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들의 섬
브루스 디실바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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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쩌면 이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만큼의 스릴을 원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온몸이 오그라들 듯한 짜릿함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바로 그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악당들의 섬에 첫발을 내딛은 후 살짝 더워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평범한 전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그 고요함. 이미 일은 시작되어지고 있었는데 깔리는 느낌은 그랬다는 거다. 그것이 이 책의 숨겨진 매력일까? 계단을 올라가듯이 한걸음씩 정돈된 걸음걸이로 범인에게 다가가는 주인공을 따라가다보니 시원함이나 짜릿함보다는 이미 세상속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소굴로 들어와 있었다.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가진자들의 욕심과 비리의 크기는 보통의 우리가 느끼기에 엄청나게 큰 건 사실이다.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라는 로드 아일랜드. 그 배경은 해안선을 끼고 있는 까닭에 습기를 안고 있다. 스멀거리는 안개속에서 그 욕망의 불꽃이 피어오른다.

 

범인은 항상 가까이에 있다, 라거나 범인은 이미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커다란 배경을 안고 있다거나 하는 식의 규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쯤은 나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짜릿한 반전의 시기는 항상 궁금했다. 언제 반전의 쾌감을 느낄 수 있느냐에 따라 책장을 덮는 순간의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끝까지 간다. 책을 읽으면서 혹시나했던 나의 예상은 이미 빗나가 버렸다. 그래서 오기가 났다.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끝내 짜릿함과는 만나지 못한 듯 하다. 순간적인 강렬함이 안겨줄 환상보다는 당장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라는 듯이.

 

주인공 멀리건은 신문기자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화재에 이웃과 친구를 잃게 된다. 방화범을 잡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화재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관심을 갖게하고,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어설픈 추적을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이렇다하게 불거져 나올만 한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 사람 모두가 주인공이다. 사건을 쫓아가는 멀리건조차도 그 중의 한사람일뿐이다. 그 흔한 영웅심리도 없다. 007처럼 이렇다 할 두뇌게임도, 액션도 없다. 단지 있는 그대로의 현실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뛰어다닐 뿐이다. 하지만 진실은 있었다. '강함'은 '강함'으로 이길 수 있다는...

 

사람은 할 수 있는만큼 모든 방법을 동원해가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 약한 자들은 약한대로, 강한 자들은 강한대로. 그 약함과 강함이 마주칠 때가 있다. 간혹 약함이 강함을 이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가 않은 게 현실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조금은 씁쓸했다. 작가의 글이 씁쓸했다는 게 아니라 작가가 보여주는 책속의 현실이 씁쓸했다는 말이다. 솔직히 재미있었다는 말은 못하겠다. 그러나 생각거리를 던져준 책임에는 분명하다. 생뚱맞게 '평범한 것이 위대한 것이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약간은 지루하게 느껴졌던 초반부의 느낌때문에 로드 아일랜드에 관한 것을 찾아보았다. 어떤 곳인지를 알고 있었다면 더 맛나게 읽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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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들의 아찔한 수다 - 여성 작가들의 아주 은밀한 섹스 판타지
구경미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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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음담패설이란 말을 많이 쓸까?  그 음담패설이란 게 아찔함으로 다가오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아찔함, 어쩌면 그냥 순수한 짜릿함을 느껴본다는 게 어려운 시절인 듯 하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는 말일테다.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실 들여다보기도 전에 그 주제가 무엇인지를 밝혀두고 있는 책이지만. 아주 은밀한 섹스 판타지... 그렇다면 여자들만의 수다쯤일까?  여자들이 모여 떠드는 그 음담패설을 한번 들어나보자고 작정한다. 지금쯤이면 이제 수면위로 떠올라야 하는 주제가 아닐까 싶은 의도를 숨겨두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똑같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꾸며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간혹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고, 세간의 이슈로 떠오르기도 하는 섹스 판타지. 그런 주제라면 우리는 벌써 '마광수'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렇게까지 이슈가 될만 한 일은 아니었다는 게 내 개인적인 주장이지만, 세상은 내 생각하나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걸 다반사로 하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지나간다.

 

여섯 여자가 모였으니 접시 하나쯤은 충분히 깨졌겠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은근한 아픔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우리와는 동떨어진 저 먼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시대에 한번쯤은 있었음직한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그 사람들이 섹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보여지는대로만 이야기하면 너무 까발렸다고 말할 것이고, 슬쩍 건드리듯이 이야기하면 그럼 그렇지 하면서 내심 별 볼일 없는거라고 치부해버릴 테니.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안고 있는 이시대의 아픔이다.  우리가 외면하는, 혹은 놓쳐버린 그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보라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기왕에 은밀한 이야기에 끼어들었으니 아줌마 특유의 은밀한 이야기도 하나 해보자. 일전에 모월간지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가의 글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라 시선을 끌기도 했지만, 여기서 말해두고 싶은 건 여성잡지가 아니라 남자들이 읽는 경제지였다는 거다) 중에서도 섹스 없는 이성관계도 필요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주제는 이랬다. 성적인 관계와 친밀한 대상의 관계는 분명 다르다는 거였다. 단순무식하게 표현해서 아무리 섹스를 많이해도 거기서 관계가 형성되지는 않는다는...섹스리스 부부가 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작금의 세태만 보더라도 분명 섹스는 친밀함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말에 나는 공감한다. 섹스가 곧 사랑이라는 공식은 틀렸다! 어쩌면 우리는 그만큼  섹스라는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숨겨야만하는 그 어떤 것에서 이제는 밖으로 드러낼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변화되어가는 요즘을 보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관점인 것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평가는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솔직히 나는 참 좋았다. 개인적으로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이기도 했던 까닭이다. 이미 통념적인 개념으로 자리잡은 것들이 우리에게는 숨겨야만 하는 의미로 단정지어지는 게 싫었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인데도 드러내 말하지 못하는 위선과 가식이 싫었었다. 사회적인 모순이나 현상따위를 가감없이 글로써 엮어내는 일본소설들처럼 우리는 언제 글로써 진정한 사회의 아픔을 느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우리도 이제는 당당하게 말 할 건 말할 줄 아는 글쟁이들이 많아질 것 같다.

 

적나라하게 파헤쳐버린 고등학생들의 탈선 이야기, 프리섹스, 동거, 사회적인 조건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비극적 사랑 이야기, 나만의 사랑으로만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질투..... 정말 아찔한 수다였다. 자꾸만 올라가는 젊은 여성들의 치마처럼 아찔한 게 아니라, 그 속에 숨겨둔 우리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아찔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소설같고 영화같은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 이 혼돈과 어둠의 골짜기에서 섹스의 판타지를 건강하게 끌어내는 일이야말로 이 책에 동참한 작가들과 독자 여러분의 몫- 이라는 말이 책머리에 보인다. 그 평론가의 이야기를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백퍼센트 공감하는 말이기에.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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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에게 인생을 배우다
전도근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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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많은 인물중에서 굳이 다산선생에게 인생을 물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사실 위인전이라고 해봐야 솔직하게 말해 뻔한 틀속에 갇혀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의 아이들이 과연 위인전을 읽으면서 얼만큼이나 감동을 받고 있는지 미심쩍다는 게 숨겨둔 나의 본심이기에 하는 말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간접적인 경험이 더 많은 세상을 살다보니 우리의 아이들에게 순수함이 사라진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변화되는 세상의 흐름을 잘 읽을 줄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일거라고 감히 생각이 드는 것은 다산선생을 대표할 수 있는 게 실학사상인 까닭에 더불어 인생을 묻기로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통과 역경을 딛고 산다. 어떤 때는 무너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힘겨움을 이겨내고 커다란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그 힘겨움을 이겨내는 사람, 그 고통속에서 자신만의 어떤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위인'이라는 틀속에 넣어둔다. 그야말로 모진 곡절을 다 겪어낸 사람중의 하나가 바로 정약용일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인생을 묻는 것이 아니라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묻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잘 될 수 있을까요? ... 뭐 이런것쯤?  하긴 기왕에 사는 인생 좀 더 멋지게, 좀 더 폼나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주변에서 그 사람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성공한 삶을 살아냈다고 봐도 괜찮을까? 이쯤에서 성공이라는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사람이 성공이라는 말의 의미를 똑같은 곳에 두지는 않을 듯 하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었을 때 성공한 삶이라 말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성공이라는 말을 하기도 할 것이기에... 그런데 이 책은 어떤 한가지에 의미를 둔 단순한 성공을 말하고 있진 않은 듯 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는 말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 이라고 묻는다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각 장의 제목이 아닐까 싶다. 그 問答을 한번 들어보자면 이렇다.  좀 더 멋진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큰 비전을 세우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남을 배려하고, 솔선수범하고...  창의력이란 무엇입니까?  이 부분에서 다산의 실학사상이 한 몫을 차지했다. 그가 만들었던 거중기나, 유형거, 그리고 배다리등의 경우가 예로 등장한다. 그야말로 쓸모있는 학문이 여기에 해당된다.  공부를 잘하기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방법은?  여기서 귀가 쫑긋할 부모가 많을 듯 하다. 크게 되려면 큰 스승을 만나야 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이며 잠재력을 깨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배우지만 말고 학습을 하라는 말은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새로운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로 미래를 말하기도 한다. 그 밖에도 겸손하라, 꿈을 크게 가져라, 옳은 것을 행하라, 포기하지 마라, 배운 것은 꼭 써먹어라... 등등 딱히 새로울 것은 없는 말이다. 늘 들어왔던 말이고 지금도 귀만 열면 듣는 말이다. 다만 그것을 다산선생의 일생을 훑어보며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묘미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제목처럼 인생을 배웠다기보다 다산 정약용이란 사람의 일대기를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너무 흔한 주제로 치부될 수도 있을 내용이었지만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었다. 깊이없는 수박 겉핥기식의 지식을 곁에 두는 일이 많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또한번 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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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 김별아,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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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 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책장을 덮고 멍하니 앉아 있기를 몇 분.... 그래도 산을 좋아한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누구처럼 그렇게 큰 의미도 부여하지 못하면서 그저 산이 좋아서 오르기에 미쳤던 시절이 있었다. 틈만 나면 베낭을 짊어졌었다. 그냥 그 냄새가 좋았던 것 같다. 그냥 그 바람이 좋았던 것 같다. 그냥 그 소리가 좋았던 것 같다. 내가 한참 산에 미쳐있을 때에는 산중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산에서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가장 무서운 일이 되어버렸다. 왜 그럴까? 사람이 사람을 가장 무서워하는 세상이 되어버리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잠시라도 자연속에서 마음을 치유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이젠 산에 오르는 것이 또하나의 경쟁이 되어버린 거다. 언제부터인가 능선을 타며 몇 개의 산마루를 점령(?)했는가를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은 그런게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왜 그럴까? 그저 오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산마루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며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포만감(?)을 느끼기 위해서 오르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또하나의 경쟁을 산에 심어놓는다. 자신을 위한 산행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산행이 되어버린 거다. 그러다보니 저마다 치장하기에 바쁘다.

 

무엇을 하든

무언가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는

결과주의와 성취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제대로 산을, 삶을 즐기지 못한다. (-244쪽)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라는 제목이 참 좋았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등산의 기본이 아닐까 싶어서. 작가처럼 많은 걸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해도 우리는 분명 쉬고 싶다는,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다는 명분을 세워 산을 오른다. 20대에 올랐던 산과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오른 산은 내게 너무나도 달랐다. 결혼이라는 이유로 까맣게 잊고 살았던 산을 다시 찾게 된 건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싶다는 생각에서였는데 그게 참 쉽지 않았다. 정해놓은 시간이라도 있는양 바쁘게 걸음을 옮기며 앞선 동지의 엉덩이와 발뒤꿈치만 따라가는 산행이 싫어서 마음 맞는 사람 몇이 모여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그 때 함께 했던 동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쩌면 그렇게도 감탄사를 잘 뱉어내느냐고... "와아!~~", "이야!~~"  함께 산행을 하면서 나의 그 감탄사가 너무도 좋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거였구나! 싶었다. 작은 풀, 작은 꽃과 마주한다는 게 이런거였구나! 싶었다. 그 때부터 우리에게도 작가네처럼 구호가 생겼다. ' 천천히, 바쁜 사람은 먼저 가시고... 빨리 가면 보이지 않는, 아니 볼 수 없었던 이름모를 꽃 한송이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도, 파란 하늘에 그림처럼 떠다니는 흰구름의 마술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우리의 구호덕분이었다. 그렇게 만난 풀과 꽃과 나무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서 한동안 책도 싸들고 다녔었지만 지금은 그 때 만났던 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산을 사랑한다는 것이 꼭 '등산'을 좋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155쪽)

 

산은 꼭 산마루까지 올라야만 맛이 아니다. 그 오르는 과정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 혼자 올라가도 여럿이 함께 올라가도, 원정산행을 하거나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어느쪽을 선택하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작가의 말처럼 기본만 지켜준다면 내 모든 것을 맡겨두어도 좋은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인 것이다. 작가네의 구호 '까불지 말자'에 크게 공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기본을 우습게 알고 까불다 사고당하는 사람 정말 많이 봤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이 꼭 산행에서만 필요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작가가 다녀온 일정속에서 군데군데 지나온 나의 발자취도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작가가 정말 부러웠다. 그 아이들은 분명 멋진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산이 아프면 그에 기대어 사는 사람도 삶도 아프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어리석은 짐승인 사람은 많이 아픈 후에야 지난날의 축복을 추억하며 깨닫는다. (-212쪽)

 

산을 올라보면 안다. 아니 산뿐만 아니라 자연이라는 틀속에 나를 끼워넣고 보면 안다.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내가 그 자연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자연때문에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의 오만은 부풀어오른 풍선같다. 마치도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거들먹거린다. 나중을 기약할 수 없는 오만과 교만이다. 지금 우리가 아주 조금씩만 욕심을 버리며 살아간다면 그 나중을 기약할 수도 있을텐데..... 자연이라는 게 그렇게 거창한 이름일까? 우리가 밟을 수 있는 흙 한 줌, 작은 풀포기 하나, 이름모를 들꽃 한송이, 발에 채이는 작은 돌멩이, 그리고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뭐 이런게 자연이라는 말이다. 그런 걸 우리는 잊고 살며 잃어버리고 있는 중이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나는 남편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이번 여름휴가때는 아들하고 지리산 종주 한번 하지?" 그러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구, 그 힘든 걸 왜 날더러 하라는거야? " 한다. 아들이 세상속으로 첫발을 내딛기전에 아빠와 지리산 종주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 알 수 없다... 산을 넘어가는 각 구간마다 詩 한편씩 끼워넣어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줘서 참 좋았다. 역시 글쓰는 이의 산행이다. 그런 느낌, 그런 행복을 이렇게 글로 표현할 수 있어서 김별아, 그녀는 참 행복할 것 같다.  詩라는 게 가만히 살펴보면 함축되어진 우리의 삶이다보니 그냥 허투루 넘길수가 없었다. 오래전에 광교산에서 보았던 詩가 보인다.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는 이원규의 시 한편이 새롭다. 그렇다해도 나는 다시 꿈 꿀 것이다. 내 아들이 아빠와 나란히 지리산에 오르는 것을.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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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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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불현듯 떠오른 낱말이 있었다. '추억'이라는 말과 '기억'이라는 말이다. 문득 이런 愚問이 생겼다. 그 두 낱말의 정확한 의미를 내가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것일까? 라는...  그래서 한번 찾아보았다. '기억 記憶' - 이전에 했던 경험을 의식속에 간직함. 또는 어떤 것들의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꺼내는 것. '추억 追憶' - 어떤 것들의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꺼내는... 똑같다! 그런데 왜 나는 기억이라는 말과 추억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가 이렇게 다르기만 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억'이라는 말은 상당히 광범위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추억'이라는 말은 약간은 좁은 의미의 말로 쓰이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기억'이라는 말보다는 '추억'이라는 말이 좀 더 애틋하고 아련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짖궂긴 하지만 내 맘대로 해석해보자면 이렇다.  말 그대로 '記憶'은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고,  '追憶'은 생각을 쫓아가는 것이라는 거다. 그러니 자신의 기억속에 있는 나쁜 일보다는 좀 더 아름다웠거나 좋았던 일을 쫓아가려고 하는 건 당연지사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의 사건(?)들은 아무래도 아름다웠던  '追憶'은 아닌 듯 하다. 어쩌면 이제는 우리가 모른 척 하고 싶어하는 지나가버린  '記憶'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작가가 나열하는 책속의 사건(?)들은 아프다.

 

조정래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는 참 대단하다. 그만큼 우리의 삶속에서 살아숨쉬는 이름이기에 그의 작품에 대한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어쩌면 바로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나온 책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살짝 들기도 한다!) 이 책 <외면하는 벽> 은 작가의 짧은 글을 모아놓은 일종의 작품집이다. 그런데 그 주제가 한결같이 똑같다. 70년대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닌데도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정말 고릿적 캐캐묵은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지금 아무리 '달고나'나 '뽑기'가 유행을 한다해도 그건 단순히 호기심일뿐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 것처럼 이 책속의 이야기들이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분명 낯선 풍경일테지만 그 때를 살아낸 세대에게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감히 '아픔'이라는 말을 한다.

 

한참 반공 방첩을 외쳐대던 시대에는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의심을 받았다. 물론 지금도 사상범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어디 그 때의 무게와 같을까? (-첫번째 이야기 '비둘기')  전쟁을 겪어 힘겨웠던 부모 못지 않게 그들의 아이들 역시 힘겨웠다. 그 힘겨운 삶의 올가미에 걸려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 자신과 맞닥뜨려야 하는 고통의 순간도 있었다. (-세번째 이야기 '진화론' 과 네번째 이야기 ' 한, 그 그늘의 자리')  우리는 쉽게 말한다. 그런 그들의 희생과 감내가 있었기에 지금, 좋은 시절을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하지만 그들의 희생과 감내는 외면당해야 했다. 그래서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채 풍요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지금도 그 거대한 외면의 벽에 부딪혀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눔'이라는 이름과, '함께'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안고 쓰다듬어 줄 마음의 따스함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고의적으로 그 마음들을 외면한 채 모든 것이 다 잘될거라고 위안삼으며 살아왔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외면하는 벽' 의 야야기나 마지막 이야기 '두 개의 얼굴'속에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도 고스란히 들어있다. 철저하게 나만을 위하는 그러나 아닌 척하는 가증스러운 얼굴이 이야기위로 겹쳐진다는 말이다.

 

우리가 못살았던 시절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아픔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아팠던 기억만을 끄집어내기로 작정한 듯 하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우리가 무심코 저질렀던 그 '외면'이 고스란히 지금의 우리를 더욱 더 아프게 하고 있다는 역설일수도 있지 않을까? 외면함으로써 잊고자 했던 것들이 지금의 우리를 다시 외면하며 아프게 하고 있는 거라고... 그 모든 아픔들이 누구의 탓도 아닌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어진 것이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껄끄러웠던 건 아마도 우리에게 필요한 그 무엇을 우리 스스로가 모른척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아무래도 나는 아픔을 동반하는  '記憶'보다 그래도 조금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追憶'에 매달리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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