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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신 - 죽음도 불사했던 강직한 선비들
고제건 지음 / 리드잇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친구와의 우의를 표현하는 말중에 管鮑之交라는 말이 있다. 변함없는 우정을 말할 때 흔히 쓰는 말이긴 하지만 좀 더 속깊이 살펴보면 단순한 우정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믿어준다는 것,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상대방을 믿을 수 있다는 강직함이 그 속에 숨어 있다. 이 사자성어의 유래만 살펴보더라도 나를 믿어준다는 말과 나를 알아준다는 말은 정말 큰 의미를 지닌 듯 하다. 그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三顧草廬를 했을 때 제갈공명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나를 알아주니 내가 그를 따라나선다던... 뜬금없이 웬 사자성어냐고 할수도 있겠지만 믿음이라는 말에 앞서 나를 알아준다는 말이 먼저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책속의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나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노라는... 한편으로는 영웅이 될 수 있었으나 영웅이 되지 못한 사람들의 한풀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작은 느낌을 책장을 덮으면서도 지울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하며, 그만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 이 책속의 인물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움을 불러기도 한다. 알아주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이라는 말은 사실 허울좋은 말에 불과하다. 그 한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자신의 능력이 평가되어지는 까닭이다. 강태공처럼 낚시줄이나 드리우고서 何歲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직언(直言),직신(直臣), 직설(直說) 이다. 주제속에 보여지는 인물은 우리가 열심히 배우고 익혔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율곡 이이, 남명 조식, 내암 정인홍, 퇴계 이황, 사암 박순, 성호 이익, 매월당 김시습, 다산 정약용, 고운 최치원, 연암 박지원, 교산 허균, 백호 임제, 어우당 유몽인... 그야말로 내노라하는 이름들은 다 모였음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정치적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다 그런건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권력의 뒷편으로 밀려났거나 밀려나고자(?) 했던 사람들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나를 알아줄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라거나 "그대들은 그대들의 법을 지키시게. 나는 나 나름대로의 세상을 살다가겠네" 라는 말로 권력의 길을 외면했거나, "나의 소망은 모든 사람들이 양반이 되는 것" 이라거나 "서자에게도 벼슬길을 열어주소서" 라며 백성들의 삶조차도 끌어안으려 했던 사람도 있다. (소제목에 인물의 성격이나 특징을 담은 듯하다) 그들은 책속의 말처럼 철저한 아웃사이더를 자처했다. 때를 잘못 만나서? 시절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들은 오로지 그들만의 인생을 살았던 셈이다. 백호 임제편에서 잠시 등장했던 일화가 있다. 밤새 술을 마시고 말을 탔는데 시중들던 하인이 한쪽 신은 가죽신이고 한쪽 신은 짚신이옵니다, 했다. 그가 이렇게 답했다한다. "오른쪽에서 보는 사람은 내가 짚신을 신었다 할 것이고, 왼쪽에서 보는 사람은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니 그게 무슨 탈이냐?" 따지고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딴지를 걸고 싶어졌다. 耳懸鈴鼻懸鈴이다. 저 편한대로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쯤일까? 남이야 뭐라하든 나는 나 편한대로 살겠다는 말이 아니고서야...
그래, 어찌되었든 直言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는 말은 듣기에 나쁘지만은 않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보이는 현실도피적인 성향보다 호방하면서도 명쾌하고 드높은 기상을 지녔다는 그 표현이 왠지 껄끄럽다. 정말 그랬을까? 해봤자 안된다는 현실도피적인 마음이 더 크지 않았을까?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런 마음이 좀 더 크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하는 말이다. 세상의 이치를 깨치고,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찾아내는 것이 학문이라고 했다던 퇴계 이황의 말처럼 실용학문이 좀 더 일찍 우리의 역사속에 자리매김을 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속의 인물들은 좋게 말해 허울보다는 실제적인 삶에 초점을 맞췄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랬기에 치졸한 명분싸움에서 저만큼 물러서 있고자 했을 것이다. 퇴계를 존경했다는 성호 이익.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개혁을 주장했다는 그가 관념적인 당시의 학문 풍토를 비판하고, 경세치용적인 경학을 주장했다는 말은 새삼스럽다. 다 읽고나니 책속의 인물들이 실제로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그들이 어떤 뜻을 품고 살았든, 후세의 평가가 어떻든, 나는 다만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알 뿐이다. 그래서 가끔은 그들의 인생여정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잠깐씩 등장하는 단면이 그들의 삶 전부는 아닐테니.. <어우야담>에 나오는 내용이라는 한마디가 큰 울림을 남긴다. 그들은 정말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하며 살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오래전의 사람이니... - 제비가 지저귈 때마다 '知之謂知之 不知謂不知 是知也'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구절로,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를 의미한다. - /아이비생각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