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세트 - 전3권 샘깊은 오늘고전 15
유성룡 원작, 김기택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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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懲-지난 일을 뉘우치고, 毖-후세를 위해 앞으로의 교훈을 찾는, 錄-뼈아픈 역사의 기록' ... 제목에서부터 비장함이 묻어나는 책이다. 지금의 우리는 과연 그 뼈아픈 역사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고 있는가? 그래서였을 것이다. 지은이의 말이 사무치도록 깊은 울림을 주는 까닭은. 일본을 탓하지만 말고 그 침략을 통해 우리의 잘못은 없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지만 부끄러움을 빨리 잊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지라 그다지 큰 교훈을 찾지 못하는 것도 서글픈 우리의 현실임에는 분명하다.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용기를 내는 사람만이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임진왜란' 이란 3권의 부제에 공감하지 못하겠다. 진정한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징비록'은 두번째다. 무슨 재미로 같은 책을 두번이나? 하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겠으나 출판사마다 저마다의 특징을 갖고 있는 탓인지 나름대로는 재미있게 보았다. 고전이라 하니 원본이 바뀔리야 없을테고 3권으로 나누어 그 기록의 생생함을 보여주고자 한 듯한 마음이 전해져 왔다. 1권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2권 달아난 임금 남겨진 백성,3권 그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임진왜란... 각 권의 부제만 보더라도 어떤 장면이 그려질지는 훤히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웠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었으며 도체찰사라는 벼슬을 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혹은 외교적으로 많은 힘을 썼던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임진왜란의 주역들을 발탁했다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전쟁을 끝낸 뒤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후세에 똑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을 남겼다. 남한산성의 역사를 그린 <산성일기>처럼 담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정유재란때 일본에 잡혀갔던 강항의 기록인 <간양록>처럼 간절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왕과 나라를 향한 징하디 징한 충정 또한 담겨 있으니 그 시대가 과연 왕조시대였구나 싶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음이다.

 

책을 읽으면서 간혹 보이던 그림들이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조금은 낯선 기법의 그림이었음에도 그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강한 느낌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책의 말미에서 그림에 대한 해설을 해주고 있다. '이야기 너머, 상상의 이미지들' 이란 제목이 왠지 아련하다. 불에 달군 인두로 목판에 밑그림을 그린 뒤 채색을 입힌 '채색 인두화'라고 하는데 그 말조차도 낯설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인두화를 그리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한번 되돌아가 꼼꼼하게 그림을 살펴보다가 그림만으로도 한권의 책이 될 수 있겠구나,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하나하나의 그림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이 있었을까? 그림이 안고 있는 상징성이 이토록이나 큰 것이었구나 싶었다. 숨고 숨기고 숨쉬고 숨막히는, 모두 한 목소리의 처량한 털들, 비좁은 구멍-막힌 산, 비어있는 주인의 얼굴, 아무도 치료할 수 없는 바람, 무뎌진 칼춤, 이빨 자국같은 흔적, 녹슨 칼... 그림마다 붙여진 제목이 비장하다. 어떤 그림은 조금 무섭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조금 해학적이기도 하지만 그림속에 우리의 전통이나 일본의 전통을 숨겨놓았다고 하니 그림의 의미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괜찮을 것 같다. 각 권마다 전쟁사를 연구하는 분의 해설이 있는 것도 이채롭다. 당시의 상황을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렵지 않게 풀어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해설을 붙인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에게는 너무나 피상적인 전쟁의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3권이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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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오케스트라, 우주의 선율을 연주하다 - 처음으로 읽는 궁중음악 이야기
송지원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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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궁,상,각,치,우... 우리나라의 음계로 알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찾아보니 <악학궤범>에 중국음악을 설명하는 글로 사용되었다는 말이 보인다. 한국식 궁상각치우가 따로 있다는 말도 보인다. 그런데 나는 왜 우리음악을 대표하는 말쯤으로 배웠던 것일까?  다시보니 문묘악과 같은 음악은 중국식 궁상각치우로 봐야하지만 향악을 말할 때는 한국식 궁상각치우를 써야 맞다는 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진짜로 머리 아픈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머리가 아프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고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도 된다. 우리 음악인데 우리는 왜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박물관을 찾아가봐도 악기형태를 보고, 그 소리를 들으며 그것을 연주했던 음악인들의 이름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낼 수 없는 것일까?  들으면 좋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우리음악인데 왜 그토록이나 멀게 느껴지는 것인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도 일년마다 들을 수 있는 종묘제례악과 성균관의 석전대제에서 들을 수 있다는 문묘제례악..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이라고? 종묘제례악이 향악계에 속한다는 말은 의외의 놀라움을 가져다 주었다. 조선시대에 궁중의례에서 사용했다는 전통음악을 아악이라고 했으며 거기에 반하는 음악을 향악과 당악이라 했다고 한다. 향악은 말 그대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해져내려오던 음악으로 속악이라고도 한다. 당악 또한 말 그대로 삼국시대에 당나라에서 유입된 음악이다. 외세로부터 들어온 음악과 우리의 토속적인 음악을 구분하기 위하여 향악이라 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향악이란 말은 민속적인 의미를 더 크게 담고 있는 것 같다. 그야말로 일반 백성들의 음악쯤이랄까? 당시 3D업종에 속했다는 음악인의 길.. 우리 어릴때도 '딴따라'라는 말로 업신여김을 받았었다는 기억이 난다.

 

<악학궤범>이 어떻고 <시용향악보>가 어떻다고 아무리 말해도 잘 모른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게다. 종묘제례에 대해 공부할때 軒架와 登歌에 대해 배우면서 아하, 그렇구나 했었던 때가 생각난다. 제례악을 연주하는 장소는 조금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있는데 낮은 곳에서 노래와 함께 연주를 하는 악대를 헌가라 하며 높은 곳에서 노래없이 그냥 연주만 하는 악대를 등가라 한다. 헌가에는 관악기와 타악기를, 등가에는 타악기와 현악기가 중심이 되어 연주를 한다. 책을 읽다보니 그 웅장한 음악소리가 귓가에 내내 맴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먼저 출간된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의 개정판이라고 한다. 아마도 모드라마에 나왔던 '장악원'이라는 관청때문에 관심을 모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책들이 더 많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것은 좋은 것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정작 다가갈 수 없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좀 더 쉽게 우리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책이 더 많아지기를 개인적으로나마 바래보는 것이다. 지금의 국립국악원에 해당한다는 장악원을 중심으로 조선 시대 음악인들의 일상을 그렸다는 그 책이 궁금해진다.

 

내용이 총 4장으로 분류되어져 있는데 3장의 새로 쓰는 樂人열전4장의 이야기가 있는 樂器열전을 통해 조선의 음악인들과 우리 악기를 알 수 있어 좋았다. 1년 사시사철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내야 했다는 장악원 사람들.. 가장 많이 출연했던 행사가 제사 의례였다는 말을 통해 조선이 어떤 나라였는지 조금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음악조차도 의 조화를 추구했다는 말이 보여 하는 말이다. 맹사성이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그밖에도 박연이나 성현, 임흥, 천재적인 기예꾼이었다는 정렴, 악보제작의 달인이었다는 허억봉, 한립, 이연덕, 김용겸... 낯선 이름이 많이 보이지만 귀가 밝았던 왕도 꽤 많았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가야금 소리가 가장 멋지게 들리는 곳은 토담집이다... 흙으로 지은 집에서 가야금 소리를 들으면 소리가 너무 울리지도 않고 먹히지고 않아 온화하면서도 섬세한 소리가 하나하나 살아난다는 말이 잠시 시선을 멈추게 한다. 자연과 어울어져 있을 때 그 악기도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니 살풋 웃음이 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겹쳐서. 아무래도 음악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형태에 따라 변하는 모양이다. 자연을 멀리하는 형태속에서 전자음이 탄생하는 걸 보니. 가끔 정말 한번 해볼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지금도 그럴 수 있다면 해금을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그 슬프고도 아련한 소리가 좋아서. 어렸을 적 친정아버지의 퉁소소리가 너무 좋아서 한번 더 불어달라고 아버지를 졸랐던 기억이 난다. 비파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비파가 좀 더 일찍 대중화의 길로 들어섰다면 지금의 기타쯤은 충분히 이겨내고도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기기도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제사 거문고와 가야금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비생각

 

 

우리가 보통 음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는 외래어인 music을 번역한 것이고, 전통적으로는 '음'과 '악'이 각각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음'이란 음이 일정한 질서로 배열되어서 일정한 곡조를 이룬 것을 말하고, '악'은 干과 戚, 羽와 旄를 들고 추는 춤까지 수반된 것을 의미한다. 역대 왕과 왕비를 제사하는 제사의례에서 연행되는 '악'은 유학적 우주관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총체적 의미의 '악', 즉 樂歌舞가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 그런 까닭에 등가악대와 헌가악대, 그리고 춤인 일무를 갖추어 연행하게 된다. (-82쪽)

 

登歌 : 종묘나 문묘, 사직등의 제례를 거행할 때 음악을 연주하는 악대 가운데 堂上, 즉 댓돌 위에 편성되는 악대. 제례뿐만 아니라 가례, 빈례, 군례의 예를 행할 때에도 당상에 편성된 악대는 등가라 했으며, 등가가 연주하는 음악을 登歌樂 또는 登歌之樂이라 했다.

軒架 : 堂下, 즉 댓돌 아래의 뜰에 편성되는 악대. 헌가가 연주하는 음악은 軒架樂 또는 軒架之樂이라 했다. 헌가는 제후국의 위격에 해당하는 악대의 명칭으로, 고종이 황제국을 선언한 1897년 이후에는 宮架로 바뀌었다. (-33쪽)

 

雅樂 : 원래는 고려시대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온 제사음악을 가리켰지만 조선시대가 되어 아악 선율을 연주하는 제사음악을 모두 아악이라 하였다. 궁중에서 사용하는 당악과 향악을 속악이라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용어이다. 현재는 궁중음악을 비롯하여 민간 지식층의 음악을 아울러 아악 혹은 正樂이라 이르기도 한다.

唐樂 :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유입된 당나라의 음악과 송나라의 속악. 원래부터 있었던 향악과 구분하기 위해 붙인 이름으로, 오늘날 한국 음악에서 당악이라고 하면 당나라 음악에서 유래된 것은 없고 거의 송나라 詞樂에서 유래된 것들이다.

鄕樂 : 삼국시대 이후 조선조까지 사용되던 음악의 한 갈래로, 당악과 함께 속악으로 분류된다. 순수한 우리 재래 음악과 서역에서 들어온 음악도 포함된다. 삼국시대에 당악이 유입된 뒤 외래의 음악과 토착음악을 구부하기 위하여 명명되었다. (-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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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 이현수 장편소설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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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24일

"어떤 피란민도 미군 방어선을 넘지 못하게 하라. 전선을 넘으려는 사람은 모두 사살하라. 어린이와 여자들은 재량권을 부여한다."

1950년 7월 25일

'어떤 피란민도 미군 방어선을 넘지 못하게 하라."

1950년 7월 25일

"왜 피란민을 항공기로 공격하는가? 피란민 공격금지 지침을 수립할 것을 건의하는 바이다."

1950년 7월 26일

"이 시각부터 피란민들의 미군 방어선 통과를 금지한다. 방어선에 접근할 경우 경고사격 후 총격을 가하라."

1950년 7월 27일

"이 지역에 보이는 모든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라."

1950년 7월 29일

"이제부터 보이는 자는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

 

우리가 모두 적으로 간주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 5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남아 있던 문서 중 가장 결정적인 문서 한장이 사라졌다고 한다. 1950년 7월 26일 오후부터 29일 아침까지의 기록... 그 나흘동안의 이야기를 이 책속에서 말하고 있다.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철교 밑에서 일어났던 그 사건은 현재까지도 아무런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사살되었던 300여명의 원혼을 달래지 못하고 있다. 미군 전투기의 폭격을 피해 노근리 쌍굴로 숨었지만 미군의 기관총에 모두 죽어야 했던 그 처절한 죽음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묻고 있음이다. 역사가 안고 있는 또하나의 아픈 이야기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그러나 우리의 기억속에서는 퇴색되어져가는 이야기..

 

그 끔찍한 학살은 어처구니없게도 북한군에게 포로가 되었던 한장교의 실수로 인하여 벌어졌다. 그야말로 '라이언일병 구하기'쯤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누구의 잘못이라고 감히 손가락질 할 수도 없다. 속을 헤집어보면 바로 찾아낼 수 있는 지긋지긋한 그놈의 이념전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아픔을 겪어냈으면서도 지금까지 죽지않고 살아남아 우리의 가슴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처절했던 현장을 책속에서 마주치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책속에 보이는 말들이 서러웠다. 한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단어 하나가 주는 느낌이 너무 아팠다. 귀에 익고 눈에 익은 말이 그렇게 변해왔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정말 부끄러웠다. 전쟁이 아니라 사변으로 보아 6.25사변이나 6.25동란으로 배웠던 내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남측의 입장에선 자유수호전쟁이었으며, 북측의 입장에선 조국수호전쟁이었다는 말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터 한국전쟁으로 불리워지고 있었던 것일까? 솔직히 나는 알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자유수호를 외쳤던 남측군대가 마을을 지나가면 더 힘겨웠다던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에게 더 많은 해를 끼친 쪽은 남측이었다고. 남측군대가 보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는 건, 모순으로 뒤범벅이 되어버린 세상사의 보이지않는 측면이었을까?

 

과연 미국은 한국의 수호자인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한국을 이용한 지배세력인가? 미국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정치적인 성향을 확정한다 는 책속의 말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이제는 묻지 않아도 누구나 답을 알고 있는 물음이 아닐까 싶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고 펄펄 끓는 국' 이라는 책속의 말에 백퍼센트 공감한다. 잘못 먹으면 입천장을 데기 쉽다는 말도 일리있는 말일터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피상적으로 노근리사건을 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양파껍질처럼 까면 깔수록 자꾸만 눈물나는 이야기. "우리는 죽었고, 죽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는 그 한마디가 서럽디 서럽게 다가온다.


촘촘하다. 씨줄과 날줄이 견고하게 짜여져 손가락을 대면 튕겨져 나올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 현장속에서 나조차도 허덕이게 만드는 묘한 긴장감은 책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곁에 머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 좋았다. 피해자의 입장만이 아니라 그순간을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강요하지 않는 담담한 흐름이 새삼스럽다.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강렬하다. 단지 몇 사람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역사의 한 단면이 이토록이나 절절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저마다의 가슴속에 각각의 아픔을 안고 그 지난했던 세월을 살아내야 했던 노근리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채로웠다.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인, 아니 현재진행형일 수 밖에 없는 그 이유가 책속에서 스멀거린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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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봄꿈
한승원 지음 / 비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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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894년의 겨울, 패주한 동학군의 지도자 전봉준이 밤을 도와 잠행하다가 민보군에게 붙잡혀 한양으로 끌려가는 천리 길의 기나긴 참담한 여정을 서술한 것이다. 그 여정에서 전봉준이 만난 개 같은 세상을 보면서 나는 진저리치며 구역질을 하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지은이의 말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개같은 세상... 그 개같은 세상을 보면서 진저리를 쳤다는 말속에서 성공하지 못한 전봉준의 꿈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감나무, 아직 살아 있을까? 정말 오래전에 가 보았던 그 곳을 다시 생각하려니 너무 까마득한 느낌이 든다. 고부 말목장터의 감나무 밑으로 낫을 들고 곡괭이를 들고 모여들었다던 그 사람들의 함성은 어쩌면 아직까지도 사그라들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허나, 개같은 세상이 거기뿐이었을까? 책속에서도 거론되어지는 수많은 민란 역시 그렇게 사그라들고 말았다.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그 감나무,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고 이야기속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괜찮다. 이렇게 글로써 다시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가끔은 그렇게 가슴 아픈 역사가 있었다고 뒤돌아보아주는 사람 있으니.

 

우금치 전투..  전적지 기념물이라고는 위령탑 밖에 없다는 그곳에 나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가본들 그 함성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농민들의 피를 빨아먹던 기생충같은 조병갑은 유배형에 처해졌지만 다시 복권하여 그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그런 결과가 세상의 진리라도 되는 양. 책의 표지에 보이는 것처럼 파랑새 민요와 녹두장군이라는 별명만이 남아있을 뿐인 전봉준의 이야기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이 작품은 자칫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같은 표현이 너무 많이 반복되어져 마치 세뇌시키기라도 하겠다는 양 보여지기도 하니 하는 말이다. 이 책은 전봉준이 잡혀서 한양까지 올라오는 행로를 그리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전투는 그저 순간순간 삽입되었을 뿐이다. 전투의 긴박함보다는 인간적인 고뇌를 다루고 싶었나보다. 민중에 의해 일어섰지만 결국 민중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우리의 영웅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민중을 위해 싸웠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도 있었을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외면해버릴 수는 없지만 이 책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시간들이 감정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동학혁명은 고부군수 조병갑에게 시달리던 농민들이 1894년 4월에 전봉준을 필두로 하여 봉기한 사건이다. 동학군은 황토현 싸움과 장성의 월평 싸움에서 승리하고 전주성 싸움후에 관군 홍계훈과 화의를 맺고 해산했었다. 전라도 고부봉기를 시작으로 충청도와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지역까지 전국에 걸쳐 일어난 봉기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밥을 얻기 위한 싸움이었으나 끝내 밥을 얻어내지 못했던 민란이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부족한 씁쓸한 싸움이었다.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김덕명, 최경선, 이방언, 김인배, 최익서, 송두호, 서장옥.... 동학군은 뿌리를 파버린다는 말처럼 저들의 가족들도 힘겨운 세상을 견뎌냈을 것이다. 심복 세 명을 데리고 피신하던 전봉준은 순창 피노리 주막에서 자신의 부하였던 김경천의 배신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무참하게 구타당하고 잡혀 일본군에게 인계되었다고 한다. 그때가 12월 28일이니 추운 겨울이다. 서울로 압송된 전봉준은 1895년 4월 23일 교수형을 선고 받았고 얼마후 손화중, 최경선 등과 같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그런 전봉준을 살려 일본으로 데려가려고 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말이 조금은 생경하다. 정말 그랬을까? 만약에 그가 그런 제의를 받아들여 일본으로 갔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조선 정벌 세력이 이용하기 위해 그랬다고는 하지만 좀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된 후의 모습이 왠지 궁금해진다. 그의 동학군이 실패하게 된 원인중의 하나가 세상을 넓게 보지 못했다는 것이라하니 궁금한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일 게다. 실패한 공격방식은 되풀이 하지 않는게 전술의 원칙이라는데 한번 써먹은 정면 공격을 되풀이 했다는 점, 이편보다 더 나은 병기를 가진 자를 상대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는 점(당시 관군을 이끌던 일본군은 기관총이 있었던 반면 우리는 화승총과 창을 들었다!), 거기다가 동학군은 미신을 믿었다는 점(전투에 나서는 동학군마다 등에 노랑색 바탕에 '弓乙'이라는 붉은 글씨를 쓴 부적을 붙이고 돌격과 동시에  "侍天主造化定" 이라는 주문을 큰 소리로 합창했다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속에도 잘 표현되어져 있다} 은 동학혁명의 실패원인으로 꼽힌다. 사정없이 날아오는 실탄앞에서도 절대로 죽지않는다는 부적과 주문을 믿도록 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겨울잠은 길다. 그러나 봄꿈은 짧다. 이 책이 말하고 싶어하는 걸 따라가자면 전봉준이 꾸었던 꿈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가 그 꿈을 향해 어떻게 나아갔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있었음직한 그의 고뇌를 작가와 함께 느껴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될 듯 하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외침은 내게서 그리 많은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다. 길게 늘어지는 호흡이 왠지 거북하다. /아이비생각

 

 

◀1895년 2월 말 일본영사관에서 조선 법무아문으로 이송되는 전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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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 - 이순구의 역사 에세이 너머의 역사책 5
이순구 지음 / 너머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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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딱딱하다. 그리고 재미없다. 왜? 외워야하니까! 학창시절부터 우리에게 다가왔던 역사의 속성은 그랬다. 외워야 하는 것. 연대와 사건이 맞아떨어져야 시험볼 때 점수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나의 학창시절은 이미 30년을 훌쩍 지나버린 시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감히 말하건대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역사를 대하는 방법에 많은 변화가 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오히려 더 푸대접을 받았으면 받았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나마 요즘은 문화재청장을 지내셨던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덕에 우리문화유산을 찾아 다니는 테마여행이 많아지고 있어 댜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거기다가 지금은 지자체별로 자기네 고장에 속한 옛날이야기를 찾아내 많은 걸 복원시키고 있어 가히 대한민국은 대단위 공사중이시다! 잘 있던 것도 복원한답시고 요즘식으로 뜯어고치는 곳도 꽤나 많아 보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우리가 익히 배우고 외웠던 역사의 틀보다는 그 밖의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더 많이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옛날이야기들이 지금의 우리와 어떻게 연관되어져 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았다. 이 책이 어느정도는 그런 나의 궁금증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

 

답사를 다니면서 가장 듣기 싫었고 이해할 수 없었던 말은 사찰을 종교적인 입장에서 해석하는 거였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문화유산을 대하면서도 현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기사 옛시대를 살아낸 공간안에 들어섰다고 하여 그 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오만원권이 처음 만들어지던 때가 생각났다. 지폐의 얼굴로 신사임당을 정해놓고도 그가 현모양처네 아니네로 설왕설래했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고 우리에게 전승되어진 문화나 풍속은 대부분이 조선후기의 영향이 크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기점으로 조선의 사회와 문화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조선초기까지만해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옛이야기들은 생겨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남녀가 평등했으며 부모 제사를 모시는 것과 재산을 나누는 것도 아들과 딸이 모두 똑같이 했다. 아들 선호사상도 없었으며 적장자우선이라는 것도 없없다.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게 아니라 남자가 장가를 갔다. 친가보다는 외가쪽에서 더 많은 생활을 했다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男女七歲不同席과 같은 말은 필요치 않았다. 그만큼 남녀의 사랑은 자유로웠으며 재혼 역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랬던 것들이 조선이라는 사회를 거치며 조금씩 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끔 주변의 남자들이 옛날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우스개소리로 할 때가 있다. 뭘 모르고 하는 말씀이다.

 

이 책속에는 우리가 외워왔던 연대나 사건은 없다. 큰 틀에서 말하기보다는 우리의 일상과 같은 일들을 주제로 다루어 재미있다.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이 조선의 가족사다. 그 안에 얽힌 천개의 표정을 들춰내고 있음이다. 그러니 저마다의 사연이 깊다.  그때 왜 그래야만 했는지 속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다. 양반도 있고 일반 백성도 있다. 잘나가는 인생도 있지만 삐걱거리는 인생도 있다. 저마다의 속풀이마당쯤이라고 하면 딱 어울릴 듯 하다. 중요한 것은 그 가족사의 중심에는 여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장가들기, 남자가 움직이는 혼인 편에서는 한다하는 당시의 인물들이 왜 외가에서 태어나야 했는지, 지금에 와서도 왜 외할머니가 아이들을 더 많이 키우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처가 또는 외가의 위력, 집안의 중심 여자, 가족들의 생활상, 조선 가족의 마이너리티, 우리가 도덕성에 열광하는 이유..로 크게 주제를 나누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순간이 많다. 인목대비와 혜경궁홍씨가 왜 친정 집안을 그토록까지 생각해야 했는지, 맏며느리의 위세가 왜 그리도 당당했는지, 나이든 양반들이 어린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음직한 명제들을 흔쾌히 풀어주고 있어 책장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울러 지금 우리의 모습을 통해 반추해 볼 수 있는 주제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도 유난스럽게 시험을 좋아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냥 생긴것이 아니며, 고려와 조선이 타협한 장례문화를 지금의 우리 모습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말은 그냥 쉽게 넘기기엔 뭔가 좀 석연치않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 많은 홍길동은 다 어디로 갔는지 우리에게 되묻고 있으며, 어우동의 일화를 통해 그 때나 지금이나 도덕성 경쟁을 하고 있는 우리의 속내를 슬쩍 건드려보기도 한다. 정말 우리는 언제까지 도덕성 경쟁을 해야 하는가?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하지 않는다,는 말은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난 말일까? 처가살이가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집안의 중심이 여자인 시절도 있었다. 그런 시절을 거쳐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책속에 등장하는 많은 가족사는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리고 오늘의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모습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쉽게 생각했던 책인데 어려운 숙제를 남겨준다. 에세이지만 읽는동안 재미있었고 남는 느낌이 좋다. 주제가 역사라서 그랬던 것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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