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최성현 옮김, 미카미 오사무 그림 / 도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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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끝내주게 경이로운 책이다. 사람의 삶과 다르지 않았던 풀들의 삶..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그저 스쳐지나거나, 혹은 우리 발밑에 깔려 죽어간다해도 눈길한번 주지 않았을 그런 풀들마저도 저마다 살기 위한 전략을 짠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살아남기 위한, 그리하여 모든 적들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그러나 그들에게서 욕심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살아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소개되어지는 풀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내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늘 보아왔던 풀들이 저렇게도 이쁜 이름을 갖고 있었구나 싶었다.  가장 마음 아팠던 풀들은 원예용이었다가 자꾸만 밀리고 밀려 결국은 들판으로 쫓겨나야만 했던 꽃들이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저들만의 삶조차도 변화되어버리는 현실... 그것이 안타까웠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야생화를 사랑한다고 한다. 그래서 관심있게 바라보는 사람이 늘어갈수록, 크게 이야기하자면 자연이 살아나는 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될 식물.. 그 안에 속해있는 작은 풀.. 그리고 우리에게 잡초라고 불리워지는.. 하지만 그들은 정말 강인했다.

이 책에 소개되어진 이름만 기억해도 우리가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제비꽃, 큰개불알꽃, 별꽃부터 시작해서 매혹적인 입술을 내밀고 있는 광대나물을 보게 되면 정말로 그 꽃과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둑새풀, 살갈퀴, 쇠뜨기, 냉이, 민들레를 보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와 과연 무엇이 다를까 싶기도 하고, 귀화식물의 대표격으로 귀하신 몸으로 들어왔다가 새로운 꽃들에게 밀려 하나의 잡초신세로 전락하게 된 개망초의 기구한 운명은 또 어떤가! 살아남기 위해 수시로 전략을 바꿔야만 했던 그들을 탓하기보다 그들을 그렇게까지 만든 우리는 뭐가 그리 잘났을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광대수염, 클로우버, 새포아풀, 참나리처럼 본 것도 같고, 보지 못한 것도 같은 이름들... 지은이는 친절하게도 그들과 대면할 수 있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세밀화를 통해 그들의 작은 특징까지도 잘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마치 금방이라도 바람이 불면 살랑거릴 것처럼 보인다. 질경이 -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길, 타래난초 - 목숨을 건 전략, 쇠비름 - 기쁜 일이 있으면 문에 걸었던 풀, 닭의장풀(달개비) - 축구팀을 앞서는 조직 플레이, 개구리밥(부평초) - 떠돌이의 삶 처럼 저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을 살려낸 부제목과 함께 등장하는 풀들.. 그런가하면 아픔을 보여주는 제목도 눈에 띄어 다시한번 훑어보게도 한다.

강아지풀,  방동사니, 바랭이, 땅빈대, 반하(끼무릇), 피, 메귀리, 금방동사니 같은 풀들은 우리가 가장 흔하게 마주쳤던 풀인데도 불구하고 그림을 보면서 아하, 그게 이거였어? 하는 반가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쯤에서 퀴즈를 하나 맞춰보자. 나팔꽃이 먼저일까? 메꽃이 먼저일까?  이 책을 보면서 아차,싶었던 것이 바로 이 대목이었는데 보통은 나팔꽃이 먼저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 학교에서 관찰일기를 써야 할 때 곁에 두었던 꽃이기도 하지만 메꽃보다는 크기도 크고 우리 주변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꽃이 나팔꽃이다. 하지만 자연도감에서 나팔꽃은 메꽃과의 식물로 소개되어 있다고 한다. 비슷하지만 결코 비슷하지 않은 두 꽃.. 메꽃이 밭에 침입하면 엄청나게 성가신 잡초가 된다는데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전략 또한 엄청나다. 수를 늘리기 위해서 공포영화속의 주인공처럼 팔을 잘라도 다시 나고, 다리를 잘라도 다시 난다. 거기다가 잘려 떨어져 나간 팔과 다리마저 다시 살아나는 꽃이 메꽃이라고 하니 연약한 생김새와는 너무나도 다른 생존전략이다. 재미있게도 메꽃을 소개하는 부제목이 '그에게만은 지고 싶지 않다'이다. 나팔꽃을 겨냥한 제목같은데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어 살며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내게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던 것이 물옥잠과 물달개비였다. 자색의 수술이 오른쪽에 있느냐, 왼쪽에 있느냐에 따라 우형과 좌형으로 나뉜다는 물옥잠.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예측할 수 없는 잡초의 세계에서  좋다, 나쁘다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분별하기보다 다양성이 풍부한 쪽을 선택한다는 물옥잠. 그렇게 사는 물옥잠의 방식을 우리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절로 숙연해진다. 그런 물옥잠도 멸종 우려가 있는 동식물 시리즈에 이름이 올라 있다고 한다. 그토록이나 강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조차도 멸종될 기미가 보인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울리는 또하나의 경종이 아닐까 싶다.   잡초가 모두 죽는 날 우리는 살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쓸모없이 만들어진 것은 없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잡초가 잡초답게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으랴, 고 말하던 지은이의 말도 그냥 흘려버릴 수만은 없는 말이다.

또 하나가 바로 아래 사진으로 소개하는 물달개비다. 영어 이름이 '워터 히아신스'다. 그만큼 히아신스를 꼭 닮았고 기품과 품격으로 가득 차 있는 꽃이라고 한다. 이 물달개비가 연못이나 도랑을 덮으면 다른 생물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버릴 만큼 무서운 꽃이기도 하다. 그런 꽃을 없애기 위해서 억 단위의 비용이 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조건만 좋으면 일주일 만에 배로 늘어날 수 있는 무서운 생명력... 그런데 희안한 것은 이 꽃이 깨끗한 물에서는 살 수 없다는 거다. 더러운 물이어야만 살 수 있다는데 생활하수나 공업용 배수가 흘러든 물 속에는 질소나 인산과 같은 영양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물달개비가 질소와 인산을 흡수하는 힘이 대단히 강해서 수질 정화에 이용하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는 걸 보면 우리에게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물속의 오염물질을 자신의 체내에 받아들임으로써 물을 정화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꽃을 어찌할까? 
↖ 물달개비( - 책 속의 그림)


사실 나는 이 책을 보기전까지 물옥잠과 물달개비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둘 다 물속에서 피는 꽃이긴 하나 분명히 얼굴모양새도 달랐는데 너무 쉽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꽃에게 너무 미안하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평소 관심은 있었으나 궁금하다고만 생각했었던 풀들에 대해 알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 것은 풀포기 하나마다 의인화해서 사람처럼 대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름은 있으나 불리워지지 못하고 이름없는 잡초로만 알고 있었던 작은 생명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지은이의 표현처럼 어쩌면 그리도 인간과 닮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들의 전략이 누구때문에 저렇게 지독스러워졌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때문이다. 인간이 저들을 저렇게 지독한 생활방식을 갖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동식물이 살 수 없는 세상은 인간도 살 수 없는데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싸아해진다. 옮긴이의 말이 또한 가슴을 울린다. 일본의 대학에서는 얼마전부터 잡초학이라는 학문이 자리를 잡게 됐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연구를 했던 지은이가 그 성과를 책으로 풀어쓴 것이라 한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잡초 50가지... 옮긴이의 말처럼 현대인의 삶은 자연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런 책을 보면서도 에이, 뭐 이런 잡초를~~ 하며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옮긴이의 말을 남겨주고자 한다.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해주기를... /아이비생각


"잡초는 지구의 건강에 긴급 사태가 생기면 달려가 처리하는 식물계의 적십자다. 다행히 지구가 위급한 상황을 넘기면 잡초는 성장 속도가 자기보다 느리지만 보다 크고 튼튼하게 자라는 나무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 알프레드 크로스비

"잡초는 가이아의 백혈구이자 부스럼 딱지이고 반창고이자 항생 물질이다." - 짐 놀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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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달력 - 마야 문명 최대의 수수께끼에 얽힌 진실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지음, 박병화 옮김 / 열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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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어찌보면 꾸준하게 우리 곁을 맴도는 화제다. 그런데 이 세상이 끝나는 날이 정말 오기는 올까?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다는 2012년의 세계종말론은 근거있는 이야기일까? 수도없이 많은 재난 영화를 보았다. 지진, 화산폭발, 쓰나미... 그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던 인간은 자연앞에서 너무나도 작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영화들은 자연과 공존해야 한다는 작은 메세지를 전하고자하는 노력을 숨겨두었다. 종말론은 그것과는 본질 자체가 다른 것 같다. 2012년 12월 21일. 우리보다 훨씬 앞선 문명을 만들어냈다던 마야인들의 달력에 적혀 있다는 그 날짜가 왜 하필이면 이 세계가 망하는 날로 해석되어졌을까?  우리보다 더 발달된 천문학의 세계와 과학관을 보여주고 있다는 오래전의 문명은 많다. 나스카 문명, 잉카문명, 아스텍문명... 그런데 그들은 왜 사라진 것일까? 제대로 된 기록조차 남겨두지 못한 채 사라져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그런 것에 대한 왜곡된 사실과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그러한 까닭에 나처럼 아주 단순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된 사람이라면 일견 당혹스러울수도 있겠다. 하지만 흥미롭다. 다 읽고나니 뭔가를 하나 얻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우쭐해지기까지 한다. 온 인류를 지배할 수 밖에 없었 달력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자.

책을 읽기 전에 정말 마야의 달력에 세계의 종말이 적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었다면 과감하게 버려라.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아하! 하는 느낌표를 바로 찍게 될테니까. 일전에 <앙코르와트>에 대한 다큐를 실감나게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작, 방송되었던 것인데 정말 놀라웠다. 우리가 지금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규정해 놓은 것들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되어지고 있다. <앙코르와트>에 대한 것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건축이나 구조물도 연구대상이기는 하겠지만 그 안에 새겨진 벽화나 부조(돋을새김)를 보게되면 더더욱 흥미로워진다. 그것들을 토대로 유추되는 고리들이 서로 맞물려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되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보지 못했고 가볼 수도 없는 시대에 대한 밑그림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기록조차 남겨지지 않았다면, 쉽게 흔적을 찾아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마야문명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착은 놀라울 정도로 강하다. 끝까지 파헤쳐 작은 조각이라도 찾아내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니... 그런 단편적인 조각만으로 모든 걸 말 할 수 없는데도 마치 다 얻은 것처럼 수많은 오류들이 쏟아져나온다. 바로 그런 오류들에 대한 바로잡기쯤이라고나 할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우리네 속담을 한번 생각해보자. 어설프게 떠도는 많은 오류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우롱하고 있는지.. 누군가는 숨겨놓은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그래야 '만들어지는 것들' 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본다면 2012년의 종말론에 사로잡힌 우리의 모습을 다시한번 반추하게 된다.

마야인들은 대단히 현실적이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면 과거라는 시간속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들은 다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싶다. 달력이 나오고 시간개념이 생겨나게 되는 원인도 먹고 살기 위한 하나의 방책에 불과했다. 떠돌이 생활이 정착생활로 바뀌면서 그것에 대한 열망은 더 커졌을 것이다. 옛날에는 해보다 달을 더 큰 의미로 보았다고 한다. 달력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달을 연구하기 위해 천문학이 발달했고 그러다보니 시간에 관한 이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이사르가 이집트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클레오파트라라는 여인보다 그곳의 문화에 더 매료되었으며 그곳의 달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이야기는 내게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무지한 스페인의 병사들이 신의 이름을 내세워 마야인들을 파괴시킨 것은 기독교가 지독한 편견에 휩싸인 오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음을 대변한다. 그런데 더 경악스러운 것은 그 오만의 극치가 현재까지도 한치의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유럽이나 서구위주로 편향되었던 것들이 이제는 아시아나 아프리카를 말하기 시작했다. 수도없이 편집되어졌던 세계사의 줄거리가 하나씩 그 잘못된 베일을 벗어던지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도 고삐 풀린 가속화의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시간과 속도전쟁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멈출 줄 모르는 속도앞에서 나 역시 불안함과 뜻모를 거부감이 생겨나고 더 심하면 화가 나기까지 한다. '속도의 독재정치'라는 말에 완전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이 속도 중시 문화가 전세계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지금과 같은 속도전쟁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캐나다의 이누이트족의 언어에는 시간이라는 말이 없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오직 자연의 현상으로만 시간을 읽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인류의 조상이었기에 자연환경이 제공하는 기준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달력... 그 달력이라는 것이 바로 그렇게 주기적으로 변해가는 자연현상을 기록한 것에서 비롯되어진 것이었다. 거기에 아주 오래된 종교의 역사가 가미되었다. 인류의 조상들이 모셨던 신들이 모두 자연적인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현재도 그렇게 자연신을 우러르며 살아가고 있는 종족은 많다. 지금까지 인류의 달력 역사와 시간개념을 살펴보았지만 고도로 발달된 마야인의 달력이 종교와 정치, 장기적인 시간의 구성요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들이 나타나는 것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기회를 주기 때문이야. 그자들이 나타나면 그걸로 끝이야. 사람들이 그들에게 자신을 다스릴 기회를 주거든. 진심으로 깨닫지 못한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어. 마치 눈먼 사람에게 무지개가 의미없고 아름다운 새소리가 귀머거리에게 소용없듯이"... 이 멋진 말은 마지막 장에서 들려주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속에 나오는 대사다. 마야의 달력이야기와 함께 들려주는 모모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모모효과에 비교한 마야력의 의미가 가슴 깊숙히 각인되어진다. 시간도둑인 회색도당과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모모가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앞을 내다보는 능력을 가졌던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도움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제 결론을 말한다면 2012년의 종말론은 호사가들의 말이라는 거다. 거기다가 종교적인 의미가 깊숙이 파고들어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게 오직 나만의 결론에 불과한 말일까?

사람들은 자신의 구미에 맞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 이야기가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극적인 소재라면 더할 나위없이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주변을 떠도는 말들을 살펴보면 사실이 그렇다. 정의보다는 이념이, 진실보다는 거짓이 저만큼 앞서가고있는 경기에서 결승선 안으로 누가 먼저 발을 들여놓게 될지는 아직 모르는 현재진행형이다. 기이한 것은 그 경기를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앞서가는 존재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마음은 그게 아닌데, 생각은 그렇지가 않은데 라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무엇때문에 그 경기를 끝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빌어 말하고 있는 저자의 주장은 따끔하다. 

저만의 주장에 맞춰 모든 것을 각색해버리는 사람들의 모양새가 그리 보기 좋은 건 아니다. 당시에는 그럴싸하게 포장된 것으로 보여질지는 몰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포장지가 뜯겨져나가면 원래의 모습보다 더 추해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금 당장의 만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종말론 역시 그런게 아니었을까?  지금보다도 더 과학적이었다던 마야인들의 문화가 든든한 뒷배경으로 깔려주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현혹당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제대로 확인 된 것이 너무도 적어 아직까지도 확언할 수 없다는 마야문명.. 온갖 의문점을 불러오게 된 그들의 문명을 통해 세상 바로보기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 책속에 담아놓은 것 같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그리고 한번쯤은 우리의 삶에 대해 되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012년이 정말로 세계의 종말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80%정도나 된다. 그렇다고 내가 뭐 어떤 종교에 심취해서도 아니고 염세주의라서 그런것도 아니다. 한번쯤은 확 뒤집혀져서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그런 세상이 다시 시작되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오만한 인류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이라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아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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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의 발견 - 내 안에 잠재된 기질.성격.재능에 관한 비밀
제롬 케이건 지음, 김병화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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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는 얼만큼의 차이가 있을까?  대체적으로 저런 질문을 받으면 곧잘 대답하는 말이 내성적이라거나 외향적이라거나 명랑하다거나 조용하다거나 뭐, 이런 식으로 대답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도대체 성격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그렇게 판에 박힌 대답을 하는 것일까? 성격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각각의 성질이나 품성이라고 나온다. 성격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살펴보자고 들면 역시 좀 전에 대답했었던 그런 말로 나뉘어진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들이 나를 평가하는 말은 주로 보여지는 면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낙천적이라거나 가식적이라거나 저 사람은 정말 고리타분하다거나 집중력이 좋고 매사에 철저하니 완벽한 사람이라거나, 대개가 이런식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 그사람하고 같이 살아봤어? 라는 말을 가끔 하게 되는데 그만큼 남에게 보여지는 것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까이에서 느끼는 성격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는 모양이다. 우습게도 살아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마~ 라는 유행어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기질'이라는 낱말과 마주치게 된다.  '기질'은 또 무엇인가?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극에 대한 민감성이나 정서적 반응을 보여주는 각자의 성격적 소질이라고 나온다. 성격적 소질이라고?  내친김에 비슷한 말을 한번 더 찾아보기로 한다. 성질 : 각자가 지닌 마음의 본바탕, 성품 : 각자의 성질이나 됨됨이, 됨됨이 : 사람이나 물건의 생긴 품, 인격 : 사람으로서의 품격 등... 찾아보았던 말을 통해서 한번 짚어보자면 겉으로 보여지는 뜻도 있지만 보여지지 않는 내면을 말하는 의미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모든 것들이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성격이라는 말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것도 같다. 성격이라는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을 정의내릴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일단은 보여지는 것으로 판단해 볼 때는 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성격은 어떻게 형성될까? 책을 펼쳐들면서 나에게 궁금증을 만들어주었던 질문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궁금증을 풀어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했던 말이 바로 '기질'이었다. 자극에 대한 반응 따위를 이야기한다는 '기질' 은 유전적일까? 라는 것부터 파고든다. 유전자에 의해 '기질'이 좌우되기도 하지만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도 '기질'은 좌우된다는 거였다. 태교 역시 '기질'을 생각해볼 때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되면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것만 말하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 '기질'이라는 게 살아가는 사회의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역설적이게도 '성격'속에 '기질' 숨어있다는 말처럼 들려 조금은 놀랍기도 했지만 예를 들어주며 이해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주장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게 된다. 유전적인 '기질'이 어떤 '성격'을 만들어내는가는 그 부모의 교육태도나 성향에 따라서, 혹은  그 아이가 자라면서 어떤 가정과 사회의 환경속에 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남자인가 여자인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미 규칙화되어버린 사회적인 규제에 따라 그 '성격'의 유형이 달라지는 것 같다. 우리가 흔하게 이야기하는 MBTI라는 성격의 유형도 어느정도는 이미 만들어진 일례에 불과할 뿐이다. 이 사회라는 거대한 흐름은 어쩌면 이미 만들어놓은 틀에 자신을 짜 맞추는 형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다.

남자답기를 바라고, 여자답기를 바라는 가정이나 사회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거기다가 사회생활을 통해 만들어지는 계급이나 서열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런 모든 요구조건에 맞추어지는 것이 '성격'이라는 말이 아닐까?  그것뿐만이 아니다. 같은 형제지간에서도 첫째냐 둘째냐 혹은 막내냐에 따라 성격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생존본능일테니까. 첫째나 막내에 비해 둘째는 사랑에 목말라 한다는 말을 이 책속에서도 볼 수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첫째는 첫째라서, 막내는 막내라서 더 이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을테니까. 그러니 둘째는 지독해질 수 밖에 없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제 몫을 챙기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좀 더 악착같아야 강해질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다보니 내 시선을 잡아끄는 한 문장 때문 다시금 생각에 잠기게 된다. 경험이 기질을 바꿀 수 있는가?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대답을 하고 싶다.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가장 뛰어난 동물이 바로 인간인 까닭이다. 그 밖에도 남자와 여자가 왜 다른지, 성격이나 기질이 과연 민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인지 불안감과 우울은 왜 생기는 것인지에 대한 글이 장황하게 펼쳐진다. 하다못해 지리적인 요인까지도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말하자면 이렇다. 세상에 똑같은 성격은 단 하나도 없으며 사회라는 틀에 의해 성격은 만들어진다는 거다. 남자와 여자는 같을 수가 없으며 시대나 문화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가 있다는 거다. 인간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성격을 '본성'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또 '기질'과 통하는 것일까? '본성'이라는 말을 '천성'이라고도 한다는 데 이쯤에서 나는 또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은 본디 선한 존재일까? 악한 존재일까?  물론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처음부터 선하다거나 악하다거나 하는 잣대를 대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들어 본 기억이 있다. 그만큼 살아가면서 모든 것은 형성된다는 말일테다. 사실 나는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던 건 아니었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 책속에는 답이 없는 듯 하다. 그냥 그럴 것이다, 라는 주장만을 보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늘 가슴속에 품고 사는 우화 한토막을 꺼내본다. 너의 마음속에는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같이 살고 있단다. 그 놈들은 네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살지. 어떤 녀석에게 먹이를 줄 것인지는 너의 선택이야. 너의 먹이를 받아먹은 놈이 덩치를 키울테니까 말이다. 자, 너는 어떤 녀석에게 먹이를 주겠느냐?.....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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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개항부터 해방 후까지 역사를 응시한 결정적 그림으로, 마침내 우리 근대를 만나다!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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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를 공부할 때마다 있는 듯 없는 듯 넘어가는 부분이 아마도 근대사일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학자마다 다른 의견이 너무나도 많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것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겠느냐는 지극히 추상적인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서 의아했다. 우리의 역사를 누구 한사람의 시선으로 고정시켜 볼 수는 없는 일일텐데 학자마다 시선이 달라서라고?  그리고 아직은 해결되지 못한 일이 많은 까닭이라고?  너무나 편협적인 생각이다. 전체적인 그림으로 평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시민의 사회가 성립되는 관점으로 근대사를 말한다면 우리의 근대사는 어디서부터가 시작일까?  아무래도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시점이 우리 근대사의 시작은 아닐까?  그렇게 따진다면 일제 강점기부터 우리의 근대사가 시작인 걸까? 철통같은 쇄국주의정책으로 대문을 걸어잠궜어도 서구문물은 우리 생활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서구문물을 받아들여야 했던 우리의 자세는 어떠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궁금증이 어느정도는 해소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장황한 근대의 이야기를 한장의 사진을 앞세우며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서고 있다.

이념과 이상이 대립하고 독립과 해방을 부르짖었던 지식인들의 움직임을 테두리로 서민들의 생활상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실제적인 그림속에 나타난 우리의 이야기들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통해 보았을 때 대체적으로 1800년대 고종의 시대부터 시작하는 우리의 근대사는 일본강점기라는 쓰라린 기억부터 훑어내린다. 황제로써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했다는 고종과 그와는 반대로 왕실의 친인척이라 하여 권세를 누렸던 사람들의 사치는 그야말로 극과 극을 달린다. 일본에 의해 망가지기 시작하는 우리의 모든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사람들.. 어쩌면 그들의 눈물과 외침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것이다. 타국의 화가들이 그려낸 우리의 역사속에는 나라잃은 백성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그 때까지도 살아숨쉬던 반상의 모습이 있었다. '모던 걸' 과 '모던 보이'의 말이 어떤 의미에서 탄생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毛短, 즉 머리가 짧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어진 말이다. 단발령을 거부하며 상투 자르기를 마다했던 사람들속에서도 하나둘씩 늘어가던 단발머리.. 바로 그 짦아진 머리가 곧 우리의 근대를 대표하는 모습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대별로 엮어지는 굵직한 역사의 제목을 앞세우기 보다 그안에 담겨진 우리네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더 좋았던 시간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쉬움이 너무나도 많이 느껴지던 시간이었다. 세계가 알아준다는 고려의 비색을 모른 체 살아야 했던 조선의 도공들이 오히려 일제에 의해 비색을 알게 되는 모순이라니.. 우리의 서당이 없어지게 된 연유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때문이었다는 건 정말 서글픈 일이다. 일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말살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세계문화유산이 되어준 종묘제례악은 길이 보존할 문화유산임이 분명하다.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그 때의 이화, 진명, 숙명, 경기등은 명문고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지금의 명문고는 내가 학생일적의 명문고와 의미가 다르다. 적어도 그때는 전통있는 학교를 명문고라고 했다. 그렇게 불리웠던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상세하게 알게 된다. 신여성과 모던걸들을 배출해냈던 여학교였던 까닭이다.  그 시절을 대표할 수 있는 절절한 사랑이야기도 한 몫 거들겠다고 나선다. 현해탄을 건너던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랑이 있었고, 천재시인 이상과 당시의 모던걸 변동림의 뜨거운 사랑이 있었다.  그들의 사랑이 끝내는 아픔으로 귀결되지만 지금에 와서는 자유연애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곤 한다.

나 어릴적에는 크리스마스실이라는 것도 있었다. 결핵퇴치를 위해 벌였던 운동이었다. 36년이라는 일제강점기가 우리에게서 빼앗아간 것은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6.25라는 전쟁이 두번째로 우리를 할퀴고 지나간다. 같은 민족끼리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총을 겨누었다고는 하지만 따지고보면 힘없는 나라의 설움이다. 그 어렵던 피난살이에도 공부의 끈만은 놓치지 않았다던 우리의 부모님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흔적을 그림을 통해 바라보게 된다.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전쟁이 일어났듯이 휴전이 되었고 나라는 분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는 일어섰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좋은 새마을 우리 힘으로 가꾸세 ♪ 어렸을 적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노래다. 그리고 혼분식장려로 인한 도시락 검사는 지금 나에게 하나의 추억으로 남겨졌다. 하얀 쌀밥위에 거무죽죽한 보리쌀을 한 켜 살짝  얹은 것을 선생님은 밥을 파헤쳐가며 검사를 하셨었다. 지금은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을 다 읽고나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긴장의 끈일지도 모르겠다는... 편리함과 안일함에 젖어버린 지금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망해가는 조선의 양반사회가 투영된다. 문벌주의와 연고주의가 판치는 지금이 그때와 너무나도 똑같다. 편을 가르고 싸우는 파벌싸움이야 어느나라나 같을거라고 제쳐놓는다해도 말이다. 오로지 저하나만을 생각하는 관료들의 행태 역시 마찬가지다. 백성을 우습게 알고 기술인을 홀대하는 세상.. 오래도록 제길을 찾지 못하고 흔들리는 교육의 현실 하나만 보아도 시름만 가득해진다. 제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상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싶다. 힘겨웠던 시대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였다. '함께'라는 말, '같이'라는 말, '더불어'라는 말...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는 말이다.
현재의 문제에 대한 답은 역사속에 있다는 말을 다시한번 떠올린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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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지도 지리 이야기
디딤 지음, 서영철 그림 / 삼양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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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을 꿈꾸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리고 집집마다 지구본이나 세계전도 하나쯤은 모두 비치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어쩌다 한번 나라이름이나 그 나라의 수도를 찾아보기 위해 들여다보는 경우가 더 많다. 지도, 지도는 길찾기에만 사용되어지는 것일까? 지금은 navigation 이라는 편리한 기계 덕분에 지도책을 볼 필요가 없어졌다. 길을 보여주는 지도책이 없어도 잘 찾아다닐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어쩌면 지도라는 말 자체가 우리에게는 너무 먼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우리의 시선 곳곳에서 마주치는 게 지도다. 우리곁에 항상 가까이 두고보는 지하철경로 역시 지도인 까닭이다. 지도에는 위치와 길만이 표시된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역사와 배경이 담겨 있고, 더 나아가서는 이 세상의 모든 역사가 담겨져 있다. 그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지명조차도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정말 많은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지도책을 펴놓고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세계여행을 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 여정을 따라가는 셀레임이 괜찮았다. 원시인들이 단순하게 먹을 것이 많았던 곳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그리기 시작했다는 지도의 기초. 그리고 수많은 탐험가들에 의해 지도는 변형되어져 왔다. 히말라야 최고봉이라는 에베레스트가 그 산을 처음 발견했던 영국인 조지 에버리스트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세계지도속에 존재하기 시작했을까? 지도제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는 이슬람 학자 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를 통해서였다. 그 지도에 우리나라가 신라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등장했다고 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지도의 제작시기가 1154년이라고 하니 우리에게도 의미가 큰 지도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1594년에 네덜란드의 지도학자였던 폴란치오가 그린 지도속에서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코라이(Corai) 라는 이름으로 표시되었다는 걸 보면서 우리 역사속의 고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거기에 길쭉한 섬나라로 그려져 있었던 것은 당시 서구인에게 조선이 둥글거나 길쭉한 섬나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나는 왜 그 말속에서 일본이 읽혀지는건지...

우리나라 지도를 이야기하다보면 당연하게 뒤따라오는 이름이 있다. 김정호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일제에 의해 망가져버린 우리의 역사가 또한번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잘못되어진 역사관을 뜯어고치지 못하고 지금까지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모습은 더 경악스럽다. 1402년에는 당시의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조선의 세계지도가 그려졌다는 데 그게 바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우리손으로 그린 세계지도란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한단다. 중국 원나라에서 들여 온 지도를 기본으로 조선과 일본의 지도를 결합하여 그렸다는 지도.. 하지만 그 지도에서는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더 크게 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과연 책 속의 말처럼 그런 이유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정확성을 기해야 하는 지도라는 점에서 보면 그 말에 공감하기가 쉽진 않은 듯 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의 지도에서 독도는 한국영토였으며 일본해가 아닌 동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토록 시달리고 있는 것인지....

지도를 따라 여행하면서 여러 방면으로 특색있는 나라들을 만날 수 있어 심심치 않았다. 일전에 아인스월드의 미니어처를 관람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모로코의 고대도시 페즈.. 신기하게 보여 한참을 바라보았었다. 지도조차 그릴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골목도시를 바라보면서 과연 저런 도시가 존재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그리고 사막의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만들었다는 걸 보고 이제사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다. 지도를 들고 있어도 길을 잃는다는 그 도시의 실제 모습이 궁금해진다.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은 어떨까 한번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어디일까? 나는 지금까지 바티칸 시국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빌딩 한 채가 나라 땅 전부인 그보다 더 작은 몰타기사단국이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 나라가 이탈리아의 로마에 있다는 거다. 그렇기에 영토라는 말을 쓸 수도 없다는 그 나라는 작은 집단에 불과하지만 의외로 세계 각지에서 병원 경영과 의료활동에 활발하다고 한다. 정말 놀랍다. 그런가하면 지도상에서 색이 칠해지지 않은 구역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전히 영토분쟁중인 까닭에 어느 편이라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어 하얗게 놔두었다는 이야기다.

이 책의 제목을 보자면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이라는 말이 앞에 붙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상식시리즈라고 이름붙인 시리즈물이다. 그런데 이 시리즈, 은근 중독성이 있다. 이제 그만 봐야지 하면서도 또 보게 된다. 생각보다 알찬 내용들이 볼 때마다 나를 설레이게 한다. 학창시절을 제외하고 내게 지도나 지리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기껏해야 산을 다니면서 지도를 본게 다였다. 이 책은 <세계지도 지리이야기>라는 제목을 보면서 그냥 딱딱한 지도이야기려니 했던 어설픈 나의 선입견에 보기좋게 한방 먹여준다. 그야말로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그렇지않다면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좋을 그런 이야기들이 알차게 들어있다. 지도라는 걸 통해서, 그리고 지리적인 어떤 특성에 의해 생겨나게 된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절대 심심하지 않은 책이다. 책을 덮으면서
다음 시리즈는 어떤 주제를 담고 있을지 또 생각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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