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은 위대하지 않다 - 개정판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불편하지만 읽어야 할 책', '적나라하되 천박하지 않은', '불편하되 무시할 수 없는' 신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을 말하고 있는 소개글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본다. 지금 세상에서 이런 내용의 책을 누가 그렇게 불편해할까? 이전에도 많은 책이 종교나 그들의 경전에 관한 왜곡을 짚어냈다. 이미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일텐데도 '불편하지만 읽어야 할 책'이라고 소개한 걸 보면 아직도 종교의 어깨너머에 숨겨진 그 무엇이 더 있다는 말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잘 읽힌다. '창조'에 관한 부분만 뺀다면 그다지 속도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어느정도 각오한 일이긴 하지만 수시로 반복되어지는 이야기조차 쉽게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걸 보면 종교가 저지르고 있는 사악함이 지금의 세상속에 셀 수 없이 많이 보여지고 있다는 말일테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믿음'이라는 말에 빠져드는 것일까? 왜 그럴수 밖에 없었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이 제공해주고자 하는 듯 하다.
종교는 인류가 겁에 질려 울어대던 유아기에 생겨났으며, 우리가 도저히 도망칠 수 없는 지식욕을(그리고 위안과 확신 등 유아적인 욕구들도) 충족시키기 위해 고안해낸 유치한 방법이다.(-101쪽)
사실 우리가 종교에 빠져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언가를 붙잡고 싶은, 누군가에게 위안을 받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인간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여도 자연속에서의 인간은 개미만큼의 크기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개미보다도 더 작은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그 나약함을 숨기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너무나도 고차원적인 이야기 같다. 굳이 책을 통해 살펴보지 않아도 종교가 왜 생겨났는지, 누가 어떻게 종교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에게 죄를 저질렀는지 알 사람은 다 안다. 너무나도 단순한 힘의 원리가 거기에 숨어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처음 종교가 생겨나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그 바뀐 세상 역시 원천적인 힘의 고리를 끊지 못한 채 아직도 휘둘리고 있는 탓에 우리는 정말 하릴없이 그 '믿음'이라는 허울에 스스로를 가두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종교의 신비로움은 이미 옛이야기에 불과하다. 종교라는 테두리가 없어진다면 인간은 어쩌면 공황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말 그럴까?
믿음이 개인의 선택이 된 지금 신자들의 행동은 그들 자신이 알아서 할 문제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강제적인 방식으로 종교를 주입하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도 신경쓸 필요 없다. (-146쪽)
중요한 건 처음이나 지금이나 종교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주 지독한 아집과 고집에 빠져 독선의 늪에서 허덕인다. '진정성'도 없고 입만 벌리면 새어나오는 그들의 '진리'라는 게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그들의 하는 양을 보라, 어쩌면 그리도 자신들이 내세우는 교리와 똑같이 이기적인지.... 저자의 말처럼 믿음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말은 백퍼센트 옳다고 본다. 나 역시 어떤 식으로든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솔직히 신경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근래에 스스로가 교인임을 선뜻 밝히지 못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늘 변해야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늘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순을 어찌 설명해야 하는 것인지... 자가당착 自家撞着이라고하면 너무 심한 말일까?
우리는 정결하고 선택받은 소수, 다른 이들은 모두 저주받았네.
지옥에는 당신이 들어갈 자리가 충분해. 우리는 북적이는 천국을 원하지 않네. (-339쪽)
조지 엘리엇의 <애덤 비드>에 묘사되어 있는 풍자글이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이리도 완벽한 표현처럼 들리는지...
종교는 아무리 유순하게 굴더라도 결국은 '전체적인' 해법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해법에 따르면, 믿음은 어느 정도 맹목적이어야 하고, 사람들은 사생활과 공적인 생활의 모든 측면을 더 높은 존재의 영원한 감시에 맡겨야 한다. 이 끊임없는 감시와 복종은 대개 무한한 앙갚음의 형태를 띤 두려움에 의해 더욱 강화되며, 사람들에게서 항상 최고의 품성만 끌어내지는 않는다. (-362쪽)
또 흥분하고 말았다. 종교이야기가 시작되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감정적이 되고 만다. 어쩌면 내가 종교에 대해 무지렁이라서 그러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종교는 마음을 앞세운 '믿음'이라는 의미보다는 '필요에 의한 소통이나 교류'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진실된 마음으로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무조건적으로, 맹목적이어야만 내세울 수 있는 게 '종교'요 '믿음'은 아닐 것이다. '사적'이거나 '공적인'것의 구분이 없어야 하는 게 '종교'요 '믿음'은 아닐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의 힘겨운 마음을 보듬어주어야 할 종교가 이렇게 변질되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이 책대로 말한다면 종교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그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와 함께 교회에 가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과 가까이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던 내 이웃의 목소리는 아직도 나를 아프게 한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상상 속의 것이든 진짜이든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 진리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만약 하느님이 오른손에는 모든 진리를, 왼손에는 비록 끊임없이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꾸준히 부지런하게 진리를 추구하려는 열정을 감춰 쥐고서 내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겸손하게 왼손을 택할 것이다. - 고트홀트 레싱,<안티 괴제>-
책을 읽고나서 나는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나이가 들면 나도 종교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었던 오래전의 다짐을. 책장을 덮기전 답답한 나의 마음에 한줄기 바람처럼 느껴졌던 문구가 있었다. 만약 하느님이 오른손에는 모든 진리를, 왼손에는 비록 끊임없이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꾸준히 부지런하게 진리를 추구하려는 열정을 감춰 쥐고서 내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겸손하게 왼손을 택할 것이다.. 라는 말이다. 어쩌면 서로를 향한 배려와 마음도 없이 '믿음'이라는 말만을 내세우기보다는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종교를 가졌다는 게 일종의 부적처럼 느껴지는 세상은 되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아이비생각
"메시아는 오시지 않는다. 심지어 전화도 하지 않을 것이다!" -2001년에 나온 이스라엘 히트곡 (-403쪽)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