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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 김별아,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5월
평점 :
울컥, 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책장을 덮고 멍하니 앉아 있기를 몇 분.... 그래도 산을 좋아한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누구처럼 그렇게 큰 의미도 부여하지 못하면서 그저 산이 좋아서 오르기에 미쳤던 시절이 있었다. 틈만 나면 베낭을 짊어졌었다. 그냥 그 냄새가 좋았던 것 같다. 그냥 그 바람이 좋았던 것 같다. 그냥 그 소리가 좋았던 것 같다. 내가 한참 산에 미쳐있을 때에는 산중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산에서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가장 무서운 일이 되어버렸다. 왜 그럴까? 사람이 사람을 가장 무서워하는 세상이 되어버리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잠시라도 자연속에서 마음을 치유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이젠 산에 오르는 것이 또하나의 경쟁이 되어버린 거다. 언제부터인가 능선을 타며 몇 개의 산마루를 점령(?)했는가를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은 그런게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왜 그럴까? 그저 오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산마루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며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포만감(?)을 느끼기 위해서 오르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또하나의 경쟁을 산에 심어놓는다. 자신을 위한 산행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산행이 되어버린 거다. 그러다보니 저마다 치장하기에 바쁘다.
무엇을 하든
무언가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는
결과주의와 성취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제대로 산을, 삶을 즐기지 못한다. (-244쪽)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라는 제목이 참 좋았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등산의 기본이 아닐까 싶어서. 작가처럼 많은 걸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해도 우리는 분명 쉬고 싶다는,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다는 명분을 세워 산을 오른다. 20대에 올랐던 산과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오른 산은 내게 너무나도 달랐다. 결혼이라는 이유로 까맣게 잊고 살았던 산을 다시 찾게 된 건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는데 그게 참 쉽지 않았다. 정해놓은 시간이라도 있는양 바쁘게 걸음을 옮기며 앞선 동지의 엉덩이와 발뒤꿈치만 따라가는 산행이 싫어서 마음 맞는 사람 몇이 모여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그 때 함께 했던 동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쩌면 그렇게도 감탄사를 잘 뱉어내느냐고... "와아!~~", "이야!~~" 함께 산행을 하면서 나의 그 감탄사가 너무도 좋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거였구나! 싶었다. 작은 풀, 작은 꽃과 마주한다는 게 이런거였구나! 싶었다. 그 때부터 우리에게도 작가네처럼 구호가 생겼다. ' 천천히, 바쁜 사람은 먼저 가시고... ' 빨리 가면 보이지 않는, 아니 볼 수 없었던 이름모를 꽃 한송이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도, 파란 하늘에 그림처럼 떠다니는 흰구름의 마술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우리의 구호덕분이었다. 그렇게 만난 풀과 꽃과 나무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서 한동안 책도 싸들고 다녔었지만 지금은 그 때 만났던 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산을 사랑한다는 것이 꼭 '등산'을 좋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155쪽)
산은 꼭 산마루까지 올라야만 맛이 아니다. 그 오르는 과정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 혼자 올라가도 여럿이 함께 올라가도, 원정산행을 하거나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어느쪽을 선택하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작가의 말처럼 기본만 지켜준다면 내 모든 것을 맡겨두어도 좋은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인 것이다. 작가네의 구호 '까불지 말자'에 크게 공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기본을 우습게 알고 까불다 사고당하는 사람 정말 많이 봤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이 꼭 산행에서만 필요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작가가 다녀온 일정속에서 군데군데 지나온 나의 발자취도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작가가 정말 부러웠다. 그 아이들은 분명 멋진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산이 아프면 그에 기대어 사는 사람도 삶도 아프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어리석은 짐승인 사람은 많이 아픈 후에야 지난날의 축복을 추억하며 깨닫는다. (-212쪽)
산을 올라보면 안다. 아니 산뿐만 아니라 자연이라는 틀속에 나를 끼워넣고 보면 안다.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내가 그 자연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자연때문에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의 오만은 부풀어오른 풍선같다. 마치도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거들먹거린다. 나중을 기약할 수 없는 오만과 교만이다. 지금 우리가 아주 조금씩만 욕심을 버리며 살아간다면 그 나중을 기약할 수도 있을텐데..... 자연이라는 게 그렇게 거창한 이름일까? 우리가 밟을 수 있는 흙 한 줌, 작은 풀포기 하나, 이름모를 들꽃 한송이, 발에 채이는 작은 돌멩이, 그리고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뭐 이런게 자연이라는 말이다. 그런 걸 우리는 잊고 살며 잃어버리고 있는 중이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나는 남편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이번 여름휴가때는 아들하고 지리산 종주 한번 하지?" 그러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구, 그 힘든 걸 왜 날더러 하라는거야? " 한다. 아들이 세상속으로 첫발을 내딛기전에 아빠와 지리산 종주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 알 수 없다... 산을 넘어가는 각 구간마다 詩 한편씩 끼워넣어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줘서 참 좋았다. 역시 글쓰는 이의 산행이다. 그런 느낌, 그런 행복을 이렇게 글로 표현할 수 있어서 김별아, 그녀는 참 행복할 것 같다. 詩라는 게 가만히 살펴보면 함축되어진 우리의 삶이다보니 그냥 허투루 넘길수가 없었다. 오래전에 광교산에서 보았던 詩가 보인다.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는 이원규의 시 한편이 새롭다. 그렇다해도 나는 다시 꿈 꿀 것이다. 내 아들이 아빠와 나란히 지리산에 오르는 것을.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