 왠지 가슴 한쪽이 서먹서먹해져 온다. 왜일까?

결국 두번째 비밀을 갖게 되는 우리의 친구들은 이미 그 순간부터 인간이 아니다. 인간으로써 살아가야 할 세월동안 느껴야 하는 모든 이성과 감정이 바람빠지는 풍선처럼 그들을 쪼그라들게 만들기 시작하고,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하여 그들 각자에게 찾아오는 공포와 불신의 늪에 빠져버리고 만다. 이미 계획되어진 살인의식이 수포로 돌아가려고 할 즈음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찾아들어와 버린 살인의 순간이 어쩌면 그들에게는 더욱 더 커다란 공포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통에 찬 나날속에서 서로에게 아무런 위안조차도 찾아내지 못하는 그들은 절망속에서 허우적댄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고, 서로에게 악다구니를 쓰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 그 순간순간들이 너무도 처절하게 잘 그려져 있다. 함께였기에 그들에게는 고통도 함께 찾아왔다. 함께였기에 더 크고 무거웠을 그들의 고통..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문득 이런 의문점이 생겼다. 이만큼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과 함께 하면서 느껴지는 것의 차이는 과연 얼만큼이나 될까?

무슨 방호벽처럼 가끔씩 튀어나와 내 앞을 가로막던 신화적인 요소들이 내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불러내고 싶고 만나고 싶어하는 신의 존재 역시 우리안에 들어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 왠지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밀을 간직했던 그들이 가장 힘겨워했던 것은 믿음이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믿음이 깨지면서부터 서로를 위하는 마음, 즉 사랑이란 놈도 저만치로 멀어져 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믿음과 사랑의 부재로 인하여 친구에게 총구를 들이댔던 찰스, 믿음과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 자신을 인정할 수 없어서 결국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알을 박아넣어야 했던 헨리가 커밀러에게 마지막으로 해 주었던 속삭임은 바로 '사랑'이었다.  흘러간 시간속에서 다시 만난 커밀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주인공과 이미 지나가 버린 사랑이었음에도 아직도..라고 말하는 커밀러의 대화속에도 사랑은 여전히 존재하는 걸 보니 우리 가슴속에는 아직도 사랑이 더 많이 남아 있음이 확실한 것 같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이미 다 보여주고 시작하는 전개방식에 약간의 긴장감이 찾아오기 시작했었다.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심리적인 묘사들이 내게는 뾰족하게 깎아놓은 연필심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저리도 깊이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두번째 살인, 즉 두번째 비밀이 생겨나고 부터는 왠지 긴장감을 잃고 늘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을 다잡아야 하기도 했다. 너무 많은 분량의 숙제를 받아들었던 느낌처럼 난감하기도 했었다. 일종의 심리극 한편을 보고난 느낌이다. 그것도 처절하리만치 깊게 까발려진 심리극을... 그들이 앓고 지나간 비밀의 계절속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그들만의 비밀이 남아 있다. 누구나 가슴속에 저마다의 비밀 하나씩은 안고 살아가듯이...

책장을 덮으며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던 곳으로 되돌아가 보았다. 수수께끼 같았다고 주인공이 기억하는 대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줄리언은 말이야, 자기가 좋아하는 초콜릿은 다 골라먹고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만 상자에 남겨두는,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던 버니와, 꿈같은 기분으로 그들 스터디그룹에 머물던 주인공에게 라포르그 교수는 이렇게 말했었다. " 줄리언은 영원히 일급 학자는 되지 못할거야. 왜냐? 사물을 보되 자기가 선택하는 측면에서만 보거든"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었다. 아름다운 것에 사랑을 쏟는 게 잘못된것은 아니라고. 그러나 의미있는 것과 맺어지지 않으면 아름다움이란 것 또한 피상적인 것이라고. 자기가 좋아하는 측면에만 선택적으로 관심을 쏟을 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다른 측면을 무시하지는 않아야 하는거라고... 잠시 생각. 그리고 잠시의 공백. 그들의 비밀을 알게 된 후 그들 모두의 사랑을 버린채 떠나가 버렸던 줄리언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여기에 줄리언 모로 교수의 한마디를 그를 위한 변명처럼 남겨놓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그들만의 비밀로 인하여 더이상 아파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비생각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성에 의한 통제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은 우리같이 이성의 통제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우리가 여기에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은 문명화한 모든 사람들(우리뿐 아니라 고대인들까지도)은 생래적인 동물적 자신의 일방적인 억압을 통하여 문명화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 방 안에 있는 우리는 그런 그리스인, 그런 로마인들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우리는 의무, 신심, 충성, 희생, 이러한 것들을 강박증처럼 지니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것들이 우리 현대인들의 입맛에는 끔찍한 것들이 아니겠는가" (82쪽 줄리언 모로 교수의 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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