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시간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3
다나베 세이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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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남자와 한여자가 사랑을 해서 영원을 기약하며 결혼이란 끈으로 묶인다. 그 사랑이 영원할거라 믿으며, 혹은 영원하기를 바라며.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렇게 그들을 편하게 놓아줄까? 처음엔 모든 걸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각자의 마음속에 성을 짓고는 그 성안에서 고집스럽게 나오려들지 않는다. 그리고는 하나씩 하나씩 내가 아닌 상대방의 상태에 따라 맞춰지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토록 재잘거리던 처음의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침묵의 바위뒤로 숨게 되고. 차라리 내가 맞추지, 하는 심정으로 콩속에서 돌을 골라내는듯이 자신을 내던진다. 중요한건 남자든 여자든 모두가 내가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어느누구도 그렇게 선을 그으며 살아가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시간을 보내버리고 문득 지나간 날속에 머물던 자기 자신과 마주치던 어느날, 남자도 여자도 똑같이 말을 한다. 그래, 그때는 그랬었는데.... 그리곤 그때의 시간을 찾아내 지친 마음을 부비고 싶어한다. 때로는 그것이 상대방에게 또다른 힘겨움을 전해줄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치 못한채로. 하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나가지 않은 모습으로 되돌아오게 되고... 그 순간부터 자기 자신의 성벽이 무너져감을 느끼게 된다. 지나쳐간 시간이 과거라는 이름으로 변하여 추억이란 화려한 옷을 입고 찾아와 그 남자를, 혹은 그여자를 유혹한다. 힘겨운 싸움이 시작된다. 지친 마음으로 말한다. 이미 지나간 것일뿐인데...라고.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간거지?

 

"연극할 마음이 필요한가요. 연애하는데?"

"필요하죠!"

"부부사이에도?"
"사람에 따라서는 필요할 겁니다. 연극으로 서로에게 맞춰줄 필요도 있겠죠"

연애를 하든 사랑을 하든 연극할 마음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까 싶다. 그저 나한테로만 향하던 시선과 관심은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내가 아닌 너와 내가 되고 우리가 되고 더 나아가 가정이라는 하나의 울타리가 생긴다. 그때부터 '나'라는 의미는 사라지기 시작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집착 또한 버리게 되니 그 또한 서글프다.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인해 다툼이 시작되고 작은 다툼이 커다란 전쟁으로 번진다. 승자없는 싸움인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내가 패잔병이 되고나서야 그 전쟁은 끝이 난다. '툭' 하고 던지듯이 뱉어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칼끝처럼 나를 후벼댄다. 싫다. 이렇게 패잔병처럼 살아가는 내가 싫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그래서 몸살을 앓는다. 앓고 난 뒤에야 나는 모든 것을 버린다. 아니 버리기로 작정을 한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나의 사적 생활은 모두 고에게 흡수되고 말았다. 나 자신의 존재조차 없어지고, 고의 사적 생활의 일부분으로서 나는 겨우 살아 남았을 뿐이다, 라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보는 게 더 속편하다. 그렇게 하면 내가 편하니까. 그렇게 살아주는 게 차라리 서로에게 더 좋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자꾸만 말을 잃어가고 있다. 달라진 건 없는데... 보여지는 모든 것들은 그대로인데... 뭔가 남자와 여자사이에 끼어들기 시작하고 대화를 잃어가고 있다. 한참이 지난후에야 묻게 된다. 왜 그러는거지? 도대체 내가 당신을 위해서 살아온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간거지? 당신이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다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거지? 말해봐. 도대체 뭐가 문제야?

 

영원히, 대충대충, 계속 살아질까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순간도 올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나, 이제 아기 낳아야 해? 하고 묻던 노리코의 마음이 어땠을까? 노리코가 독자 여러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던 작가의 말이 참 쓸쓸했다. 나는 이미 노리코의 친구가 되어버렸는데... 드디어 연기자의 사적 생활로 돌아온 거네요, 하면서 노리코의 아픈 일들을 이미 알아채고 웃어주었던 나카스기씨가 노리코 옆에 계속 남아있어주면 좋겠다. 살면서 왜 좋은 일만 있을거라고 생각했을까? 살면서 왜 너와 나만 있을거라고 생각했을까? 살면서 서로에게 동화되어지는 여정을 왜 함께 가지 못했을까? 형식과 조건앞에서 너무나 현실적으로 숨김없는 표현을 하며 살았던 노리코. 그녀의 입에서 진심을 담은 말들이 튀어나오던 순간부터 그 아슬아슬한 연극은 막 내릴 준비를 한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로 만났던 다나베 세이코. 역시 편안하다. 나를 책속의 세상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있다. 오늘,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요? 하고 묻는다. 아니요. 하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너무나 평범한 작가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내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도 내게 머무는 동안은 아주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된다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귀에 속삭여 준다. 그래서 나는 눈물이 날뻔 했다. 작가는 말하고 있다. 나의 아픔을 돌보듯이 상대방의 아픔도 돌볼줄 알아야 한다고. 남자든 여자든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똑같다고. 앞으로의 여정은 알 수가 없다. 내가 내 자신과 어떻게 타협을 하며 살아가느냐가 문제일뿐.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혼신을 다해 연극을 이끌어준 노리코의 아픔은 어디로 숨었을까? 정말 힘겹게 연극무대에서 내려온 노리코를 위해 기도하고 싶어진다. 다시 찾은 노리코의 사적인 시간을 위해 화이팅! ...

 

2007년에 읽고 다시 읽은 책이다. 전해져오는 느낌이 변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공감할 수 있었다는 말일터다. 책을 읽으면서 치유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구나에게 사적인 시간은 필요하다. 자신만의 그 무엇을 가슴에 하나쯤 품고 살 필요는 있다. 결혼은 집착이 아니다. 책임과 의무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을 위한 배려만이 결혼이라는 성을 견고하게 만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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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해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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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실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슬프게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는 타인의 인권 따위는 침해해도 상관없다고 믿는,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목숨조차 상관없다고 믿는 사람들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사람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유능하다는 소릴 듣는다. 그리고 아주 높은 확률로 성공한다. 너무나 비극적이게도, 이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 작가의 말)

 

작가의 말을 빌려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미리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든다. 어쩌면 이 책의 성격을 말하고 있는 일일수도 있어서. 하지만 작가의 말속에서 이 책의 성격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작가가 안타까워하는 그런 일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까닭이다. 어디 한군데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 일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목소리를 높여 인권을 이야기하고 저마다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그 주장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배려와 책임의식은 전혀 없다.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한 주장이며 외침에 불과할 뿐이다. 오로지 나 하나만의 이익과 편리함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다는 의식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이제는 그것이 언제 터지나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책장을 덮고 한참동안 책을 손에 쥐고 있었던 이유는.

 

인간의 감정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도저히 맨얼굴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가면을 쓰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 가면이 벗겨져 자신의 맨얼굴이 남들앞에 드러날까봐 조바심을 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현실은, 참 피곤하다. 책속에서 마주친 여러 얼굴위에 덮혀져 있던 가면들이 하나둘씩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맨 얼굴은 참혹했다. 더이상 잃을것도 없는 순간이었음에도 그들 모두는 무언가를 잃을까 두려워했다. 극해라는 말속에서 한계점에 도달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더 이상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을.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긴장하게 된다. 탄탄한 글의 짜임새 때문인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숨을 가다듬게 된다. 몰입될수록 가슴 한켠이 졸아드는 것만 같아 답답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라고. 그리하여 이 아름다운 지구가 정화되어져야만 한다고. 놀라웠다.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이나 강렬하게 메세지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이. 세계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작가의 이력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전시라는 긴박한 상황속에서 매순간 운명이 바뀌게 되는 포경선 유키마루. 잠시의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사건들이 엉킨 실타래를 풀 듯 그렇게 내 앞으로 끌려와 풀어진다. 그리고 드러나는 인간의 숨겨진 본성은 읽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두사람만 있어도 서열을 가려야 한다는 부질없는 인간의 속성이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파이이야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강자에게 밟혔던 약자조차도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서로가 또다른 강자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 어쩌면 인간만의 진실인지도 모를 일이다.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이야기의 속도감이 이채로웠다. 다시 작가의 말로 돌아간다. 너무나 비극적이게도, 이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고자 하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는 게 지금의 문제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강한 여운으로 남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는 없다. /아이비생각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나는 서점을 뒤질 것 같다. 작가의 또다른 작품을 찾아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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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성 기름, 뜻밖의 살인자
데이비드 길레스피 지음, 이주만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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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지방에 대해 한번 알아보자. 포화 지방, 단일불포화 지방, 다가불포화 지방, 트랜스 지방 이렇게 세종류로 나뉜다. 포화 지방이니 불포화 지방이니 하는 말도 그렇거니와 트랜스 지방이란 말은 하도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상온에서도 수개월 동안 변질되지 않는 지방을 포화지방이라고 하는데 사람을 포함한 동물들이 갖고 있는 지방이 대부분 포화 지방이라고 한다. 상온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고 올리브유에 주로 들어 있는 것이 단일불포화 지방이고, 동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까닭에 음식으로 소량 섭취해야 한다는 것이 다가불포화 지방이다. 다가불포화 지방은 카놀라유나 해바라기유, 콩기름. 포도씨유, 미강유등과 같이 주로 씨앗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상온에 노출되면 단시간에 변질된다는 점이다. 올리브유 역시 식물성 기름이지만 씨앗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육에서 짜낸다는 차이를 보인다. 그런 까닭인지 책에서는 식물성 기름중에 그나마 올리브유가 가장 좋다는 말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많이 들어왔을지도 모를 트랜스 지방은 뭘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위적으로 변형된 불포화 지방으로 우리 몸에는 해롭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 트랜스 지방이 동물성 기름에는 극소량이 들어 있지만 경화 공정을 거친 식물성 기름에는 다량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식물성 기름을 먹고 싶지 않아도 마켓에 가면 온통 식물성 기름만 보인다. 솔직히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나름대로의 성분을 따져가며 먹는다는게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나쁘다며 내놓는 단어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도 않거니와 들어도 잘 모르니 이래서 좋으니 먹으라 하면 먹고 저래서 나쁘니 먹지마라 하면 안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보면 우리가 왜 식물성 기름만을 고집하며 먹어야하는지 생각할 여력도 그다지 많지 않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식물성 기름을 먹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던 사람, 몇이나 될까? 결론이야 늘 한결같다. 우리의 건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거다! 가축을 키우는 것보다 식물의 씨앗에서 화학적으로 기름을 짜내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란다.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면서 이익을 포기하라는 말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류의 책을 볼 때마다 나는 무척이나 화가 난다. 그렇다면 식물성 기름이 만연하기 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는 없었는가 해서 하는 말이다. 늘 이렇게 논쟁을 불러오는 주제를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것이 만연된 후에야, 다시 말해서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힘겨운 상황을 겪고 난 뒤에야 말이 나오니 한심한 일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책속에서 말하고 있는 식물성 기름을 피하는 장보기 법칙은 정말 끝내준다. 성분표와 친해져라, 그 많은 기름을 용도에 맞게 구분해서 써라, 빵을 살 때도 어떤 기름을 썼는지 알아보고 사라, 소고기는 사료가 아닌 목초를 먹인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일단 가공되어 포장된 제품과는 될수록 멀어져야 한다 등등등... 이제 왠만한 사람은 다 안다. 냉동 감자튀김은 피해야 하고 피자와 고기 파이등과 같은 냉동 제품도 되도록 먹지 말아야 하고, 설탕 함량을 항상 따져봐야 한다는 것쯤은. 저자의 말이 아니라도 뭐가 되었든 적당히 먹는 게 좋다는 것쯤은 말안해도 알 사람은 다 안다. 그렇게 따진다면 마켓의 진열대에서 보이는 제품들의 영양성분표 읽는 방법은 솔직히 있으나 마나다. 이 책뿐만이 아니라 이런 류의 책들이 이미 경고를 내린 성분들이 그 안에 즐비하게 써있는 까닭이다. 각설하고 결론은 정말 간단하다. 나라가 앞장서서 국민의 건강을 챙겨줄리 없으니 내가 키우고 내가 길러서 그것으로 직접 요리를 해먹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조미료까지도 본인이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말이니까 쉽다!!! 기업이란게 어차피 적은 비용 들여서 많은 이득을 얻어야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또 그들에게 의지한채 버텨나가는 것이 국가의 속성이다보니 그들이 사람들의 건강까지 챙겨주길 원하는 건 무리수라는 걸 인정하라는 말처럼 들려 뒷맛이 씁쓸하다. 우리 건강을 돌봐야 할 잭임이 있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기업편을 들고 있다는 말에도 그다지 화가 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일전에 읽었던 <탄수화물이 인류를 멸망시킨다>, <식량은 왜 사라지는가>, <우유의 역습>과 같은 책들이 떠오른다. 어디 이 책들뿐일까? 이런 주제를 다룬 책들은 찾아보면 더 많을 것이다. 우리의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놀라유, 해바라기유, 포도씨유가 오히려 성인병의 원인이라는 말이 상당히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하지만 먹든 안먹든 한번쯤은 집고 넘어가야 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해서 식물성 기름을 안먹을수는 없을테니까. 아주 오래전에 굴지의 라면회사가 '소고기 우지 파동'을 겪으며 라면 판매를 중단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일어난 지 8년만에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었다. 그때가 1989년이니 상당히 오래전의 일인데도 어제일처럼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결국 기업들간의 싸움에 소비자만 손해를 본 꼴이다. 내 가족을 병들게 하는 식물성 기름의 진실 이라는 책표지의 말을 허투루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에게 왜 이런 책들이 다가오는지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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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스킨
미헬 파버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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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또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보게 된다. 같은 이름으로 영화가 만들어져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보이지만 크게 기대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솔직하게 말해 책으로도 그다지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 탓이다. 인간을 사냥하는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외계인의 이야기가 아님을 금새 눈치챌 수가 있다. 부조리한 기업과 끝없는 탐욕을 내세우는 인간들의 갖은 행태가 책속에서 가감없이 보여지고 있음이다. 주인공 이설리라는 여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빨간색 도요타를 운전하며 히치하이커를 찾아 다닌다. 하지만 그녀가 차를 얻어 타고자 하는 모든 히치하이커를 태워주는 건 아니다. 차를 세우기 전에 히치하이커의 몸상태를 관찰하고 그가 쓸만하다 판단이 되면 그 앞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 나서 그가 사라져도 찾을 사람이 없는지를 탐색한다. 그러니 그녀에게 먹히는 사람의 부류는 뻔하다. 이 사회에서 버려지거나 사라져버리고 싶어하는 부류들이다. 그녀에 의해 농장으로 잡혀간 그들은 얼마간 사육되어지고 육가공품이 된다. 끔찍하게도!

 

별다른 감정과 느낌이 없는 그녀의 직장 동료들. 그들이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설정은 흥미로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워보이는 풍경속에 그녀의 직장인 농장이 자리하고 있다! 직업을 얻기 위해 희생당해야 했던 그녀의 육체를 상상해보는 맛도 그다지 나쁘진 않지만 원래 아름다웠던 육체를 희생함으로써 얻어진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일에 대한 회의감과 외로움으로 바닷가를 서성이고 내리는 눈의 아름다움에 도취될 수 있는 그녀의 짧은 감성을 통해 알 수 없는 아릿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인간을 사냥하고 그 고기를 먹는 외계인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외계인의 이야기가 아닌 탓일게다. SF소설이라는 이름을 빌려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 왠지 내안의 감정들이 서걱거린다.

 

어느날 찾아온 기업의 후계자 암리스 베스와 함께 지구의 한순간을 느끼는 장면은 이채로웠다. 문득 문득 찾아오는 일에 대한 회의감속에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이설리에게 그의 존재는 작은 돌멩이처럼 그녀의 가슴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그가 떠나고 그녀 역시 어디론가 떠나지만 그녀 앞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힘없는 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커가는 기업들, 누군가의 관심도 받지 못한채 버려지거나 사라져버리고 싶어하는 사회의 약자들, 어쩌면 영원히 변하지 않을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지탱할 수 밖에 없는 사회의 수레바퀴... 누군가는 넘어지고 누군가는 밟힌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들을 밟고 일어선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아닐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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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민정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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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슨 이유로? 그들이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이었다. 어둡고 습한 지하동굴에서 마주한 세남자는 도무지 자신들이 왜 그런 일을 당해야만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까닭이다. 두 남자의 발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고 한남자의 얼굴에는 철가면이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쪽지에는 철가면의 남자가 다른 두 남자에게서 50미터 이상 멀어지면 폭탄이 터진다고 적혀 있었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생각해 낸 것은 그들만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이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인연으로 이렇게 서로에게 묶여야만 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극을 만든다면 그럴 듯 하지 않을까? 하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연극이라면 이런 각본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한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장면들은 왠지 답답했다. 인간의 저 밑바닥 심리를 들여다본다는 책의 소개글도 어쩐지 껄끄러웠다.

 

세사람이, 그것도 한정된 공간에서 최소한의 조건으로 그곳에서 살아남거나 그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설정 때문인지 책을 읽는 내내 삐걱거리는 느낌을 버리지 못했다. 서로간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면서 자신들이 왜 그런 상황에 처해졌는지를 알게 되는 그들에게 일어날 일은 사실 뻔하다. 원망과 분열속에서 꺼져가는 한줌의 따스함이 그려질 거라는 걸 추측하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다. 거기서 인간 내면의 본성과 숨겨진 광기를 그려내고자 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전혀 공감대를 불러오지 못했다는 말이다. 어쩌면 놀라운 반전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를 결말마저도 이야기 도중 내게 이미 들켜버린 채 이렇다 할 공포감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말았다. 수작 스릴러라는 말이 왠지 무색하다.

 

흥미로웠던 점이 있다면 그들 중 한사람이 약간의 단서를 쥐고 있다는 거였다. 사느냐 죽느냐를 앞둔 그런 상황에서조차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인간의 내적 갈등을 그려내고 있는 부분이 잠시 나의 시선을 멈추게도 했다.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세남자의 연결고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나름 약간의 긴장감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결말부분에서 그만 그 작은 긴장감마저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건 뭐지? 복수라는 단순한 주제를 이렇게 풀어놓을 수도 있는거구나 싶은 허탈감?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울 뿐이다. 책의 제목 '현기증' 이란 말에 들었음직한 숨겨진 메세지를 그제사 발견하게 된다. 끝내 살아남아 (아니 살아남을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이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는 그에게 있어서 그일은 정말 현실이었을까? 알 수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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