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의 송시열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두루 통하고 편벽되지 않지만 소인은 편벽되고 두루 통하지 못한다(子曰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 그래서 군자라는 말인지 소인이란 말인지... 평가는 나의 몫이다. 군자로 보거나 혹은 소인으로 보거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군자냐 소인이냐를 따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다음말이 영 거슬린다. 두루 통하고 편벽되지 않아야 군자라는.. 그래서 나는 감히 생각한다. 소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결단코 군자는 아니었다고. 군자다운 면모를 읽지 못했다. 저자가 그렇게 유도했을까? 역사에 관한 평가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그 차이를 달리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저자의 말에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곤 했었다. 이 시대의 눈으로 보지 않고 마치 내가 그 오래된 역사의 현장속으로 들어가 주인공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아무래도 먼저 읽은 <윤휴와 침묵의 나라>가 주었던 여운이 이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된 듯 하다. 윤휴와 송시열의 대립구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던 윤휴의 그 말이 이제사 가까이 다가온다. 목차를 훑어보면 그다지 많은 책장을 넘겨보지 않아도 저자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본래의 의미를 잃고 조선이라는 나라에 와서 새롭게 옷을 갈아입어야 했던 주자학의 폐단은 조선의 성리학이 왜 禮學으로 가야만 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어찌 감히 농민들이 사대부를 넘보랴, 농민을 잃을지언정 사대부를 잃을 수는 없다, 와 같은 소제목들이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결국 禮學의 목적이 저거였구나 싶어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어진다. 백성은 없고 사대부만 있던 나라가 조선이었다. 왕조차도 그들과 같은 반열이라고 생각하고자 했던 그들의 속내를 비추고 있다.
 
북벌에 대한 효종과 송시열의 두 마음.. 그야말로 겉과 속이 달랐던 신하의 두 마음.. 그 뜻이야 어찌되었든 형과 함께 청나라로 끌려갔던 봉림대군의 북벌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실패와 성공을 떠나서라도 조선의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다시 소헌세자를 떠올리게 된다. 그가 죽지만 않았다면. 그가 제대로 왕위에 올라 자신만의 정치를 펼쳤다면... 모두가 사리사욕에만 눈멀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결과였다. 그렇게나 뜨거웠던 예송논쟁의 끝에 무엇이 남았는가?  한시대를 오로지 상복에 관한 일로 소비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인지?  그토록이나 忠孝의 禮를 떠받들었던 그들이 왕에게 상복을 1년 입혀야 하는지 3년 입혀야 하는지를 놓고 한 시대를 떠들었다는 말이다. 실속은 오로지 사리사욕이었으니 밖으로는 그렇게 형식과 허울만을 가지고 떠들어댈 수 밖에 없었을 터다.  유학을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스승만 알고 임금을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아버지가 중한가 스승이 중한가를 따져야 했다는 걸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를 되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송시열이라는 이름이 안고 있는 많은 의미가 궁금했었다. 그가 어떻게 조선의 역사속에 그토록이나 많이 이름을 남길 수 있었는지 궁금했었다. 국익(國益)보다는 당익(黨益)이 앞선다 라는 부분에서 많은 것을 찾아볼 수 있었다. 씁쓸함만이 남았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지금의 사대부들마져 그들과 똑같다는 거다. 어쩌면 그리도 판박이인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성? 이래저래 씁쓸하기만 하다.

 

한국사의 최대 금기,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300년 전 인물의 실체.. 책표지의 말은 정말 무서운 울림을 내게 전해주었다. 어쩌면 그랬기에 더더욱 알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기에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일까? 분명 중국으로부터 시작되었을 儒學, 그러나 중국에도 없는 儒學이 조선에 있었다. 조선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 자신의 학문을 내려다보면서 주자는 흐뭇했을까? 다시 되뇌여본다. 군자와 소인에 대해.. 옛말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로, 두루 통하고 편벽되지 않은 자만이 군자라는 호칭에 어울릴 것이다. 아주 오래전 우연히 찾아가게 되었던 대전의 우암공원을 떠올린다. 다시한번 찾아오리라 했던 그곳의 남간정사는 잘 있는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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