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에게 인생을 배우다
전도근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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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많은 인물중에서 굳이 다산선생에게 인생을 물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사실 위인전이라고 해봐야 솔직하게 말해 뻔한 틀속에 갇혀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의 아이들이 과연 위인전을 읽으면서 얼만큼이나 감동을 받고 있는지 미심쩍다는 게 숨겨둔 나의 본심이기에 하는 말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간접적인 경험이 더 많은 세상을 살다보니 우리의 아이들에게 순수함이 사라진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변화되는 세상의 흐름을 잘 읽을 줄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일거라고 감히 생각이 드는 것은 다산선생을 대표할 수 있는 게 실학사상인 까닭에 더불어 인생을 묻기로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통과 역경을 딛고 산다. 어떤 때는 무너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힘겨움을 이겨내고 커다란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그 힘겨움을 이겨내는 사람, 그 고통속에서 자신만의 어떤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위인'이라는 틀속에 넣어둔다. 그야말로 모진 곡절을 다 겪어낸 사람중의 하나가 바로 정약용일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인생을 묻는 것이 아니라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묻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잘 될 수 있을까요? ... 뭐 이런것쯤?  하긴 기왕에 사는 인생 좀 더 멋지게, 좀 더 폼나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주변에서 그 사람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성공한 삶을 살아냈다고 봐도 괜찮을까? 이쯤에서 성공이라는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사람이 성공이라는 말의 의미를 똑같은 곳에 두지는 않을 듯 하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었을 때 성공한 삶이라 말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성공이라는 말을 하기도 할 것이기에... 그런데 이 책은 어떤 한가지에 의미를 둔 단순한 성공을 말하고 있진 않은 듯 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는 말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 이라고 묻는다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각 장의 제목이 아닐까 싶다. 그 問答을 한번 들어보자면 이렇다.  좀 더 멋진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큰 비전을 세우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남을 배려하고, 솔선수범하고...  창의력이란 무엇입니까?  이 부분에서 다산의 실학사상이 한 몫을 차지했다. 그가 만들었던 거중기나, 유형거, 그리고 배다리등의 경우가 예로 등장한다. 그야말로 쓸모있는 학문이 여기에 해당된다.  공부를 잘하기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방법은?  여기서 귀가 쫑긋할 부모가 많을 듯 하다. 크게 되려면 큰 스승을 만나야 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이며 잠재력을 깨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배우지만 말고 학습을 하라는 말은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새로운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로 미래를 말하기도 한다. 그 밖에도 겸손하라, 꿈을 크게 가져라, 옳은 것을 행하라, 포기하지 마라, 배운 것은 꼭 써먹어라... 등등 딱히 새로울 것은 없는 말이다. 늘 들어왔던 말이고 지금도 귀만 열면 듣는 말이다. 다만 그것을 다산선생의 일생을 훑어보며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묘미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제목처럼 인생을 배웠다기보다 다산 정약용이란 사람의 일대기를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너무 흔한 주제로 치부될 수도 있을 내용이었지만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었다. 깊이없는 수박 겉핥기식의 지식을 곁에 두는 일이 많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또한번 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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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 김별아,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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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 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책장을 덮고 멍하니 앉아 있기를 몇 분.... 그래도 산을 좋아한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누구처럼 그렇게 큰 의미도 부여하지 못하면서 그저 산이 좋아서 오르기에 미쳤던 시절이 있었다. 틈만 나면 베낭을 짊어졌었다. 그냥 그 냄새가 좋았던 것 같다. 그냥 그 바람이 좋았던 것 같다. 그냥 그 소리가 좋았던 것 같다. 내가 한참 산에 미쳐있을 때에는 산중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산에서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가장 무서운 일이 되어버렸다. 왜 그럴까? 사람이 사람을 가장 무서워하는 세상이 되어버리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잠시라도 자연속에서 마음을 치유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이젠 산에 오르는 것이 또하나의 경쟁이 되어버린 거다. 언제부터인가 능선을 타며 몇 개의 산마루를 점령(?)했는가를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은 그런게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왜 그럴까? 그저 오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산마루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며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포만감(?)을 느끼기 위해서 오르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또하나의 경쟁을 산에 심어놓는다. 자신을 위한 산행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산행이 되어버린 거다. 그러다보니 저마다 치장하기에 바쁘다.

 

무엇을 하든

무언가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는

결과주의와 성취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제대로 산을, 삶을 즐기지 못한다. (-244쪽)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라는 제목이 참 좋았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등산의 기본이 아닐까 싶어서. 작가처럼 많은 걸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해도 우리는 분명 쉬고 싶다는,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다는 명분을 세워 산을 오른다. 20대에 올랐던 산과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오른 산은 내게 너무나도 달랐다. 결혼이라는 이유로 까맣게 잊고 살았던 산을 다시 찾게 된 건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싶다는 생각에서였는데 그게 참 쉽지 않았다. 정해놓은 시간이라도 있는양 바쁘게 걸음을 옮기며 앞선 동지의 엉덩이와 발뒤꿈치만 따라가는 산행이 싫어서 마음 맞는 사람 몇이 모여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그 때 함께 했던 동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쩌면 그렇게도 감탄사를 잘 뱉어내느냐고... "와아!~~", "이야!~~"  함께 산행을 하면서 나의 그 감탄사가 너무도 좋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거였구나! 싶었다. 작은 풀, 작은 꽃과 마주한다는 게 이런거였구나! 싶었다. 그 때부터 우리에게도 작가네처럼 구호가 생겼다. ' 천천히, 바쁜 사람은 먼저 가시고... 빨리 가면 보이지 않는, 아니 볼 수 없었던 이름모를 꽃 한송이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도, 파란 하늘에 그림처럼 떠다니는 흰구름의 마술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우리의 구호덕분이었다. 그렇게 만난 풀과 꽃과 나무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서 한동안 책도 싸들고 다녔었지만 지금은 그 때 만났던 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산을 사랑한다는 것이 꼭 '등산'을 좋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155쪽)

 

산은 꼭 산마루까지 올라야만 맛이 아니다. 그 오르는 과정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 혼자 올라가도 여럿이 함께 올라가도, 원정산행을 하거나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어느쪽을 선택하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작가의 말처럼 기본만 지켜준다면 내 모든 것을 맡겨두어도 좋은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인 것이다. 작가네의 구호 '까불지 말자'에 크게 공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기본을 우습게 알고 까불다 사고당하는 사람 정말 많이 봤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이 꼭 산행에서만 필요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작가가 다녀온 일정속에서 군데군데 지나온 나의 발자취도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작가가 정말 부러웠다. 그 아이들은 분명 멋진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산이 아프면 그에 기대어 사는 사람도 삶도 아프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어리석은 짐승인 사람은 많이 아픈 후에야 지난날의 축복을 추억하며 깨닫는다. (-212쪽)

 

산을 올라보면 안다. 아니 산뿐만 아니라 자연이라는 틀속에 나를 끼워넣고 보면 안다.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내가 그 자연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자연때문에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의 오만은 부풀어오른 풍선같다. 마치도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거들먹거린다. 나중을 기약할 수 없는 오만과 교만이다. 지금 우리가 아주 조금씩만 욕심을 버리며 살아간다면 그 나중을 기약할 수도 있을텐데..... 자연이라는 게 그렇게 거창한 이름일까? 우리가 밟을 수 있는 흙 한 줌, 작은 풀포기 하나, 이름모를 들꽃 한송이, 발에 채이는 작은 돌멩이, 그리고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뭐 이런게 자연이라는 말이다. 그런 걸 우리는 잊고 살며 잃어버리고 있는 중이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나는 남편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이번 여름휴가때는 아들하고 지리산 종주 한번 하지?" 그러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구, 그 힘든 걸 왜 날더러 하라는거야? " 한다. 아들이 세상속으로 첫발을 내딛기전에 아빠와 지리산 종주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 알 수 없다... 산을 넘어가는 각 구간마다 詩 한편씩 끼워넣어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줘서 참 좋았다. 역시 글쓰는 이의 산행이다. 그런 느낌, 그런 행복을 이렇게 글로 표현할 수 있어서 김별아, 그녀는 참 행복할 것 같다.  詩라는 게 가만히 살펴보면 함축되어진 우리의 삶이다보니 그냥 허투루 넘길수가 없었다. 오래전에 광교산에서 보았던 詩가 보인다.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는 이원규의 시 한편이 새롭다. 그렇다해도 나는 다시 꿈 꿀 것이다. 내 아들이 아빠와 나란히 지리산에 오르는 것을.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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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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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불현듯 떠오른 낱말이 있었다. '추억'이라는 말과 '기억'이라는 말이다. 문득 이런 愚問이 생겼다. 그 두 낱말의 정확한 의미를 내가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것일까? 라는...  그래서 한번 찾아보았다. '기억 記憶' - 이전에 했던 경험을 의식속에 간직함. 또는 어떤 것들의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꺼내는 것. '추억 追憶' - 어떤 것들의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꺼내는... 똑같다! 그런데 왜 나는 기억이라는 말과 추억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가 이렇게 다르기만 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억'이라는 말은 상당히 광범위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추억'이라는 말은 약간은 좁은 의미의 말로 쓰이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기억'이라는 말보다는 '추억'이라는 말이 좀 더 애틋하고 아련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짖궂긴 하지만 내 맘대로 해석해보자면 이렇다.  말 그대로 '記憶'은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고,  '追憶'은 생각을 쫓아가는 것이라는 거다. 그러니 자신의 기억속에 있는 나쁜 일보다는 좀 더 아름다웠거나 좋았던 일을 쫓아가려고 하는 건 당연지사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의 사건(?)들은 아무래도 아름다웠던  '追憶'은 아닌 듯 하다. 어쩌면 이제는 우리가 모른 척 하고 싶어하는 지나가버린  '記憶'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작가가 나열하는 책속의 사건(?)들은 아프다.

 

조정래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는 참 대단하다. 그만큼 우리의 삶속에서 살아숨쉬는 이름이기에 그의 작품에 대한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어쩌면 바로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나온 책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살짝 들기도 한다!) 이 책 <외면하는 벽> 은 작가의 짧은 글을 모아놓은 일종의 작품집이다. 그런데 그 주제가 한결같이 똑같다. 70년대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닌데도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정말 고릿적 캐캐묵은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지금 아무리 '달고나'나 '뽑기'가 유행을 한다해도 그건 단순히 호기심일뿐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 것처럼 이 책속의 이야기들이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분명 낯선 풍경일테지만 그 때를 살아낸 세대에게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감히 '아픔'이라는 말을 한다.

 

한참 반공 방첩을 외쳐대던 시대에는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의심을 받았다. 물론 지금도 사상범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어디 그 때의 무게와 같을까? (-첫번째 이야기 '비둘기')  전쟁을 겪어 힘겨웠던 부모 못지 않게 그들의 아이들 역시 힘겨웠다. 그 힘겨운 삶의 올가미에 걸려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 자신과 맞닥뜨려야 하는 고통의 순간도 있었다. (-세번째 이야기 '진화론' 과 네번째 이야기 ' 한, 그 그늘의 자리')  우리는 쉽게 말한다. 그런 그들의 희생과 감내가 있었기에 지금, 좋은 시절을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하지만 그들의 희생과 감내는 외면당해야 했다. 그래서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채 풍요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지금도 그 거대한 외면의 벽에 부딪혀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눔'이라는 이름과, '함께'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안고 쓰다듬어 줄 마음의 따스함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고의적으로 그 마음들을 외면한 채 모든 것이 다 잘될거라고 위안삼으며 살아왔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외면하는 벽' 의 야야기나 마지막 이야기 '두 개의 얼굴'속에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도 고스란히 들어있다. 철저하게 나만을 위하는 그러나 아닌 척하는 가증스러운 얼굴이 이야기위로 겹쳐진다는 말이다.

 

우리가 못살았던 시절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아픔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아팠던 기억만을 끄집어내기로 작정한 듯 하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우리가 무심코 저질렀던 그 '외면'이 고스란히 지금의 우리를 더욱 더 아프게 하고 있다는 역설일수도 있지 않을까? 외면함으로써 잊고자 했던 것들이 지금의 우리를 다시 외면하며 아프게 하고 있는 거라고... 그 모든 아픔들이 누구의 탓도 아닌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어진 것이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껄끄러웠던 건 아마도 우리에게 필요한 그 무엇을 우리 스스로가 모른척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아무래도 나는 아픔을 동반하는  '記憶'보다 그래도 조금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追憶'에 매달리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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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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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만나는 이름이라 반가웠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거나 적게는 한 두살, 많게는 너댓살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사람에게 괜스레 친밀감이 생겨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아마도 서로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있는 까닭이리라. 작가는 글로써 대중과 이야기하고, 연사나 강사는 말로써 대중과 이야기 한다. 그런데 요 얼마전 글로써 대중과 만나야 할 사람이 말로써 대중과 만나며 세간의 이슈로 떠올랐던 적이 있었다. '글쓰는 것보다 말하는 게 더 쉬울수도 있었겠구나...' 싶었지만 보기에 조금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도 어느정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사람이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허둥대는 걸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부터가 어느정도는 편협된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는 이름이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그의 작품을 다시한번 떠올리면서 그의 말에 경청해보기로 한다.

 

말 그대로 터질듯한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약간은 생소한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소설이라고 하는데 왠지 소설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서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부드럽지가 않았다. 읽으면서도 뭔가 불편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책속에 등장하는 두 명의 話者 류와 요셉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게 무엇인지 곰삭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책장을 덮어야 할 지점에서 만난 작가의 말을 통해 아하! 그런거였구나, 싶었다. 아픈 내면을 건드린다는 건 확실히 불편하다. 우리가 애써 감추고 싶어하는 것들을 은근슬쩍 끄집어내서 보여주고자 하는 상황,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버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다. 그렇게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여 관계의 틀을 형성한다. 관계... 그 말속에 정겨움과 나눔이 들어 있어야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냉혹하다. 계산되어진 마음들이 모여 관계를 형성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감추고 싶어하는 불편한 진실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아닌 척,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는게 바로 지금의 우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이야기를 그야말로 태연하게 풀어놓고 있다. 저마다 속내를 감추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래서 저마다 외롭다. 그래서 저마다 쓸쓸하다. 그래서 저마다 찾아 헤맨다. 따스함을.... 별 것 아닌 것에도 큰소리로 화를 내고, 별 것 아닌 것에도 크게 소리내어 웃는다. 약한 사람일수록 강한 척 한다는 모순을 보게 된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일수록 많이 가진 척 한다는 말처럼. 내 안의 모든 걸 드러내며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강한 은유의 장벽을 치는것도 서글픈 일임엔 분명하다.

 

그 관계의 틀속에서 우리가 얻는 건 무엇이고 잃는 건 무엇일까? 자로 잰 듯이 사는 사람도, 헐렁하게 대충대충 사는 사람도 나름대로의 고통과 상실감 하나씩은 안고 살아간다. 가족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살아가면서 감내해야할 것은 누구나 다 똑같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말이 '평행선'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평행선 위를 걸으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더 멀리가지 않으나 더 가까이도 할 수 없는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책에 빠져들수록 조여오는 아픔이 느껴졌다. 오래전 김형경의 <사람풍경>을 읽다가 그만 눈물을 흘렸던 그 때처럼... 류라는 여자와 요셉이라는 남자가 감추어둔 속내를 들여다보면서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뜨끔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답이 없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보여주고 싶지 않으면서도 봐주었으면 하는 모순, 들키고 싶지 않으면서도 들켰으면 하는 모순, 굳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순간 목을 빼고 있거나 곁눈질하는 모순,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하면서도 말해야 알 수 있는거라고 하는 모순, 상대방을 위한다고 하면서 내가 원하는 쪽으로만 행동하는 모순, 사랑이라는 자신만의 감정으로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모순, 있는 척, 없는 척, 모르는 척, 아닌 척, 태연한 척....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나의 관점일 뿐이다.  책을 덮고 잠시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나로인해 상처입은 마음이 있다면 이제는 그 상처, 아물었기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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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2-06-10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h님 얘기 듣고 읽고 싶었는데,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상대방을 위한다고 하면서 내가 원하는 쪽으로만 행동하는 모순, 모든 것이 나의 관점일 뿐이다, 살아가는 방식에는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답이 없다는 말에 무척 공감해요.

은희경이 누군지도 모르고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음에도)예전에 '마이너리그'를 참 재미있게 읽었는지라 좋은 기억이 있어요.

아이비 2012-06-11 12:10   좋아요 0 | URL
가끔 '혹시?' 하는 마음으로 저를 돌아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역시 내멋대로였구나 싶을 때가 많았답니다.
다녀가신 흔적으로 남은 시간 행복하겠습니다.
 
이제, 마음이 보이네
백성호 지음, 권혁재 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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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면서 문득 떠올랐던 그림책이 있었다. 오래전 '이건 뭐야?'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이외수의 그림책이다. 그 책의 제목은 <사부님 싸부님>.. 하얀 올챙이와 까만 올챙이의 선문답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는 책. 아주 간단하게, 그야말로 별 것 아닌 것처럼 세상의 진리를 제자에게 말해주던 싸부님의 그 말씀이 너무 좋았었다. 선하나 그어놓으니 이편과 저편이 되었고, 위 아래의 세상으로 구분지어졌다. 이편으로 오면 내편, 저편으로 가면 적? 이라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버리는 愚問과 賢答이 그 책속에 담겨 있었던 것 같다.. 뭐 그런류의 우리 삶의 모습을 풍자했던 그림책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책을 보면서 가장 의미있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나'였다. '나'라는 존재에 의해 모든 것이 시작되어지고, 어떤 모양이 되었든 하나의 틀이 만들어진다는 거였다. 선을 그은 것도 '나'였으며, 그 선을 핑계삼아 니편 내편을 가르는 것 또한 '나'의 잣대라는 거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나'를 잊는다. 그 '나만의 잣대'를 만들어놓았다는 사실 자체를 까맣게 잊은채 오로지 상대방만을 탓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 그토록이나 힘겨운 일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돌아보았으나 바꾸지 못하는 자신을 어쩌면 더 힘겨워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흔히들 말한다. 말은 쉽다고.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나는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말은 쉽다'고 말을 하면서 한번이라도 나를 바꾸기위해 노력해 본 적이 있는가, 라고...

 

책을 펼치고 일반적인 수순을 밟지 않았다. 처음과 끝을 가장 먼저 읽어보았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먼저 읽었다는 말이다. 저자의 마음이 궁금했다. 무엇을 알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답을 찾았는지... 크게 다섯장으로 나누어 말하고 있지만 첫장부터 강하게 한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당신을 놓아주세요"...  욕심과 집착으로부터 '나'를 놓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았었다. 산다는 게 그리 녹녹치 않은 까닭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얼마전 우연히 마주쳐 내게 너무나도 큰 의미를 남겨준 한 줄의 문장이 생각났다. '꽃은 져야 아름답다' 는... 꽃이 져야만 거기에 열매가 맺힌다는 그 진리를 나는 왜 모르고 살았을까 싶었다. 그 평범함을 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던 것일까 싶었다.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고, 움켜쥐려 할수록 가질 수 없는 것이 욕심이며 집착이라는 말을, 단지 '이론'일뿐이라고 외면해버렸던 것은 누구일까?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기만을 바라나요?

무엇을 찾고자 합니까?

원래 당신의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내 안의 틀만 허물면 하나가 됩니다. 

- 책 중에서 -

 

2012년이 시작되고 벌써 반을 살았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맨처음  받았던 문자메세지를 다시 떠올렸다. 네잎크로버의 꽃말이 행운이라면 세잎크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랍니다. 일년내내 행복하시길요... 하고 보냈던 문자의 답변이었는데 그 문자를 받고나서 기분이 참 좋았었다. 발 밑을 보세요. 네잎보다는 세잎을 달고 있는 크로버가 더 많지요. 그러니 당신 주변에도 늘 행복이 가득하답니다. 잊지 마세요. 행복이 늘 당신곁에 있다는 것을.  한동안 그 문자메세지를 지우지 않았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였습니까?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는 물음에 톨스토이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겐 가장 중요하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라고.. 책을 읽으면서 작은 평온을 느꼈다고 말한다면 가식일까?  사실 작가의 글에는 대립이 없어 참 편하다. 니편 내편을 가르지않아 좋다는 말이다. 일상속에서, 흔한 것들속에서 작가가 찾아내는 행복이라는 이름은 내게도 있었을 것인데 나는 보지 못했으니 분명 나보다 한수 위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하나였지만 인간의 잣대로 인하여 서로 다른 길로 가게 된 그 '무엇'에 대한 아우름이 글을 대할 때마다 내게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책을 향해 주저없이 손을 내밀었던 이유도.

 

이 책, <이제, 마음이 보이네>는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가의 칼럼을 모아놓은 책이다. 종교색을 떠난 작가의 진심이 느껴져 신문의 칼럼도 모두 오려 두었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나와 소장할 수 있게 되니 개인적으로는 참 좋다. 먼저 나왔던 <현문우답>도 참 좋았었다. 그리고 나도 묻고 싶었다. "이제, 마음이 보이냐" 고. 그런데 아직 "이제, 마음이 보이네" 라고 대답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 마음을 내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  작가의 말처럼 나를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  책속에 함께 어울어졌던 사진들이 전해주었던 그 느낌을 잊고 싶지 않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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