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지나간 후
상드린 콜레트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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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이 폭발했다. 그리고 이어 밀려드는 쓰나미. 쓰나미는 인간의 삶을 초토화시킨다.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아간다. 거대한 지진해일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점점 조여오는 물, 그리고 섬이 되어버린 한가족의 평온했던 쉼터. 이제 모든 것을 삼켜버린 바다는 그 가족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9명의 아이들과 부모가 할 수 있었던 건 괴물처럼 스멀거리며 자신들의 쉼터를 갉아먹고 있는 바닷물을 바라보는 것 뿐이다. 작아지는 섬에서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할까? 결국 아버지는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작은 배에 탈 수 있는 인원은 고작 8명뿐이다.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데려가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아버지는 떠났다. 그리고 남겨진 아이들. 한쪽 다리를 저는 루이와 한쪽 눈이 성치않은 페린과 또래에 비해 빈약한 몸을 가진 노에. 뭔가 부족한 녀석들이 선택되었다.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소설은 떠난 자와 남겨진 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떠난 자도, 남겨진 자도 함께 겪어야 할 심리적인 압박감이 책을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이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가 아니라 그들에게 닥쳐올 고난과 그들이 겪어내야 할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심장이 졸아들 수 밖에 없다. 모든 마을을 집어 삼키고도 너무나도 평온한 모습으로 그들앞에 펼쳐진 끝없는 바다가 어느 순간에 화를 내게 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사실 그런 설정이 조금 뜬금없기는 했다. 지진해일이라는 재해가 저리도 평온한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바다가 아니라 그 바다의 위협속에서조차 살아남아야 하는 한 가족의 고통스러움이다. 또한 버리고 떠난자와 버림을 받은 이들의 갈등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속에는 아주 작은 희망이란 것이 숨을 쉰다. 모순일까?

소설은 떠난 자의 시선과 남은 자의 시선을 서로 교차시킨다. 너무나 상투적인 소재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이상 기후로 인한 자연재해도 그렇고 누가 남고 누가 떠나야 하는가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기준 역시 너무나도 뻔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번쯤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면 이상 기후를 만들어내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이며, 그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이다. 세명의 아이들을 남겨두고 떠났음에도 엄마는 또다시 두명의 아이를 잃게 된다. 결국 살아남았으나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지키기위해 남겨진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엄마의 모습에서 살기 위해 떠나는 한 여자의 굳은 의지를 보게 된다. 남겨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를 만났을까? 잔인하게도 작가는 독자에게 묻고 있다.

책을 읽고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오래전에 읽었던 <파이 이야기>였다.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이 동물들을 싣고 이민을 가던 중에 폭풍우를 만나 침몰하고 파이는 간신히 구명보트에 올라 타 표류하게 된다. 다친 얼룩말, 굶주린 하이에나, 오랑우탄 그리고 보트 아래에 숨어있던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굶주림으로 인해 동물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결국 파이와 리처드 파커만이 배에 남게 된다. 이제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파이와 리처드 파커의 교묘한 동거가 시종일관 눈길을 사로잡았었다. 이 소설 역시 그 <파이 이야기>처럼 아주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야기의 흐름조차 껄끄럽지가 않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나 자신이 떠난자가 되기도 하고 남겨진 자가 되기도 한다. 흥미로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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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박규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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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일상생활을 통해 학습되는 존재 (-26쪽)

자기만 옳다고 믿는 그런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생활 양식을 알게 됨으로써 오히려 자기 자신의 문화를 더 깊게 사랑할 수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유쾌하고 풍부한 경험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해 버린다. 지나치게 자기방어적인 태도로 인해 그들은 다른 나라에 대해 그들 자신의 특수한 해답을 강요하는 것말고는 다른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30쪽)

일본인들은 어떤 하나의 행동 방침에 모든 것을 걸며 만일 그것이 실패할 경우에는 다른 방침을 취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했다. (-72쪽)

일본인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각자 알맞은 자리를 취한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일본인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계층적 위계질서에 대한 그들의 신뢰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우리의 신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일본인은 일본 국내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 관계의 문제도 계층적 위계질서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한다. 지난 10여년간 그들은 일본이 국제적 위계질서라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여겼다.(-75쪽)

종교적 고행에 몸을 바친 일부 종교전문가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일본에서 종교란 결코 엄격하고 금욕적인 관념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물론 일본인들은 신사와 사찰을 참배하는 종교적 순례에 열성적이지만 이는 또한 휴일을 즐기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129쪽)

일본의 조상숭배는 최근의 조상에만 한정되어 있다. 일본인은 누구의 무덤인지를 확인하려고 매년 묘비의 문자를 고쳐 쓰지만,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조상의 묘비는 치워버린다. 또한 그런 조상의 위패는 불단에 안치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일본인은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사람외의 조상에 대한 효행은 별로 중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들은 오직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집중한다. (-173쪽)

일본인에게 영원불멸의 목표는 명예다. 이를 위해서는 타인에게 존경받는 것이 필수다. 이와같은 목적에 도달하고자 사용하는 수단은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취할수도 있고 버릴수도 있는 도구일 뿐이다. 일본인은 상황이 바뀌면 재빨리 태도를 바꾸며 그것을 서구인처럼 도덕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자기 욕망의 만족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은 육체적 쾌락을 좋은 것, 함양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쾌락 추구가 가치있는 것으로 존중받는다. 하지만 쾌락은 그 적절한 자리에만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의 중대한 영역을 침해하거나 침입하도록 놓아두어서는 안된다. (-234쪽, 241쪽)

각자의 영혼은 본래 새 칼이 그렇듯이 덕의 빛을 발한다. 다만 갈고 닦지 않아 녹이 슬수는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인들은 '자기 자신의 몸에서 나온 녹'은 칼의 녹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다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사람은 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격이 녹슬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한다. 하지만 설사 녹이 슨다해도 그 녹 밑에는 여전히 빛나는 영혼이 있고 그것을 다시 한번 갈고 닦기만 하면 본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268쪽)

일본인은 각자의 생활이라든가 혹은 자기가 아는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판단을 내린다. 즉 그들은 의무의 법도를 저버리고 개인적 욕망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을 약자로 판단한다. 그들은 모든 일을 이런 식으로 판단한다.(-278쪽)

일본인은 죄의 중대성보다는 '하지恥'의 중대성에 더 무게를 둔다. 일본인은 '하지恥'를 도덕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즉 '하지'를 느끼기 쉬운 인간이야말로 모든 율법적 선행을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타인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 추측하면서 그 판단을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 방침을 정한다. (-295, 296쪽)

일본에서는 '붓다'를 '호토케佛'라고 부른다. 불교에서 '붓다'란 원래 '깨달은 자'를 일컫는 말이지만 일본인들은 그런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희석화시켜버리고 그것을 주로 조상신의 의미로 사용한다. 이점에서 '붓다'와 '호토케'는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양자의 결정적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붓다'와 '호토케'를 동일시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본문에 나오는 '붓다'는 '호토케'라고 고쳐 적어야 한다. (-332쪽 각주편)

일본인들은 나이에 따라 그때그때 상황에 적합한 행동을 지향한다. (-368쪽)

오미야마이리お宮参り: 신사참배에 관하여...

통상 남아는 생후 32일, 여야는 33일이 지난 다음 어머니와 할머니가 아기를 안고 신사에 참배해 아이의 건강한 발육과 행복을 기원한다. 한편 아이가 3세(남여공통), 5세(남아), 7세(여아)가 되는 해의 11월 15일에도 신사를 참배하는데 이런 관습을 '시치고산七五三'축하연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일본에는 성인이 된 후 남자는 25세와 42세때, 그리고 여자는 19세와 33세때 액땜을 위해 신사를 참배하는 관습도 있다. (-380 각주편)

종래 <국화와 칼>에 대한 비판자들은 베네딕트가 군국주의자들이 내세운 이데올로기에 근거해 일본문화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해왔다. 하지만 러미스는 아예 베네딕트가 고의적이고 의식적으로 국가 이데올로기를 선택했으며, 정보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마치 국가 이데올로기가 과학적 자료인양 묘사했다고 주장한다. 뿐만아니라 러미스는 베네딕트가 일본문화를 설명하는 방식도 전혀 과학적(학문적)이지 않다고 비난한다. <국화와 칼>은 미국식 생활방식을 기준삼아 미국인이 일본인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내세우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일본인에게 무언가 더 좋게 바뀐다는 것은 곧 미국을 더 많이 닮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407쪽 각주편)

오랫동안 바라보기만 했던 책이었는데 혼란한 사회가 기회를 주었다. 역시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책을 읽으면 훨씬 더 집중할 수가 있어서 좋다. 일본문화에 대한 고전으로 취급받는다는 책이었다. 그렇다고 정석까지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한번은 읽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심 실망하기도 했다. 기대를 너무 크게 한 탓도 있었겠지만 일단은 이 책이 쓰여지게 된 동기나 그 시대적 배경을 알고나니 어느정도는 그 실망감이 이해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껄끄러운 점도 없진 않았다. 그 당시에 한국이란 나라의 존재감이 얼마나 미미했는지를 다시한번 느끼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일본이란 나라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고 단순히 인터뷰만을 통해 한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었던 까닭이다. 많은 일본인의 말을 차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점에서도 너무 편협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막혔던 속을 마지막 각주편(-407쪽의)에서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솔직히 각주가 따로 있는 구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데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만큼은 각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어찌되었든 한번쯤을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도 우리나라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연구를 엄청나게 했다는 글을 본 적 있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만 지배하기에 조금은 수월해지는 까닭이다. 살아보지 못한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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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늑대, 그리고 하느님
폴코 테르차니 지음, 니콜라 마그린 그림, 이현경 옮김 / 나무옆의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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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소개글을 읽으면서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 <심우도>가 떠올랐다. 어쩌면 개와 늑대라는 두 단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개는 늑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순간의 미묘함! 묘하게 빨려들었다. 불현듯 깨닫게 된다. 어느새 개에 동화되어버린 채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응원했다. 부디 '달의 산'을 찾아갈 수 있기를. 부디 자신의 본성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이 책은 또한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도 떠올리게 한다. 위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채 제 동료들을 밟으며 계속 올라가기만 하던 애벌레의 꿈틀거림을. 알 수 없는 존재의 응원을 받으며 꼭대기에 다다랐던 애벌레는 결국 나비가 될 수 있었다!

개는 어느날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삼일 낮밤을 꼬박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버려진 그 곳에서 주인을 기다렸으나 주인은 끝내 오지 않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된 개는 가로등 아래서 서글프게 울었다. 새벽녘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왜 울고 있어? 주인님이 날 버렸어! 먹을 것을 주며 노랗고 강한 눈빛은 이렇게 말했다. '달의 산'을 찾아가라고. 인간으로부터의 길들여짐은 참으로 많은 것을 잃게 한다. 그러나 한번 길들여지게 되면 그것에 안주하는 삶을 살게 되지. 그리하여 개처럼 몇 날 며칠을 방황하게 된다. 개는 결국 체념끝에 '달의 산'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 책은 떠돌이 개가 되어버린 길들여진 개의 여정과 함께 한다. 길 위에서 순례자 늑대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동행이 되어 '달의 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여정은 만만치가 않다. 원래는 늑대였으나 길들여짐으로 인하여 개가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고뇌와 방황과 후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동행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서서히 변해가고 있던 개의 모습. 개는 부러운듯 바라보던 늑대들의 모습이 자신에게서도 보여지고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뉴욕에서 태어났으나 아시아에서 성장했다는 지은이의 이력이 이채로웠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껄끄럽지 않게 다가왔다. 책을 덮고도 여전히 <심우도>의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불성을 소에 비유했던 그림. 사찰을 찾을 때마다 심우도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었다. 심우도는 소를 찾기 위해 산중을 헤매다가 마침내 소를 발견하고 길들여 그 소를 타고 집에 돌아왔으나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다시 속세로 나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과정을 열단계로 나누어 표현했는데 이 책에서 개가 '달의 산'을 찾아가는 여정이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다. 의도치 않았으나 두번을 거듭 읽게 된 책이다. 좋은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갑자기 어떤 신비가 그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버려지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었다. 하루하루가 덧없이 지나고 밤은 그림자처럼 달려간다. 예상치 못한 일, 불행의 옷을 입은 일이 가끔 벌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경이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지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며, 그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 저 너머에 뭐가 있을까? 그리고 그 너머, 그 너머, 또 그 너머에는.....?'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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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생각 : 그러니 그대, 부디 외롭지 마라 광수생각 (북클라우드)
박광수 지음 / 북클라우드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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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이야기가 좋았다. 미사여구없이 표현하는 방식이 좋았다. 예쁘게 그리려고, 멋지게 그리려고하지 않아 좋았다. 가끔은 실없는 이야기로 피식거리게 만들어주는 순간들이 좋았다. 문득 문득 자신의 삶을 보여주던 여유가 좋았다. 하잘것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들이 한사람의 손끝에서 뭔가 의미를 담고 다시 태어난다는 게 좋았다. 그래서인지 이런 형태의 글들은 외롭다고 느낄 때, 일상이 힘겹다고 느껴질 때,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다고 느낄 때, 내가 나를 위로해주고 싶다고 느낄 때, 그럴 때마다 찾게 된다. 멋진 글이 아니어도, 예쁜 그림이 아니어도 위안삼을 수 있는 친구처럼 그렇게. <광수생각>을 사랑하게 된 이유다. 변치않은 필력! 신뽀리의 촌철살인! 그리고 어른이 되었으나 무뎌지지않은 듯한 광수의 정서! 오랜만의 만남이 몹시도 반가웠다.

다섯 손가락이 저마다 자신이 최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으뜸의 상징, 당연히 내가 최고지!!

무슨 소리! 내가 없으면 코를 시원하게 팔 수 있겠어?

무슨 소리! 가장 긴 내가 최고지!

무슨 소리! 내가 없으면 결혼반지도 낄 수 없다고!!

새끼 손가락, 넌 내세울 것이 뭐 있냐?

나 없으면 니들 다 병신이야! (-90쪽)

누구나에게 자신이 최고인 순간이 있었을까?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인지하지 못했을 뿐.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풀죽은 채 살아갈 필요는 없다. 문득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던 어느 시인의 문구가 떠오른다. 모두가 그렇게 이유없는 삶은 없는거라고 광수생각이 말하고 있지만 때로는 내가 나를 안아주고 싶을 때가 있다. 때로는 내가 나를 안아주어야만 할 때가 있다. 광수생각이 말하고 있는 소소한 것들은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기에 눈길이 따라가는 글자들의 무게와 깊이가 혹은 가볍게 혹은 그리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그래, 남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싶어진다.

잠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좋지만 여러번을 읽어도 다시 보고싶은 책이 있다. 오래전부터 아주 소중하게 책장에 보관하고 있는 책중에 단연코 맨 앞줄에 서있는 것은 카툰과 우화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어른을 위한 동화쯤? 故정채봉님의 <생각하는 동화> 시리즈가 그렇고, 이외수의 <사부님, 싸부님>과 <아불류 시불류>가 그렇고, 최영순의 아주 특별한 명상만화 <마음밭에 무얼 심지?>가 그렇고, <광수생각>이 그렇고... 詩集이 그렇다.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그런 책들이 있어서 참 좋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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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유성의 인연 1~2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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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오랜만이다. 일본 추리소설계의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라지만 그의 작품을 그저 몇 편 읽어봤을 뿐이다. 그의 작품은 상당히 촘촘하다. 그렇다고 무슨 자극적인 풍경을 묘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엮어가는 씨줄과 날줄의 묘한 마력에 빠져들곤 한다. 어쩌면 그런 면이 그의 작품의 매력인지도 모르겠지만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이야기의 전개와 예상을 뛰어넘는 마지막의 반전은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한다. 이 작품이 신간인줄 알았는데 신간은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에 나왔던 작품의 개정판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전에 출간했던 내용에서 무엇이 보완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했을지.

<유성의 인연>은 상당히 부드럽다. 그리고 인간냄새가 물씬 난다.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었던 <용의자 X의 헌신>만큼 조여오는 맛은 강하지 않지만 역시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인해 아하, 하고 탄성을 내뱉게 된다. 양식당을 하는 아리아케에게는 초등학교 6학년 고이치, 4학년 다이스케, 1학년인 시즈나가 있었다. 어느날 밤 아이들이 유성을 보겠다고 부모 몰래 집을 빠져나간 후 그들 부부는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렇게 아이들은 보육원으로 들어가고 14년이란 세월이 흐른다. 부모의 살인사건 공소시효를 1년 남기고 그들이 모여 뭔가 일을 꾸미게 되는 상황까지는 짐작할 만한 전개였지만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복수라는 개념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세상은 부모잃은 아이들에게 친절하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에게 세상은 공평하지 않으며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가르쳐주었을 뿐이다. 그러니 그들이 세상을 살아갈 수있는 방법이라는 게 정당할리가 없다. 그 과정에서 다이스케는 살인사건이 나던 날 밤에 보았던 실루엣을 다시 보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그들은 복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미 14년이 지난 일이기에 하나의 실수라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들은 과연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복수에 성공했을까?

"나는 이제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냥 사기를 당한 것뿐이잖아. 부끄러울 거 없어."

"내가 전에도 말했었지. 이 세상은 속느냐 속이느냐 둘 중의 하나야. 나는 나는 그걸 알면서도 속았어."

"그렇다면 우리도 속이는 쪽이 되자. 왜 우리만 이런 꼴을 당해야 해? 아빠 엄마는 살해되고, 집에서는 쫓겨나고, 그 집을 처분한 돈도 친척 누군가가 가로채 가고, 이제 겨우 셋이서 사이좋게 살려고 하는데, 줄줄이 우리에게서 돈을 빼앗아 가잖아? 이런 건 이상하지 너무 부당해. 큰오빠, 이 세상은 속느냐 속이느냐 둘 중의 하나라고 했지? 그렇다면 언제까지고 속는 쪽에 서 있는 건 너무 바보 같잖아? 우리도 속이는 쪽으로 돌아서자." (- 118쪽, 119쪽)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아마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 엄청 많을 것이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세상을 만들게 되었을까? 이런 세상을 만들어놓고는 이런 세상을 탓하며 살아가고 있다. 인간성을 잃어버리면 안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속깊이 감춘채 살아간다. 공존을 외치면서도 공존을 외면하는 세상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속에 숨은 반전의 의미, 그 커다란 울림이 서글프다. /아이비생각

사족: 번역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고 문득 생각하게 된다. 매끄럽게 읽힌다. 최소한 두 번은 읽어보라는 옮긴이의 말이 시선을 끈다. 행복한 범인 찾기... 그가 이런 말을 쓴 것은 아마도 이 작품속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사랑'의 속성때문이었을 게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끌림, '사랑'. 그 와중에도 사랑은 그들 곁에 머문다. 그리고 그 사랑은 그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리고 그 사랑은 고통마저도 끌어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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