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상처받는 관계만 되풀이하는가
카르멘 R. 베리 & 마크 W. 베이커 지음, 이상원 옮김 / 전나무숲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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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상처받는 관계만 되풀이하는가'.. '착한 사람들은 왜 항상 피해를 입고 상처받을까?'..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을 주제가 아닐까 싶었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사람측에 들어갈거라는 걸 부정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상처받는 관계만 되풀이하는 것일까?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나 선택에 후회가 따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인간관계만큼에서만큼은 상처받고 싶지 않은게 나의 바램이라면 욕심일까? 나뿐만 아니라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은 제쳐두고라도 나는, 정말 그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상하리만큼 착한 사람들이 항상 피해를 보며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왜 그럴까?  복을 받기는커녕 왜 착한사람들은 피해만 보며 살아가야 할까? 요즘은 착하다거나 순진하다거나 하는 말 따위가 그다지 좋은 의미가 아니라고 한다. 세상이 그렇게 많이 변해버려서 그런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덫'이라는 말에 시선을 빼앗겼다. '덫'... 무언가를 잡기 위해 또는 누군가를 모함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 책의 소제목들을 살펴보면 '피해자의 덫'이라는 말이 많이 보인다. 분노나 슬픔, 두려움이나 죄의식, 거짓으로 강한척하는 것 모두가 피해자의 덫이라는 말을 공감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피의자라기보다는 피해자라는 틀에 갇혀버리는 모순이 왠만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걸려들고마는 하나의 '덫'이었던 거였다. 무언가 이익이 되는 상황에서는 '나'라는 말이 앞서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너'라는 말이 앞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모든 원인은 결국 내가 아닌 '내 안' 에 있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채 수없는 피해자들이 발생하는 거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와 '너'의 구분이 아니다. '나'와 '너'의 대화, 즉 타협점을 찾는 노력이 우리에게 얼만큼이나 있었던가를 물어야 했다. 옛말에 '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듣고 쓰기엔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정말로 어려운 말..  문제의 실마리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거였는데 바꿔 생각한다는 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으니 그게 문제다.  상대방에게 맞춰주기만 한다고, 상대방에게 맞춰달라고 한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보여지는것만 보기보다는 속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도 쉽지만은 않다. 하긴 쉬웠다면 우리 주변에 그토록이나 많은 아픔과 분노가 난무하지는 않았을게다. '내 탓'이니 '네 탓'이니를 따지기에 앞서 서로를 마음 깊이 보듬어 안아 줄 수 있다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일테지만 어쩌겠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결국 그것인 걸.

 

문제를 앞에 두었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은 회피라는 말이 있다. 그때 당시에는 피해갔을지언정 그 문제는 계속해서 내 곁을 맴돌고 있을테니 말이다. 책속의 내용은 수도없이 같은 말이 반복되어지고 있다. 몇 번을 말해도 답은 그것이라는 듯이.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모두가 피의자였고, 피의자라고 생각했던 모두가 역시 피해자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와 김형경의 <사람풍경>이 생각났다. 내 안의 나를 다스릴 줄 아는 힘이 필요하다는 말을 다시한번 떠올린다. 상처입은 내 안의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 화해를 청해야만 한다는 그 말을 되뇌인다.  책 속에서 말하고 있는 피해자의 덫은 누가 나에게 덮어씌우는게 아니다. 그 덫을 놓아 내가 나를 잡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한다. 책장을 덮으며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내 안의 아이를 살짝 불러보았다. 아직은 밖으로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그러나 언젠가는, 너무 늦지 않게 그 아이와 대면해야만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피해자의 덫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래야만 한다.

 

용서한다는 말에 대한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던 시간이었다. 용서는 다시금 관계를 맺자는 뜻이 아니며, 용서하고 나면 상처 주었던 상대를 다시 내 삶으로 불러들여야 한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너무나도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용서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야만 했다.  남들의 행복이 나와 관련 있다는 생각을 멈추라는 말은 얼핏 들으면 상당히 이기적인 느낌을 주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었다.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속의 존재에게 미래를 위해 사용해야 할 에너지를 빼앗길 필요가 없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상대는 과거에 놓아두고 현재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면 된다.. 는 말이 큰 울림으로 남았다. /아이비생각

 

 

★ 실패와 대면하기 위한 7가지 자세 (- 185쪽)

1.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2. 다른 사람에게 무리하게 기대하지 않기

3.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터놓고 이야기하기

4. 용서하고 용서받기

5. 사랑을 주고 사랑받기

6. 자기 모습 그대로 살기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게)

7. 자기 힘의 정도와 한계를 알고 표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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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
미하엘라 비저 지음, 권세훈 옮김, 이르멜라 샤우츠 그림 / 지식채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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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이라는 이름아래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이즈음에 이미 사라져버린 역사속의 직업을 볼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일까? 어쩌면 이미 사라져버린 직업을 보면서 앞으로 사라져버릴 직업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 같아 내심 기대감이 있었다. 씁쓸한 진실이랄까?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아픔일런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는 편함만을 추구하면서도 양손 가득히 먹을 것을 쥐고 살 수 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는 게 솔직한 말은 아닐지... 이전에 이미 사라져버렸고 우리의 세상속에서도 사라져가고 있는 수많은 직업은 분명 필요에 의해 생겨났을 것이다. 필요해서 생겨났으나 필요에 의해 없어져야 했던 것들이 어디 직업뿐일까?  이런저런 직업을 만들어냈던 시대적인 배경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어쩌면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옷을 갈아입은 건 아닐까?  어느날엔가 언론지상에서 그 옛날 호령하던 양반네들의 가속이었던 노비가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말을 보고 서글픔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라, 과연 우리곁에서 옛날의 노비처럼 잔일을 처리해주는 직업이 얼마나 많은가를...

 

사라진 직업군속에서 나의 어린 시절도 볼 수 있었다. 이동변소꾼은 아닐지라도 똥지게를 짊어지고 다니며 집집마다 변소청소를 해 주던 '똥퍼!" 아저씨,  비록 그 목적은 다를지라도 리어카에 솔솔 김이 나는 번데기 양푼을 싣고 와 짤강짤강 가위소리를 내며 아이들을 불러대던 엿장수 아저씨, 모래장수가 가져다주는 모래는 아니었지만 나 어릴적만해도 친정어머니는 모래나 연탄재로 녹그릇을 닦기도 했고, 책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더러운 오물위에 모래나 흙을 뿌려 치우기도 했다. 대리석구슬제조공을 보면서 어린날의 구슬치기를, 오줌세탁부를 보면서 우리동네 한 가운데 있었던 양말공장의 양잿물냄새를 생각해냈다.  왠지 모르게 무서워 가까이 다가가보지 못했던 넝마주이는 나 어릴적만 해도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필요했기에 생겨났을 많은 직업으로 인해 먹고 살 수 있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지금도 간혹 들려오는 '칼갈아요~~!" 하는 소리가 반가운 것도, 추운 겨울날 느닷없이 들려오던 '짭싸아알떠어억! 메밀무우욱!' 하는 소리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어쩌면 그 옛날의 향수를 담고 있는 까닭이 아닐까 싶어 공연스레 웃음짓게 된다. 그 목소리따라 계절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아주 오래된 역사속의 유랑가수.. 우리에게도 마지막 서커스단이 문을 닫았다는 말을 들은지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책속에서 보여주었던 유모라는 직업이 낳았던 사회적인 병폐는 지금 보아도 씁쓸하다. 단순히 먹고 살기위해서라기 보다는 더 많이 갖기 위해 온갖 몹쓸짓을 했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사실인 듯 하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직업이 없어질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편함만을 추구할수록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사라져갈 것이다. 진화는 인간이 편리하기 위해 변해가는 모습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렇다보니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는 건 當然之事라해야 옳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다른 그림을 그려보게 된다.  옛날의 가마꾼이나 인력거꾼이 지금의 택시가 아니겠느냐고 말한다면 말이다. 사실 유럽의 이동변소꾼이나 나 어린시절 '똥퍼'아저씨의 일을 대신해주는 것이 지금의 정화조사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토록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던 숯쟁이나 양봉가 역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역시 인정해야만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라는 것이 어디간들 그렇게 특별하고 유별날까? 사람사는 건 어디나 다 마찬가지고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한 건 없어보여 하는 말이다. 물론 사라져야 할 것도 있고 사라져갈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무엇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가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득 그리워진다. 간신히 올라탄 버스문에 매달려 엉덩이로 나를 밀어올리며 오라이 탕탕을 외치던 버스차장, 손수레에 배경화면을 싣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주던 사진사, 그것뿐일까? 어린아이들을 위해 손수레에 놀이기구를 싣고 다니던 아저씨, '머리키락 팔아요~~' 하던 아줌마 목소리, 고장난 우산을 고쳐주던 아저씨, 풀빵을 팔던 그 손길... 지금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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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만든 여자 1
신봉승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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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은 이야기가 어찌 흘러가든간에 세조의 며느리 한씨였다가 나중에 인수대비로 불리워지게 되는 여인이다. 그러자면 우선 한씨의 아들 성종의 배경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다. 남편인 의경세자가 죽고 사가로 나갔던 세자빈 한씨. 그녀의 큰 아들이 바로 월산대군이고 둘째 아들이었던 자산군이 바로 성종이다. 어리다는 이유로 왕세자가 될 수 없었던 월산대군처럼 예종의 적장자였던 제안대군 역시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왕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성종을 생각하면 계유정난의 주인공들부터 시작해서 앞뒤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이름이 많다.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 필요했던 건 대의와 명분에 따라 앞장설 수 있었던 신하들이었기 때문이다.  태종과 세조가 피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던 근원은 바로 신하들의 결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의와 명분이야 만들고자하면 뭔들 못만들까?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대의명분이라는 게 지극히 주관적인 경우가 많은 듯 하다. '耳懸鈴鼻懸鈴'..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성종이 있었음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성종의 어머니이자 수양대군의 며느리였던 한씨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중에 그 여인을 인수대비라 부르게 되니  우리에게는 가장 익숙한 호칭이 아닌가 싶다. 수양대군이나 한명회의 정치권력에 자신의 의지와 야심을 끼워넣었던 여인.. 어쩌면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했던 게 그 여인의 정치행보 속에 담긴 수단이나 방법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어쩌랴, 그 시대는 드러내놓고 여인을 말하지 않는 시대였다!  그러다보니 내게는 한 여인의 행보를 따라간다기보다는 시대를 이끌어갔던 인물들 곁에서 슬쩍 슬쩍 곁눈질하는 듯한 여인의 모습만이 보여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굳이 여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남자들의 주변을 맴도는 여인이 아니라 여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속의 여인은 솔직하게 말해 어떠한 울림도 내게 전해주지 못했다. 거기에 있었다,라고 하는 존재감만이 느껴질 뿐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종대에는 궐내에 내노라하는 위치에 머무는 여인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그 여인들을 머물게 하기 위해 창경궁을 지었을까? 성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수렴청정을 했던 세조비 정희왕후가 있었고, 제안대군의 어머니이자 예종의 계비였던 안순왕후도 있었다. 거기다 성종의 생모인 소혜왕후(인수대비)까지... 그러다보면 여인들의 입김이 당연히 거셀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뿐일까? 성종의 여인들과 연산군의 여인들까지 합친다면 가히 여인들의 천국이라 할만한 시기다. 내 생각에 '왕을 만든 여자'라는 책의 제목은 단순히 왕의 자리에 올려놓기 위한 과정만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왕으로 즉위한 뒤에 어떤 왕으로 살게 되는가 하는 것도 왕이 만들어지는 과정일 수 있는 까닭이다. 성종의 뒤를 이었던 연산군을 들여다보라, 여인의 힘이 어떤 왕을 만드는가를 알 수가 있음이다. 그러니 그런 모든 면을 통해 여인의 힘이 느껴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바램이 생겨나는 것이다.

 

일전에 읽었던 <난설헌>이 떠올랐다. 역시 여인의 이야기였던 까닭이다. 그런데 그 책에서는 너무 여인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아서 주변의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빈약하지 않았나 하는 글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글쓰는 사람도 아니고 어떤 평론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니 이렇다하게 할 말은 없겠으나 여인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다면 차라리 여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그렇게까지 들춰낼 수 있는 여인들의 역사는 없었을 터, 극작가라는 저자의 이름속에 내재되어진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이 책의 흐름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아이비생각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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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신 - 죽음도 불사했던 강직한 선비들
고제건 지음 / 리드잇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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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의 우의를 표현하는 말중에 管交라는 말이 있다. 변함없는 우정을 말할 때 흔히 쓰는 말이긴 하지만 좀 더 속깊이 살펴보면 단순한 우정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믿어준다는 것,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상대방을 믿을 수 있다는 강직함이 그 속에 숨어 있다.  이 사자성어의 유래만 살펴보더라도 나를 믿어준다는 말과 나를 알아준다는 말은 정말 큰 의미를 지닌 듯 하다. 그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三顧草廬를 했을 때 제갈공명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나를 알아주니 내가 그를 따라나선다던... 뜬금없이 웬 사자성어냐고 할수도 있겠지만 믿음이라는 말에 앞서 나를 알아준다는 말이 먼저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책속의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나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노라는... 한편으로는 영웅이 될 수 있었으나 영웅이 되지 못한 사람들의 한풀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작은 느낌을 책장을 덮으면서도 지울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하며, 그만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 이 책속의 인물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움을 불러기도 한다. 알아주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이라는 말은 사실 허울좋은 말에 불과하다. 그 한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자신의 능력이 평가되어지는 까닭이다. 강태공처럼 낚시줄이나 드리우고서 何歲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직언(直言),직신(直臣), 직설(直說) 이다. 주제속에 보여지는 인물은 우리가 열심히 배우고 익혔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율곡 이이, 남명 조식, 내암 정인홍, 퇴계 이황, 사암 박순, 성호 이익, 매월당 김시습, 다산 정약용, 고운 최치원, 연암 박지원, 교산 허균, 백호 임제, 어우당 유몽인... 그야말로 내노라하는 이름들은 다 모였음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정치적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다 그런건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권력의 뒷편으로 밀려났거나 밀려나고자(?) 했던 사람들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나를 알아줄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라거나 "그대들은 그대들의 법을 지키시게. 나는 나 나름대로의 세상을 살다가겠네" 라는 말로 권력의 길을 외면했거나,  "나의 소망은 모든 사람들이 양반이 되는 것" 이라거나 "서자에게도 벼슬길을 열어주소서" 라며 백성들의 삶조차도 끌어안으려 했던 사람도 있다. (소제목에 인물의 성격이나 특징을 담은 듯하다) 그들은 책속의 말처럼 철저한 아웃사이더를 자처했다. 때를 잘못 만나서? 시절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들은 오로지 그들만의 인생을 살았던 셈이다.  백호 임제편에서 잠시 등장했던 일화가 있다. 밤새 술을 마시고 말을 탔는데 시중들던 하인이 한쪽 신은 가죽신이고 한쪽 신은 짚신이옵니다, 했다. 그가 이렇게 답했다한다. "오른쪽에서 보는 사람은 내가 짚신을 신었다 할 것이고, 왼쪽에서 보는 사람은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니 그게 무슨 탈이냐?"  따지고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딴지를 걸고 싶어졌다. 耳懸鈴鼻懸鈴이다. 저 편한대로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쯤일까? 남이야 뭐라하든 나는 나 편한대로 살겠다는 말이 아니고서야...

 

그래, 어찌되었든 直言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는 말은 듣기에 나쁘지만은 않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보이는 현실도피적인 성향보다 호방하면서도 명쾌하고 드높은 기상을 지녔다는 그 표현이 왠지 껄끄럽다. 정말 그랬을까?  해봤자 안된다는 현실도피적인 마음이 더 크지 않았을까?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런 마음이 좀 더 크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하는 말이다. 세상의 이치를 깨치고,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찾아내는 것이 학문이라고 했다던 퇴계 이황의 말처럼 실용학문이 좀 더 일찍 우리의 역사속에 자리매김을 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속의 인물들은 좋게 말해 허울보다는 실제적인 삶에 초점을 맞췄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랬기에 치졸한 명분싸움에서 저만큼 물러서 있고자 했을 것이다. 퇴계를 존경했다는 성호 이익.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개혁을 주장했다는 그가 관념적인 당시의 학문 풍토를 비판하고, 경세치용적인 경학을 주장했다는 말은 새삼스럽다. 다 읽고나니 책속의 인물들이 실제로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그들이 어떤 뜻을 품고 살았든, 후세의 평가가 어떻든, 나는 다만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알 뿐이다. 그래서 가끔은 그들의 인생여정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잠깐씩 등장하는 단면이 그들의 삶 전부는 아닐테니.. <어우야담>에 나오는 내용이라는 한마디가 큰 울림을 남긴다. 그들은 정말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하며 살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오래전의 사람이니... - 제비가 지저귈 때마다 '知之謂知之 不知謂不知 是知也'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구절로,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를 의미한다. -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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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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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송시열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두루 통하고 편벽되지 않지만 소인은 편벽되고 두루 통하지 못한다(子曰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 그래서 군자라는 말인지 소인이란 말인지... 평가는 나의 몫이다. 군자로 보거나 혹은 소인으로 보거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군자냐 소인이냐를 따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다음말이 영 거슬린다. 두루 통하고 편벽되지 않아야 군자라는.. 그래서 나는 감히 생각한다. 소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결단코 군자는 아니었다고. 군자다운 면모를 읽지 못했다. 저자가 그렇게 유도했을까? 역사에 관한 평가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그 차이를 달리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저자의 말에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곤 했었다. 이 시대의 눈으로 보지 않고 마치 내가 그 오래된 역사의 현장속으로 들어가 주인공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아무래도 먼저 읽은 <윤휴와 침묵의 나라>가 주었던 여운이 이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된 듯 하다. 윤휴와 송시열의 대립구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던 윤휴의 그 말이 이제사 가까이 다가온다. 목차를 훑어보면 그다지 많은 책장을 넘겨보지 않아도 저자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본래의 의미를 잃고 조선이라는 나라에 와서 새롭게 옷을 갈아입어야 했던 주자학의 폐단은 조선의 성리학이 왜 禮學으로 가야만 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어찌 감히 농민들이 사대부를 넘보랴, 농민을 잃을지언정 사대부를 잃을 수는 없다, 와 같은 소제목들이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결국 禮學의 목적이 저거였구나 싶어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어진다. 백성은 없고 사대부만 있던 나라가 조선이었다. 왕조차도 그들과 같은 반열이라고 생각하고자 했던 그들의 속내를 비추고 있다.
 
북벌에 대한 효종과 송시열의 두 마음.. 그야말로 겉과 속이 달랐던 신하의 두 마음.. 그 뜻이야 어찌되었든 형과 함께 청나라로 끌려갔던 봉림대군의 북벌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실패와 성공을 떠나서라도 조선의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다시 소헌세자를 떠올리게 된다. 그가 죽지만 않았다면. 그가 제대로 왕위에 올라 자신만의 정치를 펼쳤다면... 모두가 사리사욕에만 눈멀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결과였다. 그렇게나 뜨거웠던 예송논쟁의 끝에 무엇이 남았는가?  한시대를 오로지 상복에 관한 일로 소비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인지?  그토록이나 忠孝의 禮를 떠받들었던 그들이 왕에게 상복을 1년 입혀야 하는지 3년 입혀야 하는지를 놓고 한 시대를 떠들었다는 말이다. 실속은 오로지 사리사욕이었으니 밖으로는 그렇게 형식과 허울만을 가지고 떠들어댈 수 밖에 없었을 터다.  유학을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스승만 알고 임금을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아버지가 중한가 스승이 중한가를 따져야 했다는 걸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를 되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송시열이라는 이름이 안고 있는 많은 의미가 궁금했었다. 그가 어떻게 조선의 역사속에 그토록이나 많이 이름을 남길 수 있었는지 궁금했었다. 국익(國益)보다는 당익(黨益)이 앞선다 라는 부분에서 많은 것을 찾아볼 수 있었다. 씁쓸함만이 남았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지금의 사대부들마져 그들과 똑같다는 거다. 어쩌면 그리도 판박이인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성? 이래저래 씁쓸하기만 하다.

 

한국사의 최대 금기,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300년 전 인물의 실체.. 책표지의 말은 정말 무서운 울림을 내게 전해주었다. 어쩌면 그랬기에 더더욱 알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기에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일까? 분명 중국으로부터 시작되었을 儒學, 그러나 중국에도 없는 儒學이 조선에 있었다. 조선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 자신의 학문을 내려다보면서 주자는 흐뭇했을까? 다시 되뇌여본다. 군자와 소인에 대해.. 옛말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로, 두루 통하고 편벽되지 않은 자만이 군자라는 호칭에 어울릴 것이다. 아주 오래전 우연히 찾아가게 되었던 대전의 우암공원을 떠올린다. 다시한번 찾아오리라 했던 그곳의 남간정사는 잘 있는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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