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남자의 하루란 소개글은 다분히 유혹적이었다. 솔직히 말해 그렇고 그럴것이다는 뻔한 생각을 하면서 만났던 책이었지만 생각처럼 뻔하지 않은 하루를 그려주고 있다는 것에 다소 당혹스러움을 느껴야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그 남자가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죽음이었고, 그 죽음을 끌어안고 살았던 하루라는 시간속에서는 사랑에 대한 집착에 괴로워해야 했다. 그것도 아직까지는 우리의 관념속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동성에 대한 사랑.. 책을 읽으면서 그 남자, 조지 아저씨에 대해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랬다. 너무나도 난해하게 다가왔던 조지아저씨의 하루속에는 보여지는 것보다 숨겨둔 것들이 더 많아 보였던 까닭이다. 그가 지나쳐가는 모든 일상속에 내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들이 숨겨져 있는 듯한 느낌을 어쩌지 못했기에 하는 말이다. 그만큼 이 책의 문체는 짧고 간결하다. 더 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조지아저씨의 나이는 58세, 하는 일은 교수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캠퍼스까지 가는 길은 다분히 지루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스쳐가는 풍경마다 긴 설명이 따라온다. 하지만 그 풍경들속에 얽혀드는 조지아저씨의 생각들은 차를 타고 지나쳐가듯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깊은 상념같은 것들... 그리고 학생들을 만나 인사를 하고, 강의를 하고, 질문을 받고...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씩 호명해가며 그 사람들과 얽혀드는 관계의 고리를 설명해주는 단계에서조차 왠지 가볍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한 남자의 하루를 따라가며 그 남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깊게 깔려지는 생각들을 밟고 지나가야만 한다. 그런데 그 생각들이 밟히는 느낌은 왠지 껄끄럽다. 에세이적인 느낌이랄까? 한사람의 주관적인 틀에 얽매이는 느낌이었다면 맞을까? 하여,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책날개의 작가이력을 살펴보게 된다. 그러면그렇지... 58세의 조지아저씨속에 58세의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있었다.

책속에서 표면적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가볍다. 교수가 직업인 한남자의 시간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그 만남의 고리를 엮어가는 주인공의 생각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책속에 담겨져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은 조지아저찌의 사랑이었다. 그가 사랑했다던 그의 애인은 남자였다. 58세 교수의 동성애라... 뭐,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나이든다는 것은 좀더 원숙한 사랑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일테니. 동성애조차도 그다지 놀랍지 않은 것은 나 역시도 다분히 주관적인 생각이겠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를 뚜렷하게 이것이다,라는 말로 정의내릴 수 없음이니... 하지만 시대가 1960년대라면 다르겠지. 어떻게보면 앞서가는 책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때 당시로 본다면  파격적인 소재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니 책속에서 그에 대한 생각을 피력했을 것이다.

그다지 길지않은 내용이었음에도 이 책을 읽는 느낌은 너무 길었다. 책이 담고 있는 것은 많은데 눈에 보여지는 것은 많지않으니 더디게 읽혔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책의 말미에서 나는 그 더딤을 해소할 수 있었다. 옮긴이의 말을 통하여 내가 놓치고 지나갈 수 있었던 것들을 알아들을 수 있게끔 설명해주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1962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하루를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그 시대의 사회적인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조지아저씨와 학생들간의 대화속에서 언뜻언뜻 보여지던 사회상들을 그제서야 이해하게 된다. 또한 다수집단이 소수집단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야기하며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적절하게 잘 섞어놓았다는.. 그 당시에는 아직 '게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조지아저씨에게도 이성친구는 있었다. 그것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눈을 뜨는 순간부터 죽음으로 시작하여 죽음으로 하루를 끝맺는 조지의 시간들. 그 시간속에서 마주쳤던 일상은 어쩌면 우리의 일상일수도 있겠다. 그가 꿈꾸었던 사랑마져도 동성이든 이성이든 그 사랑의 형태는 똑같다. 늙은이가 되었든 젊은이가 되었든 사랑의 마음은 전혀 다르지 않다.  단지 달라야한다고,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선입견이 문제일뿐이다. 책 내용중에서 경험에 관한 대화가 나오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과거의 경험을 이용하지 않으려 하면, 다시 말해서, 어떤 일에 맞닥뜨렸을 때 그 일을 그때그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게 오히려 경이로울 수 있지...(-183쪽) 경험을 쌓은 뒤나 아무일도 겪지 않았을 때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냐고 묻는 제자에게 조지아저씨는 그렇게 말했었다.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될수도 있겠구나 싶은 저 말이 자꾸만 내 생각의 끝을 잡고 있다. 책을 읽고나니 우리가 정해놓은 틀에 우리 스스로가 갇혀있기를 원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변화를 추구하되 나와 다름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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