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잡학상식
손영란, 조규미 지음, 김영진 일러스트 / 삼양미디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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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고 가장 먼저 목차를 살핀다. 우와~ 많다. 목차만 훑어보아도 정말 잡학사전이군! 할 만하다. 인체와 질병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늘 먹는 음식에 관한 것들, 과학이나 우주에 관한 것들, 동식물에 관한 것들, 문화나 유래에 관한 것들에 대하여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고 있음이다. 상식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알 만한 사항들도 꽤나 많다. 말처럼 상식이기 때문이다. 호기심 많거나 소소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꽤나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우리 모두가 이런 잡학 상식 정도는 알고 있는만큼 도움이 되긴 하겠다. 지금은 모르는 게 약인 것보다는 아는 게 힘이 되는 세상이니 말이다. 짤막 짤막한 형식으로 되어 있으면서 양념처럼 곁들여져 있는 그림들도 재미있다. 부러 재미있게 그린 것 같은데 아이들이 보아도 무슨 내용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 보인다.

'키메라 혈액형'이라고 들어 보셨는지? 한 사람이 두가지 혈액형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말인데 글쎄다... 실제로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을 것 같다. 짬뽕 좋아하는 사람이 꽤나 많을게다. 그런데 그 짬뽕의 원래 의미가 "밥 먹었니?" 묻는 말이었단다. 중국말로 "밥 먹었니?" 라는 '츠판'의 사투리였던 '샤퐁'이라는 말을  일본사람들이 '찬폰'으로 알아들었고 그 '찬폰'이 한국으로 오면서 '짬뽕'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호떡 집에 불났다는 말처럼 우리가 흔히 쓰는 속담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실려있다. 정신없이 시끄러운 걸 보면 호떡집에 불났다는 표현을 쓰지만 실제로도 호떡집에 불이 났었다는 '만보산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의 술책으로 조선농민과 중국농민이 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전국 각지에서 중국인 배척운동이 일어나 중국 상점이나 호떡집들이 거의 모두 불에 타버렸던 사건이란다. 깨물면 꿀물 흐르는 호떡의 달콤함속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을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이 자겸의 물고기라고 하는 굴비에 대한 일화도 재미있다. 비겁하게 굴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 굴비였다니 하는 말이다.

햄버거의 '햄'은 '함부르크'의 앞 글자에서 나왔다거나, 마카로니는 이탈리아어로 '와, 맛있다'라는 뜻으로 '와, 맛있다 (마 카로니!)"가 마카로니로 변했다는 말, 더구나 마카로니는 이탈리아가 아닌 중국의 음식이었다는 걸 알고는 정말? 하고 눈이 동그래지기도 했다. 키위의 원래 이름은 키위가 아니었다는 걸 아는가? 뉴질랜드가 종자를 도입, 개량하면서 자신들의 국조(國鳥)인 키위새의 이름에서 '키위'를 따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하이힐이 더러움을 피하기 위해 나왔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알테지만 그 하이힐을 맨처음 신었던 것이 남성이라는 말은 처음 알게 되었다. 키 작은 남성을 위해 만들어진 남성용이었다는 말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반신반의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어보라 한다면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으뜸으로 꼽을 수 있겠다.  빨간색 옷을 입고 빨간색 모자를 쓴 산타클로스가 코카콜라를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면? 아마도 믿고 싶지 않을게다. 하지만 사실이다. 1931년 코카콜라는 추운 겨울에도 콜라를 팔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콜라를 마시는 산타클로스의 모습을 디자인하게 되었는데 코카콜라 회사의 상표를 상징하는 빨간색을 산타클로스의 옷으로, 코카콜라의 풍부한 거품을 상징하는 것으로  흰 수염을 그렸다고 한다. 그렇다고해서 산타클로스의 존재가 아이들에게 동심을 심어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다고는 생각하지 마시라! 산타클로스의 모습만 그렇다는 것 뿐이니.. 알고 있듯이 산타클로스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태어난 인물이다. 터키 지방에 살았던 성 니콜라스 주교가 매년 12월 6일 어린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나누어 주던 것이 산타클로스의 배경이다. 그 후 유럽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어 매년 12월 6일을 성 니콜라스 축일로 기념하게 되었는데 미국으로 이민 가게 된 네덜란드인들에 의하여 성 니콜라스의 영어 발음인 산타클로스로 바뀌게 되었고 축제일도 12월 25일로 바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크리스마스는 아기예수가 태어난 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탄일이라는 말은 없어져야 한다. 어떻게해서 그런 이야기가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대체 이 세상속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좋은 의미로 전해져오는 아름다운 이야기만큼은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익만을 위해 변질되어버리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만약에 당신의 이름을 빨간색으로 적으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것 같은가? 아마도 인상을 쓰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나 안심하시라. 당신의 이름을 빨간색으로 적는다해도 무탈할테니.. 중국의 진시황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하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붉은 색이 온갖 좋은 의미를 다 가졌다고 생각한단다. 그런데 진시황이 그 좋은 의미의 색을 저 혼자만 쓰고 싶어서 누구도 붉은색으로 이름을 쓰지 못하게 했고 만약 그것을 어길 경우 죽음을 면치 못했을테니 사람들은 당연히 붉은 색으로 이름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하여 빨간색으로 이름을 쓴다는 것이 죽음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한사람의 욕심이 그토록이나 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정신을 지배해 왔다고 생각하니 참 어이가 없다. 그렇다해도 우리는 아마 붉은 색으로 자신의 이름쓰기를 꺼릴 것이다. 그만큼 이미 오래되어 굳어진 속설을 깬다는 것이 만만찮을테니... 쓴다고해도 그 꺼림직함을 이겨내기가 쉽진 않을테니..

음주운전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알래스카로 가라. 달팽이도 이빨이 있다, 무려 25,600개나!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소라는 걸 아시는지? 소나 양 염소같이 되새김질 하는 동물들이 뿜어내는 메탄의 양이 장난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메탄 발생량의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모두 소고기를 먹지 말아야 할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동물이 무엇일까? 답은 지렁이다. 공룡과 함께 살았고 지독한 기후변화도 이겨냈으며 심지어 히로시마의 원폭속에서도 살아남은 식물이 있었다. 바로 은행나무다. 놀랍지 않은가? 일전에 읽었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처럼 거꾸로 나이를 먹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태어나서 첫돌이 되면 예순살이 된다고 하니 그사람들은 딱 예순살까지만 사는 것일까? 이래저래 참 복잡 미묘한 것이 사람사는 일인것 같다. 지금까지 말했던 이야기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 재미있고 유익한 그야말로 상식으로 알아야 할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어디 이것뿐일까?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좀 더 많은 욕심을 부리고 싶었을 사람들의 마음을 보게 된다. 더 많은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상식을 전해주고 싶었을테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상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 알아두면 좋을 다양한 분야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다루어주고 있다. 한번쯤 읽어보아도 손해나지 않을 책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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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정벌레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9
S.S. 반 다인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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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추리소설에 푹 빠져 허우적거릴때가 있었다. 한번 빠져들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추리소설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 치밀한 구성에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시작하자마자 범인이 여기있소,라고 밝히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끝까지 범인의 행방을 오리무중으로 몰아가는 작품도 있다. 어느것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그런데 가끔은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도무지 추리소설답지 않은 맛을 내고 있을 때는 당혹스럽다. 어디쯤에선가 추리소설의 긴박함을 찾아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갔다가 내내 실망한적도 여러번 있다. 나 학창시절에는 애드거 알란 포우나 아가사 크리스티같은 작가의 작품을 주로 읽었던 것 같다. 스릴 만점이다. 그 재미로 추리소설을 읽기도 하지만 함께 범인을 찾아나서는 그 여정 또한 괜찮은 여행이다. 미리 밝혀진 범인을 상대로 심리전을 펼쳐가는 것도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내가 추격자가 되어 누군가의 뒤를 밟고 있다는 그 느낌, 참 멋지다.  나에게는 지금 한창 유행하고 있는 환타지소설보다 훨씬 더 매혹적이며 그 유혹앞에 무너지기를 거부하고 싶지 않음이다. 

고전이라는 말이 있다. 오래된 것들. 하지만 그 오래된 것들속에는 우리 삶의 이치가 담겨있어 참 좋다. 작품 하나하나가 가벼운 재미만을 탐하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을 담고 있는 것 같아 소홀히 대할 수가 없다. 정말 오랜만에 아주 오래된 추리소설을 선택해 보았다. 그리고 나는 빠져들었다. 치밀한 구성이 나를 긴장하게 했고 범인과 심리전을 벌이며 끝까지 쫓아가는 주인공 번스의 인내심에 내심 놀라기도 했다. 흔하지 않은 이집트신화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파괴와 재생의 여신 사크메트를 내세워 범죄를 계획했다는 것도 그렇고 죽은 사람의 심장을 저울에 달아 생전 진실의 무게를 가늠한다는 저승의 신 아누비스를 내세워 정의를 심판하는 것도 멋졌다. 한 노인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미스터리의 세계. 책장을 넘길때마다 펼쳐지는 범인과 추격자의 심리전이 만만찮다. 그 호흡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절대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함정이 많은 까닭이다. 그 함정마져도 멋지게 드러내보이는 수법에 혀를 내두른다.

현재 있는 모든 것들은 애초에 이름이 없었다던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모든 형식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 만들어진 틀에 의해 자신들을 다시 만든다. 그래서 법의 정의조차도 때로는 범인을 감싸주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인간이 만든 허례와 허식으로 인하여 인간성이 말살되어버리는 경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양이다. 이건 아니라고 한번쯤은 짚고 넘어갈 수 있는 것도 만들어진 것들에 꿰어 맞추다보니 진실이 죽어버리고 그 진실을 담고 있던 모든 것들은 살아도 숨을 쉬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강하게 다가왔던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너무나도 치밀하게 짜여져있던 범죄의 구성앞에서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던 형식적인 법의 틀. 그 틀조차도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알았던 범인의 치밀함앞에서 추격자 번스와 검사 매컴, 형사부장 히스는 아연실색, 법이라는 틀을 들이댄다면 더더욱 범인을 도와주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어쩌랴.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께서는 결연하게 심판을 내려준다. 정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는 현실적이지 않으나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있을지도 모를 신의 이름으로. 

처음 이 책을 접하면서 예외적이지 않게 제목만으로 나는 미리 한조각의 편견을 내세우고야 말았었다. 이집트 문화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피라미드 신전이라거나 파라오의 저주와 같은 유적 발굴과 같은 류의 사건현장이 배경일거라고. 그것을 빼놓고 이집트신화를 말한다는 건 왠지 용납되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조금은 그랬다. 유적발굴에 관한 소재가 있기는 했다. 그것이 범죄의 동기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추리소설속에는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숨어 있었다.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던 인간의 이기심이라거나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어설픈 감정들이 이 작품의 기초를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었다는 말이다. 사랑과 욕망을 동시에 얻기 위해서 너무나도 치밀하게 짜여져 있던 범죄의 구성. 그러나 그 범죄를 감추기위한 방법이 치명적으로 다시 자신을 옭아매고 말았던거다. 지키고자했던 사랑과 욕망은 집착만으로는 지켜질 수 없는거라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한번 보게 된다. 통쾌한 승리였다.

정말 오랜만에 읽었던 추리소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작품을 읽으면서 다시 느낄 수 있었던 그 긴장감이 좋았다. 남들은 연말이라고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긴장을 늦추지 못할수도 있고 어찌 생각하면 만사가 풀어져버리는 상황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중에 만난 이 소설은 자꾸 느슨해지려고하는 내 자신을 위한 하나의 느낌표가 되어준 것 같아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이번 기회에 다시한번 이집트신화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떠도는 이야기만으로 이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 까닭이다. 흥미로웠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추격자 번스의 인간적인 고뇌와 정의로운 심판이 나를 멋지게 휘어잡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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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싸부님 2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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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 비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 이것은 무엇으로 보이는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다. 그리고나서 등장했던 우리들의 싸부님. 물에 비친 달속에 들어앉아 까만 올챙이와 선문답을 주고받던 그 그림. 글은 많지 않으나 글보다 더 많은 의미들이 가득했고, 등장인물이 많지 않으나 그곳에서 머뭇거리던 존재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맨처음 이 책을 보면서 나는 그 여백들이 참 좋았다. 하릴없이 이것저것 채워넣기보다는 나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주었다는것이 고마웠다는 말이다. 무거운 이야기를 가벼운 그림과 함께 이끌어가고 있는 작가의 그 역량에 압도되기도 했다. 선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어 얼핏 보면 이건 뭐야? 할수도 있겠지만 짤막짤막한 대화속에서 내게 전해져오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책을 열면 바로 들려오는 작가의 한마디, 닫혀있는 당신의 마음부터 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배운 고정관념도 버리십시오.... 어쩌면 당신의 모습이 일그러져 보일수도 있으나 노하지는 마십시오...

원하나와 선하나로 만들어져 온 우주를 표현해내고 있는 하얀 올챙이가 바다를 꿈꾼다. 강원도 어느 산골의 작은 웅덩이에서부터 시작되는 우주. 어느 청개구리 부부 사이에서 513남 41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돌연변이 하얀 올챙이. 시작부터 범상치가 않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도 특별할 것 없이 태어난 우리의 하얀 올챙이일수도 있겠다. 그가 바다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예사롭지가 않다. 바다를 아십니까? 물으며 길을 가는 하얀 올챙이가 만나는 존재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현실, 눈앞의 삶에만 전전긍긍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누구나 하얀 올챙이처럼 꿈을 꾸고 있지만 누구나 하얀 올챙이처럼 꿈을 찾아 길을 떠나지는 못한다. 그러고보면 하얀 올챙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꿈에 대한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라고 숙제를 내주시는 것 같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힘겹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냐고.

하얀 올챙이 한마리의 시선과 생각을 통해 우리에게 투영되어지는 삶의 모습은 정말 처절하다. 넘기는 책속에서 환영처럼 보여지는 수많은 인간군상들.. 바늘로 찌르듯이 콕콕 와닿는다. 어려운듯하면서도 어렵지않게 들려주는 작가와의 선문답. 우습게 생각되어질 수도 있는 한 장면을 생각해보자면 이렇다. 어느날 갑짜기 나타난 까만올챙이 한마리가 싸부님! 하고 부르는 그 장면이다. 왜 사람들은 아이들을 경망스럽게 키우려고 들까요? 짱구, 새우깡, 꼬깔콘, 꿀꽈배기, 쌍쌍바, 짜장면, 빼빼로... 애들이 먹는 것들이 모두 경망스러운 된소리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던 그 장면... 작가는 거기에 이렇게 마음을 달아놓았다. 언어는 마음의 거울이니라. 마음이 각박하면 자연히 되고 거센 발음을 자주 내뱉게 되지. 너는 부디 네 나이에 어울리는 말씨를 쓰도록 하여라..네, 싸부님! (-251-252쪽) 어쩌면 일그러진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크고 높아서 우리도 어쩌지 못하는 도 (도(刀) 는 칼이다!) 를 마음속에 품으려고 하기 이전에 우리자신을 한번 더 돌아보면 안되는거냐고 그렇게 묻고 있는 것만 같다.

1편과 2편으로 나뉘어져 있어 2편에 대해 내심 기대감이 부풀었다. ○... 텅 비어 있다고 말하지 말라 ●... 텅 비어 있는 것은 곧 가득 차 있는 것이다. ⊙... 그대 스스로 이 안으로 들어가보라. 견고한 관념의 갑옷부터 벗어던지고... 철저하게 버리라한다. 우리들의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을. 무엇이고 애초에 이름지어진 것은 없는데 인간이 이름을 지어 그것의 틀을 만들고 그것의 범위를 정하였다고. 달팽이의 느림을 비웃지 말며,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보다 못한 것이 인간이 아니겠느냐고. 불신(不信)시대와 불신(不神)시대를 살아가고 있어 모두 다 믿을 수 없다는 작가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불만투성이 물고기와 한심이, 못난이, 옥떨메, 얼간이, 바보라고 못생긴 자신의 모습을 탓하는 모든 물고기들에게 맞는 말이니 웃음으로 화답해줄 수 밖에 없지 않느냐던 뚝지의 대답을 들으며 한번 더 나를 생각해보게 된다. 

신(神)이 마음안에 있듯 성전도 마음 안에 있을 뿐이라던 작가의 말씀에 공감한다. 인간이 지어낸 이름으로 구분되어질 수 없는 창조주는 이미 우리안에 있었던 것이다. ○●... 텅 비어 있다고 말하지 말라 텅 비어 있는 것은 곧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가득 차 있다고 말하지 말라 가득 차 있는 것은 텅 비어 있는 것이다. ⊙... 다른 듯 보이지만 본디 하나인 것을... 이름앞에 금(金)자가 붙어 있다고 제가 무엇이라도 되는양 부푼 탐욕과 툭 불거진 이기심과 아부근성을 감추지 못하고 항상 꼬리를 흔들어대며 우쭐거리는 금붕어는 되지 말지어다. 아주 흔한것들속에서 아주 귀한 것을 발견할 줄 아는 것도, 아주 작은 것들속에서 아주 큰 것을 발견할 줄 아는 것도 모두가 내 안에 있음이다. 눈 앞의 현실에 집착하는 우리의 모습을 하얀 올챙이 한마리와 물고기들이 나누었던 대화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며 작가 역시 비움의 철학을 우리에게 말하며 끝을 맺는다. 마음을 비우라고, 그래서 삶의 여정을 편하게 가야한다고...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은 것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멀어지면 다시 만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내게 있어서 이 책은 정말이지 다시 만나 좋은 것중 으뜸이라고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벌써 십년도 넘었을텐데 다시 나온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설레임을 어찌 말로 다할까 싶기도 하고... 그 옛날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작은 책도 아니었었다. 아이들 동화책처럼 커다란 크기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서점에서 이 책을 고르던 내게 뭐 그런 책을 다 사냐고 했던 지인의 말이 떠올라 피식거리며 웃어보기도 했다. 그랬던 책을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는데 아마도 내게 돌아오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로 간직하고 싶었던 책을 빌려주고 돌아오지 않았던 때의 그 상실감이라니... 그래서일까?  생긴모양에서 옛 맛을 찾을 수는 없었어도 나를 반겨주었던 올챙이 사부님의 말씀은 여전하게 나를 감동시킨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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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0쇄 기념 한정판)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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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전? 글쎄 그것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르겠다. 흔히들 '난쏘공'이라고 말하는 이 작품을 가장 많이 다루었던 공간은 연극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읽지 않아도 읽은 듯한 느낌을 주고 보지 않아도 본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이 이 작품일 것이다.  조금씩 맛을 보았다고 말하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아주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한번쯤은 그 속에 푹 빠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했었던 것 같다. 정말 오랜 시간을 버텨 끈질기게 쏘아보다가 읽기 시작했는데 왠일인지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책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상황들을 이미 오래전에 겪어왔던 일들이겠거니 하면서 가슴 한쪽으로 자꾸만 쓸어버리고만 싶었다. 숱하게 보고 듣고 말해왔던 내용이어서라기 보다는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판박이처럼 되풀이되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너무나도 가슴을 아프게 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겪어왔던 일들, 잊을 수 없을 것처럼 각인되어지던 수많은 사회상들이 영화의 장면들처럼 그렇게 자꾸만 나를 아프게 했다. 지나간 일들이, 지나쳐간 모든 경험들이 모여 실수하지 않는 현재를 만들어낸다고들 하지만 그많은 것들이 지나쳐간 자리에서 어쩌면 그리도 모질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고, 또 묻고 싶었다.

안온한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책이라는 말에 어느정도 공감해야 할까? 어느날엔가 왜 이렇게 세상이 힘든 사람만 더 힘들게 만드는건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을 때 한 지인이 이렇게 말했었다. 왜 그렇게만 생각하는거냐고. 힘들어보이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모두가 힘들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주면 안되는거냐고. 단 몇 프로의 인간군상을 모두인양 그렇게 생각하는 건 옳지 못한 일이라고. 그때 나는 주먹으로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 맞게, 상황에 맞게, 형편에 맞게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사실은 세상에 하나뿐인 진실일 것이다. 그 처지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온전히 그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지고 가는 십자가만이 더 무거운 것 같아 다른이의 십자가와 바꿔지겠다고 말했던 사람이 다시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갔다는 이야기를 그저 그럴수 있다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우리에게 남겨지는 여운이 너무나도 길다. 그러했기에 이 책을 다시 대하는 나의 마음이 왠지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는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자는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미 지나쳐간 우리의 과오가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우리곁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일게다. 사용자를 위해 일한다는 노조의 정의가 지금 이 시대에서조차 통하는 말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어머니의 가계부에서 생계비 명목으로 콩나물 얼마, 새우젓 얼마, 정부미 얼마, 배추 얼마, 두통약 얼마 하는 따위의 비용들은 돈의 가치만 바뀌었을 뿐이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시대는 변하는데 나는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해 보게 된다. 나는 변해가는 시대에 맞춰서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를 묻고 싶었다는 말이다. 혹시라도 변해가는 사회만 탓하며 나는 그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라도 먼저 가는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변했다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용없이 그저 형식만 변해가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나만 바라봐달라고 하는 사랑이 우리를 힘겹게 하듯이 내 입장만을 이해해 달라고 하는 사회의 한 단면은 역시 우리를 힘들게 한다.

이 작품에 대한 글은 여기저기 수도없이 많다. 평론가들이 쏟아놓은 말도 수없이 많다. 이 책의 말미에도 작품에 대한 해설부분이 분명하게 들어가 있다.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말 할 만한 실력도 되지 못하니 그저 내가 이해하고 싶은 부분만 이해하자고 생각했었다. 이 책을 통해서 보여지던 난장이 아버지 김불이의 삶과 그의 큰아들 김영수가 자신의 삶에 대처하는 자세는 분명히 극과 극이었다. 순응하며 살았던 자신의 삶앞에서 그 파고를 견뎌내지 못한 난장이 아버지 김불이는 어찌할 수 없었다는 지독한 핑게로 자살을 선택했지만, 아들 김영수는 그래도 한번쯤 소리라도 질러보려 애썼다는 거였다. 옳은 길이라고, 지금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비뚤어진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로 잡아보고 싶다고 발버둥치고 악다구니를 써 보았던 아들 김영수의 모습. 비록 살인자가 되어 사형을 당하긴 했어도 그가 삶을 향해 외쳤던 짧은 단발마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하나의 위안처럼 다가섰을지도 모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읽는동안 짧게 끊어지는 문체가 조금 껄끄럽기도 했다. 마음과 원리원칙이 서로 대립하듯이, 아비와 아들의 죽음이 너무나도 달랐듯이 책속에서 보여지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행복과 불행, 고통과 평안, 선과 악, 믿음과 불신처럼 철저하게 이분법적인 뉘앙스를 풍겼다. 마치도 이 세상을 둘로 갈라놓기라도 하듯이.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듯이.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건데 솔직하게 말해서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없다. 그저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각자의 형편에 맞게 맞춰가는 것이 행복일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많은 것을 갖고 있다고 다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고 가진 것이 없다고해서 다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자신의 삶에 대처하는 자세가 다분히 주관적이듯이 행복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주관적인 개념이라고 나는 생각하기에 하는 말이다. 어쩌면 난쟁이 아버지의 죽음이 그 아들에게 일어설 수 있는, 혹은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혜안을 눈뜨게 해주는 동기가 되어주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인지.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이 아닐까 싶다. 모두를 이어주는 끈으로 어머니의 사랑이 존재했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던 저 밑바닥에도 사랑은 있었다. 사랑이 별건가? 서로 아껴주고 위해주는 마음이 사랑이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이 시대를 사랑만으로 살아내기엔 너무나도 버겁다는 것, 그것이 또한 아픈 진실이라는 거다. 

책장을 펼치면서 받았던 질문이 있었다. 첫번째 질문 : 두 사람이 같이 굴뚝 청소를 했다. 그런데 나와보니 한사람은 까맣게 더러워졌고 한사람은 말짱했다. 두 사람중에서 누가 얼굴을 닦겠는가?  답 : 얼굴이 더러워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질문자는 말한다. 아니라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사람중에서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 자신도 더러울거라 생각하고 얼굴을 닦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다시 두번째 질문, 역시 첫번째 질문과 똑같았지만 그 답은 달랐다. 어떻게 두사람이 똑같이 굴뚝 청소를 했는데 한사람만 더러워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책속에는 이 모든 것의 해답을 안고 있는 듯한 두개의 단어가 나온다. 하나는 '뫼비우스의 띠' 이고 또하나는 '클라인씨의 병'이다. 시작과 끝이 하나일 수 밖에 없는 띠와 들어가고 나오는 입구가 하나인 병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시작과 끝의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없고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한 것, 그것이 우리 삶의 이치는 아닌지... 세상의 모든 질문은 생각하기에 따라 답이 다르다는 것. 그 생각의 차이에서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것. 그러니 어느것도 옳다 그르다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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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남자의 하루란 소개글은 다분히 유혹적이었다. 솔직히 말해 그렇고 그럴것이다는 뻔한 생각을 하면서 만났던 책이었지만 생각처럼 뻔하지 않은 하루를 그려주고 있다는 것에 다소 당혹스러움을 느껴야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그 남자가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죽음이었고, 그 죽음을 끌어안고 살았던 하루라는 시간속에서는 사랑에 대한 집착에 괴로워해야 했다. 그것도 아직까지는 우리의 관념속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동성에 대한 사랑.. 책을 읽으면서 그 남자, 조지 아저씨에 대해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랬다. 너무나도 난해하게 다가왔던 조지아저씨의 하루속에는 보여지는 것보다 숨겨둔 것들이 더 많아 보였던 까닭이다. 그가 지나쳐가는 모든 일상속에 내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들이 숨겨져 있는 듯한 느낌을 어쩌지 못했기에 하는 말이다. 그만큼 이 책의 문체는 짧고 간결하다. 더 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조지아저씨의 나이는 58세, 하는 일은 교수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캠퍼스까지 가는 길은 다분히 지루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스쳐가는 풍경마다 긴 설명이 따라온다. 하지만 그 풍경들속에 얽혀드는 조지아저씨의 생각들은 차를 타고 지나쳐가듯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깊은 상념같은 것들... 그리고 학생들을 만나 인사를 하고, 강의를 하고, 질문을 받고...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씩 호명해가며 그 사람들과 얽혀드는 관계의 고리를 설명해주는 단계에서조차 왠지 가볍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한 남자의 하루를 따라가며 그 남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깊게 깔려지는 생각들을 밟고 지나가야만 한다. 그런데 그 생각들이 밟히는 느낌은 왠지 껄끄럽다. 에세이적인 느낌이랄까? 한사람의 주관적인 틀에 얽매이는 느낌이었다면 맞을까? 하여,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책날개의 작가이력을 살펴보게 된다. 그러면그렇지... 58세의 조지아저씨속에 58세의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있었다.

책속에서 표면적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가볍다. 교수가 직업인 한남자의 시간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그 만남의 고리를 엮어가는 주인공의 생각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책속에 담겨져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은 조지아저찌의 사랑이었다. 그가 사랑했다던 그의 애인은 남자였다. 58세 교수의 동성애라... 뭐,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나이든다는 것은 좀더 원숙한 사랑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일테니. 동성애조차도 그다지 놀랍지 않은 것은 나 역시도 다분히 주관적인 생각이겠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를 뚜렷하게 이것이다,라는 말로 정의내릴 수 없음이니... 하지만 시대가 1960년대라면 다르겠지. 어떻게보면 앞서가는 책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때 당시로 본다면  파격적인 소재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니 책속에서 그에 대한 생각을 피력했을 것이다.

그다지 길지않은 내용이었음에도 이 책을 읽는 느낌은 너무 길었다. 책이 담고 있는 것은 많은데 눈에 보여지는 것은 많지않으니 더디게 읽혔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책의 말미에서 나는 그 더딤을 해소할 수 있었다. 옮긴이의 말을 통하여 내가 놓치고 지나갈 수 있었던 것들을 알아들을 수 있게끔 설명해주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1962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하루를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그 시대의 사회적인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조지아저씨와 학생들간의 대화속에서 언뜻언뜻 보여지던 사회상들을 그제서야 이해하게 된다. 또한 다수집단이 소수집단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야기하며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적절하게 잘 섞어놓았다는.. 그 당시에는 아직 '게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조지아저씨에게도 이성친구는 있었다. 그것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눈을 뜨는 순간부터 죽음으로 시작하여 죽음으로 하루를 끝맺는 조지의 시간들. 그 시간속에서 마주쳤던 일상은 어쩌면 우리의 일상일수도 있겠다. 그가 꿈꾸었던 사랑마져도 동성이든 이성이든 그 사랑의 형태는 똑같다. 늙은이가 되었든 젊은이가 되었든 사랑의 마음은 전혀 다르지 않다.  단지 달라야한다고,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선입견이 문제일뿐이다. 책 내용중에서 경험에 관한 대화가 나오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과거의 경험을 이용하지 않으려 하면, 다시 말해서, 어떤 일에 맞닥뜨렸을 때 그 일을 그때그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게 오히려 경이로울 수 있지...(-183쪽) 경험을 쌓은 뒤나 아무일도 겪지 않았을 때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냐고 묻는 제자에게 조지아저씨는 그렇게 말했었다.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될수도 있겠구나 싶은 저 말이 자꾸만 내 생각의 끝을 잡고 있다. 책을 읽고나니 우리가 정해놓은 틀에 우리 스스로가 갇혀있기를 원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변화를 추구하되 나와 다름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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