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 싸부님 2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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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 비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 이것은 무엇으로 보이는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다. 그리고나서 등장했던 우리들의 싸부님. 물에 비친 달속에 들어앉아 까만 올챙이와 선문답을 주고받던 그 그림. 글은 많지 않으나 글보다 더 많은 의미들이 가득했고, 등장인물이 많지 않으나 그곳에서 머뭇거리던 존재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맨처음 이 책을 보면서 나는 그 여백들이 참 좋았다. 하릴없이 이것저것 채워넣기보다는 나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주었다는것이 고마웠다는 말이다. 무거운 이야기를 가벼운 그림과 함께 이끌어가고 있는 작가의 그 역량에 압도되기도 했다. 선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어 얼핏 보면 이건 뭐야? 할수도 있겠지만 짤막짤막한 대화속에서 내게 전해져오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책을 열면 바로 들려오는 작가의 한마디, 닫혀있는 당신의 마음부터 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배운 고정관념도 버리십시오.... 어쩌면 당신의 모습이 일그러져 보일수도 있으나 노하지는 마십시오...

원하나와 선하나로 만들어져 온 우주를 표현해내고 있는 하얀 올챙이가 바다를 꿈꾼다. 강원도 어느 산골의 작은 웅덩이에서부터 시작되는 우주. 어느 청개구리 부부 사이에서 513남 41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돌연변이 하얀 올챙이. 시작부터 범상치가 않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도 특별할 것 없이 태어난 우리의 하얀 올챙이일수도 있겠다. 그가 바다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예사롭지가 않다. 바다를 아십니까? 물으며 길을 가는 하얀 올챙이가 만나는 존재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현실, 눈앞의 삶에만 전전긍긍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누구나 하얀 올챙이처럼 꿈을 꾸고 있지만 누구나 하얀 올챙이처럼 꿈을 찾아 길을 떠나지는 못한다. 그러고보면 하얀 올챙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꿈에 대한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라고 숙제를 내주시는 것 같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힘겹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냐고.

하얀 올챙이 한마리의 시선과 생각을 통해 우리에게 투영되어지는 삶의 모습은 정말 처절하다. 넘기는 책속에서 환영처럼 보여지는 수많은 인간군상들.. 바늘로 찌르듯이 콕콕 와닿는다. 어려운듯하면서도 어렵지않게 들려주는 작가와의 선문답. 우습게 생각되어질 수도 있는 한 장면을 생각해보자면 이렇다. 어느날 갑짜기 나타난 까만올챙이 한마리가 싸부님! 하고 부르는 그 장면이다. 왜 사람들은 아이들을 경망스럽게 키우려고 들까요? 짱구, 새우깡, 꼬깔콘, 꿀꽈배기, 쌍쌍바, 짜장면, 빼빼로... 애들이 먹는 것들이 모두 경망스러운 된소리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던 그 장면... 작가는 거기에 이렇게 마음을 달아놓았다. 언어는 마음의 거울이니라. 마음이 각박하면 자연히 되고 거센 발음을 자주 내뱉게 되지. 너는 부디 네 나이에 어울리는 말씨를 쓰도록 하여라..네, 싸부님! (-251-252쪽) 어쩌면 일그러진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크고 높아서 우리도 어쩌지 못하는 도 (도(刀) 는 칼이다!) 를 마음속에 품으려고 하기 이전에 우리자신을 한번 더 돌아보면 안되는거냐고 그렇게 묻고 있는 것만 같다.

1편과 2편으로 나뉘어져 있어 2편에 대해 내심 기대감이 부풀었다. ○... 텅 비어 있다고 말하지 말라 ●... 텅 비어 있는 것은 곧 가득 차 있는 것이다. ⊙... 그대 스스로 이 안으로 들어가보라. 견고한 관념의 갑옷부터 벗어던지고... 철저하게 버리라한다. 우리들의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을. 무엇이고 애초에 이름지어진 것은 없는데 인간이 이름을 지어 그것의 틀을 만들고 그것의 범위를 정하였다고. 달팽이의 느림을 비웃지 말며,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보다 못한 것이 인간이 아니겠느냐고. 불신(不信)시대와 불신(不神)시대를 살아가고 있어 모두 다 믿을 수 없다는 작가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불만투성이 물고기와 한심이, 못난이, 옥떨메, 얼간이, 바보라고 못생긴 자신의 모습을 탓하는 모든 물고기들에게 맞는 말이니 웃음으로 화답해줄 수 밖에 없지 않느냐던 뚝지의 대답을 들으며 한번 더 나를 생각해보게 된다. 

신(神)이 마음안에 있듯 성전도 마음 안에 있을 뿐이라던 작가의 말씀에 공감한다. 인간이 지어낸 이름으로 구분되어질 수 없는 창조주는 이미 우리안에 있었던 것이다. ○●... 텅 비어 있다고 말하지 말라 텅 비어 있는 것은 곧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가득 차 있다고 말하지 말라 가득 차 있는 것은 텅 비어 있는 것이다. ⊙... 다른 듯 보이지만 본디 하나인 것을... 이름앞에 금(金)자가 붙어 있다고 제가 무엇이라도 되는양 부푼 탐욕과 툭 불거진 이기심과 아부근성을 감추지 못하고 항상 꼬리를 흔들어대며 우쭐거리는 금붕어는 되지 말지어다. 아주 흔한것들속에서 아주 귀한 것을 발견할 줄 아는 것도, 아주 작은 것들속에서 아주 큰 것을 발견할 줄 아는 것도 모두가 내 안에 있음이다. 눈 앞의 현실에 집착하는 우리의 모습을 하얀 올챙이 한마리와 물고기들이 나누었던 대화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며 작가 역시 비움의 철학을 우리에게 말하며 끝을 맺는다. 마음을 비우라고, 그래서 삶의 여정을 편하게 가야한다고...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은 것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멀어지면 다시 만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내게 있어서 이 책은 정말이지 다시 만나 좋은 것중 으뜸이라고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벌써 십년도 넘었을텐데 다시 나온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설레임을 어찌 말로 다할까 싶기도 하고... 그 옛날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작은 책도 아니었었다. 아이들 동화책처럼 커다란 크기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서점에서 이 책을 고르던 내게 뭐 그런 책을 다 사냐고 했던 지인의 말이 떠올라 피식거리며 웃어보기도 했다. 그랬던 책을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는데 아마도 내게 돌아오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로 간직하고 싶었던 책을 빌려주고 돌아오지 않았던 때의 그 상실감이라니... 그래서일까?  생긴모양에서 옛 맛을 찾을 수는 없었어도 나를 반겨주었던 올챙이 사부님의 말씀은 여전하게 나를 감동시킨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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