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에 홀리다 - 조선 민화, 현대의 옷을 입다
이기영 지음, 서공임 그림 / 효형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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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어귀에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장승, 무심히 지나쳐가던 돌탑, 길쭉한 장대위에 새 한마리를 앉혀둔 솟대는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다. 동구밖을 지키던 커다란 나무 한그루조차도 당시에는 지금 우리의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어딘가에 매달려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고 싶었을 풀뿌리 같은 백성들의 바램이었으며 참담한 자신들의 현실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바램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힘없는 백성들의 곁에 머물며 그들의 마음을 받아주고 표현해 줄 수 있었던 것에 민화도 있었다. 민화는 대체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은유와 직설을 동시에 담고 있기도 하다. 숨기고 싶으면서도 드러내고 싶어하는 이중적인 묘미를 갖고 있는 게 민화일런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어리숙하게도 보이고 어쩌면 유치하게도 보여지지만 백성들의 삶속에 담겨지기 시작한 민화에는 너무나도 많은 의미가 있었다. 모란을 그려 부귀영화를 기원했으며 십장생을 통해 불로장생을 꿈꾸기도 했다. 잉어 그려 과거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주었고, 대나무를 통해 장수를 기원하기도 했으며, 원앙을 통해 부부의 사랑을 말하기도 했다. 원앙은 봉황처럼 수컷을 '원'이라 하고 암컷을 '앙'이라 한다. 날아오를 때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데 짝을 잃으면 남은 한마리는 결코 새짝을 찾지 않기 때문에 부부화목을 상징하였다고 하니 근거없는 얘기는 아닌 것이다. 

민화의 특성은 기시감인듯 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말이다. 사실이면서 허구의 세계인 동시에 과장되었다 싶으면 생략의 맛을 살려내기도 했다. 일상적인듯 보여지지만 상상력이 지배하는 세계, 일반적인듯 하지만 독특한 개성의 세계가 바로 민화의 세계인 것이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고리가 끊어지고 인간과 동물이 자연스럽게 말을 섞을 수 있었던 세계가 바로 민화의 세계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민화는 솔직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너무나도 인간적이어서 그저 웃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민화라고.. 민화를 통해 변모해가는 시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또한 그림속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상징성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김홍도가 그린 <송하맹호도>의 호랑이는 실제 호랑이와 너무도 닮았다. 그만큼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말이다. 쏘아보는 듯한 눈빛과 세밀한 눈썹의 표현속에서도 튀어나올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지고 가까이 갈 수 없는 절대적 권위가 숨겨져 있다고 보았다. 그런가하면 과장되거나 생략되어져 추상적이라고도 말 할 수있는 호랑이 그림을 보며 일그러진 영웅의 모습을 찾아내기도 한다. 숙련된 화가의 그림과 무명화가의 그림을 통해 읽어내려가는 민화이야기가 책장을 넘길수록 흥미진진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생각하다보니 해학적이라는 말과 맞닥뜨리게 된다. 미완성이지만 조선 르네상스의 문을 연 열쇠였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것을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자신의 청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징표 (-170쪽) 라고 말하고 있다. 남종화나 북종화, 그리고 문인화에 이르기까지 그림은 시대에 맞춰 변화를 추구했다. 잘 배운 화가의 그림이었든 제 생각대로 그린 무명화가의 그림이었든 시대에 맞춰 변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그러한 변화의 과정을 읽어낼 수 있어 좋았다. 굳이 이름있는 화가의 그림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생활속에서 태어나 그대로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민화.. 그것은 백성들의 아픔이기도 했고 소망이기도 했다. 그 절절함이 담겨 있었기에 오늘날까지도 우리곁에 머무는 것은 아닐까? 서구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에게는 변화의 조짐이 일었다. 신분체제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지배계층과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백성들 사이에서 그림은 소통을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자신들만의 세계속에서 동상이몽과도 같았던 그림의 세계는 점차 융화되기 시작했고, 그거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변화의 물결이기도 했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민화의 진화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에는 예술이란 것이 대중적이지 못했다. 글줄이나 읽고 쓸 줄 알았던 사대부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화는 생겨났고 진화했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이 책속에 빼곡하다. 판소리가 서서히 지배계층으로 스며드는 과정이나 사대부의 전유물이었다던 그림이 민중속으로 파고드는 과정이 예사롭지 않다. 단순히 민화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목처럼 민화에 홀릴 수 밖에 없는 그 이유가 매우 단단하게 박혀있다. 민화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장황스럽게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8C에서 19C로 이어지는 조선의 변화는 대단했다. 그림을 그리거나 소리를 한다하는 이른바 예술쟁이들이 대접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대중문화의 태동이었을 것이다. 민화의 진화속에는 대중적이거나 통속적이라는 말로 치부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변화에 적응하는 조화로움이 있었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새로운 화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민화는 우리의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는 말이다.

민화가 안고 있는 해학이 재미있다. 우리의 생활과 생각이 숨어 있기에 이렇다 저렇다 분명하게 판단할 수 없는 통속성이라 했다. 삶의 경험을 통한 달관의 경지라 했다. 그림을 보면서 함께 웃을 수도 있고, 감동받아 눈물 흘릴 수도 있게 하는 것이 민화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웃음은 한번 크게 웃고마는 포복절도가 아니었고, 그 눈물은 최루성 눈물이 아니라 촉촉하게 젖어드는 그런 눈물이었다. 한마디로 솔직했다. 자신의 감정을 굳이 숨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고단하고 힘든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었던 또하나의 세계가 바로 민화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가능했던 민화의 세계에서 백성들은 위로받을 수 있었으며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한대로, 마음먹은대로 그리며 거기에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망을 담았다. 자신을 드러내보이고 싶어했던 사람들을 민화가 받아주었던 것이다.

조선사회가 대중사회로, 또 근대로 넘어가는 이정표 역할을 했던 것이 민화였다.(-223쪽) 그렇다면 현대속의 민화는 어떨까? 지식인들의 손을 빌어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민화. 그것은 무엇때문일까? 리얼리티가 아닌가 싶다. 대중적인 소재를 가지고 대중의 마음을 얻어낼 수 있는 그림이 필요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현실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었던 민화처럼. 그 사람들이 민화를 그리고 공급했던 사람들처럼 현실과 예술을 따로이 보지 않았다는 말은 아닐까? 함께 느낄 수 있는 그 무엇. 예술이라는 고고한 세계를 다루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세계를 내세우는 것 말이다. 그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바로 지금의 현실에서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민화는 당시의 사회구조와 경제체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234쪽) 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민화뿐만이 아니라 우리 그림의 변천사를 볼 수 있었다.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변해야 했던 그림의 역사는 내게 꿈결처럼 지나가 버렸다. 진정 꿈이었다면 재미없는 꿈일지도 모르겠으나 화려하고 환상적인 꿈이었음은 분명하다. 내게 다가온 민화의 세계는 그만큼 신비로웠다. 그리고 황홀했다. 현대속에도 민화의 흔적은 많았다.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예술세계속에도 우리만의 특징을 가진 민화가 살아 있었다. 88올림픽의 마스코트로 등장했던 호돌이 역시 전통 민화속의 호랑이였으며, '동양의 꽃'이라 불리며 유럽의 궁정생활에 딱 맞는 디자인이었다는 일본자기의 꽃모양 역시 우리의 모란 문양이었다. 내노라하는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나 샤갈, 고흐의 그림들을 우리의 민화와 비교해보는 시선 역시 놀라웠다. 저자는 그것을 기시감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하여 훑어보았다는 참고문헌은 정말 많았다. 어림잡아 50권은 넘어보였다. 그 많은 책속에서 민화의 아름다움을 찾아내 준 저자에게 절로 경외심이 인다. 거칠다고, 유치하다고, 웃긴다고 치부해버릴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안목이라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건 필요하다. 나가는 글을 통해 전하고 싶어하는 저자의 메세지를 기억속에 담아두기로 한다. 

민화, 그것은 우리의 소박한 꿈들이 한데 모인 그림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전통문양은 현대와 과거를 함께 아우르는 힘을 지녔다고. 한국적이지만 세계적인 디자인이 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민화이며 전통문양인 것이라고. 경계를 허물어내는 힘을 가진 민화가 다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 흐름을 아주 적게나마 이 책을 통해 느껴볼 수 있었다. 민화가 우리의 또다른 분신이자 자화상이라는 말이 가슴 깊숙히 들어온다. 지극히 한국적이라는 우리 민화. 그러나 누구든 만족시킬 수 잇는 힘을 가졌다는 우리 민화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딱 한가지가 필요하다. 바로 열린 시선이다. 어설픈 그림자체에만 머물지 말고 그림속의 세상을 읽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열린시선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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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레지스탕스 - 저항하는 인간, 법체계를 전복하다 레지스탕스 총서 1
박경신 외 지음 / 해피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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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는 저항이다. 호모레지스탕스라고 하니 저항하는 인간쯤이면 될 것 같다. 부제에서도 저항하는 인간이라는 말이 보이는데 굳이 왜 호모레지스탕스라고 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만큼 강한 유혹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제목을 보면서 왠만한 것에는 눈길도 주지않는다는 이 사회의 풍속이 떠올라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에 대한 저항일까? 그 대답도 이미 부제에서 보여주고 있다. -법체계를 전복하다-라는 말로.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침묵하는 사람들은 많다. 일단은 귀찮아서라고 말 할수도 있겠지만 무언가에 대항하기에는 우리 시대의 모든 것들은 정말이지 복잡하다. 희생된 무언가를 되찾기 위해서 또다른 것을 다시 희생시켜야만 하는 것이 이 현실의 고리일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발된 것이 이 책이 아닐까 싶다.

거주이전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대해 강남의 한 귀퉁이에 있다는 구룡마을의 판자촌이 등장한다. 대기업의 시스템이 하청에 하청을 주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비정규직이라는 낱말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울부짖기도 했던 때가 바로 엊그제였다. 그런 그들에게 저항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셀 수 없이 많은 집회들. 그 현장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 그들이 무엇을 주장하고 싶어하는가보다는 우선 불편함을 먼저 떠올려야 할 정도로 우리사회속에는 무수히 많은 집회가 있다. 그런 그들을 공무집행방해라는 이유로 막을 수 있는 것일까? 집회를 하기 위해 도시로 올라와야 했던 농민들을 사전에 저지했던 경찰들에게 들이댈 수 있는 법은 없는 것일까? 그런 부당함이나 불편함에 당당하게 맞선 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다시말해 그들의 곁에서 도움이 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보자면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을 위해 움직여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고 당당히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앞서 말했던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언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설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린 삶의 이야기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말한다. 그러니 당신도 참는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생각의 차이는 때로 극명하게 다가온다. 한 때 세상을 시끄럽게 달구었던 다툼중에 출가한 딸도 상속받을 수 있다는 법정싸움이 있었다. 이미 우리에게 관습법이라는 굴레의 테두리가 희미해져가고 있었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그 일을 전후로 하여 바뀌게 된 법체계가 있었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습관처럼 몸에 밴 것들을 새롭게 바꾸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하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누군가 하나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한 다가서기 힘든 것도 오래되어 생활처럼 굳어져버린 관습법에 대한 거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떻게 가족끼리? 라는 생각은 이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말일 것이다. 가족이라는 개념은 이미 옛날의 그것이 아니기에... 그만큼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변했고, 또한 변해가는 세상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얼마전 뉴스를 통해서 보았던 강의석군의 승리는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의 시원함을 느끼게 해 주었었다. 단 한명의 학생이 시위를 했었던 까닭에 일인시위라고 명명지워졌던 그 이야기.. 그때의 고등학생은 이미 교복을 벗고 대학생이 되어 있었지만 부당함을 알리기 우해 혹은 그 부당함을 자신처럼 당하는 학생이 없게 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을 했다. 그래서 이겼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법에도 어느정도는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심사가 적용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뻔히 보이는 답인데도 불구하고 판례가 없다는 이유로 답이 아닌 길을 가야하는 법의 엉뚱함을  경험했던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 세상에는 맞지도 않는 이미 오래전의 법체제에 매달린 채 변하기를 거부하는 저들의 안일함이 싫은 까닭이기도 하다.

하긴 귀여운 딸의 재롱을 오래도록 보고 싶어 동영상을 올렸다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야했던 젊은 아버지의 애타는 심정까지 법이 알아주어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비행기가 지나가는 길목에 집이 있으니 당연히 시끄러운 거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살기에는 뭔가 석연치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것말고도 우리주변은 이미 소음천국이니... 혼자가 아니라면 같은 불편을 느끼는 사람끼리 집단으로라도 맞서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렇게해서라도 당신의 권리를 찾아야 하는 거라고. 불편함과 마주하고 사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싸워서 이긴 일부의 사람들을 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가슴속에 부여잡고 살아가야할 불편한 진실이라는 것도 있게 마련일테니 말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저마다의 권리를 찾겠다고 아우성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항을 통해 변화가 온다는 말에도 공감은 한다. 하지만 저항하고 싸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꼭 찾아야 할 것이라면 물론 그렇게 해야겠지만 모든 것을 자신만의 틀에 맞추며 살아가는 현대의 각박함보다는 슬기롭게 대처했던 옛사람들의 작은 여유와 사람냄새만큼은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기도 하다. 법조인이 외치는 법의 이야기, 그리하여 법체계를 전복했다는 말은 왠지 서글프게 다가온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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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현 2011-01-09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글을 쓴 사람중에 한넘이 제 아들입니다.[한마디로 골때리는 너...ㅁ]
 
대장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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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 유네스코가 정한 한국의 문화유산중 하나이다.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경판도 그렇지만 사실은 판전의 오묘함이 더 큰 신비로움이다. 원활한 통풍구조도 그렇고 실내의 적정온도를 유지하도록 만든 것과 진열장치등을 살펴보면 놀라움 그 자체이다. 대장경판이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인 것이다. 그것말고도 우리에게는 유네스코가 정한 문화유산이 꽤나 된다. 예전에 비해 우리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에 많은 변화가 오고 있음을 실감하는 지금, 이런 책이 나와 준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 의천이 만들었다. 몽고의 침략으로 초조대장경은 불타 없어져버리고 고종때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재조대장경이다. 적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자는 뜻이었다고는 해도 그것으로 인해 하나의 마음으로 합쳐질 수 있었으니 당시로서는 정말 대단한 결심이었을 것이다. 그 대장경의 이야기가 이 책속에 펼쳐져 다.

대장경에 얽힌 이야기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나 동기보다는 그 뒤에 숨은 뜻을 말하고 싶어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김훈의 《남한산성》을 떠올렸다. 바라보는 각도가 어느정도는 비슷하게 다가왔던 까닭이다. 단순히 역사의 한 순간으로 기억되기 보다는 그 일의 뒷편에 숨겨진 힘없는 백성들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보여주고자 했던 두 작품에서 나는 질긴, 그러나 맑았던 백성들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왕을 원망하지 않았고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음을 감사했던 백성들의 마음이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음이다. 경판의 글씨를 한 점 부끄럼없는 마음으로 새기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다잡아야 했던 젊은 장균이가 그랬고, 혼신의 힘을 불어넣어 판전을 짓고자했던 근필 역시 성도 없이 이름뿐인 풀뿌리같이 여린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든 신명을 다 바쳤다.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도. 그런 백성들의 마음은 항상 나의 가슴 한켠을 울먹이게 한다.

많이 들어왔던 것처럼 판각을 하기 위해서는 각수들을 숙달시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며, 판목제작 과정에서도 벌채한 나무를 바닷물에 3년여를 담가두어 강도를 강하는 만드는 시간이 걸린다. 건져낸 나무는 다시 그늘에서 말려 뒤틀림을 방지해야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 만들어진 판목을 소금물에 끓여 자체 부패를 막아야 했으니 그 제작과정에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들어가야 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유적지를 찾아가면 어김없이 이걸 누가 다 만들었어요? 하고 묻는 아이가 있다. 누가 했을까? 물으면 왕이나 군사들이 하지 않았나요? 되묻는 아이도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웠었다. 역사가 아무리 승리한 자 혹은 힘있는 자에 의해 쓰여진다고는 하나 진정한 역사의 뒷모습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여러번... 그때마다 나는 힘주어 말했었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너희와 같은 일반인들이 만든 것이라고. 그런 까닭인지 마지막장을 넘기는 나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아주 단순한 이야기였지만 담은 뜻은 컸다. 판각수 장균이와 판전을 만들기 위해 자원을 했던 목수 근필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어느것 하나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니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도 경건해야만 한다는 것을... 불법을 일정한 규준 아래 집성해 놓은 불교성서를 대장경이라 한다. 장(藏)이란 말은 광주리를 뜻하는 범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따라서 대장경이란 말은 불교성전이 담뿍 담겨져 있는 큰 광주리하는 뜻이다. (318쪽)  그 광주리안에 힘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안녕과 권세를 지속하기 위한 마음을 담았지만 백성들은 모두의 안녕과 복을 위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렇게 백성들은 하나된 마음으로 서로를 위했다는 말이다. 그런 마음이 담긴 것이 대장경이요 판전인 것이다. 한순간의 흐트러짐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장균이의 마음과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던 근필의 마음처럼 이 시대를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판치는 세상에서 묵직하게 다가온 한 권의 책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으로 시끄러운 이 시대에 한번쯤은 새겨들어야 할 듯한 수기대사의 말을 음미해본다. /아이비생각


 "종교를 정치와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지만 당초부터 그 생리는 판이한 것이지요.
종교는 어디까지나 종교일 뿐이며 정치의 위에도 아래에도 놓이지 않습니다."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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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제 - 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 엮음 / 차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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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백제를 잃어버렸을까?  아니 우리는 왜 우리의 역사를 잃어버려야 했을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신라가 아닌 고구려나 백제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어쩌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 한번쯤은 해봤음직하다. 그것은 아마도 고구려의 북진정책에 의한 중국땅으로의 영역넓히기 때문이겠지만 이 책을 통해 나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 역시 중국땅으로 진출했던 나라였다는 것을. 거기다가 단순히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해상무역을 하며 단단한 터전을 마련했었다는 사실을... 언젠가 모방송을 통해 보았던 다큐멘터리 속 백제의 모습보다 한층 더 커지고 넓어진 백제를 보는 것은 새로움과 설레임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전쟁은 영역다툼이다. 제 영역을 더 넓히기 위해 다른 영역을 빼앗는다. 그런데 빼앗고자 하는 영역이 기름진 땅이라면 더더욱이나 욕심이 난다. 빼앗고자 하는 땅이 교통의 요지라면 죽기살기로 한번쯤은 치고 보아야 한다. 그런 영역, 그 기름지고 교통까지 편한 영역을 먼저 다스렸던 나라가 백제였다는 것만 보아도 우리가 잃어버린 700년의 역사가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말이다.

얼마전부터 모방송에서 백제의 전성기를 다루는 드라마를 시작했다. 그 드라마를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은 염려스럽기도 했다. 왠만한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백제에 대한 기록이 많이 않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런 까닭에 너무나도 소설적인 이야기를 펼쳐보여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형편없는 역사지식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닐지 한편으로는 노파심도 일었다. 역사를 드라마로 다룰 때는 정말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것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해질 진실 또한 가벼이 여기면 안되는 까닭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백제와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남의 나라를 통해 알 수 있다는 서글픔도 함께 다가왔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비춰지는 백제의 모습.. 왠지 허탈함마져 느끼게 했지만 그렇게해서라도 우리의 역사를 알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멋진 일이라는 위안을 삼게 된다. 유적지 발굴을 통해 속속 밝혀지는 백제의 역사. 그 역사를 이 한 권의 책으로 다 보여줄 수는 없었겠지만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백제는 불국토를 꿈꾼 나라였다. 36년에 걸쳐 지었다는 역사상 최대의 사찰 미륵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종교를 떠나 한 나라의 뿌리깊은 사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불교는 백제의 기반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불교에 의지했던 나라 백제. 삼국의 잦은 영토분쟁으로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질 때도 불교는 백성들에게 내세에서의 더 나은 삶이라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백제의 불교문화는 웅장했고 섬세했다. 미륵사는 일반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3금당 3탑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금당은 법당을 말한다) 불경에 먼 미래에 미륵불이 지상에 내려와 세 번 설법을 마치고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할 것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미륵불이 이 땅에 내려와 세 번에 걸쳐 설법할 금당을 미리 구현해 놓은 곳이 미륵사라는 말이다. 세 곳의 금당에서 세 번의 설법을 마친 후에 불심 깊은 백성들을 구원해달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또한 이상세계를 향한 기원을 엿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미륵사탑을 복원하기 위해 해체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의 한 귀퉁이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백제의 무왕과 신라의 선화공주에 얽힌 서동이야기였다. 무왕의 왕비가 신라의 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 사택지적의 딸이었다는 기록이 사리장엄 발굴시에 나온 것이다. 또한 백제의 유물을 통해 면직물이 고려시대보다 더 일찍 우리에게 사용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사실들이 기정사실로 발표될 경우 역사는 다시 쓰여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듯 불교는 백제의 구석구석에 존재했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우는 서산 마애삼존불이 그를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골짜기에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불교문화의 웅장함만이 아니라 백제가 해상왕국이었다는 것은 더 놀라웠다. 해상왕국이라 하면 우리는 이제껏 발해를 생각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백제가 웅진으로 도음을 옮기 뒤부터 한강이 아니라 금강이나 태안반도를 통해 중국과 교류했다는 것을 우리는 놓쳐버린 듯 하다. 태안반도를 통해 바닷길을 열기도 했던 백제의 뱃사람들은 관음보살을 의지했다. 인간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관세음보살의 존재를 통해 두려움을 잊고자 했던 사람들. 백화산 자락에서 1500년동안 바다를 지켜봐 온 태안마애삼존불이 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불상 배치로 한창 연구가 진행중이라고 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나도 한번 찾아가 볼 요량이다.  지도를 통해 보여주는 백제의 해상경로가 실로 경이롭다. 책표지의 뒷면을 보라. 백제가 얼마나 큰 해상왕국이었는가를 충분히 알 수 있을테니... 동아시아로 뻗어나가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했던 백제인들. 그들에게는 우수한 항해술과 조선술이 있었음이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세계제일의 조선소를 갖고 있다는 것도 어쩌면 조상들의 그같은 면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아닐까?  그렇게 우수했던 백제의 모든 것들이 일본으로 건너갔으니 일본이 우리와 같은 핏줄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저들이 우리보다 앞서간다는 사실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섰으면 하는 욕심도 부려본다.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만약에 고구려나 백제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해상 강국으로써의 백제는 국제화 정책에 능했다고 보여진다. 중국이나 왜와 거리낌없이 무역을 했던 것만 보아도 닫힌 나라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또한 넓은 대륙을 꿈꾸었으며 주변의 부족국가와 소통할 줄 알았던 고구려 역시 그랬음이 분명할게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큰 것을 잃고 작은 것을 얻었다는 그런 느낌처럼.  이 책은 백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었다. 멸망한 백제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기착지로 삼았다는 것이야 다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들이 전해주었거나 가져갔던 백제의 문화가 함께 그곳에 정착했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었던 듯하다.  역사의 진실을 담고자 애썼다는 이 책은 역사다큐멘터리 <대백제> 5부작의 방송 내용을 정리 보완하면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고 한다. 많지 않았던 백제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들이 겪어야 했을 어려움이야 우리가 어찌 안다고 할 수 있으랴 싶다.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 나왔다는 점에는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진다. 아주 멋진 시간이었다. 아울러 우리도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를 줄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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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개정판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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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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