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번째 법칙 -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냉혹한 성공의 기술 로버트 그린의 권력술 시리즈 4
로버트 그린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살림Biz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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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해져라, 먹이사슬의 정상에 설 때까지!"
누구보다 냉혹한 현실주의자이자 철저한 기회주의자가 돼라!
어찌보면 썩 유쾌한 내용은 아니다. 착하게 살아라, 남들과 어긋나지 않고 잘 어울려야 한다, 될 수 있으면 혼자 튀려고 하지말고 함께 움직여라. 남에게 상처주는 행위는 왠만하면 하지 말아라 등등.. 우리가 어린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왔던 모든 말들이 이 책 한권으로 인하여 뒤집어지는, 어쩌면 가치관의 혼란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한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사회가, 변화의 물결이 내게 요구한다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거라고. 실제적으로도 나는 아들녀석에게 늘 이렇게 말해왔다. 부당한 일에 기죽지 말고 타협하지 말아라. 어쩔 수 없이 사기를 쳐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남을 아프게 한다해도 너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결행해라... 단 조건이 있다. 무작정 덤벼들지는 말아라. 전후 상황 판단을 정확하게 한 후 행동에 옮긴 후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퇴로는 열어두어야 한다. 그러자면 너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제발 물러터지게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면서 살아가지는 말아라.. 누군가는 말한다. 엄마 맞느냐고. 어떻게 자식에게 그렇게 말 할 수 있는거냐고. 속깊은 이야기를 하자면 나 자신이 그렇게 살고 싶었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못했기에 늘 손해를 자처하면서 살아왔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그런 내 삶의 방식이 싫었다. 너무나도 차가운 논리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속의 내용에 백번 공감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기심에 지배를 받는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현안을 우선시하는 건 당연하다. (-77쪽)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린시절의 양면성이 다시 표면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어른들의 세계에는 공격이 너무 많고 경쟁도 치열하다. 그러다보니 우리안의 일부가 많은 것을 타인에게 의존하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한다. (-82쪽)
오래전에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고 묻던 카피가 있었다. 기억속에 오래도록 남는 걸 보면 상당히 강한 인상을 남겨준 듯 하다. 양다리 걸치기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않고 이쪽과 저쪽 모두에게 걸친채로 있다가 자신에게 이익되는 쪽으로 슬쩍 발 한쪽을 빼버리면 끝나는 조금은 야비한 듯도 보여지는 양다리 걸치기. 하지만 나는 그 양다리 걸치기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기회주의자가 되라고. 그리하여 반전에 성공하는 인생을 살아가라고. 기회주의자라는 것이 꼭 가재미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삶의 모든 방해물을 반대로 힘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본다는 것이 기회주의자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기회. 그 기회란 놈을 잡기 위해 다들 혈안이 되어있지만 실상 그 기회를 잡는다는 게 정말 어렵다는 말이다. 맥가이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는 칼 하나만 있으면 만사가 오케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기회주의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땅의 기복에 따라 그 흐름이 달라지는 물처럼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형세를 갖춘다는 손자의 말은 퍽이나 인상적이다. 속임수를 사용한다거나 무언가를 조작하거나 적절한 순간에 노골적으로 실력행사를 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되는가? 왜?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당신도  배워야 한다 너무 늦기전에. 사악한 행동을 해야 할 때와 그 방법을 간파하는 기술을...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융통성있게 적용하라고 말하고 있는 저자의 논리는 실제적인 삶을 생각해 볼 때 백프로 공감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솔직이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 사회는 속임수와 조작이 없이는 이끌어 갈 수 없다는 데 나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몇 몇 사람들이 당신을 싫어하는 것 따위는 신경쓰지 마라. (-155쪽)
서로 도와야한다는 생각을 우선으로 앞세우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우리의 문화속에서도 상대방을 향한 공격적인 충동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갈등과 마찰이 사악한 것이라는 주장은 어패가 있어보인다. 갈등에 대처하는 능력을 두고 좋다, 나쁘다로 평가할 수는 없는 말이라는 얘기다. 선과 악으로 나눌 수는 없는 거라고 책에서도 말하고 있음이다. 단지 두려움에 대항하는 내적 에너지의 작용일 뿐이라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과연 우리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퍼센트나 될까? 아니 정말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경험에 의한 내면의 힘. 그런 힘이 충분하다면 당신도 사악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죄책감 따위는 필요없다. 앞길을 막는다면 제거해야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불평 불만을 늘어 놓는 대신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더욱 더 나은 길이라고 본다. 부당한 일이나 상황에 굴복하지 마라.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더 짓밝으려 할 것이다. 당하는 자가 더 바보스럽다. 자신을 괴롭히며 공격해 온다면 그 댓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는 말에도 일리는 있다. 그것만이 내 스스로 나에게 존재하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길이라는 말도 틀리게 보이지 않는다.. 책에서 말하듯이 파워게임에서는 이기는 것만이 상책이다. 여우같은 사람에게는 사자처럼 강하게 공격하고, 사자같은 사람에게는  여우같이 교활하게 공격하라는 말이, 그것도 아니라면 먹이 사슬의 위쪽에 있는, 나보다 더 힘있는 사람들과 뜻을 같이하여 그 힘을 이용하라는 말이  어찌보면 불합리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다른 면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비열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내가 그 상대방이 여우인지 사자인지를 제대로 가려낼 수 있는가이다. 그만큼 경험에 의한 힘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말일테다. <사악하게 행동해야 할 때를 포착하라>는 장을 읽으면서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통쾌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던 책이 있다. 얼마전에 읽었던 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 사회학>이다. 독특한 이력으로 라이프모델이 되었던 이 책속의 '피프티 센트'나, <괴짜 사회학>에서 갱단의 두목이 되기까지의 인생여정을 보여주었던 '제프티', 그리고 책의 저자였던 수디르 벤카테시의 조금은 황당했던 모험이 묘하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프티가 걸어갔던 길위에 피프티 센트가 성공으로 갔던 길이 겹쳐졌다. 그러나 성공해야 할 조건으로 세상을 맨주먹으로 시작해야 한다거나, 자격이나 재산 혹은 특권 등 물려받은 것이 모두 사실상의 장애물이라는 말은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것들이 방해물로만 작용될 것이라는 생각자체를 공감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한번 더 생각해보아도 지극히 편협된 사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찌보면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의 모습을 원하기에 그런 논리가 적용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적당한 발판을 기초로 삼아 성공한 사람보다는 바닥부터 시작했다는 모험 따위가 그들의 일정 부분을 더 돋보이게 할 수도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리더로서의 역할에는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성공했다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이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성공의 첫시작점부터다. 지금은 권위를 부정하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방향제시를 분명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가기를 바라며 그 열망을 숨기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성공의 정점에 오는 순간 더 과감해져라>는 말에 더욱 힘이 실린다.  

여기 또 하나의 공감이 있다. 완전공감이다. <외부의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여라>라는 학습장인데 피드백을 참고하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제품의 품질을 파악하기 위하여 무료로 나누어준 뒤 평가를 기다리는 '테스터 tester' 와, 피드백이 부정적인 경우 한개값으로 두개를 파는 등 물불을 가리지 않고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일루전 illusion' 을 통한 살아남기 전략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여기서 혼자만의 생각보다는 고객을 혹은 상대방을 중시해야 한다는 점에 매료되었다. 결국은 요구에 부응하는 그리하여 비판에도 마음을 열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니 감정적 통제, 즉 아까 말했던 내면의 힘이 커야 할 것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다시 말한다면 '의사소통'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지,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상대방과 통할 수 있는지,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가 잦은 접촉에 있다고 하니 사람들과 단절되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어떤 것에 대해 공유하거나 공감한다는 말도 될 것이다. 접근법이야말로 세상을 지배하는 지름길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서로의 차이점에 대해 마음을 열어 상대방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만의 삶의 방식에 대해 감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을 내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도 되지 않을까? 스스로를 고립시키지마라! 단절된 삶의방식을 거부하라! 일단은 거리감을 없애버리고 비판과 피드백을 받아들일 수 있다록 조치를 취하라!

그 외에도  <당신의 적보다 더 오래 견뎌내라> 에서는 지루함과 권태를 이겨내고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더 높은 곳을 겨냥하라> 에서는 남다른 자신감을, <죽음과 삶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라> 에서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안고 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극복해야 하며 살아있는 하루 하루를 기적과도 같다고 생각하라, 고 말해주고 있다. 사실 이런 법칙들을 받아들이고 삶의 순간마다 그대로 적용시킨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어려운 과제이다보니 이렇게 약간씩 비틀어놓은 같은 종류의 책들이 나오고 또 나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사실 자기계발서라는 책을 읽다보면 형식에 약간의 변화만 주었을 뿐 그게 그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느 책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변하지않는 진리이기도 하고... '50번째 법칙'이라는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제3의 법칙','제5의 법칙'도 아니고 '50번째 법칙'이라니!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되어라, 교활하리만치 치밀한 반전을 꾀할 수 잇는 기회주의자가 되어라, 공격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사악해져라, 언제나 마음의 문을 열어두어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라, 그리하여 그들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그것이 비판이라면 더더욱 크게 마음을 열고서...

멋진 수식어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하기엔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어쩌면 얼음처럼 차갑다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결과가 나를 증명해주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법칙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50번째 법칙', 나 역시 나의 삶에 이 법칙을 적용시키며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피프티 센트가 누구야? 했었다. 가수라는데 무슨 노래를 불렀다는 건지.. 옮긴이의 말을 보면서 피프티 센트가 지금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래퍼이자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있는 뮤지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마도 드라마같은 그의 인생여정때문에 더 많은 매혹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성공했기 때문에!!! 로버트 그린이라는 사람을 통해 옛날의 영웅 나폴레옹과 견줄 수 있는 영웅으로 재탄생된 피프티 센트의 이야기가 바로 이 '50번째 법칙'이라는 말이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각 장마다 깊은 호흡을 요구했던 책을 덮으면서 한사람을 모티브삼아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구상했을 저자의 시간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피프티 센트나 로버트 그린이나 둘 다 앞서가는 사람들임엔 분명한 듯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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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꿈을 응원할게 마음별에서 온 꼬마천사 3
쿠르트 회르텐후버 지음, 코니 볼프 그림 / 꽃삽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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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의 만남이 있었다. 처음 꼬마천사가 내게 왔을 때 그 깜찍한 모습에 마냥 신기하기만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예쁘고 소중한 만남이었다. 귀를 열면 들릴거라 생각했는데 마음을 열어야만 알 수 있엇던 이야기들.. 사실 우리는 매순간마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행복을 이야기한다. 끝도없이 갈구하는 것 또한 사랑과 행복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내가 아닌 남이 나에게 주는 것으로만 치부해버린채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나주기만을 바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만남에서조차 꼬마천사는 말한다. 너의 얼굴에서 웃음이 생겨날 때 상대방의 얼굴도 웃음으로 화답한다고. 무엇인가를 해주기 원하지 말고 나부터 해주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의 결실이 내게로 돌아올거라고..

승마교사가 되고 싶었던 주디의 이야기는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좋아서 하는 일보다는 해야만 하기에 하는 일이 대부분인 우리의 삶.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라해도 그것을 즐길 수 있다면 그 일이 좋아질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던 말이 조금은 형식적인 말로 들려오기는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처럼 명쾌한 해답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단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거냐고 자신을 부정하기 때문에 어려울 뿐이라는 것도 인정하게 된다. 주디와 같은 경우를 사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보았을 것이고 실제로도 정말 그렇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어차피 해야할 일이라면 그래, 까짓거! 하는 심정으로 해치워버린 경험이 왜 없었겠는가 말이다. 그럴때마다 꼬마천사와 같은 응원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려온다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나와 너라는 사실은 지금까지 잊고 살았다!

누군가에게 "네 꿈을 응원할게" 라는 속삭임을 듣는다면 어떨까? 그 말은 언제 어디서든 너를 위해 기도해줄게 라는 말과 같을 것이기에 그런 속삭임이라면 백번 천번을 들어도 다시 듣고 싶을 것 같다.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삶에 대한 시선속에는 어두운 일상이 숨어있고, 긍정적인 시선속에는 밝고 활기찬 일상이 숨어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일테지만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않기에 어려운 일일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마천사를 통해 그 진리에 대한 모범해답을 보게 된다. 노력! 바로 노력이다. 아주 조금씩만 노력한다면 어느 누구에게나 내재되어져 있는 행복의 끈이 서로 연결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삶을 살 수 있을거라고 꼬마천사가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늘 꿈꾸어 오지 않았던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누군가 내게 도움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누군가에게 먼저 도움이 되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저 사람이 나를 보고 웃어주기전에 내가 먼저 웃어주면 되고, 저 사람에 대해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질책하기보다는 칭잔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아침에 눈을 떠 눈부신 햇살을 보며 인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잠깐 그 햇살에 고마움을 표해보자. 안녕! 하면서. 출근길에, 등교길에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아 그 마음을 표현하며 매 순간을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인하여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엄청난 크기가 될 수 있다고 꼬마천사는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행복의 끈이라고!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며 따뜻한 이불속의 온기를 떨쳐낸다는 것이 그리 쉽진 않다. 그러니 아침부터 툴툴거리게 되고 짜증 일색이다.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꼼지락거리다보면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뛰어야 하고 그때부터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기 시작한다. 그 묘한 머피의 법칙이라니!!! 아이구, 이 놈의 버스는 왜 이렇게 안오는거야? 오늘따라 길은 왜 이렇게 막히는거지? 빨리 좀 가지 왜 이렇게 늦어? 어이쿠, 이사람은 머리감고 제대로 말리고나 나오지 등등등... 우리를 몸닳게 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이야기 <네 꿈을 응원할게>는 꼬마천사가 버스를 타고가며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간은 그렇게 우리곁을 스쳐지나가는 것이라고 말해 주듯이.. 하나둘씩 잠시동안만 머물다 지나쳐가는 인생의 정거장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되는 거라고 말해 주듯이.. 소중한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리사와 톰이 내려야 할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아쉬워했듯이, 우리 역시 그렇게 스쳐지나간 모든 시간들을 아쉬워하며 살아서는 안되는거라고 말해 주듯이...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마음별에서 지구별을 바라볼 때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꼬마천사가 찾아왔을까 하고. 그리고 나는 다짐한다. 꼬마천사와 가졌던 세번의 만남이 그저 형식적인 만남으로 끝나지 않게 되기를.. 무엇보다도 귀엽고 깜찍했던 꼬마천사의 모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꼬마천사가 내게 쥐어준 세 장의 카드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사랑의 카드, 행복의 카드, 노력의 카드.. 사랑의 열쇠와 행복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꼬마천사와 마주했던 시간은 소중했고 행복했다.

너무나도 어려운 화두를 남겨두고 꼬마천사는 갔다. 아니 어쩌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저 먼 마음별에서 지구별을 바라보다가 내 마음에 그리고 너의 마음에 사랑과 행복의 싹이 자라지 않고 머뭇거릴 때 어느 순간에 불쑥 찾아와 용기를 내라고 말해줄런지도 모르겠다. 늘 곁에 있으나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늘 내 안에 있으나 밖에서만 찾으려고 했던 것들도 너무나 많다. 나로부터였다고 지나간 뒤에야 알게 되는 것들을 미리 알아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꼬마천사가 남겨두고 간 화두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 엉킨 실타래를 풀 둣이 나의 일상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정말 행복한 일일게다. 사랑도 행복도 모두 내 안에 있는 것을...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순간 행복의 끈을 잡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사랑의 열쇠를 잃어버리지 않게 행복의 끈으로 꽁꽁 묶어두어야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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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
황민호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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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우리만화라는 거다. 어린시절 TV를 통해서 보았던 만화들이 모두 우리만화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일본판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사실에 꽤나 놀랐었다. 우리만화의 수준이 가히 세계적이라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는데 어째서 만화라는 문화가 활발하게 우리곁에 머물지 못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돈되는 것만을 쫓아야하는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반가움이 앞섰던 것은 내 어린시절을 다시한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정말 그랬다. 유행가처럼 지나가버린 어린시절속으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고, 저자가 일러주는대로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훌쩍 커버린 나의 모습과 만나기도 했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이나 차갑게 삶과 마주서게 했는지는 모를일이지만 저자의 말대로 만화가 있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치 두치 세치 네치 뿌꾸뿌꾸 빵빵 ♪♬ 할아버지 할머니 어렸을적에 ♬ 검정고무신 ♪ 마루치 아라치 태권동자 마루치 정의에 주먹에 파란해골 13호 납작코가 되었네 ♪ 요리보고 죠리보고 둘리 ♬ 호이호이 둘리는 초능력 내친구 ♪♬ ...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나의 어린시절을 수놓았던 만화의 주제곡을 이렇게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잊지않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만화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하겠다. 동네에서 텔레비젼이 있던 친구집의 마루에 걸터앉아 만화를 얻어(?) 본 적이 있었는데, 거지새끼처럼 남의 집에서 그러고 있는 꼴이 보기 싫다고 어느날 텔레비젼을 사오신 아버지 덕분에 나는 든든한 오빠를 빽삼아 동생과 늘 싸워가며 만화를 보곤 했었다. 아기공룡 둘리같은 경우야 이미 내가 다 커버린 다음에 인기를 끌었던 만화이긴 하지만 둘리의 귀여움에 푹 빠져들기도 했고, 둘리라는 캐릭터 하나가 김수정이라는 만화가를 돈방석에 앉히게 했다는 소문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둘리가 몰고 온 파장은 엄청 났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은 온통 캐릭터 시대라고도 할 수 있으니 작은 인형들을 통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아 그 미세한 움직임들이 가볍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지금도 명절만 되면 심심치않게 만날 수 있는 머털이가 생각난다. 어리숙하기만한 머털이가 머리털 하나를 뽑아 요술을 부리는 걸 보면 서유기의 손오공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그 수더분한 모습에 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 때 '다모폐인'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 '다모'가 이미 만화로 먼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학창시절에는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만화속에서 우리를 안타깝게 했었던 까치와 엄지의 사랑을 등에 업고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라는 노래가 유행하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아쉽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샐러리맨의 애환을 잘 그려주고 있었던 김수정의 날자,고도리편을 보면서 현재 모신문에서 연재되고 있는 386C라는 만화가 생각났다. 네컷짜리 만화였지만 주변사람들은 그날 그날의 만화를 보면서 그 만화가의 일상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단다. 만화가의 두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만화를 통해 보던 나조차도 웃음을 지을 수 있었으니 어련할까! 

처음부터 시리즈물로 만들어져 나오는 만화가 있는가하면, 네 컷만으로 보여지는 만화가 있고, 단 한 컷만으로 모든 것을 압축히켜 보여주는 만화(일종의 삽화)가 있다. 어느것이 우선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네 컷이나 단 한 컷의 만화속에 압축되어져 있는 시류를 읽어낸다는 것은 정말 짜릿하다. 단 한 컷의 만화를 보면서도 웃을 수 있고 가슴 찡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말이다. 거기에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그림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품어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단순히 만화라고 불리기 보다는 일러스트라고 불리워지는 그림들이 나는 좋다. 많은 것을 장황하게 보여주지 않아도 간결하게 요약되어진 그 속에서 작가의 의도를 읽어낸다는 것도 의미있는 일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대별로 나누어진 만화의 주인공들이 이채롭다. 40-50년대의 만화야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니 그저 아스라한 기억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신문의 네 컷만화에서 자주 보았던 고바우나 코주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가장 신나는 만화들이 아무래도 60-70년대의 만화가 아닐까 싶다. 명랑만화라는 이름으로 소년잡지에 많이 실렸던 까닭이기도 하지만 다소 엉뚱한 캐릭터들이 많았다는 기억이다. 꺼벙이나 땡이도 있었지만 시커먼 눈썹에 동그란 얼굴을 하고 있던 따개비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가슴 찡하게 다가왔던 것은 아무래도 독고 탁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만화가 아니었나 싶다. 도깨비 감투나 발명왕 요철이도 기억난다. 사람처럼 말하고 걸어다녔던 검둥이 강가딘도 생각나고 박수동의 꼬불꼬불한 그림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상하게 생겼네 하면서 아이스크림을 선전하던  주인공이 바로 박수동의 그림이니 질긴 생명력에 다시한번 놀란다. 그래도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던 만화가라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우영이 아닌가 싶다. 주로 스포츠신문을 통해 그 분의 만화를 보았었는데 성인만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재미난 말투때문에 배꼽을 잡았었다. 성인만화라고 하면 지금도 기억할 수 있는 변금련뎐이나 한희작의 여자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내 기억속에서 이렇게 많은 주인공들이 살아있었나 싶다. 그만큼 무언가를 던져줄 수 있는 힘이 만화속에 존재한다는 말이 아닐까?

시대적으로 어떤 만화가 생겨났고, 그 만화의 생명력이 짧았거나 길었거나 했던 배경과 이유를 따져보기도 하고, 그 만화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었던 것, 혹은 그 만화때문에 겪어야 했던 풍랑들이 어떤 것이 있었는가를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순간이었다. 검열이 심했고 반공 방첩을 이야기하던 시절이었으니 오죽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만화 한 컷이 주는 메세지 전달 효과가 얼마나 컸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만화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타인의 힘에 의해 끝내는 붓을 꺾어야 했던 만화가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대중을 향해 소리없는 메세지를 전달한다는 것이 그토록이나 힘겨운 일인줄을 미루어 짐작하겠다.

한동안 유적지 답사 동호회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나름대로는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 쉽게 생각하지 않고 덤벼들었던 일이기도 했지만, 찾아가고자 하는 곳에 대한 사전지식을 안고 가는 것과 그저 알량한 호기심만을 안고 찾아가는 것에는 정말이지 천지간의 차이가 있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알고 대한다는 것이 무섭다는 말일게다. 내가 즐길 수 있는것조차도 그것에 대해 알고 즐긴다면 참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하는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름 만화를 좋아한다고는 했지만 그저 펼쳐지는 화면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 때 그 시절의 만화를 살펴보면서 그 만화가 안고 있는, 혹은 그 만화속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언행을 통해 작가정신과 시대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고수들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조금만 더 주의깊게 알려고 하는 마음으로 다가갔더라면 놓치고 지나쳤던 부분들이 적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감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옛 시절을 돌이켜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기억을 되돌려 다시한번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젖어들기도 했다. 우리의 만화, 우리의 캐릭터들이 좀 더 활성화되어 우리곁에서 뛰어놀아 줄 때 작가의 말처럼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도 해 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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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함정 -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가
자카리 쇼어 지음, 임옥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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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선택에 숨겨진 놀라운 심리의 비밀'이라는 말조차도 나는 거부하고 싶었다. 그다지 비밀스러운 것도 없어보였던 까닭이다.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모른 척 하는 것들, 모두가 인정하면서도 모두가 아닌 척 하는 그런 것들.. 어쩌면 우리가 범하고 있을 모든 우愚가 선택해야만 했던 그 순간부터 존재하는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선택하도록 만든 것은 누구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곤 이렇게 결정을 내려버리고 말았다. 선택에 숨겨진 놀라운 심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오직 나만이 가지고 있는 거라고.. 학습되어진다는 모든 시스템 역시 우리가 만든 것이기에.. 실행되어졌던 모든 사실속에서 오류가 발생하고 그 오류들을 모아 분석하고 정리하여 이정도면 되겠지 하며 다시 만들어지는 시스템들이 어디 하나둘일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직접적으로 대면하지는 못하지만 수많은 시스템속에서 그런 일들은 정말 많이 생겨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책이 작가의 말처럼 주관적인 관점으로 쓰여진다는 것은 그 오류의 발생률을 좀 더 적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정도는, 이정도쯤이야, 여기 혹은 거기까지만 등등등.. 우리가 그어놓은 선은 참 많다. 그런데 그 선들의 모양이 모두가 제각각이니 문제다. 중용이라는 말이 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딱 중간쯤이라는 말일텐데 그것조차도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일런지도 모르겠다. 이분법적 사고라거나 양극화현상이라는 말처럼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도 없을텐데 어느 틈엔가 우리는 그런 말들의 노예가 되어 있는 듯하다. 그 내면을 살펴보자면 나 편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나온다. 내편이라면 더이상 아무런 생각없이 받아들이면 그만일테고 저쪽편이라면 나를 힘들게 할테니 없애버리거나 무시해버린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 책속에서는 경계해야할 항목으로 그런 관념의 틀을 콕집어 말해준다. 우리도 안다. 앎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이기적인 사고가 그것을 막아버린다. 그러니 문제라는 말이다.

겉으로는 강한척 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파헤쳐보면 나약함과 유약함이 존재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다. 그것을 들키지 않기위해 강한척 한다는 말에도 어느정도는 공감한다. 때로는 들키고 싶지 않은 내면이 타인들에게는 나의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하는 불안심리도 있을 것이다. 약한쪽보다는 강한쪽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나 역시 그런 사람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그 내면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 왠지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사람들은 강해지고 싶고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고 싶어하는 묘한 감정을 숨기고 사는 모양이다. 책속에서야 이렇다하게 알 만한 사람들의 이름을 사례로 들려주며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들만이 그런건 아닐테니 하는 말이다.

작가는 나약함이 노출될 것을 두려워하는 노출불안이나, 복잡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원인혼란등, 많은 예를 들어가며 심리적인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1차원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평면적인 관점 편에서는 정말이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신이 알고 있는 혹은 자신이 배웠던, 그것도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테두리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 무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범주화에 대한 강박증이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대부분의 사건들이 이 틀때문에 생겨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더군다나 상대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착각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작가가 거울 이미지라는 말로 미화하고는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결과물들은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뻔하다.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고 나의 가정일 뿐인데 상대의 욕망이나 생각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그 자체는 정말 다시한번 돌이켜볼 일이다. 나 역시도 그 거울 깨뜨리기에 적극 동참하고 싶다. 어려운 일일테지만...

많은 이야기속에서 유독 나의 시선과 마음을 붙잡았던 부분은 아무래도 정보에 관한 항목이 아닐까 싶다. 잘 알고 있는 모파상의 <목걸이>를 예로 들면서 진주목걸이를 빌려갔던 여인과 그 목걸이를 빌려주었던 여인이 서로 정보만 교환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의 함정에 빠지게 해 주었다.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그 진주목걸이가 모조품이라는 말만 미리 해 주었어도, 그 진주목걸이를 잃어버렸다는 말만 일찍 했어도 그렇게까지 힘겨운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는 말은 나에게 각인되듯이 다가왔다. 수많은 정보에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람들.. 정보를 공유하게 되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정보를 독점하기도 하고, 모든 정보를 차단시킴으로 정보의 공백상태를 유지시키며 정보를 회피하기도 하는 것이 오로지 이기적인 마음때문이라면 정말 슬픈일이다. 물론 때로는 감춰야 할 비밀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피해야 할 정보도 있을테지만 그런 모든 상황을 판단하는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음은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봐야 할까?

역사적인 사실을 여러가지로 보여주며 그 상황에서는 왜 그랬을까?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과 해답을 적절하게 잘 조화시켜 나가는 책의 흐름을 따라잡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라면,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한번쯤은 하게 만들어주니 저절로 생각늪에 빠져버리곤 한다. 그것조차도 생각의 함정이었을까? 알 수 없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중에 선입견이나 편협된 생각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것들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하는 상태가 아닐까 싶어 경계하기도 하지만 잘 안된다. 지독히도 강한 주관적인 관념때문이다. 고집스럽다는 성격을 탓하기 보다는 어쩌면 변화를 거부하는 게 아닐까하는 염려스러움도 있다. 책속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변화하는 세계를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상실을 초래하는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가끔씩은 드물게 변화를 거부하여 성공하는 사례도 있지만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면 열린 마음으로 주변을 넓게 바라보며 생각해야 하는 것이니 그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 너무 민감하게 변화에 대응하는 것도 문제가 있겠지만 말이다.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가" 라는 책의 부제처럼 나의 선택으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그 판단이 옳았다거나 틀렸다해도 그 결과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때로는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힘겨워하는 주변도 생겨나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다. 돈 좀 있다고, 덩치가 크다고, 목소리가 크다고 이기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그런 세상속에서 살고 싶진 않다. 그 순간만큼은 비록 약하게 보여질지라도, 비록 머리를 숙여야하는 상황이 만들어질지라도 잘못을 알고도 나의 입장을 고수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같다. 그것이 또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지름길일테니 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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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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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사람들의 1/3이 정신병자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런 말을 여과지를 통과하지 않고 그대로 듣는다면 정말 끔찍한 말이겠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비추어 말하는 것이라고 위안삼으면서 그 섬뜩함을 달래보기도 한다. 미쳐가고 있다는 말이 갖는 양면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온 정신을 다 빼앗긴 채 살아가는 것이니 행복할 수도 있는 일일테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회피가 아닐까 싶기도 하여 왠지 서글퍼지기도 한다.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자, 과연 누구인가?' 라고 묻고 있는 이 책의 소개글을 보면서 범인은 우리가 아니라 사회라고 떠밀고도 싶어진다. 그러나 어쩌랴, 그렇게 미쳐가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인 것을... 일단은  특이하다. 처음부터 문맥을 찾아 헤매느라 정신을 못차렸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이해하려고만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뭔가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되는 책..

책속에서 주인공처럼 보여지는 미모의 여인 아구스티나는 어린시절부터 억압되어져 있던 감정의 소용돌이안에 갇힌 채 살아가는 정신병자이다. 가끔씩은 제 정신으로 돌아와 주변사람들에게 잠깐의 행복을 전해주고 가는 그런 안타까움의 존재.. 그런 그녀를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감싸며 감정의 소용돌이로부터 꺼내기 위해 노력하는 환상같은 남자 아길라르.. 아이러니하게도 그 두사람에게서 보여지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러면서도 끝없이 서로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는 거였다. 차갑고 형식적이기만 했던 가족들. 그 틈새속에서도 일종의 모성애와 같았던 자신의 사랑을 어린 동생 비치에게 쏟아부을 수 밖에 없었던 아구스티나.. 단 한번도 거역하지 않은 채 자신이 처해진 상황안에서 사랑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던 어린소녀 아구스티나는 어쩌면 이미 자신만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리저리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는 책속의 시선을 쫓다보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타인의 시선으로 돌아가버린 듯 느껴진다. 같은 장소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두사람을 보고 있다. 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말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옮긴이의 말을 빌려보자면 내면과 외면의 세계를 동시에 왔다갔다 하는 까닭이라고 하지만 왠지 거북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구스티나의 행적을 자신과 제3자의 시선으로 혹은 제3자의 목소리를 빌려 나에게 들려주고 있으니 조금은 혼동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편함을 참으며 책장을 넘기다보면 어느샌가 아구스티나라는 여인의 광기에 대한 공감이 생겨나기 시작한다는 거다.

아구스티나를 향한 아길라르의 마음은 묘하다. 어느날 갑짜기 출장에서 돌아와 전화기에 녹음된 목소리를 듣게 되는 아길라르. 웰링턴 호텔에서 당신 부인을 찾아가시오... 이 뜬금없는 소리에 그 흔한 아내의 부정을 떠올리게 되는 남자. 미친 아내곁에서 자신도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남자. 아내의 과거를 따라가면서 아내의 주변에 대하여 더 많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을 탓하는 남자. 그러면서도 언뜻언뜻 자신이 원하는 작은 행복의 고리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남자.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아구스티나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리하여 아길라르와 같이 자신을 감싸안아줄 그런 존재를 기다리며 꿈꾸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러면서 나는 똑같은 질문에 부딪히게 되어버렸다.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자, 과연 누구인가?"

색다른 시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나를 헤매게 하고 지치게 했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 이 세상속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친 그런 느낌을 전해주었던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형식의 옷을 하나씩 하나씩 벗어버리며 자신의 알몸으로 다가가고 있는, 그야말로 피하지 않고 부딪혀야 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의 울림이 전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의 이력이 눈에 띈다. 소설속에서 마약거래나 돈세탁과 같은 상류층의 냄새나는 부에 대해 과감하게 칼을 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조국 콜롬비아의 비극을 외면할 수 없었던 정치인의 숨결이 거기에 살아 숨쉰다고 한다. 실제로도 작가는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고 하니 그 표현들이 모두 조국에 대한 절절한 작가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 인간의 숨겨진 내면을 시원하게 파헤쳐버렸던 주제 사라마구의 칭찬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유혹을 이겨낼 수 없었다. 작가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라는 이름을 보면서 오랜동안을 나의 책장에 꽂힌 채 눈 앞에서 서성거렸던 <백년동안의 고독>을 떠올렸다.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저 흐름을 따라 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와닿는 그 무엇과 마주치던 순간들, 그 기다림을 내게 알려주었던 작품들을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선택했던 내가 받을 수 있었던 선물로 충분했다. 조금은 거북스러웠지만, 나에게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읽고나니 후련하다. 그러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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