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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을 오라니 ㅣ 철학하는 아이 1
클레어 A. 니볼라 글.그림, 민유리 옮김 / 이마주 / 2014년 6월
평점 :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못찾겠다 꾀꼬리..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며 뒤돌아보면 어느새 한발짝 앞으로 다가선 동무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동네 골목골목마다 아이들 노는 소리, 아이들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던 그 시절에 나는 있었다. 이런 저런 놀이를 할 때도 혼자서
하기보다는 여럿이 어울리며 놀아야 제맛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여럿이
어울려 노는 놀이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요즘의 아이들처럼 방안에 콕 들어앉아 오로지 컴퓨터 게임만 하는 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루해가 저물어 골목길이 어두워질 때까지 놀았다. 저녁 먹으라고 부르시던 엄마의
목소리가 귀가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까맣게 탄 고사리손으로
구슬치기를 하던 그 시절의 그 장소, 거기가 고향이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푸근해져오는 그런 느낌을 주는 곳.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고향은
없다. 모두가 어울려 함께 웃고 떠들며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눠 먹을 줄 알았던 그 고향을 이제 어디에서 찾을까?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도 다시 차를 한참이나 달려야 만날 수 있었던 아버지의 마을.
그 마을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었다. 굳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詩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지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안고 살듯이 도시에 사는 사람은 도시에 사는 사람대로, 시골에 사는 사람은 시골에 사는
사람대로 저마다의 기쁨과 슬픔 하나씩은 가슴에 안고 산다. 어느쪽을 선택했든 자신의 몫인 까닭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전원생활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원래 우리가 살았던 그 시절의 모습은 아니었다. 모두가 함께 하는 그런 생활을 꿈꾸지는 않는다는 거다. 태어남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고 행복과 불행이 서로를 바라보는 작은 공동체, 마을이라는
이름을 우리가
잊고 산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문득 요즘의 광고 하나가 생각난다. 휴대전화만 바라보며 모두가 묵념의 시간을 보내는 걸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던. 끝없는 변화만을 꿈꾸며 사는 것처럼 달려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때로는 두려울 때가 있다. 가끔은 하늘도 보자고, 가끔은 풀과 나무와 꽃도 바라보라고, 가끔은 쉬어갈 때도 있어야 한다고 수없이 말을 해도
어찌된 일인지 앞으로만 달려가는 현대인들의 공허가 허허롭다. 사람은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처럼 서로 어울리며 마주보며 살아야 하는데...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잊고 사는 것들이 오롯이 오라니에 있었다.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어디 글쓴이 하나뿐일까? 이웃집의 문을 스스럼없이 두드릴 수 있고 그런 이웃을 웃으며 맞이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다시 오기는
올까?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네모난 박스안에서 수감자처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 한없이 서글퍼지게
되는 순간이다. 진정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되짚어보아야만 한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