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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와 결혼해 주세요
히구치 타쿠지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만약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만약에'라는 말은 참 묘하다. 다분히 부정적인 주제를 불러오기도 하고 예상치못한 즐거운 주제를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이 대체적으로 즐겁고 행복한 일보다는 부정적이고 힘겨운 일에 더 치이며 사는 까닭인지, 그 '만약에'라는 말이 불러오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화제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경우는 상당히 적은 편인 듯 하다. 이 소설의 제목, 참으로 발칙하다. 언젠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라는 제목의 책이 나와 어떻게 그런 제목을 붙일 수가 있는거냐고 한동안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대놓고 내 아내와 결혼해 달라고 한다. 무슨 일인지...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음직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 만약에 내가 어느날 갑짜기 시한부인생을 선고받는다면? 이 말은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당신은 무얼 하겠느냐고 묻는 것보다 더 무섭다. 그런데 정말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만약에 내가 정말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그리고 나는 말했었다.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온다면 연명치료를 하기 위해 내 몸에 주사바늘을 꽂고 싶지는 않다고. 그러니 그 남은 시간만큼이라도 당신과 좀 더 많은 추억을 만들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비록 몸은 아플지라도.
그런데 다 읽고나니 이 소설, 상당히 낭만적이다. 당신에게는 앞으로 6개월간의 생명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생명을 좀 더 연장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인공 미무라 슈지는 의사의 관대한(?) 처방전을 무시한 채 과감히 병원문을 나서 다시 세상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혼자 남을 아내를 위해 하나의 계획을 세운다. 느닷없이 자신의 아내와 맞선 볼 남자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이 참으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끝까지 자신의 병을 숨기고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왠지 처절하기까지 하다. 결국 맞선 상대를 찾아냈다! 맞선이라는 게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들통나버린 상황에서 계획에 포함된 모든 이에게 상처를 주게 되지만, 자신이 왜 그래야만 했는가를 말하며 아내를 설득하고, 아내와 맞선 보기로 되어 있던 상대를 설득하는 그의 무모함은 오히려 상대방들을 눈물나게 만들어 버린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이 모두 미무라 슈지와 같다면? 문득 이런 웃지 못할 물음표를 던져본다. 그렇지 않은게 우리의 현실임을 알기에 멋적은 웃음 한번 지어보고 생각을 접었지만.... 그렇지만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나였더라면, 정말 그 사람이 나였더라면... 언제부터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죽음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변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가 이제는 좀 바뀌어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묻고 있는 단계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모든 아픔과 모든 고통을 주인공의 솔직함과 유머로 포장해버렸지만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보여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일에만 매달려 살아왔던 중년의 남자, 미무라 슈지. 중요한 것은 그도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같이 있었으면 하고 기대할 때는 늘 없었으니까,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남편, 아버지인 척 으스대지 마라. 부탁이니까 우리의 생활리듬을 깨뜨리지 마라. 잘해보자고 생각해서 하는 일들이 솔직히 성가시다. 당신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냥 모른 체하는 것. 이런 말들이었던 것 같다. (-175쪽) 미무라 슈지의 중얼거림이긴 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지 않은가?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오던 말이지만 들을 때마다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건 사실이다. 그렇게 이 소설은 우리 주변의 아픔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드리고 있다. 지금 누군가로 인해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면, 가슴 한가운데로 구멍이 뚫린 것처럼 찬바람이 들어온다면 글쓴이 히구치 타쿠지가 권한 이 노래를 한번 들어보면 어떨지... /아이비생각
When you're down and troubled And you need some loving care
네가 침울해 있거나 힘들 때 누군가가 그리워지거나
And nothing, nothing is going right
모든 것이 다른 방향으로 가버리려 할 때는
Close your eyes and think of me And soon I will be there
눈을 감고 나를 떠올려봐 나는 바로 옆에 있어
To brighten up even your darkest night
어떤 어둠도 내가 환히 비춰줄테니까
You just call out my name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돼
And you know wherever I am I'll come running to see you again
그러면 난 어디에 있든 너에게 달려갈 테니까
Winter, spring, summer or fall
겨울이든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언제나
All you have to do is call And I'll be there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돼 곧 달려갈 테니까
You've got a friend
나는 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