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 기름, 뜻밖의 살인자
데이비드 길레스피 지음, 이주만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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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선 우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지방에 대해 한번 알아보자. 포화 지방, 단일불포화 지방, 다가불포화 지방, 트랜스 지방 이렇게 세종류로 나뉜다. 포화 지방이니 불포화 지방이니 하는 말도 그렇거니와 트랜스 지방이란 말은 하도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상온에서도 수개월 동안 변질되지 않는 지방을 포화지방이라고 하는데 사람을 포함한 동물들이 갖고 있는 지방이 대부분 포화 지방이라고 한다. 상온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고 올리브유에 주로 들어 있는 것이 단일불포화 지방이고, 동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까닭에 음식으로 소량 섭취해야 한다는 것이 다가불포화 지방이다. 다가불포화 지방은 카놀라유나 해바라기유, 콩기름. 포도씨유, 미강유등과 같이 주로 씨앗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상온에 노출되면 단시간에 변질된다는 점이다. 올리브유 역시 식물성 기름이지만 씨앗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육에서 짜낸다는 차이를 보인다. 그런 까닭인지 책에서는 식물성 기름중에 그나마 올리브유가 가장 좋다는 말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많이 들어왔을지도 모를 트랜스 지방은 뭘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위적으로 변형된 불포화 지방으로 우리 몸에는 해롭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 트랜스 지방이 동물성 기름에는 극소량이 들어 있지만 경화 공정을 거친 식물성 기름에는 다량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식물성 기름을 먹고 싶지 않아도 마켓에 가면 온통 식물성 기름만 보인다. 솔직히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나름대로의 성분을 따져가며 먹는다는게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나쁘다며 내놓는 단어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도 않거니와 들어도 잘 모르니 이래서 좋으니 먹으라 하면 먹고 저래서 나쁘니 먹지마라 하면 안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보면 우리가 왜 식물성 기름만을 고집하며 먹어야하는지 생각할 여력도 그다지 많지 않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식물성 기름을 먹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던 사람, 몇이나 될까? 결론이야 늘 한결같다. 우리의 건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거다! 가축을 키우는 것보다 식물의 씨앗에서 화학적으로 기름을 짜내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란다.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면서 이익을 포기하라는 말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류의 책을 볼 때마다 나는 무척이나 화가 난다. 그렇다면 식물성 기름이 만연하기 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는 없었는가 해서 하는 말이다. 늘 이렇게 논쟁을 불러오는 주제를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것이 만연된 후에야, 다시 말해서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힘겨운 상황을 겪고 난 뒤에야 말이 나오니 한심한 일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책속에서 말하고 있는 식물성 기름을 피하는 장보기 법칙은 정말 끝내준다. 성분표와 친해져라, 그 많은 기름을 용도에 맞게 구분해서 써라, 빵을 살 때도 어떤 기름을 썼는지 알아보고 사라, 소고기는 사료가 아닌 목초를 먹인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일단 가공되어 포장된 제품과는 될수록 멀어져야 한다 등등등... 이제 왠만한 사람은 다 안다. 냉동 감자튀김은 피해야 하고 피자와 고기 파이등과 같은 냉동 제품도 되도록 먹지 말아야 하고, 설탕 함량을 항상 따져봐야 한다는 것쯤은. 저자의 말이 아니라도 뭐가 되었든 적당히 먹는 게 좋다는 것쯤은 말안해도 알 사람은 다 안다. 그렇게 따진다면 마켓의 진열대에서 보이는 제품들의 영양성분표 읽는 방법은 솔직히 있으나 마나다. 이 책뿐만이 아니라 이런 류의 책들이 이미 경고를 내린 성분들이 그 안에 즐비하게 써있는 까닭이다. 각설하고 결론은 정말 간단하다. 나라가 앞장서서 국민의 건강을 챙겨줄리 없으니 내가 키우고 내가 길러서 그것으로 직접 요리를 해먹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조미료까지도 본인이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말이니까 쉽다!!! 기업이란게 어차피 적은 비용 들여서 많은 이득을 얻어야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또 그들에게 의지한채 버텨나가는 것이 국가의 속성이다보니 그들이 사람들의 건강까지 챙겨주길 원하는 건 무리수라는 걸 인정하라는 말처럼 들려 뒷맛이 씁쓸하다. 우리 건강을 돌봐야 할 잭임이 있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기업편을 들고 있다는 말에도 그다지 화가 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일전에 읽었던 <탄수화물이 인류를 멸망시킨다>, <식량은 왜 사라지는가>, <우유의 역습>과 같은 책들이 떠오른다. 어디 이 책들뿐일까? 이런 주제를 다룬 책들은 찾아보면 더 많을 것이다. 우리의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놀라유, 해바라기유, 포도씨유가 오히려 성인병의 원인이라는 말이 상당히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하지만 먹든 안먹든 한번쯤은 집고 넘어가야 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해서 식물성 기름을 안먹을수는 없을테니까. 아주 오래전에 굴지의 라면회사가 '소고기 우지 파동'을 겪으며 라면 판매를 중단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일어난 지 8년만에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었다. 그때가 1989년이니 상당히 오래전의 일인데도 어제일처럼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결국 기업들간의 싸움에 소비자만 손해를 본 꼴이다. 내 가족을 병들게 하는 식물성 기름의 진실 이라는 책표지의 말을 허투루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에게 왜 이런 책들이 다가오는지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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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스킨
미헬 파버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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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또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보게 된다. 같은 이름으로 영화가 만들어져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보이지만 크게 기대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솔직하게 말해 책으로도 그다지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 탓이다. 인간을 사냥하는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외계인의 이야기가 아님을 금새 눈치챌 수가 있다. 부조리한 기업과 끝없는 탐욕을 내세우는 인간들의 갖은 행태가 책속에서 가감없이 보여지고 있음이다. 주인공 이설리라는 여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빨간색 도요타를 운전하며 히치하이커를 찾아 다닌다. 하지만 그녀가 차를 얻어 타고자 하는 모든 히치하이커를 태워주는 건 아니다. 차를 세우기 전에 히치하이커의 몸상태를 관찰하고 그가 쓸만하다 판단이 되면 그 앞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 나서 그가 사라져도 찾을 사람이 없는지를 탐색한다. 그러니 그녀에게 먹히는 사람의 부류는 뻔하다. 이 사회에서 버려지거나 사라져버리고 싶어하는 부류들이다. 그녀에 의해 농장으로 잡혀간 그들은 얼마간 사육되어지고 육가공품이 된다. 끔찍하게도!

 

별다른 감정과 느낌이 없는 그녀의 직장 동료들. 그들이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설정은 흥미로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워보이는 풍경속에 그녀의 직장인 농장이 자리하고 있다! 직업을 얻기 위해 희생당해야 했던 그녀의 육체를 상상해보는 맛도 그다지 나쁘진 않지만 원래 아름다웠던 육체를 희생함으로써 얻어진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일에 대한 회의감과 외로움으로 바닷가를 서성이고 내리는 눈의 아름다움에 도취될 수 있는 그녀의 짧은 감성을 통해 알 수 없는 아릿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인간을 사냥하고 그 고기를 먹는 외계인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외계인의 이야기가 아닌 탓일게다. SF소설이라는 이름을 빌려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 왠지 내안의 감정들이 서걱거린다.

 

어느날 찾아온 기업의 후계자 암리스 베스와 함께 지구의 한순간을 느끼는 장면은 이채로웠다. 문득 문득 찾아오는 일에 대한 회의감속에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이설리에게 그의 존재는 작은 돌멩이처럼 그녀의 가슴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그가 떠나고 그녀 역시 어디론가 떠나지만 그녀 앞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힘없는 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커가는 기업들, 누군가의 관심도 받지 못한채 버려지거나 사라져버리고 싶어하는 사회의 약자들, 어쩌면 영원히 변하지 않을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지탱할 수 밖에 없는 사회의 수레바퀴... 누군가는 넘어지고 누군가는 밟힌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들을 밟고 일어선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아닐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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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민정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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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슨 이유로? 그들이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이었다. 어둡고 습한 지하동굴에서 마주한 세남자는 도무지 자신들이 왜 그런 일을 당해야만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까닭이다. 두 남자의 발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고 한남자의 얼굴에는 철가면이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쪽지에는 철가면의 남자가 다른 두 남자에게서 50미터 이상 멀어지면 폭탄이 터진다고 적혀 있었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생각해 낸 것은 그들만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이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인연으로 이렇게 서로에게 묶여야만 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극을 만든다면 그럴 듯 하지 않을까? 하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연극이라면 이런 각본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한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장면들은 왠지 답답했다. 인간의 저 밑바닥 심리를 들여다본다는 책의 소개글도 어쩐지 껄끄러웠다.

 

세사람이, 그것도 한정된 공간에서 최소한의 조건으로 그곳에서 살아남거나 그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설정 때문인지 책을 읽는 내내 삐걱거리는 느낌을 버리지 못했다. 서로간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면서 자신들이 왜 그런 상황에 처해졌는지를 알게 되는 그들에게 일어날 일은 사실 뻔하다. 원망과 분열속에서 꺼져가는 한줌의 따스함이 그려질 거라는 걸 추측하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다. 거기서 인간 내면의 본성과 숨겨진 광기를 그려내고자 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전혀 공감대를 불러오지 못했다는 말이다. 어쩌면 놀라운 반전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를 결말마저도 이야기 도중 내게 이미 들켜버린 채 이렇다 할 공포감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말았다. 수작 스릴러라는 말이 왠지 무색하다.

 

흥미로웠던 점이 있다면 그들 중 한사람이 약간의 단서를 쥐고 있다는 거였다. 사느냐 죽느냐를 앞둔 그런 상황에서조차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인간의 내적 갈등을 그려내고 있는 부분이 잠시 나의 시선을 멈추게도 했다.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세남자의 연결고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나름 약간의 긴장감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결말부분에서 그만 그 작은 긴장감마저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건 뭐지? 복수라는 단순한 주제를 이렇게 풀어놓을 수도 있는거구나 싶은 허탈감?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울 뿐이다. 책의 제목 '현기증' 이란 말에 들었음직한 숨겨진 메세지를 그제사 발견하게 된다. 끝내 살아남아 (아니 살아남을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이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는 그에게 있어서 그일은 정말 현실이었을까? 알 수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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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법 - 경전선을 타고 느리게, 더 느리게
김종길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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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선을 타고 느리게, 더 느리게... 라는 책표지의 글에 눈길이 갔다. 경전선이라면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기차를 말하는건가? 책을 펼치면서도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말았다. 책은 더디게 읽혔다. 아니 느리게 읽혔다. 빨리 달려갈 수가 없었다. 여행자의 발걸음과 시선을 따라가자면 나 역시 빨리 갈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만큼 느낌이 강했다는 말도 될 것이다. 감동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었지만 천천히 젖어드는 그 알 수 없는 느낌이 참 좋았다. 이 사람, 여행하면서 참 행복했겠다 싶었다. 아니 여행을 참 행복하게 하는구나 싶어 내심 부럽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기차라는 경전선을 타고 그 느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작정하고 떠나지 않는다면 감히 도전하기가 쉽진 않은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간 여행자의 발길이 뒤에 오는 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 소망은 분명히 이루어질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행은 단순히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의 이동만이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로 옮겨가는 여정이다.' 라는 말이 참 좋았다. 경전선에 아직도 이름이 남아 있는 곳이 모두 60개라 한다. 그중에서 현재 기차가 서는 역은 34곳, 그나마 6곳은 무인역이라 한다. 기차가 서지않는 기차역은 쓸쓸할까? 이제 완전히 문을 닫아버린 역사가 16곳이나 된다고 하니 왠지 서글픈 기분마저 든다.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여행기를 읽는다는 게 참 좋았다. 마치 잔잔한 소설책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해서 하는 말이다. 글쓴이의 말처럼 장소와 장소만을 이동하는게 아니라 발길 가는 곳, 눈길 머무는 곳마다에서 찾아낸 작은 이야기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소소한 그 풍경들이 내 눈에도 보이는 듯 했다. 완사역에 내려 다솔사를 찾아가 보고 싶어졌다. 여행자의 말처럼 茶여도 좋고 多여도 좋다. 松이면 어떻고 率이면 또 어떠랴 싶다. 그가 보여주는 몇 장의 사진만으로도 나는 어느새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독립선언서와 등신불이 태어난 곳, 다솔사를 기필코 한번은 찾아가 보리라 한다. 득량역에 내려 밤이면 모두가 도망가버리고 만다는 그 강골마을의 바람소리를 나도 들어보리라 한다.

 

어디서 내리지? 고민하는 여행자의 그 마음이 느껴졌다. 관광안내소에 들러 지도한장 받아들고 어디를 가야할지 정하는 여행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여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기차가 버린 기차역의 옛모습을 보면서, 시골장터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의 표정을 보면서, 그의 마음은 따스해졌을것이다. 이 책속에서는 아직 남아있는 시골의 훈훈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의 발걸음속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어 더 뜻깊은 여정이 되었다. 그가 찾아갔던 작은 문화재들은 이채로웠다. 맛집순례를 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가보지 않았거나 미처 가보지 못한 작은 마을의 문화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시골장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반가운 여행기가 될 듯 하다. 앞선 사람의 뒤통수만 바라보며 가는 길이 아닌 사람과 자연이 자연스럽게 어울어지는 곳을 찾아다닌 까닭이다.

 

"지상에는 본래 길이 없고 그곳을 걷은 사람이 많으면 길이 된다" 라는 문구를 떠올리며 1년동안 묵묵히 길 위에 섰을 뿐이라는 글쓴이에게 다독임을 전하고 싶어진다. 뒷꼭지에 덤으로 달아준 경전선의 기차 시간표가 고맙다. 다른 꿈보다도 여행에 대한 꿈을 생각할 때마다 늘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여건이 주어진다면 사찰순례를 하고 싶다고, 그리고도 허락된다면 섬순례를 하고 싶다고. 아주 천천히 느낄 수 있는 시간속에서 그 꿈만큼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또 욕심을 부린다. 나도 저렇게 느리게 가는 기차를 한번쯤은 타보고 싶다고. 어딘들 가면 안좋을까? 그 안에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다면 더 좋겠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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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을 오라니 철학하는 아이 1
클레어 A. 니볼라 글.그림, 민유리 옮김 / 이마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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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못찾겠다 꾀꼬리..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며 뒤돌아보면 어느새 한발짝 앞으로 다가선 동무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동네 골목골목마다 아이들 노는 소리, 아이들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던 그 시절에 나는 있었다. 이런 저런 놀이를 할 때도 혼자서 하기보다는 여럿이 어울리며 놀아야 제맛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여럿이 어울려 노는 놀이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요즘의 아이들처럼 방안에 콕 들어앉아 오로지 컴퓨터 게임만 하는 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루해가 저물어 골목길이 어두워질 때까지 놀았다. 저녁 먹으라고 부르시던 엄마의 목소리가 귀가를 알리는 소리였다. 까맣게 탄 고사리손으로 구슬치기를 하던 그 시절의 그 장소, 거기가 고향이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푸근해져오는 그런 느낌을 주는 곳.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고향은 없다. 모두가 어울려 함께 웃고 떠들며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눠 먹을 줄 알았던 그 고향을 이제 어디에서 찾을까?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도 다시 차를 한참이나 달려야 만날 수 있었던 아버지의 마을. 그 마을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었다. 굳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詩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지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안고 살듯이 도시에 사는 사람은 도시에 사는 사람대로, 시골에 사는 사람은 시골에 사는 사람대로 저마다의 기쁨과 슬픔 하나씩은 가슴에 안고 산다. 어느쪽을 선택했든 자신의 몫인 까닭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전원생활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원래 우리가 살았던 그 시절의 모습은 아니었다. 모두가 함께 하는 그런 생활을 꿈꾸지는 않는다는 거다. 태어남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고 행복과 불행이 서로를 바라보는 작은 공동체, 마을이라는 이름을 우리가 잊고 산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문득 요즘의 광고 하나가 생각난다. 휴대전화만 바라보며 모두가 묵념의 시간을 보내는 걸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던. 끝없는 변화만을 꿈꾸며 사는 것처럼 달려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때로는 두려울 때가 있다. 가끔은 하늘도 보자고, 가끔은 풀과 나무와 꽃도 바라보라고, 가끔은 쉬어갈 때도 있어야 한다고 수없이 말을 해도 어찌된 일인지 앞으로만 달려가는 현대인들의 공허가 허허롭다. 사람은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처럼 서로 어울리며 마주보며 살아야 하는데...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잊고 사는 것들이 오롯이 오라니에 있었다.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어디 글쓴이 하나뿐일까? 이웃집의 문을 스스럼없이 두드릴 수 있고 그런 이웃을 웃으며 맞이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다시 오기는 올까?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네모난 박스안에서 수감자처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 한없이 서글퍼지게 되는 순간이다. 진정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되짚어보아야만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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