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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평점 :
김 훈의 호흡은 길지 않다. 짧은 문장속에 내달리는 긴박함을 넣기도 하고, 짧은 문장속에 쉼의 평안을 넣기도 한다. 그걸 김 훈이 쓰는 문자의 매력이라고 느꼈고, 또 그 매력에 빠져들었었다. 그의 전작들 모두가 그랬다. 그 중에서도 <남한산성>이 주는 문장의 묘미는 정말 대단했었다. 그의 문장을 따라 달리면서 온전히 백성으로써의 감정에 푹 빠지기도 했었다. 은유인 듯 은유가 아닌 듯, 보여줄 듯 숨기는 듯, 그의 문장은 맛있다. 물론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그의 작품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랬음으로 이 책의 등장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인지 도무지 유추할 수가 없었다. 지레짐작하지 말라는 듯이. 들어가는 글과 나오는 글을 먼저 읽었다. 나오는 글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까?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이 이 말(言)인지, 이 말(馬)인지 알 수 없다. 이 말(言)이어도, 이 말(馬)이었어도 되새김이 필요하겠다고 책장을 덮으며 생각한다. 우리는 보통 문자로 전해져 내려온 것들을 역사라고 한다. 문자가 없어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는 나라와 문자가 있어 역사가 될 수 있는 나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책속에서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 '단'이라는 나라와 '초'라는 나라의 형식이 그랬다. 오로지 자연적인 흐름에 모든 걸 맡기는 초나라를 원시적이라고 말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해서 문자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단나라의 모습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 보이니 말이다. 나하를 사이에 두고 두 나라가 있다. 탈없이 살아가던 초나라의 왕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생각한다. 너무 오랫동안 저 건너편을 그냥 두었다고. 그리고 아들에게 유언처럼 마지막 말을 남긴다. 너는 가서 저 돌무더기를 치워라... 여기서 돌무더기란 단나라의 성을 말한다. 성벽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문득 이런 느낌을 받게 된다. 어쩌면 두 나라의 모습속에 문명과 문맹을 숨겨둔 것은 아닐까 하는. 자연적으로 살아간다고해서 모든 것이 불편하거나 뒤처지는 것만은 아니며, 문명화된 사회속에서 살아간다고해서 모든 것이 편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듯이. 개인적으로 자연적인 삶의 형태를 따랐던 초나라가 끝까지 남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시한번 문화적인 삶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가 말하는 역사서의 많은 장면들이 스치듯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적벽대전의 한 장면, 초한지의 한 장면, 도망의 와중에도 선조들의 어진만은 꼭 챙겨갔다는 조선시대의 어느 왕 이야기 등...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시원기』나 『단사』는 인간이 말(言)에 크게 의지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를 제 생각에 갇혀 있는 후세의 사가들이 빼고 보태서 기술한 서물인 까닭에 인간이 살아가는 일의 알맹이를 거머쥐지 못하는 문한의 헛발질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이 헛발질이 후세의 역사 서술에 자유의 공간을 허용했다는 학설이 있는데, 글쓰기의 두려움을 피해가려는 허무한 소리라는 공격을 받았다. (-253쪽) 여기에서 『시원기』나 『단사』는 책속의 초나라와 단나라의 역사서를 말한다. 초나라는 글로 남기지 않았기에 그다지 많은 것이 남지 않았고 단나라는 글로 남겼으나 그다지 믿을 만 한 것들이 없었다. 저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어쨌거나, 두 사서는 연대가 내려올수록 생활에 닿지 못하는 항담과 잡설이 뒤섞여서 이야기가 황잡하고 문장의 그물코가 풀어져서 걸리는 것이 없고 건더기가 빈약하다, 고. (-253쪽)
...말(言)이란 개 떼와 같구나. 풀어놓아서 마구 날뛰어야 힘이 생긴다. 말은 말(馬)로 막지 못한다. 개로도 막지 못한다. (-218쪽) 저자 김 훈의 전직은 신문기자였다. 세상의 모든 일들에 관여할 수 밖에 없는 직업이다. 많고 많은 말에 시달리며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많은 말을 글로 대신하는 것으로 바꾸었지만 뱉어내는 말보다 쓰는 말이 더 무섭다는 걸 저자도 한번쯤은 생각했으리라. 말(馬)을 빌려 날뛰는 말(言)을 표현하고자 했던 게 아닐까 싶어 뒷맛은 조금 씁쓸하다. 昨今의 현실이 그러하다. 도무지 날뛰는 말(言)을 잡을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