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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팔천 - 나도 사람이 되고 싶다
이상각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3월
평점 :
朝鮮八賤, 말 그대로 조선시대의 여덟가지 천한 것들이다. 노비, 기생, 백정, 광대, 공장, 무당, 승려, 상여꾼, 거기다가 궁녀마저도 우리도 노예였다고 외치고 있다. 지금도 가끔씩 중얼거리듯 말씀하시던 친정어머니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 참, 옛날에는 너무 했어. 어린 것들이 나이 많은 노인네 이름을 함부로 불러가면서 이래라 저래라 했다니까.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너무 했지." 노비라는 게 가까운 시절까지 존재했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노비의 변화된 형태가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 옛날처럼 노비라고는 하지 않지만 하는 일이 딱 그렇다는 말이다. 한번 찾아보라, 생각보다 그런 류의 직업이 얼마나 많은가를 짧은 시간안에 느낄 수 있을테니. 역사라는 건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까닭에 나는 늘 나와 같았을 백성들의 모습이 궁금했었다.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당시로써는 천하디 천한 것들이어서 감히 이름조차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존재들의 이야기, 천하디 천한 것들이어서 감히 고개를 들어 똑바로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역사를 알게 되면 뒷맛이 정말 씁쓸해진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었느냐고 그 시대의 지배층들에게 따져보고 싶다는 감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는 너희들은 얼마나 잘나서 그랬느냐고.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사람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항상 내 속을 아프게 한다.
노비였으나 출세했던 사람도 있긴 있었다. 얼자(모친이 천인인 자녀)들을 면천시키기 위해 눈물나는 노력을 했던 양반도 있긴 있었다. 노비도 같은 노비가 아니라고 계층을 나눠 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노비가 하나의 재산목록이었다는 건 정말이지 기가 막힐 일이다. 그나마 말 두마리 값이었으니 돼지 한마리 값에 불과했다던 유럽의 집시보다는 나은 것일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몸으로 느끼고 있는 유교문화의 흔적들은 모두가 조선대의 후기에 만들어진 문화였음을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라를 잘 다스리지도 못하고 지켜내지도 못했던 위정자들이 그들의 허물을 덮기 위해, 그럴싸한 하나의 명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들의 잘못을 뒤돌아보지 않고 백성들의 반발과 저항만을 막아내기 위해 찾아냈던 방편으로 그런 세상이 펼쳐졌다는 걸 보면 위정자들의 언행이 후대에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저항과 반발은 당연했을 터다.
'해어화(말을 알아듣는 꽃)' 라는 별칭으로 불렸다던 기생도 그렇지만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던 장인들마저 천인으로 불렸다는 건 지독한 모순이다. 백정의 유래를 살펴보면 유목민족의 후예들이 조선의 백정으로 변화하게 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들로써는 그야말로 한많은 조선에서의 삶이었을 것이다. 오로지 편하게 다스리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말도 안되는 법을 만들어냈던 조선의 위정자들을 보면서 치를 떨게 되는 순간도 생겨난다. 광대나 승려들을 우려먹었던 양반층, 유교만이 제일이라고 하며 멸시했던 불교마저도 저들은 편할 때는 불러서 쓰고 쓰고나면 언제그랬냐는 듯이 얼굴색을 바꿨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했다. 어찌되었든 자신이 필요할 때는 옆에 있어야 했고, 불필요하면 칼로 베듯 그렇게 버렸다는 말이다. 八賤이라는 노비, 기생, 백정, 광대, 공장, 무당, 승려, 상여꾼, 거기다가 궁녀마저도 그들이 필요하다 싶을 때마다 이용했다는 사실이 역사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음을 볼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조선에서 천대받던 사기장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장인으로 우대를 받으며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그냥 생겨난 일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작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어찌 기 막히지 않겠는가!
힘겨운 삶에 지쳐 도망가거나 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법이 '세습'이었다. 그런 법이 많은 업적을 이루어냈다는 성종대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결국 백성들을 희생시켜서 얻어낸 결과였다는 말일테니.. 그토록이나 도망치고 싶었던 일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부담감은 엄청 났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더 도망치는 사례가 많았을 것은 뻔한 일일 터다. 이 책에 등장하여 나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외쳐대던 천인들의 문화가 지금의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단하다. 그토록 짓밟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살아남았으니 밟혀야 강해진다는 논리가 맞긴 맞는 걸까? 우스개소리로 옛날에 천대받았던 존재들이 이 시대에 와서 그 한을 풀고 있다는 말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닌 듯 하여 실소를 머금게 하지만 오죽했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 싶기도 하다. 부록처럼 붙여놓은 세계의 천민(인도의 달리트, 일본의 부라쿠민, 유럽의 집시)편도 흥미로웠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