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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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내게 다가왔던 느낌은 너무도 강렬했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이끌기 시작했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눈을 뜬 후의 세상은 어떨까?  아니, 다시 눈을 뜬 그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궁금했다. 일곱명의 주인공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아줄까?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던 유혹앞에서 나는 단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눈뜬 자들의 도시>를 펼쳐 들었다. 변화되지 못하는 그들의 삶, 아니 변화되지 못하게 막아서는 거대한 힘의 원천이 알 수 없는 근원지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때가 늘 오기 마련이라는 안개같은 말처럼 우리는 너무 많이 알아서 혹은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까닭에 변화라는 그 말자체만으로도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주인공들에게 다가서지 못했던 변화의 흔적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우익정당 팔 퍼센트, 중도정당 팔 퍼센트, 좌익정당 일 퍼센트, 기권 없음, 무효표 없음, 백지투표 팔십삼 퍼센트...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참관인들은 기다렸다. 그래도 의무를 져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비는 그쳤지만 몇명의 투표권자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투표하러 오지 않았다. 일주일 후 다시 투표를 해야한다는 발표를 하고 다시 온 그날의 풍경...  길게 늘어선 줄..  그러나 결과는 백지투표 팔십삼 퍼센트.. 그들은 기권을 한 것도 아니었고 무효표를 만든 것도 아니었다. 아주 지극히 정당한 국민의 의무를 했을 뿐이었다. 무엇이 그들에게 백지투표를 하게 만들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들조차도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었던 까닭에..

희망은 소금같은 거야, 영양분은 안 들어 있지만, 그래도 빵에 맛을 내주거든..
눈먼 자들의 도시를 탈출하여 다시 눈뜬 자들의 도시속에서 살아가기를 사년.. 하지만 그들은 잊지 못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도 정당화시켜 줄 수 없었던 정부가 문제였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서로 약속을 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자고. 그 문제만큼은 절대로 수면위로 떠올라서는 안되는거라고..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들에게 있어서 그토록 커다란 의미를 지녔던 일의 의미가 왜 아무런 것도 아닌 것으로 둔갑을 해야 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치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서는 차마 다가갈 수 없고 만질 수 없었던 뜨거운 감자였는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사람들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왜? 무엇때문에 그들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밀어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아마 말하지 않은 희망 하나쯤 가슴속에 품고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금같은 희망을,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잊고 싶은 사람은 당신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라고 외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버림받았던 우리들이라고..

우리는 진실을 말할 때도 계속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할 대도 계속 진실을 말한다고요.. 진실을 말하면서도 거짓을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의 가슴이 먼저 알일이다. 차라리 거짓을 말하면서 그 안에 진실을 숨기고 있는 것이 나을런지도 모르겠다. 눈먼 도시에 살던 그들이 처음 조직이란 것을 이야기했을 때만해도 굳이 조직의 힘에 대한 인정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눈뜬 도시에서는 결국 조직이란 힘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의 힘... 두개의 덩어리, 두개의 조직.. 정부와 백지투표를 했던 알 수 없는 힘의 존재. 힘겨운 싸움은 시작되었지만, 그 고통은 고스란히 그들의 몫으로 되돌아 올 테지만 그들 중 아무도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건드려서 아픈 상처는 차라리 곪아 터지는 것이 나은 것일까?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은 가슴도 슬퍼하지 않는 법이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정부는 그들을 떠나기로 한다. 눈이 멀기 시작하면서부터 버림을 받았던 우리의 주인공들이 또한번의 버림을 받는 순간이다. 도망가는 순간까지도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까 하여 가로등의 불빛을 내리는 거대한 힘의 존재.. 하지만 불은 밝혀진다. 떠나는 그들을 위로라도 하듯이. 그들이 완전하게 떠나갔을 때 다시 꺼지는 불빛과 흐릿해져버린 가로등의 불빛이 하나의 장면이 되어 내게로 오버랩되어져 왔다. 두마음의 밝기처럼 그렇게...  떠나보낸 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떠나간 자들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변명을... 이렇게 떠나게 된것은 모두가 너희들의 잘못이라고, 너희들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빈다면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들은 떠나왔던 곳을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한다. 누구라도 좋으니 그 화살을 맞은 사람은 비명을 질러야 하는 거라고, 이렇게 아프니 다시 돌아와 나를 치료해 달라고 말해야 한다고.. 뜬금없는 욕심을 부린다. 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도무지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힘의 조직에 대해 나는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가 그들에게 저토록이나 처절한 옹졸함을 허락했는가 묻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나는 책을 다 찢어버리고 싶었다. 아주 가루가 되도록.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인 그들의 태도가 나를 너무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백지투표라는 말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작금의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 언론들은 떠들어대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탄압이라고. 세계 어느나라를 보더라도 이런 경우는 없다고.. 요즘 신문의 정치면을 보자면 늘 싸움이다. 정권과 언론의 싸움질.. 나는 기자들에게 달려가 이렇게 외쳐주고 싶었다. 취재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다른 것은 몰라도 그 잘난 정치인들의 일상적인 면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보이콧을 해버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들의 입에서 혹은 생활속에서 나오는 것들중에 정말 사소한 것들조차도 응대해주지 말고 우리는 우리끼리만 이야기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울며불며 매달리지 말고 아예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 모른척해버리면 되는거 아니냐고.. 그리고는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라고.. 이런 생각을 했었던 내게 이 책은 무서움이란 단어를 들려주었다. 참, 무섭다... 백지투표라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은 생각같아서.. 무관심이란 말처럼 무서운 게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 평생 지킬 협정에 서명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자문할 날이 온다, 누가 여기에 나 대신 서명을 했는가..  우리의 주인공 안과 의사 부인.. 모두가 눈이 멀었을 때 홀로 눈뜬 자였기에 그 많은 고통과 혼란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던 우리의 주인공..  그 주인공을 향해 날아오던 돌멩이는 누가 던진 것이란 말인가. 희생양이란 말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에는 너무도 아팠다.  거대한 힘의 조직속에서 그 힘의 원리대로 살아왔던 한 남자는 우리의 주인공에게 올가미를 씌우려 했지만 결국 잔잔하게 울리던 진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게 된다. 그건 아니라고.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거라고. 끝까지 우리의 주인공을 향한 마음을 닫지 않았던 그에게 나는 고마움을 느꼈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던 우리의 주인공과 그 한남자의 넋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중에 들려온 또한번의 총성... 눈물을 핥아주던 개도 사라졌다. 그들은 어쩌면 다시 눈이 멀었을 게다. 아니 차라리 눈먼채로 살아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쉬운일인지도 모를일이다.

그들은 네라고 하면서 동시에 아니오라고 한다.
그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눈이 멀었던 남자는 백지투표의 의미가 안고 있었던 모든 진실을 왜곡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어쩌면 그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년이라는 긴 공백을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그렇게 치부해버렸던 거대한 힘의 조직을 이끈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갈데없이 치졸하고 옹졸했던 그들의 모습 또한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눈먼 도시에서 홀로 눈을 뜬채로 아파해야 했던 것은 아마도 우리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소금같은 희망... 우리가 늘 찾아 헤매이던 그 소금과도 같은 희망은 어쩌면 이미 우리 가슴속에 들어와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보고자 하지 않은 것일 뿐, 단지 우리는 그것의 뿌리가 나한사람의 가슴속에서만 돋아나게 해달라고 빌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버리는 자와 버림을 받는 자는 하나일 것이다. 단지 아주 단순한 언어로 구분해 놓았을 뿐. 우리는 지금, 아니 지금의 나는 눈을 뜨고 살아가는 중일까? 눈을 감고 살아가는 중일까? 알 수..... 없다.  알지 못하면 보지 못한다는 말 한마디가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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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 신분을 뛰어넘은 조선 최대의 스캔들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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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시대적에는 어디 신랑 얼굴이나 제대로 볼 수 있었남? 결혼식 다 끝내고 신방 차리고 나서야 신랑 얼굴을 볼 수 있었지. 사주단자 오가고 어디사는 뉘집 도령이라드라 하는 말만 들었지 언감생심 결혼전에 신랑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었어." 우리의 할머니들께서 종종 하시는 말씀이다. 결혼을 하는 당사자들은 자신의 신랑 신부가 될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부모님의 말씀대로 혼례를 치루고 첫날밤이 되어서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말은 여러번을 들어도 어떻게 그럴수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만다. 멀쩡한 남자를 절름발이라고 소문을 냈더니 아가씨가 자기 대신 몸종을 새신부로 꾸며서 시집을 보냈는데 알고보니 맘씨고운 신부를 얻고 싶어 신랑이 꾸며댄 말이었다는 간혹 회자되어지는 이야기처럼 남자의 경우는 여자와 달라 어느정도는 여자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장옷을 쓰고 행여나 남자와 눈길이라도 마주칠까봐 전전긍긍하던 여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같은 아니 꿈조차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는 건 지금을 사는 여자들에게는 과히 기분좋은 이야기만은 아닌듯 하다.

이 책속에서 만나지는 남녀상열시사는 그야말로 여러방면에서 치고들어갔다. 감히 떠벌릴수조차 없는 왕가의 이야기나 양반네들의 숨겨진 사생활속에서 찾아지는 스캔들등은 보는 나로 하여금 실소를 머금게 만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사람사는 거야 어디나 똑같다, 하는 생각도 불러온다. 훗날에 세종대왕으로 추앙받는 충녕대군을 위하여 왕위를 양보했다던 양녕대군의 이야기가 사랑이 미쳐 폐세자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차라리 인간적으로 보였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끝내는 폐세자가 되어야 했던 양녕대군의 사랑은 권력에 의지한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진정 한남자로써의 사랑이었는지를 되묻게 하지만 말이다. 궁궐속에서 일어나는 동성애이야기야 많이 들었던지라 그리 새삼스러운 것도 없었다. 오직 왕이란 존재 하나만을 바라보는 그 수많은 시선들이 얼키고 설키다보면 어딘가에서부터 엉켜드는 건 당연지사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기생과 사대부의 사랑이야기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단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례들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고개를 주억거리게 했다. 자신의 노비를 사랑하여 끝내는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허울좋은 양반네들의 질시로 인하여 끝내는 둘다 목숨을 버려야 했던 가이와 부금의 이야기는 가슴이 아팠다. 유난스럽도록 겉치레만을 따졌던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관습이 너무도 짜증스러웠다. 그런가하면 자신이 직접 남편될 사람을 골라 재가를 한 여인의 이야기는 통쾌하다.

시부모를 섬기지 않으면 내쫓고, 아들을 못 낳으면 내쫓고, 음란하면 내쫓고, 질투하면 내쫓고, 나쁜 병이 있으면 내쫓고, 말이 많으면 내쫓고, 도둑질하면 내쫓을 수 있다던 칠거지악이란 말을 듣다보면 어찌 저럴수가 있나 싶기도 하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저런 말이 생겨날 수도 있겠거니 하다가도 여자란 존재가 얼마나 하찮게 여겨졌으면, 하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한다. 하기사 혼인을 하는 당사자의  맘과 당사자의 뜻은 거기에 없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싶기도 하다. 여자는 정말 바보같이 살았다.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다는 말보다는 차라리 일부종사를 거부한채 자신의 인생길을 자신이 만들어갔다던 여인네들의 이야기나 윤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선택했다던 여인네들의 이야기가 듣기에 더 좋은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거드름이나 피우며 허세만을 부리던 옛시절의 남자들 모습은 정말이지 상상하기도 싫어진다.

영조시대에 경상도 산음현에서 일곱살 먹은 여자아이가 사내아이를 낳았다는 보고를 하여 조정을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암행어사를 보내고 조사를 해 본 결과 그것이 사실이었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서로 접해있던 안음과 산음이란 두고을의 이름이 안의와 산청으로 고쳐져 지금까지 내려온다는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하다. 음란하다는 뜻이 들어있었던것도 아니었는데.. 그런가 하면 삼의당 김씨와 남편 하립의 사랑이야기는 지금 시대에서조차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신혼첫날밤부터 서로를 향한 사랑의 시를 주고 받았다던 그들에게도 물론 힘겨운 시절이 있었다. 가난하였기에 자신의 머리를 팔아 남편의 과거길에 노자를 만들었다던 삼의당 김씨. 결국 과거에 몇번을 낙방하였지만 그들은 낙향을 하여 새로운 삶을 이어가게 된다. 그야말로 전원생활로 접어들었으니 그들의 시심과 사랑이야 더욱 더 깊어졌을 것이다. 양반이었음에도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는 것을 서글퍼하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사랑으로 함께 했던 그들의 삶이 참 아름답게 보여진다.

많은 사랑이야기를 읽었다. 원칙적으로 이혼이 허락되지 못했던 조선시대에는 정이 없어도 그냥 살아야 했다.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간다는 건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와중에서도 남자들에게만큼은 어느정도 자유로운 세상이 허락되어져 아내외의 다른 여자들을 첩이라는 이름으로 들여놓기도 하였지만 여자는 죽은듯이 그렇게 살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이 책속에는 천국같은 사랑이야기도 있지만 지옥같은 사랑이야기가 더 많다. 조선이라는 시대에는 왕과 양반네들만 살았던 것이 아니었기에 숨겨진 백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던 작가의 말처럼 조선시대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더더욱이나 여인들을 배경으로 보여졌던 이야기들이었기에 많이 바뀌어진 지금의 세상을 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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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김처선
이수광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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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가 시작되었는가? 나는 알 수 없다. 어지간해서는 TV를 보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굳이 드라마를 찾아서 보고 싶지는 않다. 익히 알고 있는 혹은 너무도 흔한 조선사의 일화가 이야기의 배경으로 쓰여졌다. 사적인 느낌으로 말하라고 한다면 마치도 일전에 대흥행을 일으켰던 영화 <왕의 남자>를 탄생시키기 위해 쓰여진 글처럼 보여진다는 거다. 그만큼 이 이야기의 흐름을 잡아내지 못한 탓이려니 한다. 어쩌면 나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도 있으려니 한다. 어쩌면 영화라는 틀속에서 만났던 이야기의 내용이 너무 강하게 다가왔던 탓도 있으려니 한다. 

내시, 어릴 때에 거세를 당하고 궁궐에 들어와 그야말로 불목하니처럼 살아가는 존재.. 하지만 때로 권세를 갖고자 그 욕망을 표출했던 이도 있었다. 때로 권세가들의 손발 노릇을 해주며 그 자신도 그에 못지 않은 힘을 가진 자도 있었다고 한다. 속살거리는 자.. 이것이 내시가 아니었을까? 나는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 거세를 함으로써 오는 신체의 변화에 대해서는. 하지만 책속의 내용을 빌어서라도 말을 한다면 어찌되었든 그들은 속살거리는 자들이 분명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에게 처해진 현실에 대한 반항이었을 것이며, 어쩌면 그것은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운명에 거스르고 싶어하는 처절한 그들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그냥 내시면 내시일뿐이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속의 세상은 그런 나에게 보란듯이 비웃음을 보여준다. 물론 모든 내시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나 개중에는 학문이 높았던 내시도 있었고, 또한 나름대로 학구열이 높아 책을 가까이 하는 내시도 있었을 것이다.  왕조차도 '조금 지식이 있는 자들'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말이다. 학과와 무과를 포함하여 일정기간 동안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고 하니 말이다. 자신들의 신분에 걸맞는 시험을 보기도 하였다니 참 놀랍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시는 그냥 내시일뿐이라는 나의 의식은 아마도 그들에 대한 어떤 정보조차도 가질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더군다나 그들은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물론 직급이 높을 경우에야 있을 법한 일이지만 말이다. 내시 김처선과 그의 식솔들에 관한 이야기는 왠지 서글픈 느낌으로 다가왔다. 김처선의 아내 향이가 그의 무덤에 찾아와 술한잔 하며 내뱉는 독백의 끝에서 나는 오랜 외로움을 보았다. 사람은 마음만으로는 살수 없다는 것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아픔을 함께 안아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을까? 죽음 뒤의 세상에서도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향이는 이렇게 말했지, 첩도 두고 아들도 둡시다. 하지만 아들만큼은 내가 낳을테요, 라고. 끝내 자신의 속깊은 공허를 드러내는 그 장면은 흔한 말로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하고 되묻게 되는 장면이 아닌가 싶었다.

잘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왠지 김처선이란 인물이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처럼 느껴졌다. 어지러운 난국을 헤쳐나오며 여러명의 왕을 모셨다는 김처선.. 그의 시선으로 그 시대를 바라볼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내내 주변을 맴돌며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김처선이란 이미지가 못내 껄끄러웠다. 그냥 연산군의 시절로 가기 위한 하나의 돌다리위에 잠시 서 있었던 듯한 느낌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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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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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는 신윤복을 사랑했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서로 사랑했다?
김홍도가 사랑했던 여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책장을 펼치니 가는 붓대 하나조차 들 수 없는 늙은 육신의 남자가 담담한 어조로 말문을 열고 있었다.
그가 회상하는 시대의 연정은 과연 누구를 향하는 것일까?
영웅은 시대를 잘 만나야 한다고 했었는가?
아니면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 낸다고 하였는가?
많은 조선시대의 이야기들을 접하면서도 유독 우리의 역사속에서 과연 시대를 잘 만난 영웅이 있었는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있었을까?  있었다면 과연 얼만큼의 시간속에서 그들은 머물다 간 것이었을까?  팩션이란 말의 정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실제 있었던 사실이나 실제적인 인물을 구도로 잡아 배경을 채워가며 하나씩 하나씩 설명을 늘어놓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과연 무엇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일까?  참으로 놀라웠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속에 나의 혼을 들여보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숨막히는 긴장감속에서 감히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태어날 수 있었는지 읽던 도중에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이정명이란 작가의 이력을 보고 또 보았다.  문득 <진주귀고리 소녀>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 책을 읽으면서도 이토록 긴장을 했었는가? 나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에게도 이런 책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작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것 같다. 한장 한장 그림을 따라가면서 엮여지는 이야기들이 마치 환상처럼 보였던 까닭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에 대한 나의 지식은 참으로 짧다. 그림에 문외한일 뿐더러 아무리 기억속을 헤집어 보아도 나의 기억속에서 그들의 이름을 만날 수 있었던 때는 가방 들고 학교 다닐적의 시험시간이었을 뿐이다. 단원 김홍도, 그가 그린 그림은 무엇인가?  그는 어떤 식으로 그림을 그렸는가? 이런 종류의 객관식 문항에 넷중 하나를 골라 답을 가려내야 하는 그런 정도의 수준밖에는 없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속에 숨겨져 있는 단원과 혜원의 그림은 정말 색다른 감흥을 불러왔다. 그것은 아마도 그림을 펼쳐 준 후에 벌어지는 그 그림에 대한 논리적인 이야기 한마당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림 한장이 나올 때마다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림 한장으로도 말을 대신 할 수 있다던 단순한 진리를 이 책속 끝없이 만날 수 있었다. 그림 한장속에 세상사의 모든 것들을 담아 낼 수 있었던 그들은 책속에서 말하고 있듯이 하늘이 내린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와 스승으로 만났던 두사람.. 그들은 진정 사랑했을까? 아마도 그랬으리라. 나를 정말로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뒷부분의 놀라운 반전을 굳이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했어야 했다. 그 놀라운 반전으로 인하여 어쩌면 그들의 사랑은 더욱더 견고한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었다.  제자 신윤복을 마음속에 가두어 두었던 김홍도와 기생 정향을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신윤복의 말없는 사랑 앞에서 책을 읽는 내가 오히려 안타까웠다. 다가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어쩌면 그토록이나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향이 타던 가야금의 곡조와 윤복이 그리던 그림속의 그리움은 마치 하나된 듯이 그렇게 어우러졌다. 그림 하나 하나가 어쩌면 그리도 정갈하게 다가오던지... 그들은 진정 그들이 가진 서로의 재능만을 사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을 사랑했던 정조대왕의 마음이 오로지 출세와 탐욕으로 삐뚤어진 세상의 입으로 인하여 한숨을 내쉴 때의 막막함이라니... 변화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은 지금의 세상속에서나 통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이 그랬다. 복지부동,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서 결코 변화를 바라지 않는 썩은 무리들의 악취속에서 꽃은 피어날 수 없는 것이 그 시대의 현실감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두 화가를 통해 세상을 알고 싶어했고 백성을 알고 싶어했던 왕의 마음, 그것이 차마 볼 수 없는 그림이라 할지라도 왕은 그들의 숨겨진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거침없는 그 마음을 왕은 사랑해 주었다. 그 마음때문에 하늘이 낸 천재를 곁에 두지 못했던 왕의 상실감... "그렇다. 조선은 대대로 일하는 자를 업신여기고, 사대부라 하여 몸 움직이기를 게을리하였지. 하지만 이제 알겠다. 삶의 기쁨이란 정직한 노동의 대가로 오는 것임을 말이다." ... 늘 그렇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화원은 본 것으로 그릴 뿐이옵니다. 보지 않은 것을 그리는 것은 문인들이지요"... 정조의 힐책에 대답하는 윤복의 대답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내심 통쾌하기도 했다. 탁상공론뿐인 세상사의 법칙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아무것도 겪어보지 못했으면서 그저 읽은 책에서 혹은 주워들은 정보와 통계만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사의 법칙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상반적인 구도로 그려지는 반상제도와 마주치는 나는 언제나처럼 또다시 쉽게 흥분하고 말았다. 

책속에 풀어 놓은 신명나는 이야기 한마당속에서 만나지는 모든 것들을 단순히 허구라고만 보고 싶지 않았다. 김홍도의 선굵은 남성적인 화풍과 신윤복의 섬세한 여성적인 화풍이 너무도 잘 어울어진 한편의 마당극처럼 보여졌다. 마지막 그림 대결에서 보여주는 두장의 그림..  서민들의 풍속을 그린 김홍도의 그림중 으뜸이라는 <씨름>과, 넓은 마당 한가운데서 칼을 들고 춤을 추는 두 여인의 그림을 보여주는 신윤복의 <쌍검대무>라는 두장의 그림을 앞에 두고서 그림속 세상을 헤집어 낱낱이 까발려 놓고 싶어하는 도화서 계원들과 심사관들의 칼날같은 논쟁이 나는 더욱더 놀라웠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시각에서 자신들의 느낌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장면은 마치도 내가 실제로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찾아내지 못했던 것은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속깊은 마음이었다. 그 그림속에 숨겨두었던 그들의 속내를 어찌 찾을까?

<뿌리 깊은 나무>라는 책은 작가의 글을 다시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욕심을 불러왔었다. 그의 세상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있지 않은 것 같아 읽으면서도 참으로 편안했다. 살아있는 듯한 책속 세상을 만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또다른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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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심리학 - 인간관계가 행복해지는
이철우 / 더난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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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세상에는 자기자신을 잘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자기자신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고집불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성이 좋다거나 아니면 인간관계가 좋다거나 하는 것일게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타입일까? 나를 향해 언제든 던져질 수 있는 화두이지만 언제나 결론은 없었다. 이 책속에서도 역시 묻는다. 나는 누구일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는 얼만큼의 차이가 있을까?  늘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되어진다고. 그러니 모든 것들의 결과 역시 나로부터 비롯될 수 밖에는 없는 일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명과 핑계를 준비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기왕이면 좀 더 좋은, 좀 더 괜찮은 이미지로 부각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우선적일테니까 말이다.

숨겨진 채 나에게도 남에게도 드러나길 꺼려하는‘나’ 들여다보기는 사실 쉽지 않다.  비밀을 함께 공유할만한 친구가 몇이나 있나요? 속을 터놓고 지낼만한 사람은 또 몇이나 있나요? 간혹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물어오는 사람의 정의처럼 그렇게 속속들이 세세하게 자신을 다 보여줄만한 용기가 필요한건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그런 용기가 부족하다. 착각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란 우스개소리를 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내 맘대로 내 뜻대로 해석하는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이었을 게다. 이 책은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각 덩어리 독재자일지로 모른다고. 그만큼 자신의 틀안에서 살기를 원하거나 혹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말도 되는 것 같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또다른 나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순간을 두려워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그 어떤 것의 힘은 가끔 나를 두렵게 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남을 얼마나 의식할까? 자신의 이마에 E자를 써보라는 저자의 말에 나도 E자를 써보았다. 그런데 나는 상대편에서 보기 좋은 E자를 썼다. 거기에 따른 여러가지 설명을 읽어보면서 슬그머니 작은 안도감도 느껴본다. 너무 내 본위대로만 살아가고 있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도 하면서...   자기 자신이 보이고 싶은 면만 보이는 자기제시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오히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자기개시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약간의 긴장감도 느껴졌다. 어찌되었든 좀 더 확실한 친밀감으로 그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욕구가 내재되어져 있는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어느쪽이든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어느정도는 보일건 보이고 숨길 건 숨기는 융통성이 필요한 듯 하다.

나는 한사람일까, 두사람일까? 그것도 아니면 여러 사람일까? 처해진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이 아닐까? 나 역시 그런편에 속해 있다는 말이 솔직할 것이다.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모습만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까? 확신하건데 도사가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 자신이 몇사람이 되었든 너무 인위적이며 가식적이기 않기를 바랄 뿐이다. 너무 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 본다. 책속에서 말하고 있는 카멜레온형 인간이 되라는 말도 어쩌면 나하나만을 위해서라는 말은 배제시킨 부분일 것이다. 그만큼 자기자신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도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도대체 몇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또 내 등뒤로 숨겨놓은 가면은 몇개가 있는지 나를 한번 더 돌아본다.

마지막 11장에서 말하고 있는 주제가 너무도 좋았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형식적인 인간관계를 극복하라는 말, 감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은 내게 많은 생각을 불러오게 만들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물어온다.. 어떠한 경우 어떠한 장소에서라도 나는 언제나 같은 나라는 말이 과연 좋은 말일까? 한번 더 생각해보고 솔직하게 말하지만 나는 앞서 말한 모습의 나로 살아가기는 싫다. 경우와 장소, 조건에 따라 어느정도는 자신을 변화시킬 줄 아는 그런 내 모습이 더 좋아보이는 까닭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되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부분은 숨기면서 살아가는 게 오히려 더 낫다고 판단되는 까닭이다. 어느정도의 융통성과 변화는 필요한 것일테니까 말이다.

"나는 누구일까요?" 이 책에서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다. 나는 누구일까요? 그말은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하고 묻는 것일까? 처음부터 갈팡질팡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까닭도 있겠지만 각장마다 따라오는 심리테스트 문항들이 나의 판단력을 흐려놓았던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어렸을적엔 아이큐테스트라는 게 있었다. 학교에서 모든 아이들에게 시험을 보듯이 몇장의 문항지를 나누어주면 정해진 시간내에 답을 체크하여 제출하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중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폐지되었다고 들었다. 이 책속에서 만나지는 심리테스트 단계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아이큐테스트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어느정도는 실험과정을 거쳐 종합적인 근거를 가진 단계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왠지 저런 테스트에는 거부반응이 인다. 잘난것도 없으면서.

좋은것만 보여주면서 살아도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라고 한다. 이 책속에서 많은 규칙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결국 따지고보면 일종의 처세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은 이렇게 터득하는 것이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좀 더 나은 조건에서 혹은 좀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좀 더 요령있게 자신의 약점을 감출 수 있고 교묘하게 이용할 수 있기 위해서 등등등 세상을 요령있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규칙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결론은 이렇다. 생각을 바꾸면 인간관계가 쉬워진다는 말이다.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데 인색하지 말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프롤로그에서 볼 수 있는 저자의 말처럼 생각을 바꾸려면 다른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처신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여러가지 상황에서 자기를 잘 나타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고집하며 상태와 상황에 따라 변화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이 책은 손해보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지침서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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