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첫 번째 태양, 스페인 - 처음 만나는 스페인의 역사와 전설
서희석.호세 안토니오 팔마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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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가 맞냐? 스페인이 맞냐? 한동안 어느쪽이 맞는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둘 다 맞다. 에스파냐를 영어식으로 스페인이라 한다니. 그런데 그 스페인이 유럽의 첫번째 태양이란다. 보통은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하는데. 스페인의 역사와 전설을 알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은근 기대했다. 여행서처럼 풍부한 사진과 함께 읽혀질 스페인의 역사를. 그런데 책장을 넘기기가 그리 쉽진 않았다. 무슨 인명사전도 아니고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식의 나열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시대를 나열하며 그 시대의 인물 이름만 잔뜩 보여주는 형식인데, 이건 같은 이름에 숫자만 바꿔 ㅇㅇ1세, ㅇㅇ2세 식으로 나열이 되니 재미를 느끼기에는 좀 무리였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눈과 귀에 익었던 지명들이 언제 나올까 기다렸다. 투우의 고장이라는 스페인... 플라멩고의 도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세비야, 알함브라궁전의 그라나다 등등.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해 준 곳은 세비야의 알카사르였다. 성곽궁전이란 뜻을 가진 알카사르는 이슬람 세력의 지배 흔적이라고 한다. 기독교와 이슬람 양식을 모두 보여주고 있는데, 7세기에 무어인들이 요새를 지었는데 9세기에 요새를 궁전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아마도 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는 곳이 아닐까 싶어 한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스페인의 도시중에서 마드리드나 툴레도는 가톨릭의 중심지이며, 세비야가 속해있는 안달루시아 지역은 이슬람교도의 지배가 가장 길었던 지방으로 아랍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나 '카르멘'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 바로 세비야다. 우리가 재미있게 보았던 '돈키호테' 를 쓴 세르반테스도 스페인 사람이다. 책을 읽다보니 세비야의 역사와 전설이 주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고대 이베리아 시대부터 이민족의 침략을 가장 많았다는 도시. 카이사르에게 정복되어 로마의 속주가 되기도 했고, 서고트 왕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던 곳. 그후의 시대에도 수도 역할을 했으며 히랄다 탑으로도 유명하다는 도시가 바로 세비야였다. 히스팔리스라는 옛이름도 왠지 멋져 보인다. 상당히 비옥했던 과달키비르 강 연안에 있다보니 아마도 풍요의 땅이었을 것이다. 15세기 말, 최고의 전성기때에는 스페인 최대의 성당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17세기에는 카디스에 밀려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역사적인 도시가 되었으니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듯하다.

 

스페인은 우리나라처럼 반도지역이다. 가끔 다큐프로를 통해 여러 민족이 모인 스페인에서는 민족간의 갈등이 상당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잘은 모르겠지만 축구를 매개로 똘똘 뭉친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만 봐도 그렇게 보인다. 하여 반도의 특성을 가진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그들에게는 신기하게 들리기도 한다는데 뭐, 솔직하게 말해 우리도 그렇게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크게 외칠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스페인은 상당히 개방적인 성격을 가졌던 듯 하다. 콜럼버스의 항해를 도와준 것도 스페인의 이사벨여왕이었으니. 그렇게해서 스페인의 식민지가 수도없이 늘어갔을테고, 거기서 나오는 교역물품 또한 대단했을 것이다. 멕시코와 페루를 통해 스페인으로 유입되었던 은의 양은 정말 대단했던 모양이다. 더구나 아메리카의 식민지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모직공업의 수익도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그러니 첫번째 태양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언어의 사용도도 단연 일등을 달린다. 그렇게 깊고 긴 스페인의 역사를 짧은 시간안에 이해한다는 건 역시 무리다.

 

그야말로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써의 스페인이 되었던 때는 이사벨여왕과 페르난도 왕을 외조부모로 하는 합스부르크가의 카를소스1세때부터였다. 그의 통치하에서 스페인 본국과 많은 식민지를 통합하여 절대주의를 완성시켰다. 같은 반도지역의 나라로써 우리의 쇄국정책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도 저들처럼 모든 민족의 문화와 융합되어지는 상황이 되었더라면 아마도 스페인보다 더 크고 멋진 역사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문화는 다른 것을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색채를 띠는 것으로 재탄생되며 정체성을 부여받게 된다. 우리에게도 충분히 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아깝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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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상식에 딴지걸다 - 지적인 사람은 절대 참을 수 없는, 황당하고 뻔뻔한 역사의 착각
안드레아 배럼 지음, 장은재 옮김 / 라의눈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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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에서 기독교도들이 사자에게 던져졌다는 건 거짓말이다. 왜냐고?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 할 당시에는 원형격기장을 짓는 중이었다! 16세기의 교황 피우스 5세가 성물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콜로세움의 모래를 가져가라고 했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콜로세움과 순교자라는 이미지가 연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이런이란 시인에 의해 스파르타인들은 유명해졌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테르모필레 전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스파르타, 테스피에, 테베, 미케네 사람들까지 포함해 6천~7천명의 사람들이 전투에 임했다. 300이란 숫자는 그저 시인의 상징적인 숫자에 불과했을 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위에 올라 동네를 한바퀴 돌아야했던 여인 고디바. 마을 사람들을 세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해 그토록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는데 속을 들여다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그녀의 남편 레오프릭 백작에게는 세금을 철폐할 권한이 없었다고 한다. 거기에 맞춰 'Peeping Tom'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그녀의 알몸을 훔쳐본 톰이란 남자의 눈이 멀었다는 이야기로 '엿보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역시 한 장의 그림때문에 생겨난 웃지 못할 이야기에 불과하다. 인디언 처녀 포카혼타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탐험가 존 스미스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그저 음식이나 선물, 혹은 중요한 메세지를 주고 받는 일의 중개인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실제로 1614년 포카혼타스는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이름을 레베카로 바꿨고 영국계 존 롤프와 결혼했다. 그것뿐일까? 그저 평범했던 무희 마르가레타. 그녀는 어쩌다가 이중간첩의 누명을 쓰고 총살형을 당해야 했을까?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던 그녀는 프랑스 파리에서 마타하리라는 예명으로 춤을 추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비밀요원이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고 하는데, 그녀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평온한 모습으로 죽어갔다던 그녀의 이야기는 왜, 어떻게,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우리가 지금까지 천사라는 별칭으로 불러주는 나이팅게일 역시 전장속을 누비며 간호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녀는 단지 병원괸라자였을 뿐이었다. 피부가 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간호사로 채용되지 못했으나 자비를 털어 크림 반도로 향했던 여인이 있었다. 크림전쟁에서 나이팅게일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전선에서 헌신했던 메리 시콜이란 간호사였는데 우리는 어째서 이 여인의 이름은 기억하지 않는 것일까?

 

스코틀랜드에서 남자들이 입는 치마 모양의 전통의상인 킬트. 클랜 타탄 무늬가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왔다는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만들어진 전통>이란 책속에서도 이미 밝힌 바가 있는 이야기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는 만들어진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필요에 의해서, 혹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이미 있었던 이야기가 다시 각색되어지거나, 편집되어져 새롭게 태어나기도 하고, 부풀려지거나 왜곡되어지기도 한다. 진실은 그 이야기의 뒷면에 숨겨진채로. 조작과 의도에 의해 숨겨진 진실이 서글플 뿐이다. 사람의 뇌는 신기하게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한다. 이미 믿었던 것에 대한 오류를 수정하는 데에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거기에 자신에게 이로운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다면 어쩌면 그 오류가 수정될거라는 기대는 버리는 게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숱한 세상의 거짓말을 바로잡는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바로잡을 수는 없어도 우리가 무엇을 잘못 알고 살아가는지, 왜 그런 착각을 해야 했는지 그 진실만큼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렇게 상식에 딴지 거는 책은 많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환영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이유때문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알아야 한다는 것, 그 이면에 감춰진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져야만 하는 것들...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펼쳐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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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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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에쿠니 가오리 책 맞아? 일단 의심부터 한다. 책의 두께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중에서 이렇게 두꺼운 게 있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끌었던 책. 그건 솔직하게 말해 에쿠니 가오리라는 이름때문이다.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이란 제목을 보면서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포옹을 하거나 밥에 소금을 치거나... 그러나, 평범한 줄 알았던 우리의 일상속에서 찾아낸 이야기라는 말은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커다란 서양식 주택에서 살고 있는 야나기시마 일가의 일상을 거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하나둘씩 보여주고 있다. 3대에 걸친 가족사다. 거기다가 우리식으로 말한다면 다문화가정이다. 거기까지라면 그래도... 하겠지만 이건 또 무슨? 네명이나 되는 아이들마저 서로 다른 어머니나 아버지를 가지고 있다. 독특한 설정! 그러나 몰입도는 괜찮았다.

 

책장을 덮으면서 묻는다. 그래서 뭐? 이 사람들이 행복했던거냐고 묻고 싶은거라면 단연코 행복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핑게없는 무덤없고, 사연없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가슴속에 사연 하나씩은 품고 산다는 말일터다. 각각의 사연을 나의 시선으로 혹은 가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절대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많은 사람중에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 몇이나 될까? 자신의 선택에 혹은 자신의 판단에 그것이 옳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누구나 가지않은 길에 대한 욕망을 꿈꾸지만 혼자사는 세상이 아닌 까닭으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맞추며 살아가거나 주변인들과 어울어지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욕망대로만 움직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야나기시마 일가의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했었던 거라고 나는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기막힌 사연 하나씩을 들춰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불행한 일이었다거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 보인다. 채워지지 못한 자신의 한쪽 가슴을 적당하게 채워가며 살아가고자 했던 것일 뿐. 저마다의 사연들은 묘하게도 모두의 삶에 동화되어진다. 어쩌면 그런 일들이 표시나지 않게 박혀버린 가시같은 것이라해도 덧나지 않게 받아들일 줄 아는 야나기시마 일가의 유연함이 놀라울 뿐이다. 저 가족을 통해 받아들이며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한번쯤은 벗어나고 싶은 일상의 굴레는 결코 나를 옭아매는 올무가 아니라는 말이다. 문득 나도 책속으로 들어가 야나기시마의 가족으로 한번 살아봤으면 싶어진다. 평범한 것이 위대한 것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들속에 어색함과 어긋남도 존재하는 것이다. "가엾은 알렉세이에프", "비참한 니진스키", "라이스에는 소금을" 과 같은 말들은 그들만의 주문이다. 가슴속에 뭔가가 차오를 때 그것을 다독이기 위한 하나의 주문.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들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며 견뎌내기 위해 만들어진 그들만의 주문인 것이다.

 

'언뜻 보면 행복한' 가족 이야기라는 말이 책의 뒷표지에 보인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지만 속으로 곪아가는 가정, 꽤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런 걸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관심밖으로 밀려난 채 살아가고 있는 나이외의 가족 구성원에 관한 이야기다. 어찌보면 상당히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춰질지도 모를 야나기시마 일가의 삶속에서 우리의 현살울 보게 되었다면 억지일까?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일 것이다. 특별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는 야나기사마 일가와의 만남은 나쁘지 않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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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구두당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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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의 잔혹동화를 읽어보자고 생각했으면서도 여태 읽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바라보면 참 한심하기도 하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내용의 동화들이 사실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말이 상당히 매혹적이었는데.... 원래는 잔혹했던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화로 순화되어졌다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결말 역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을거라는 말이다. 책표지의 그림이나 제목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 이 책이 바로 그런 동화의 또다른 모습이라는 말때문인지 기대감이 컸다. 책속에 실린 원작만 해도 무려 열여섯편이나 된다.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를 시작으로 <성냥팔이 소녀> 도 보이고 < 개구리왕자>, <황금 거위와 웃지않는 공주님> 과 같은 그림형제의 동화가 있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다만 새로워질 뿐이다... 책표지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글쓴이는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잔뜩 비틀린 이야기들..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뭔가 찜찜하다. 동화가 아름다워야 한다는 편견 따위는 아예 잊어버리라고 하는 것처럼 어디선가 많이 들었음직한 이야기속에 우리의 현실이 담겨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그러니 책속의 이야기들이 밝고 예쁘게 그려지지 않은 건 당연지사다. 자신의 색깔 혹은 정체성 따위는 잃어버린지 오랜 작금의 우리 모습이 <빨간구두당>이란 이야기속에 담겨져 있다. 무채색의 세상속에 불현듯이 나타난 빨간 색. 그 빨강에 현혹되어져 대책없이 따라하기만 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속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투영되어진다. 스스로 올가미를 만들어 자신의 목을 그 안에 집어넣고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끝내는 빨간구두당을 자처하며 휩쓸려 다니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목적의식도, 목표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 민담이라는 <커다란 순무> 속에서 느껴지는 뒷맛은 씁쓸하다. 지금의 우리에게 보여지는 관료층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동화를 빌려와 이렇게 우리의 현실을 비틀고 있다는 게 어찌보면 속시원할 수도 있겠지만 영 개운치않은 느낌 탓인지 입맛이 쓰다.

 

동화를 각색했으니 읽기 편할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은유의 세상이라는 게 그렇다. 쉬운 듯 쉽지 않은, 뭔가 잡힐 듯 하면서도 쉽게 잡히지 않는 그런 세계가 은유의 세상이다. 개인적으로는 편하게 읽혔던 책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동화인 듯 하지만 동화가 아니고, 그렇다고 이미 알고 있는 동화내용을 제쳐두고 그저 어른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엔 좀 억지스러운 맛도 느껴진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고 칙칙하다. <성냥팔이 소녀>를 읽으면서도, <빨간구두당>을 읽으면서도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빤히 보여지는 진실을 외면하는 작금의 현실속에서 핑크빛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에게 밝은 미래가 있기는 있는 것일까? 문득, 동화는 그냥 동화로 남아있어주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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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경주 오늘은 시리즈
이종숙.박성호 지음 / 얘기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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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나라 자체가 박물관이란 말이 있다. 우리에게 경주는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어느 곳이든 파기만해도 유물이 나온다는 경주. 경주를 생각하면 항상 아쉬움이 먼저였다. 아주 오래전 학창시절에 수학여행으로 가 본 경주에 대한 기억이 전부였던 까닭이다. 그러다가 몇 년전에 부푼 기대감을 안고 경주를 찾았었다. 하지만 짧은 일정으로 많은 곳을 보지 못했기에 역시 또다른 아쉬움만 남기고 말았다. 하얀 카라와 까만 치마를 펄럭이며 달려오신 분들이 첨성대 앞에서 옛날과 똑같은 자세로 소녀처럼 까르르 웃으며 사진을 찍던 모습이 생각난다. 족히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으로 보이던 분들은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기억하며 당시의 교복을 모두 입고 오셨다는 말씀에 거기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받았었다. 경주는 그런 곳이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잊을 수 없는, 그러나 꼭 한번은 다시 찾아가고 싶은 그런 곳. 그런 경주가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는 우리의 문화를 바라보는 창구가 되었다는 건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천불천탑이란 말을 앞세우는 운주사를 처음 찾았을 때 벅차 오르던 감정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유물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느라 발길이 늦어지는 나를 보고 그렇게 보다가는 오늘 하루 왼종일 봐도 다 못본다며 재촉하던 일행에게 미안해 마음을 추스리기도 했었는데, 경주와 다시 만나는 날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빠르게 걷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경주와 다시 만날 기회만 엿보고 있으니.... 경주. 말만 들어도 이렇게 나를 설레게 하는 곳. 그런 경주를 가잔다.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끌어주는 이의 발길이 예사롭지가 않다. 각 구간별로 요소요소 들여다보는 눈길도 예리하다. 이런 고수를 따라다닌다면 저절로 공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주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보고 싶어서 나름 공부를 하고 답사를 떠났다는 글쓴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진리다.

 

경주에 다시 간다면 남산을 꼭 올라보리라!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글쓴이를 따라 오르던 경주 남산길은 황홀했다.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보여주는 사진들조차 너무 소중하게 다가왔다. 경주를 가게 된다면 이 책도 분명 나와 동행하게 될 것 같다. 삼릉의 아름다운 소나무숲에서부터 할매부처라고 불리워진다는 불곡마애여래좌상까지... 내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하는 칠불암마애불상군, 동서탑의 모양이 서로 다른 남산동동서삼층석탑, 황룡사 탑과 같은 신라의 목탑을 연구하는 데 귀한 자료가 된다는 부처바위의 9층동탑과 7층서탑의 모습은 아무래도 직접 가서 봐야 할 것 같다. 부처바위는 탑곡마애불상군을 부르는 또다른 이름이라고 하는데 커다란 바위에 동서남북 어떤 방향에서 보든 다양한 그림이 조각되어 여래상은 물론 보살상, 비천상, 사자와 탑등 무려 34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바위에 탑까지 새겼다니 신라를 불교의 나라라 할 만하지 않은가 말이다. ' 이 편지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는 신라 소지왕의 일화가 담겨있는 서출지와 이요당의 고즈넉한 풍경이 담긴 한장의 사진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커다란 바위에 부처님의 머리를 덩그러니 올려놓은 모습의 굴불사지석조사면불상 또한 너무 보고싶은 문화재중의 하나다.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던 순간들이었다. 숙제가 너무 많아지고 말았다!

 

책표지에서 보이는 탑은 감은사지삼층석탑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게는 동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의 침략이 고민이었다고 한다. 그것을 알고 있던 문무왕은 자신이 죽은 후에 시신을 화장해 동해바다에 묻어주면 해룡이 되어서 왜구들을 물리치겠다고 유언을 했다. 그 유언을 받들어 문무왕을 안치한 곳이 바로 대왕암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는 가장 높고 우람하다는 감은사지탑은 복잡한 목탑 구조를 단순화시킨 석탑 양식의 시작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탑의 정점을 찍었다는 석가탑보다 다보탑을 더 좋아한다. 맨날 봐도 그게 그거 같다고 생각했었던 탑을 보면서 내 마음과 눈길을 사로잡았던 부여 장하리 3층석탑과 익산 왕궁리 5층석탑이 떠오른다. 신라를 이야기하면서 웬 백제탑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저 생각이 나서 하는 말이다. 경주, 역시 멋진 곳이다. 글쓴이가 책을 시작하며 했던 말을 되뇌어본다.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먼저 생각한 것은 생활의 환기나 치유가 아닌 학습을 위행 여행이었다는 말.. 그러나 어찌 학습뿐이었을까? 분명 치유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여행안내서가 아니라 개인의 경험을 담은 아주 사소한 보고서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는 말처럼 다음을 기약하는 글쓴이의 다짐이 부럽다. 가본 곳보다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은 경주. 그 경주와 하루빨리 만나고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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