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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풍경
데이비드 리스 지음, 남명성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18세기 영국에서 펼쳐지는 다이하드... 이 책의 소개글중 하나이다. <다이하드>라는 영화가 아마 4편까지 나왔던가? 몸으로 부딪혀가며 악당과 싸우는 주인공의 무모한 대결신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다이하드>라고? 언론상에서 부패의 풍경을 처음 만났던 것 같다. 책을 소개해주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부패의 풍경이란 제목과 꼭 읽어야 할 책 목록이라고 추천하던 대목만이 떠오를 뿐.. 500쪽에 달하는 두꺼운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던 책.. 데이비드 리스라는 작가를 보며 내가 읽었던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움추렸었다. 와, 이런!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을 너무 딱딱하게 읽었었던 까닭이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이 책을 펼쳐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빠져 들었다. 나는 사실 이 작품의 전작이라고 하는 <종이의 음모>를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해서 전작의 흐름도 이 책과 같았으리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한마디로 흥미진진하다. 막힘없이 한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듯한 착각이 든다.
벤자민 위버.. 그는 교수대에 오르기전 재판을 받게 된다. 자신이 죽이지도 않은 사람을 죽였다는 살인죄다. 거짓 증인들이 나와 증언을 하지만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구린내가 나는 증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감옥으로 끌려가는 순간 아리따운 미녀 하나가 은근슬쩍 그에게 건네준 자물쇠 따는 쇠붙이와 쇠를 자르는 줄.. 이건 또 뭔가? 그렇다면 누군가는 자신이 살기를 바라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죽기를 바란다는 말이 된다. 죽기를 바라는 자와 죽지 않기를 바라는 자의 가운데에서 과연 그는 어느 쪽을 택하게 될까? 결국 그는 탈옥을 한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그런데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책을 펼치면 친절하게도 역사적인 배경을 연도별로 나열해 주고 있다. 18세기 초 영국의 정치 상황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자 했다는... 나에게는 아주 커다란 도움이 되었음을 두말하면 잔소리다. 단지 그 역사적 배경이란 것이 또!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은 사실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정치와 종교, 정말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모양이다. 단지 너무 뻔한 모양새가 역겹게 느껴질 뿐이다. 역사적 배경을 기억해가며 책장을 넘기다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리고 줄달음을 친다. 우리의 주인공 위버가 과연 다음에 취해야 할 액션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손에 쥔 것이라고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우리의 주인공께서 과연 어떻게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으려는지...
그렇게 탈옥하여 그가 휘젓고 돌아다니는 18세기 영국의 풍경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아직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탓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묘하게도 그 시절의 정치적, 사회적 풍경은 지금의 우리시대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의 막무가내식 해결법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니 어찌된 일일까? 사람의 마음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사람의 마음이 상황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섬뜩해져 온다. 우리의 주인공 위버의 활약은 그야말로 <다이하드>라는 영화속 주인공의 모습과 딱 맞아 떨어진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멍청하리만치 단순하게 문제를 파고 든다. 핵심은 하나뿐이다. 자신의 무죄만 밝혀낼 수 있으면 된다는 것.. 하지만 잔혹한 삶은 그를 정치라는 커다란 늪속에 빠뜨려버리고 자신도 모르게 발을 들여놓게 되는 정치판에서 그는 되묻고 있다. 도구화 되어가고 있는 자신에게..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치판의 희생양이자 뜨거운 감자로 변해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벤자민 위버. 아니 매튜 에번스.. 위버와 에번스로 자신을 변화시켜가며 알아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그 진실이 과연 밝혀지기는 할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폭력도 불사하며 금품과 뇌물이 빈번하게 오고가는 뒷거래의 풍경들은 그야말로 부패 그자체의 모습이었다. 계급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던 그 시절의 서민들은 살아 있어도 살아있음이 아니었으니 그야말로 처참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살인자인 위버가 탈옥을 하고 느닷없이 군중의 위상으로 떠올랐던 것은 어쩌면 자신들의 처지를 어쩌지 못하는 불행한 서민들의 감정표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성공과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고위층 인사들과 당장 목구멍으로 넘겨야 할 양식과 일거리를 찾아 헤매야 하는 서민들의 모습은 궁극적으로 보면 같다. 살아야 한다는 것.. 그들이 서로가 달랐던 것은 돈이란 이름의 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뿐이다.
하나씩 밝혀지는 위버의 진실.. 그 진실에 묻어나오는 거짓들.. 행복과 불행이 쌍둥이듯이 진실과 거짓도 쌍둥이다. 진실이 있으면 거짓이 있게 마련인데 진실의 얼굴보다 그 뒤에 숨어 나타나는 거짓의 얼굴이 더 더럽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아마도 진실을 아프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하나뿐인 거짓으로 말미암아 아파해야 할 진실이 더 많은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도대체 범인이 누구일까 나름대로 예측해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느닷없는 반전으로 나를 또 실망시키는 건 아니겠지? 위버가 궁금했던 것처럼 그에게 자물쇠를 따는 쇠붙이와 쇠를 자르는 줄을 건네주었던 여인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그 비밀은 참으로 기가막히게 밝혀졌다. 어쩌면..이란 가정조차도 감히 들이댈 수 없었던 그 멋진 결말을 보면서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감히 높은 분의 지시를 어길수가 없었던 탓에 그나마 양심적인 선택으로 행해졌던 일이었다는 것..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를 죽이기 위해 지시를 내렸던 동기가 나를 허탈하게 했다. 질투... 그리고 두려움... 사람이 자신속에 내재되어져 있는 감정을 이겨낼 수 있는 한계는 어디쯤일까?
"바보짓이라기보다는 일이 얄궂게 돌아간 것 같소.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어쩔 수 없는 짓을 하곤 하니까" ... 재미있었던 점은 아무런 특징도 없는 아주 평범한 벤자민 위버라는 사람이다. 정치가 무엇인지도 이념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사람이 자신을 구해내기 위해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던 그 과정은 정말 흥미로웠다. 판사의 말처럼 모든 것은 자신을, 자신이 가진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살인누명을 쓴 벤자민 위버의 모습과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상류층으로 변해야 했던 매튜 에번스는 분명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가 살아내야 하는 삶은 너무도 달랐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내면은 아니었을까?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