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과 조선건국사 - 드라마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고려멸망과 조선 건국에 관한 얽히고설킨 흥미진진한 이야기
조열태 지음 / 이북이십사(ebook24)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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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이긴자가 쓴 기록이다. 그러니 어느 면에서 보면 사실과 허구가 함께 공존한다고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우리가 배워왔던 역사적인 사건들이 하나의 보탬도 없이 사실 그 자체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역사의 기록은 필요하다. 돌아볼 과거가 있으니 현재의 아픔을 치료할 수도 있고, 반추할 시간이 있으니 지금의 고통쯤은 이겨낼 수 있는 거라고 위안삼으며 살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왜곡된 역사라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연구하는 사람들만 제대로 된 사고를 갖춘다면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이긴 한다. 그런데 이렇게 유독 한사람만을 조명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역사속의 인물, 그 중에서도 내노라하는 사람, 이름만 들어도 아하! 싶은 그런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중의 하나가 바로 정도전이란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 이름에 대해 얼만큼이나 알고 있는가를. 그저 외워야 할 이름으로, 그 이름이 안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의 흐름만을 기억할 뿐이었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생각해볼 여력조차도 없었다는 게 솔직한 말일 것이다. 정도전은 과연 이긴자일까? 조선이라는 나라를 건국함에 있어 그토록이나 크나큰 역할을 했던 그는 과연 이긴자였을까?  조선을 대표하는 경복궁에만 가도 정도전이란 이름을 끝없이 듣게 되는데 그가 어떤 사상으로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도왔는지가 궁금했다. 궁궐 현판마다 새겨진 그 의미들을 허투루 볼 수 없었던 탓이다.

 

글쓴이의 말처럼 한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은 또다른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망하는 나라의 배경위에 새로운 나라는 세워질 것이다. 고려가 바로 조선의 배경이 되었으니 조선을 알기 위해서는 고려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을 터다. 이긴자들이 써 놓았다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글쓴이가 서론에서 말하고 있지만 그런 이유때문인지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참고서를 앞에 두고 책장을 넘기는 그런 느낌이랄까?  연, 월, 일에 맞춰 역사를 기록하다보니 다시 수험생이 된 듯한 기분도 들고 조금은 지루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공민왕부터 우왕, 창왕, 공양왕까지 고려 마지막 왕들의 시대를 조목조목 다 들춰내고 있으니.... 그 시대의 흐름속에서 누가, 왜, 언제, 어떻게, 어떤 역할로 등장했는가를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성계가 과연 전주 이씨인지, 정도전은 정말 천출인지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음직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사뭇 흥미롭다가도 너무 길게 늘어진다 싶으면 이내 지루해지기도 하는 흐름이 자꾸만 나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드라마로 영화로 아무리 많은 소재를 다룬다해도 책만큼 깊이 파고드는 느낌은 없다. 그러니 제대로 된 책을 만난다는 건 그만큼 행복한 일일터다. 재미는 좀 덜했지역사적으로는 큰 틀로만, 그 흐름으로만 기억해야 했던 기록들을 세세히 알 수 있어 나쁘지 않았다. 많이 들어왔던 사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거기다가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던 일에 대한 의미나 그 배경들이 서로 얽히며 새롭게 다가온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도 없다. 글쓴이의 생각으로 부분부분에 의문점을 붙여놓았다는 게 흥미로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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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명상 카툰
배종훈 글.그림 / 담앤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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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글귀중에 이런게 있다. 사랑하라, 지금 이순간과 지금 내 곁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남을 먼저 사랑하기에 앞서 자신을 더 먼저 사랑하라는 말을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다고 나는 여전히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늘 불만이고 늘 투정이다. 누가 그렇게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생각은 늘 한다. 그 모든 것이 나로부터 비롯되어지는 것임을. 욕심이 너무 많은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누구나 나처럼 착각하며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정도를 욕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것...  바로 그런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이렇게 지천명의 나이를 받아들었다. 뒤돌아보아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 뒤돌아보는 수고마저도 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조차도 버려야만 한다고.

 

해야 할 일은 하기 싫어 힘들고 안될 일은 하고 싶어 괴로우니 삶이 곧 수행이라는 그 말씀이 참 깊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을 한번 눈감아 주거나 봐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인정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다시 새긴다. 그러나 어쩌랴 거기까지인걸.... 책장을 넘기다가 바로 이거다 싶은 장면을 눈앞에 두고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모두 벗고 모두 내려놓으라 하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기에 그러지 못하겠다는 그 말이 어쩌면 그리도 참진리로 다가오던지! 내려놓음에 얽매이는 것부터가 이미 나 자신에게 올가미를 씌웠음을 인정해야만 했다는 말이다. 그렇구나,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를 어딘가에 가둬두고 사는구나 싶었다. 무소유를 이야기할 수록 더 많이 갖고 싶은 인간의 욕심을 어찌 탓하랴! 마음의 주인의 되라는 말이 어찌 틀린 말일까만 내 것인데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게 마음이다보니 숨이 붙어있는 한은 끝까지 싸워야 할 것이 바로 그 진리로구나 싶었던 거다. 어리석게도.

이제 또 새로운 계절이다. 새롭다는 건 뭔가가 다시 시작되어진다는 의미도 포함되리라. 몇해 전부터 계절이 바뀌면 옷장을 활짝 열어 지난 일이년간 한번도 꺼내입지 않은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었다. 그리 많지도 않은 옷인데 한번도 꺼내입지 않은 옷이 있었다는 게 처음엔 신기했다. 한해한해 정리를 하면서 알았다. 때마다 마음조절을 하지 못하고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그러나 그렇다고해도 그 옷을 버리지 못한 채 또 한해를 묵힌다. 이제는 그 묵힘의 시간이 어느정도 짧아져가고 있지만 마음조절은 여전히 버겁기만 하다.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면 잊지않고 찾아와주는 한마디가 있다. 어쩌다 눈에 띄는 네잎크로버의 행운만을 찾지말고 늘 곁에 머물러주는 세잎크로버의 행복을 갖는 것이 훨씬 더 빠른 길이라는 말.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사랑할 줄 아는 마음. 그래서 바로 이순간은, 내 곁에 머물러 나를 있게 해주는 사람들은 모두 소중할 수 밖에 없으니....

먼 옛날 어느 마을에 현자가 살았다. 하루는 동네 아이 대여섯명이 빵한조각을 들고 찾아와 골고루 나눠주기를 청했다. 현자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인간의 뜻대로 나눠줄까? 신의 뜻대로 나눠줄까?" 아이들이 대답했다. "신의 뜻대로 나눠주세요!"  대답을 들은 현자는 말없이 아이들에게 빵을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에게는 아주 조금, 어떤 아이에게는 조금, 어떤 아이에게는 많이, 어떤 아이에게는 단 한조각도 나누어주지 않았다. 빵을 받은 아이들이 현자를 바라보았다. "바로 이것이 신의 뜻이란다!"  얼마전에 들은 이야기 한토막이다. 정해놓은 것은 인간의 틀일 뿐이다. 그러니 그것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질 수 있는 연습을 한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일듯 싶다. 법정스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을테니까. 이 책의 산뜻한 표지만큼 내게도 산뜻한 계절이 찾아오기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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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훈 2014-03-15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명상카툰 작가 배종훈입니다. 너무 멋진 서평을 남겨 주셨네요. 감사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혹시 페이스북을 이용하신다면 페이스북에서 친구에게 되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행복하세요.

아이비 2014-03-15 16:21   좋아요 0 | URL
카툰을 좋아하는데 그 작가님의 흔적을 보니 행복해지네요 ^^*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그 말씀들이 마음에 와닿는 경우가 많아서 자주 접하려고 노력중이랍니다. 좋은 책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영영 이별 영이별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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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원로대신인 황보 인, 김종서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은 사건을 일러 계유정난이라 한다. 靖難이라 함은 나라가 처한 병란이라거나 위태로운 재난을 평정한 것을 일컫는다. 그런데 역모가 어찌하여 靖難이 되었던 것일까? 명태조 주원장은 왕실의 안녕을 위하여 공신을 배제하고 종실의 황자 25명을 전국 요소에 영주로 보냈다. 그러나 태자가 일찍 죽고 어린 손자인 혜제가 건문제로 즉위했다. 흥미로운 것은 건문제가 할아버지 주원장의 유지에 따라 숙부들에게  문상을 오지 말라고는 사실이다. 너무나 커져있던 숙부들의 세력을 끊으려 억압책을 취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힘이 없었다.  "간신을 제거하여 왕실이 처한 위험을 제거한다" 는 이유로 연왕이 북경에서 군사를 일으키게 된다. 건문제가 실종되자 스스로 제위에 올라 '영락제(3대황제)'라 칭했다. 간신을 몰아내고 난을 다스렸다하여 '靖難'이라 일컫고, '靖難史'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중국에 전한다. 사신으로 갔던 신숙주를 회의하기 위해 수양대군이 들려주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를 했지만 수렴청정을 할 사람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다지 존재감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니 이미 선대왕으로부터 자식의 안녕을 부탁받았던 김종서나 황보 인등에게 정권이 넘어갔다고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수양대군에게는 이것이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린 단종부부에게는 평생을 한으로 남을 운명의 올가미가 되었을 거라는 말이다. 이 책속에는 바로 그들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있다. 하나 더 보탠다면 단종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 치욕적인 삶을 살아내야 했던 단종비의 애끊는 사랑이 절절하게 녹아있다.

 

청령포로 유배갔던 단종이 죽자 동강에 버려진 시신을 모셔 장사 지낸 후 도망을 갔다는 영월사람 엄흥도와 그의 자식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슬프다. 눈물 없이 소리만 큰 호號도, 눈물과 소리가 함께 있는 곡哭도 하지 못하여 소리없는 읍泣으로 눈물만 뚝뚝 흘렸다던 단종비의 말이 서럽다. 이후에 엄흥도는 단종의 옷가지를 수습하여 동학사를 찾아가 김시습과 함께 제사를 올리 후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그러니 어찌 이 이야기를 빠뜨릴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것처럼 이 책속에는 수많은 野史가 숨겨져 있다. 그것을 하나 하나 찾아내어 그 의미를 반추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세조를 가리켜 '나으리'라 하였다는 박팽년의 말에 세조가  "그대가 나에게 이미 '臣'이라고 칭하지 않았느냐?" 고 하자, "나는 상왕(단종)의 신하이지 나으리의 신하는 아니므로 충청감사로 있을 때에 한번도 '臣' 자를 쓴 일이 없다." 고 대답하였는데 충청감사 때 올린 장계를 실제로 살펴보니 과연 '臣'자는 하나도 없없다는 이야기, 고문을 받으면서도 성삼문이 세조가 준 녹祿은 창고에 쌓아두었으니 모두 가져가라 하였다는데 그가 죽은 후 집에 가보니 정말 그랬다는 이야기, 단종의 폐위소식을 듣고 스스로 책을 불태워버린 후 머리깎고 바랑을 짊어진채 방랑의 길에 올랐다는 김시습의 일화, 세조가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귀신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일화, 단종비가 정업원으로 들어갔으니 먹고 살길이 막막하여 옷감에 물을 들이는 염색일을 하였다는 일화도 책속에 전한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은 것과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는 건 아닌지.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애당초 어리석은 일도, 결국 그 이치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게 아닐는지요... ( -130쪽)

​책을 다 읽고 다시한번 되새겨보는 말이다. 김별아, <미실>의 작가로 더 유명한 이름이지만 나는 사실 <미실>을 읽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끌림이 없으면 손을 내밀지 못하는 나의 습성탓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야 '미실'이라는 여인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궁금해진다. 느껴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생겨나는 건 왜일까?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를 찾아 서울 시내를 누볐을 그의 발자취를 나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49란 숫자로 시작되는 이야기의 진행이 왠지 나쁘지 않았다. 49재를 떠올리게도 한다. 죽은 뒤에 좋은 곳으로 갔기를 바라는 마음,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는 그런 아픔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오롯이 담은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사람이 죽으면, 몸을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간다는 魂과 시신과 함께 땅속에 묻힌다는 魄으로 나뉘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 魂이 자신이 살던 몸, 魄을 내려다보며 시작하는 그 넋두리가 처음부터 나의 마음을 빼앗아간 것 같다. 혹시나 이 세상에 미련이 남아 鬼가 되지는 않았느냐고 지아비였던 단종에게 담담히 묻고 있는 그녀의 말투가 진정 서글프게 다가왔다. 그녀의 넋이 누구의 제재도 없이 시간을 다시 돌아보며 자신의 삶을 말하고 있는 설정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잔잔한 감동이 있다. 너무 흔한 소재, 너무 흔한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진실로 안타까운 그런 것.....알 수는 없지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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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타고 떠난 그 차 - 김태진 전문기자의 자동차 브랜드 스토리
김태진 지음 / 김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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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애마는 작은 차지만 큰 기쁨을 준다. 이쯤 이야기하면 대략 어떤 차인지 짐작할 것이다. 가끔 큰 차를 갖고 싶지 않느냐고 넌지시 묻는 남편에게 나는 그냥 피식 웃곤 한다. 그런쪽에 그다지 많은 관심을 두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지만 전자제품도 기능 많고 모양만 요란한 걸 싫어하는 내 성격에는 작지만 큰 기쁨을 주는 차가 딱이다. 자동차를 이야기하다보면 항상 떠오르는 실화가 하나 있다. 어느 대사부부가 마티즈를 끌고 호텔에 갔는데 나올 때에 보니 차가 보이지 않더란다. 그래서 차를 어디에 두었는지 묻자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저 귀퉁이 어디쯤에선가 차를 꺼내오더라는 이야기다. 실용적인 것보다는 겉치레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던 그 대사부부의 말에 한동안 가슴이 아렸었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겉치레에 속지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으려는지... 또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20대에 만난 후배 하나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언니, 나는 40대가 되면 모피코트를 입고 벤츠를 운전할거야.."  그녀의 희망사항은 지금 이루어졌을까? 가끔 만나면 내가 반놀림으로 묻는다. " 벤츠 어디다 세워두고 왔니? "  그만큼 좋은 차, 멋진 차는 사람들의 꿈인 모양이다. 하지만 조심해야만 한다. 벱새가 황새 쫓다가 가랑이 찢어진다고 했으니. 각설하고 이 책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하는 건 아니다. 내노라하는 차들에 대한 역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으니 일단은 호기심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시라. 눈이 호강할 수 있도록 멋진 차의 이미지 또한 가득하다.

 

글쓴이가 자동차 전문기자이다보니 좋은 차를 추천해 달라는 사람이 많단다. 그런데 그가 이러이러한 차가 좋다고 말하면 대개의 사람들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짓는다는 말이 재미있다. 멋진 차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그 이름들이 아닌 까닭이라고 하니 그러면 그렇지 싶어 나도 실소를 터뜨린다. 형편에 맞아야 한다는 글쓴이의 말에 백번 동의하고도 남음이 있음이다. 얼마전 뜨겁게 화제로 떠올랐던 람보르기니 사건이 떠오른다. 장난감처럼 예쁘게 생겨서 그 위에 올라가 놀았을 뿐이라고 말하던 그 꼬마녀석들의 마음값, 다시말해 수리비가 1억원이 넘는다는 말에 나는 그만 입이 떠억! 제일 먼저 떠올랐던 생각이 그 차의 주인이 어떤 사람일까였다. 그렇게나 좋은 차를 어떻게 주차장에 세워둘 수 있었는지, 착착 접어서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거실에 펴놓을 일이지 왠 민폐란 말인가? 이 책속에 등장하는 차의 이름들은 나도 들어는 봤다. 람보르기니라는 차가 '자동차 마니아의 드림카' 라고 되어 있는 걸 보고 그제서야 아하! 했다.


BMW, 랜드로바(이 차는 놀랍게도 농부를 위한 차였다!),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아우디, 재규어(마크가 생동감 있다), 페라리, 포르쉐, 폭스바겐(딱정벌레차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푸조-시트로엥, 제네럴모터스(우리의 대우자동차를 먹어버린 GM이다), 크라이슬러-지프, 포드, 닛산, 스바루, 토요타, 현대기아차, 혼다... 많기도 하다.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에 우리나라도 있다고 하니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해보인다. 그 많은 차에 대한 소개 또한 굉장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하게 내노라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로써의 한국차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있다. 생김새 하나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다는 특색있는 디자인도 그렇지만 저마다 얼굴에 문신처럼 달고 다니는 마크가 눈에 띈다. 문득 <트랜스포머>라는 영화속에 등장했던 차들이 생각난다. 그 영화때문에 나는 노란차 범블비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었다. 회사명인지 브랜드명인지도 잘 모르던 나인데도 모형차라도 갖고 싶어서 얼마나 애를 태웠었는지... 되돌아보면 우습기도 하고.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좋은 차의 기준은 무엇일까? 무엇이 되었든 자신의 형편이나 주변(차를 운전할 수 있는)에 맞추는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이 아닐까 싶다. 여러가지 형편에 맞는 차가 좋은 차라는 글쓴이의 말을 다시한번 되새겨볼 일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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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팔천 - 나도 사람이 되고 싶다
이상각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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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八賤, 말 그대로 조선시대의 여덟가지 천한 것들이다. 노비, 기생, 백정, 광대, 공장, 무당, 승려, 상여꾼, 거기다가 궁녀마저도 우리도 노예였다고 외치고 있다.  지금도 가끔씩 중얼거리듯 말씀하시던 친정어머니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 참, 옛날에는 너무 했어. 어린 것들이 나이 많은 노인네 이름을 함부로 불러가면서 이래라 저래라 했다니까.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너무 했지."  노비라는 게 가까운 시절까지 존재했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노비의 변화된 형태가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 옛날처럼 노비라고는 하지 않지만 하는 일이 딱 그렇다는 말이다. 한번 찾아보라, 생각보다 그런 류의 직업이 얼마나 많은가를 짧은 시간안에 느낄 수 있을테니. 역사라는 건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까닭에 나는 늘 나와 같았을 백성들의 모습이 궁금했었다.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당시로써는 천하디 천한 것들이어서 감히 이름조차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존재들의 이야기, 천하디 천한 것들이어서 감히 고개를 들어 똑바로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역사를 알게 되면 뒷맛이 정말 씁쓸해진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었느냐고 그 시대의 지배층들에게 따져보고 싶다는 감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는 너희들은 얼마나 잘나서 그랬느냐고.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사람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항상 내 속을 아프게 한다.

 

노비였으나 출세했던 사람도 있긴 있었다. 얼자(모친이 천인인 자녀)들을 면천시키기 위해 눈물나는 노력을 했던 양반도 있긴 있었다. 노비도 같은 노비가 아니라고 계층을 나눠 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노비가 하나의 재산목록이었다는 건 정말이지 기가 막힐 일이다. 그나마 말 두마리 값이었으니 돼지 한마리 값에 불과했다던 유럽의 집시보다는 나은 것일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몸으로 느끼고 있는 유교문화의 흔적들은 모두가 조선대의 후기에 만들어진 문화였음을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라를 잘 다스리지도 못하고 지켜내지도 못했던 위정자들이 그들의 허물을 덮기 위해, 그럴싸한 하나의 명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들의 잘못을 뒤돌아보지 않고 백성들의 반발과 저항만을 막아내기 위해 찾아냈던 방편으로 그런 세상이 펼쳐졌다는 걸 보면 위정자들의 언행이 후대에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저항과 반발은 당연했을 터다.

 

'해어화(말을 알아듣는 꽃)' 라는 별칭으로 불렸다던 기생도 그렇지만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던 장인들마저 천인으로 불렸다는 건 지독한 모순이다. 백정의 유래를 살펴보면 유목민족의 후예들이 조선의 백정으로 변화하게 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들로써는 그야말로 한많은 조선에서의 삶이었을 것이다. 오로지 편하게 다스리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말도 안되는 법을 만들어냈던 조선의 위정자들을 보면서 치를 떨게 되는 순간도 생겨난다. 광대나 승려들을 우려먹었던 양반층, 유교만이 제일이라고 하며 멸시했던 불교마저도 저들은 편할 때는 불러서 쓰고 쓰고나면 언제그랬냐는 듯이 얼굴색을 바꿨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했다. 어찌되었든 자신이 필요할 때는 옆에 있어야 했고, 불필요하면 칼로 베듯 그렇게 버렸다는 말이다. 八賤이라는 노비, 기생, 백정, 광대, 공장, 무당, 승려, 상여꾼, 거기다가 궁녀마저도 그들이 필요하다 싶을 때마다 이용했다는 사실이 역사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음을 볼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조선에서 천대받던 사기장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장인으로 우대를 받으며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그냥 생겨난 일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작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어찌 기 막히지 않겠는가!

 

힘겨운 삶에 지쳐 도망가거나 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법이 '세습'이었다. 그런 법이 많은 업적을 이루어냈다는 성종대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결국 백성들을 희생시켜서 얻어낸 결과였다는 말일테니.. 그토록이나 도망치고 싶었던 일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부담감은 엄청 났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더 도망치는 사례가 많았을 것은 뻔한 일일 터다. 이 책에 등장하여 나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외쳐대던 천인들의 문화가 지금의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단하다. 그토록 짓밟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살아남았으니 밟혀야 강해진다는 논리가 맞긴 맞는 걸까? 우스개소리로 옛날에 천대받았던 존재들이  이 시대에 와서 그 한을 풀고 있다는 말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닌 듯 하여 실소를 머금게 하지만 오죽했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 싶기도 하다. 부록처럼 붙여놓은 세계의 천민(인도의 달리트, 일본의 부라쿠민, 유럽의 집시)편도 흥미로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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