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 환문총
전호태 지음 / 김영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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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말은 '동북공정'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 변화로 인해 중국의 동북지역에 미칠 여러가지 영향과 충격을 차단하면서 국제질서에 대처하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의 역사를 대하고 있는 우리의 자세를 먼저 생각해야만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결국 고조선이나 부여,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사로 끌어안으려는 움직임이다. 우리의 역사와 무관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저들은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마음대로 볼 수 있었던 광개토대왕비도 지금은 마음대로 볼 수 없다고 하니 그들의 굳은 결의에 우리가 대처해야할 방법은 간단하다. 그동안 여러모로 홀대받아 왔던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나라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을 투자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역사전쟁이란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이 책은 환문총의 고분벽화가 왜 두 번 그려져야 했을까? 라는 의문점에서 시작한다. 한번 그리기도 힘들었다는 고분벽화가 왜 두 번 그려져야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고분벽화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이나 생활상을 배우긴 했어도 고분벽화가 어떻게 그려졌는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아 주제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더구나 국내 유일무이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자의 글이라 하니 더더욱 기대감이 컸다. faction...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을 보태 이야기를 구성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faction 형식의 글을 읽다보면 역사적인 사실과 허구가 하나로 뭉쳐지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분명 허구인데 사실처럼 느껴지는 그런 느낌 말이다. 그런 까닭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마치 사실이었던 것인양 느껴지는 부분들때문에 다시한번 시선을 정리해야만 했다. 당시 고구려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흥미로웠다. 저자가 상상했던 벽화를 그리기까지의 과정조차도 이채롭게 다가왔다. 일제 강점기를 통해 부질없이 망가져야만 했던 우리 역사의 흔적들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고구려인, 벽화 밖으로 나와 시대를 말하다!" 라는 책표지의 말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책속에 보여지는 많은 사진은 나도 모르는 새 집중하게 만들기도 한다. 중국 길림성 집안의 통구분지에서 볼 수 있는 고구려 초기의 고분군을 보여주는 사진이 내 시선을 오래토록 놓아주지 않았다. 구릉의 경사면이나 강가의 평지에서 많은 고분이 무리지어 분포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왕과 왕비의 무덤을 陵이라고 하고, 왕세자나 왕세자비와 같은 경우에는 園, 일반인들의 무덤을 墓라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면 '능'이고 누구의 무덤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면 '총'이다. 누구의 묘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천마가 그려져 있어서 천마총이고, 춤을 추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서 무용총인 경우와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무덤은 중국에 있는 고구려 고분으로 모두루총, 하해방31호분, 환문총, 장천1호분, 장천4호분이다. 그 중에서 환문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남방 벽면 일부에서 무용수의 모습 등 생활풍속의 장면이 회벽 안으로부터 배어나와 발굴 초기부터 조사자들의 눈길을 끌었던 까닭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벽화를 그린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 벽화의 제재및 주제가 바뀌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그려진 동심원문의 의미는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더구나 동심원문이 그려진 고구려 고분의 벽화는 환문총이 유일하다고 하니 고구려 고분벽화를 연구하는 학자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궁금증이 일었을 것이다. 

 

고분은 왕족이나 귀족들이 사후세계에서도 현세와 같은 영화를 누리겠다는 염원을 담았던 까닭에 거대하고 화려한 특징을 보인다. 고구려 고분의 형식은 고분의 구조나 벽화의 내용에 따라 구분되는데 4세기 후반~5세기경에는 양쪽에 측실이 딸린 전실과 그 뒤의 주실로 구성된다. 전실에는 부부의 초상화를 그렸고, 회칠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렸다. 6세기경에는 평면 자형을 띠고 있는데 전실의 규모가 작아졌다. 이때부터 당초무늬가 보이기 시작하고 도교적인 색채와 고구려 고유의 토속신앙적인 모습이 벽화로 그려진다. 현실세계와 사후의 세계를 무덤을 통해 연결시키려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용총이나 각저총이 대표적이다. 6세기 말~7세기에는 전실이 없는 단실묘로 벽에 회칠을 하지 않고 바로 그림을 그리는 형식이 나타난다. 전기부터 나타난 이 천장으로부터 주벽으로 내려와 전 공간을 차지하면서 색이나 선이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구조상 도굴이 쉽게 되어 있는 까닭에 부장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벽화를 많이 남기고 있다는 고구려의 고분은 주로 국내성 근처의 압록강과 평양성 주변에 분포하고 있다. 고분양식은 석총과 토총으로 나누어지는데 돌로 쌓은 석총은 적석총이라고도 하며 백제와 신라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토총은 평양 천도 이후에 주로 나타나는데 내부는 주로 석실분이다. 석총은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무덤양식으로 땅 위에 네모 반듯하게 냇돌을 깔고, 중심부에 목관을 안치한 후 그 위에 단을 이루면서 돌을 쌓아 덮은 것으로 관대가 지상에 위치한다. 석총이 더욱 발달하여 내부에 석실이 생기는 석실 적석총이 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장군총이다. 토총 양식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면서 중국의 묘제를 따라한 것으로 보이며 돌로 쌓은 현실(시체가 안치되어 있는 널방)을 봉토로 덮은 것이다. 석총과는 달리 바닥을 반지하 또은 지하에 두었고 벽면은 할석이나 판석으로 만들었다. 벽화를 그릴 때 할석의 경우에는 표면에 회를 바른 뒤 그렸고, 판석의 경우에는 돌 위에 직접 그렸다. 그렇다고 모든 토총에 벽화를 그린 것은 아니다.

 

책을 통해 불교가 전래되는 시기의 고구려 상황과 고구려 고분이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이나 벽화에 대한 생각을 다시한번 정리할 수 있었다. BC 1세기경 압록강 유역에서 부족 단위의 생활을 하고 있었던 고구려 건국세력들은 위만조선이 망한 자리에 한의 군현이 설치되고 토착민들에 대한 착쥐나 간섭이 심해지자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한군현을 몰아내고 연맹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때 중심이 된 것이 5부족인 계루부·소노부·절노부·순노부·관노부였다. 처음에는 소노부가 우세하여 왕의 지위를 계승하다가 AD 1세기 태조왕 때부터 계루부가 왕위를 세습했다. 만주 집안현의 국내성이 초기의 수도였다. 1세기 중엽에 옥저, 4세기경에는 고조선의 옛 땅에 설치되었던 낙랑과 대방군을 몰아내고, 5세기경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을 거치면서 영토를 확장했다. 남하정책을 추진했던 장수왕에 의해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고,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내기도 했으나 지배층의 내분으로 정변을 일으킨 연개소문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죽고 나서 그의 세 아들이 서로 싸우는 바람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668년에 무너지고 말았다. 고구려... 중국에게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우리의 역사가 분명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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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모노가타리 - 일본 고전문학의 최고봉 e시대의 절대사상 14
임찬수 지음 / 살림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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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작품에 어떤 매력을 느꼈던 건 아니었다. 히카루 겐지라는 남자의 일생을 그리면서 그 주변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그렸다는 것과 인생에 관하여 혹은 불교와 관련된 구도정신등을 담았다는 것 때문에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일본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이길래 그토록이나 길긴 인연의 끈으로 우리와 엮여 있는것인지 그게 궁금했던 건지도 모를일이다. 한 남자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볼 수 있었던 그들의 사상이나 생활상은 흥미로웠다. 우리말로 치자면 겐씨이야기다. 실제로는 상당히 많은 양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지만 한권으로 해석해놓은 작품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천황을 아버지로 둔 남자 히카루가 겐(源)이란 성을 하사받고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가는 이야기. 그야말로 최고의 조건으로 태어난 남자다. 아들보다 딸을 낳아 외척세력으로 권력을 누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는 당시의 시대상으로 볼 때 히카루 겐지의 여성 편력은 미루어 짐작할 만 하다. 의붓어머니를 사랑하여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까지 낳았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싶기도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본의 역사나 우리의 역사속에서 보여지는 생활상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역시 귀족의 이야기라서 그런 걸까?

 

일본 고전작품의 최고봉이며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본의 문학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말이 보인다. 물론 여러 방면으로 평가했을 때 그만한 저력이 있다는 말일 터다. 중세의 학자들이 부처님이 내리신 영험이 아니고서는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평했다하니 대단한 작품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작가는 궁녀였다고 한다. 그 당시의 궁녀가 지식인이었다는 말이 놀랍다. 그러나 생몰연대가 분명치않고 그녀의 이름 또한 분명치 않으니 어쩌면 더 환상적인 이미지를 불러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헤이안시대는 일본의 역사속에서 평화로운 시대였다. 그런 이유로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와 문학이 발달할 수 있었던 시대이기도 했다. 여자들에 의해 널리 보급되며 상용되었다는 가나문자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귀족층에서부터 자리를 잡게 되는 불교문화와 전통적인 신앙사상도 그렇고 일반인들의 생활속에 깊이 뿌리내렸다는 陰陽道에 관한 이야기가 이 작품에서 또하나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왕족과 귀족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보니 우리의 궁중역사와 비교되는 점이 보여 재미있게 읽었다. 같은 후궁이나 궁녀라해도 저마다의 계급이 있었다는 것과 당호가 곧 그녀들의 이름으로 불리워졌다는 것도 그렇고. 풍류를 사랑했던 우리의 왕족이나 귀족문화도 그에 못지 않아 보인다.

 

책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귀신이야기가 이채롭다. 그들의 전통적인 신앙이나 일반인들에게 깊이 뿌리박혔다던 음양사상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원령이 된다는 이야기는 좀 섬뜩하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모노노케히메를 떠올린다. 모노노케([), 즉 사람을 괴롭히는 死靈이나 怨靈으로 귀신을 말한다. 우리의 전통신앙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은 모든 것들에 영혼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정말로 많은 神과 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존재들을 모두 자신들의 생활과 묶어 생각했을테니 참 대단한 일이다. 오죽했으면 억울하게 죽은 원령들을 달랜다는 위령제로 고료에()라는 대대적인 종교행사가 있었겠는가. 여자가 한을 품으면 모노노케가 된다는 이야기의 배경은 일부다처였던 당시의 생활상과 관련이 있어보인다. 헤이안시대의 결혼상은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찾아가는 형식이었다고 하니 여자들은 한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궁중사에서도 흔히 보이는 것처럼 사랑을 빼앗긴 여자가 질투와 원한으로 인해 상대방을 저주한다. 하지만 그 마음이 生靈이 되어 상대방을 괴롭힌다는 건 정말이지 놀라운 발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본문학의 단면일수도 이는 하이쿠의 느낌을 참 좋아한다. 그 짧은 글귀속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이나 전하고자하는 메세지의 강함이 나쁘지 않다. ( 렌가나 하이카이에서 제1구를 칭하는 말로 5 7 5의 17음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것이 독립하여 하나의 시로 만들어진 것을 이르는 말로도 사용된다. 하이쿠() 또는 '호쿠' 라고도 부른다.) 책속에 아와레(あはれ)라는 말이 보인다. あはれ는 어떤 사물이나 사실에 감동하거나 감흥을 느끼는 것을 가리키는데 헤이안시대의 대표적인 미의식중 하나라고 한다. 본래는 와카에서 느끼는 감동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헤이안 시대의 평화로운 정서나 개인적인 미의식을 표현하는 말로 쓰였다. 예를 들자면 계절이 바뀌는 느낌이라거나 인생의 희노애락과 같은 감정, 혹은 갖가지 상황에 맞닥뜨린 인간의 감정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의 왕조문학이나 미의식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한가지 더, 와카에 대해 찾아보았다. 와카는 '야마토우타()', 즉 '일본의 노래'의 준말로서 일본의 사계절과 남녀간의 사랑을 주로 노래한 5·7·5·7·7의 31자로 된 일본의 정형시이다. 와카는 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일본인에 의해 일본어로 일본의 자연을 노래한 것'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와카는 렌가()나 하이쿠()의 발달 속에서도 귀족문화의 유산으로서 시가문학의 중심적인 위치를 고수했으며, 오늘날에도 그 형태가 변하지 않은 채 '단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아울러 우리문화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원작에 대한 욕심은 없다. 이제 일본서기를 읽어봐야겠다. 언제 읽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___^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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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삭슥삭 색연필 일러스트 - 만화일기와 웹툰까지 쉽게 배우는
원예진 지음 / Storehouse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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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터치만으로 많은 것을 표현하는 그림을 잘 그려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끝도없이 이런 류의 책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럴때미다 연습은 하지 않으면서 잘 그리기만을 바라고 있다는 확인 사살로 가슴에 커다란 구멍만 뚫려버리고 만다. 한심하게도 매번 그렇다. 어찌되었든 잘 그려보자고 마음을 먹었으니 높은 기대감으로 책을 펼친 건 사실이다. 만화일기와 웹툰까지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서. 그것도 색연필 하나만으로 모든 걸 끝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매혹적인 속삭임인지... 책을 펼치자마자 쏟아지는 이모티콘들에게 시선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우왕, 귀여워! 색연필선을 따라 보여지는 귀여운 그림들이 한가득이다. 단팥빵, 푸딩, 라면, 채소, 과일등 먹을 것이 가득하다. 그것뿐일까? 입는 것도 있고, 귀여운 동물과 식물도 있고, 공책이나 연필같은 문구류도 보이고, 여자, 남자, 아이, 어른.... 소재가 엄청 많다. 끝도없는 이모티콘들의 행렬이다.

 

솔직히 이런 형식의 만화를 싫어하지 않는다. 낙서하듯이 찍찍 그어대면서 산만한 분위기를 만드는 그림이나 만화보다는 간결하면서도 산뜻한 분위기를 만드는 그림이나 만화를 좋아하다보니 시선을 빼앗기는게 당연지사일지도 모르겠다. 급한 마음에 주루룩 책장을 넘기니 풍경이 나오고 두어컷으로 일기를 쓴 예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단숨에 풍경이나 일기까지 건너뛸수는 없는 일이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시작점에 주목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게 그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사람이나 건물을 그리는 건 더 어렵게 느껴진다. 동그라미를 먼저 그려주고 거기에 귀와 앞머리를 그린 다음 눈코입을 그려주면 아이 얼굴이 완성된다. 만약에 요리사라면 커다란 모자를 먼저 그려주고 아래쪽에 앞서 그렸던 얼굴 모양을 완성하면 된다. 머리 모양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아이도 되고 어른도 된다. 여자도 되고 남자도 된다. 직업에 따라, 혹은 국적에 따라 각자의 민속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달라지는 사람의 형태가 재미있다. 오호, 쉬워보이긴 하지만 싼타클로스도 만만치않겠는걸!

 

똥을 그린 것인지 엄지 손자락을 그린 것인지 살풋 웃음이 날뻔했는데 꼬리와 혀를 그려주니 뱀이 되어버린 과정도 재미있었다. 열대어나 젖소의 깜찍함은 한번쯤 따라 그려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오고,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의 전통인형 마트료시카는 꼭 한번 그려보리라 마음 먹게 된다. 구도와 배치 역시 중요하다. 무엇을 배경으로 둘 것이냐도 중요하고 누구를 중심에 둘것이냐도 중요하다. 만화이다보니 말풍선의 모양새도 한몫한다. 거기에 기쁨, 화남, 놀람, 슬픔과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효과를 넣어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뒷부분에서 보여주었던 '나의 하루, 만화일기'는 흥미로웠다. 그림일기는 아이들만의 전용이 아닌 까닭이다. 역시 연습만이 살길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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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후카마치 아키오 지음, 양억관 옮김 / 51BOOKS(오일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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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마치 아키오... 눈에 익지 않은 이름이다. 데뷔작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말이 보인다. 이 책이 영화의 원작소설이라는 말도 보인다. 일단 책의 두께에 압도당했다. 일본소설을 이렇게 두툼한 두께감으로 받아본지가 언제인지.... 책띠에 영화 포스터를 살짝 보여주고 있지만 책표지의 그림만큼 나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저 간단한 그림속에서 나는 무엇을 찾아내게 될까? 옮긴이의 이름속에서 <용의자 X의 헌신>과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의 이름을 보게 된다. 은근 기대감이 찾아온다. 그러면서 문득 반성하게 된다. 나는 너무 편협된 생각으로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추리소설이라는 말이 흥미로웠다. 오랜만에 조여오는 느낌을 전해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딸이 실종됐다... 로 시작하는 이 소설. 그러나 그 한마디만으로 모든 것을 알 것 같다고 섣부르게 짐작한다면 당신은 실패다. 책의 두께만큼이나 나를 조여오는 느낌이 실감났다. 딸의 실종이 안고 있었던 그 많은 삶의 무게들이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끝에 느껴지는 전율이 싫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아 온 이 느낌! 딸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한 아버지의 가뿐 숨결에 비해 사라져버린 딸의 이야기는 느긋하다. 자신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내미는 횟수가 다섯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그럼에도 그녀의 존재감은 깊은 수렁처럼 책속 세상에 빠져들게 만든다. 묘한 설정이다. 그러나 매력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조여오던 그 서늘한 느낌을 몰입도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사람은 누구나에게 상처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처라는 게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걸 우리는 안다. 작은 상처에도 더 많이 아파하고 더 깊은 상흔을 남긴다. 그렇기에 그 상처가 남기는 딱지는 더 견고하다. 이해하고 공감하기 보다는 서로를 탓하고 원망하기에 바쁜 우리네 삶은 서글프다. 이 시대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해 묻고 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토록이나 힘겹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이 시대를 정당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 수많은 핑계와 변명을 어찌해야 좋을지...

 

단순히 딸이 실종되었다는 설정하나만으로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사라진 딸을 둘러싼 욕망의 올가미는 단단했다. 일때문이라는 핑계로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던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등한시하며 살아왔는지를 후회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봐 줄 수 있는 그런 가족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드디어 재회가 이루어진 날. 삽으로 눈을 파헤치며 아버지는 딸에게 말했지. 너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줘. 그리고 마음속 모든 것을 말해 줘. 그리고 제발 나를 사랑해 달라고. 그리고 나를 용서해 달라고.

 

추리소설의 매력중 하나는 역시 반전이다. 그 반전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느냐에 따라 작품의 여운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 책이 보여주는 반전속에서 이 시대의 아픔을 보게 된다. 어두웠던 나의 청춘을 짜증스럽게 생각하며 글을 썼다던 작가의 한마디를 떠올린다. 이 소설의 세계에 공감할 사람도 분명 있을것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말했었다. 찬란한 태양을 향해서 침을 뱉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상당히 역설적이며 은유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분명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간이 아니었을까? 사람의 마음을 포기한 채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현실은 따스함과 평온을 잃어버렸다. 여유로운 눈길과 다정한 말 한마디를 잃어버렸다. 그 갈증을 누가 해결해줄까? 우리는 어쩌면 다시 선사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정말 오랫만에 멋진 소설을 읽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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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 서울의 풍경과 오래된 집을 찾아 떠나는 예술 산보
최예선 지음, 정구원 그림 / 지식너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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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책의 제목이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오후 세 시, 일상적으로 가장 나른한 시간. 그러나 그곳으로부터 내게 오는 어떤 것들. 상상만으로도 가슴 한쪽에 따스한 햇살을 비추어 주는 것만 같아 처음 책을 받았을 때 약간의 설레임도 있었다. 예술 산보라는 말이 참 좋았다. 서울이 품은 예술가는 많을 것이다. 그 중에 어떤이의 이름을 불렀을까? 우선은 글쓴의 예술 산보가 상당히 깊어 보인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서서>라는 최순우님의 책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우스개소리처럼 우리는 말했었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서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그리고 또 무엇을 느꼈느냐고. 답사하는 사람중에서도 폐사지를 찾는 사람은 고수다. 형체는 없고 전해오는 이야기만 있을 뿐이니 그곳에서 그 오랜 세월의 흔적을 만나서 느낄 수 있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까닭이다. 그런데 이 책의 글쓴이는 작가의 이름과 화가의 이름을 부르고, 건축가의 이름과 조각가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과 그의 작품들이 남겨 둔 흔적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많은 것을 나누어 받는다.

 

오래전, 문득 학창시절이 그리워 그 시절의 거기를 찾아가보기로 작정하고 버스를 탔었다. 청진동 해장국집은 여전한데 그 골목 어귀가 많이 바뀌었구나, 종로구청은 안녕하신가? 물으니 그 주변 역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교복을 입고 학우들과 웃고 떠들며 지나쳐가던 그 길이 품었던 모습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때는 여기가 이렇지 않았었다고 그저 생각할뿐, 하교길에 들러 친구와 먹던 그 라면집이 그리웠다. 아주 오래되고 낡아서 귀신 나올 것 같다고 말했던 학교건물은 빨간 벽돌로 지어져 정말 운치있었다. 벽을 타고 오르던 담쟁이덩굴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왔었는데... 지금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돌로 된 표지석만이 덩그마니 앉아있었지... 오래된 것들은 그냥 거기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춘곡의 집을 들여다보며 글쓴이가 '복원'에 대해 이야기 할때는 공감하는 바가 엄청 컸다.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져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이 사라지고 있는지. 세월이 흐르면 부서지고 망가지는 게 맞을텐데도 우리는 어쩌면 그리도 편협된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글쓴이의 말처럼 무조건 원형대로 복원해야 한다는 데 나 역시도 동의하지 않는다. 보기에 껄끄럽다는 이유만으로 새롭게 지어진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공존, 애도, 사유라는 큰 테두리속에서 글쓴이가 만난 사람은 많았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곳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어떤 것을 찾아내는 글쓴이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 구보 박태원의 경성 산보를 따라가며 함께 유쾌했다. 박수근의 창신동집이 없어져버렸다는 건 큰 아쉬움을 남겼다. 나혜석에 대해, 기형도에 대해, 윤동주에 대해 나는 무엇을 알고 있었던가. 또다른 시선으로 다가설 수 있었던 시간이 되기도 했다. 책의 말미에 반가운 이름이 보였다. 건축가 김중업. 가까운 곳에 김중업박물관이 개관을 했는데도 나는 아직까지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가 지었다는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박물관으로 얼굴을 바꾸고 최초로 작가에게 헌정되었다는. 아울러 김중업과 김수근의 건축열전도 흥미로웠다. 희정당의 벽화를 보러 창덕궁을 가야할 것 같다. 성북동 심우장으로 올라가는 좁은 골목길이 그립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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