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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 - 이순구의 역사 에세이 ㅣ 너머의 역사책 5
이순구 지음 / 너머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역사는 딱딱하다. 그리고 재미없다. 왜? 외워야하니까! 학창시절부터 우리에게 다가왔던 역사의 속성은 그랬다. 외워야 하는 것. 연대와 사건이 맞아떨어져야 시험볼 때 점수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나의 학창시절은 이미 30년을 훌쩍 지나버린 시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감히 말하건대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역사를 대하는 방법에 많은 변화가 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오히려 더 푸대접을 받았으면 받았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나마 요즘은 문화재청장을 지내셨던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덕에 우리문화유산을 찾아 다니는 테마여행이 많아지고 있어 댜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거기다가 지금은 지자체별로 자기네 고장에 속한 옛날이야기를 찾아내 많은 걸 복원시키고 있어 가히 대한민국은 대단위 공사중이시다! 잘 있던 것도 복원한답시고 요즘식으로 뜯어고치는 곳도 꽤나 많아 보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우리가 익히 배우고 외웠던 역사의 틀보다는 그 밖의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더 많이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옛날이야기들이 지금의 우리와 어떻게 연관되어져 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았다. 이 책이 어느정도는 그런 나의 궁금증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
답사를 다니면서 가장 듣기 싫었고 이해할 수 없었던 말은 사찰을 종교적인 입장에서 해석하는 거였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문화유산을 대하면서도 현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기사 옛시대를 살아낸 공간안에 들어섰다고 하여 그 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오만원권이 처음 만들어지던 때가 생각났다. 지폐의 얼굴로 신사임당을 정해놓고도 그가 현모양처네 아니네로 설왕설래했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고 우리에게 전승되어진 문화나 풍속은 대부분이 조선후기의 영향이 크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기점으로 조선의 사회와 문화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조선초기까지만해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옛이야기들은 생겨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남녀가 평등했으며 부모 제사를 모시는 것과 재산을 나누는 것도 아들과 딸이 모두 똑같이 했다. 아들 선호사상도 없었으며 적장자우선이라는 것도 없없다.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게 아니라 남자가 장가를 갔다. 친가보다는 외가쪽에서 더 많은 생활을 했다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男女七歲不同席과 같은 말은 필요치 않았다. 그만큼 남녀의 사랑은 자유로웠으며 재혼 역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랬던 것들이 조선이라는 사회를 거치며 조금씩 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끔 주변의 남자들이 옛날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우스개소리로 할 때가 있다. 뭘 모르고 하는 말씀이다.
이 책속에는 우리가 외워왔던 연대나 사건은 없다. 큰 틀에서 말하기보다는 우리의 일상과 같은 일들을 주제로 다루어 재미있다.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이 조선의 가족사다. 그 안에 얽힌 천개의 표정을 들춰내고 있음이다. 그러니 저마다의 사연이 깊다. 그때 왜 그래야만 했는지 속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다. 양반도 있고 일반 백성도 있다. 잘나가는 인생도 있지만 삐걱거리는 인생도 있다. 저마다의 속풀이마당쯤이라고 하면 딱 어울릴 듯 하다. 중요한 것은 그 가족사의 중심에는 여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장가들기, 남자가 움직이는 혼인 편에서는 한다하는 당시의 인물들이 왜 외가에서 태어나야 했는지, 지금에 와서도 왜 외할머니가 아이들을 더 많이 키우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처가 또는 외가의 위력, 집안의 중심 여자, 가족들의 생활상, 조선 가족의 마이너리티, 우리가 도덕성에 열광하는 이유..로 크게 주제를 나누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순간이 많다. 인목대비와 혜경궁홍씨가 왜 친정 집안을 그토록까지 생각해야 했는지, 맏며느리의 위세가 왜 그리도 당당했는지, 나이든 양반들이 어린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음직한 명제들을 흔쾌히 풀어주고 있어 책장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울러 지금 우리의 모습을 통해 반추해 볼 수 있는 주제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도 유난스럽게 시험을 좋아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냥 생긴것이 아니며, 고려와 조선이 타협한 장례문화를 지금의 우리 모습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말은 그냥 쉽게 넘기기엔 뭔가 좀 석연치않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 많은 홍길동은 다 어디로 갔는지 우리에게 되묻고 있으며, 어우동의 일화를 통해 그 때나 지금이나 도덕성 경쟁을 하고 있는 우리의 속내를 슬쩍 건드려보기도 한다. 정말 우리는 언제까지 도덕성 경쟁을 해야 하는가?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하지 않는다,는 말은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난 말일까? 처가살이가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집안의 중심이 여자인 시절도 있었다. 그런 시절을 거쳐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책속에 등장하는 많은 가족사는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리고 오늘의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모습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쉽게 생각했던 책인데 어려운 숙제를 남겨준다. 에세이지만 읽는동안 재미있었고 남는 느낌이 좋다. 주제가 역사라서 그랬던 것일까?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