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
이덕일.김병기 지음 / 예스위캔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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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대장정이다.  우리의 역사를 산성의 역사라 말한다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산이 많다는 말은 어찌보면 좋게 해석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만큼 길을 내기 힘들어 더딘 문명의 길을 가야했다는 뜻도 될 것이다. 역사속에서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장면중의 하나가 산성으로 들어가 성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적과 대치하는 상황이다. 병자호란으로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하게 된 연유도 거기에 있다. 산성으로 들어가 성문을 닫아걸고 기다렸지만 그들은 산성을 공격하지 않고 바로 도시로 들어갔다고하니 하는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임나일본부설과 같이 커다란 주제를 생각하지 않는다해도 기회가 닿을때마다 산성 하나씩은 돌아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잘 정리되어진 산성답사를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가웠다.

 

평소 이덕일이라는 역사학자의 글을 인상깊게 보아오던 터였기에 그의 산성역사학을 청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넘기면서 산성에 얽힌 우리의 역사를 알게 된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 왠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은 아마도 산성이라는 테두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게다. 지금은 이곳저곳에서 산성 복원을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가끔은 무너진 성벽을 보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답사를 갔을 때 아주 작은 조각만으로 남겨진 산성의 역사를 마주칠 때가 있다. 잘 다듬어진 산성보다 더 짠한 시선으로 돌아보게 되는 것은 그 성벽과 함께 무너져 내렸을 우리의 이야기에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탓일게다. 죽음으로써 지켜내고자 했었던 오래된 이야기들이 지금에 와서도 외면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그 안타까움 말이다.

 

살펴보니 당연히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다. 물론 여기에 소개된 산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주제를 정해 그 주제에 맞게 소개해주고 있을 뿐이다.  역사 찾기라는 무거운 주제보다는 가족과 함께, 혹은 연인과 함께 찾아갈 수 있는 여행으로 산성답사를 권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아울러 그 산성주변의 이야기들을 더듬어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지금은 문화유적답사에 대한 테마가 대세인지라 한데 묶여진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산성답사를 하다보면 산성을 따라 걸으며 느낄 수 있는 풍경의 맛이 일품이다. 펼쳐진 그림도 그림이겠지만 얼굴에 와닿는 바람의 감촉은 더할 나위없이 좋다. 가까운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만해도 계절마다 맛볼 수 있는 그 색다름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니 산성순례를 꿈꾸어볼 만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백성과 함께 생사를 같이한 산성, 전망 좋은 가족나들이 산성, 나라의 운명을 뒤바꾼 치열한 전장터, 만주의 고구려성과 일본의 조선식 성..  크게 네가지 주제로 나누어 찾아가보는 산성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아주 오래전 죽주산성을 찾았을 때, 그리고  얼마전 파사성을 찾았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물론 주변의 유적답사도 함께 했었지만 산성을 따라 걸었던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고즈녁한 산성길을 품었던 정족산성은 또 어떻고?  글쓴이의 말처럼 여행코스로도 정말 좋은 주제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글쓴이가 산성의 역사를 통해 중국과 일본에서 주장하는 비틀어진 이야기들을 바로 잡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의 말미에 산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글도 보인다. 솔직히 시대별로 쌓는 방식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나, 테뫼식이니 포곡식이니 독립구릉식이니 아무리 말해주어도 그것을 제대로 알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자주 접해보는 방법밖에는 별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가야할 길이 멀기만 하다. 숙제가 쌓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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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산책하다 - 문화유산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 150년
김종록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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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을 찾기로 하면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정동길이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공간의 역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공간속에 머무는 이야기들이 그다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마주치는 정동교회도 그렇고 이웃하고 있는 배재학당을 돌아보는 맛 또한 일품이다. 중명전을 거쳐 다시 돌담길을 따라 가며 이곳저곳 눈길을 마주하고 대한성공회성당을 찾아 그 매력에 흠뻑 빠지며 마지막 다리쉼을 할 때는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아직 남겨진 우리의 문화유산이 더이상 문명의 톱질에 잘려나가지 않기를... 아직 들춰내지 못한 우리의 역사가 있다면 좀 더 멋진 이야기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얼마전 두번째 서촌탐방을 했었다.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이상'의 제비다방이 복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더 찾아가봐야지 했던 길이었다. 내노라하는 권세가보다는 중인들이 많이 살았다던 서촌은 북촌과는 달리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저마다의 가슴속에 움트던 욕망의 시작점이었기에 그렇게 느껴졌던 건 아니었을까? 혼자 가만히 생각해보고는 피식, 웃어버렸었다. 대오서점앞에 서서 '세 놓습니다'라는 글자를 보며 우리는 모두 안타까워 했었는데 이렇게 작은 문화유산의 흔적을 찾아다니다보면 그런 안타까움을 한두번 느끼는게 아닌 까닭에 역시 가슴 한쪽이 시렸다. 솔직히 이 책을 보면서도 다른 책과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닐까 싶어 노파심에 조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지식과 정보를 가득 안고 찾아온 이 책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책은 교육, 문화, 종교, 정치, 외교, 금융, 시설, 생활...과 같이 각 장마다 큰 주제를 두고 유적지를 찾아다니고 있다. 우선 깊이있게 다루어주신 마음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진다. 아울러 아직 가보지 못한 공간속에 빨리 들어가보고 싶다는 조바심도 생겨난다. 한국고전번역원이나 국립중앙도서관, 남산의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같은 곳을 찾았다는 건 내게 또다른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왠만한 내공이 없다면 쉽게 찾아지지 않을 곳이기에... 솔직히 말해 서울기상관측소나 여의도공원을 보면서 근대문화를 생각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나같은 초보자에겐 다분히 감사할 일이다. 그만큼 공부를 해야한다는 말도 되겠지만 말이다.

돌아보고 싶은 곳은 너무나 많다. 늘 욕심만을 앞세우는 탓이다. 책의 2장에서 다루어주었던 종교부분은 아들녀석과 한번 돌아보기로 했던 주제였던 까닭에 내심 반가웠다. 내친김에 우리의 일정에서 빠진 대각사와 천도교 중앙대교당까지 둘러봐야겠다고 다짐한다. 문화유산탐방을 하면서 '~~터"라는 표지석을 자주 보게 된다. 그 표지석을 보며 당시를 생각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겠으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너무 멀기만 하다. 이 책을 들고 길을 나설 수 있는 순간을 기대해보기로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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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잠들지 않는다
임종욱 지음 / 북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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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 김만중.... 예학의 대가 김장생의 증손자. 숙종의 첫번째 부인 인경왕후의 숙부. 그러니 외척이 된다. 그의 어머니 또한 윤두수의 4대손이라 한다. 배경으로만 보아도 한자리 했었음을 익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 그가 이런 저런 이유로 유배를 가고, 마지막 유배지인 남해에 위리안치되었을 당시의 상황이 이 책의 배경이다. 그 와중에 어머니 윤씨가 병으로 죽고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한 그는 56세에 남해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작품중에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구운몽>과 <사씨 남정기>가 또한 이 책속의 현실로 살아 숨쉰다. 소설이 또하나의 소설속에서 현실이 되었다가 또다시 소설로 재탄생되어진다는 조화가 교묘하게도 잘 어울린다. 이렇다하게 극적인 끌어당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몰입도가 강하다. 안개에 젖듯이 서서히 작품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그 기분 또한 과히 나쁘지 않았다.

 

이 소설속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김만중의 작품 두가지는 <구운몽>과 <사씨 남정기>다.<구운몽>은  주인공 양소유가 8명의 여인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 모두가 꿈이었다는 반전이 멋드러지게 보이는 작품이다. 꿈속에서 살았던 영웅의 길은 어쩌면 우리가 현실속에서 이루지 못한 이상일 것이다. 꿈일지언정 자신이 꿈꾸던 것을 이루었으니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결국 꿈에서 깨고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설정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사씨 남정기>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하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했던 사건에 대하여 쓴 작품이다. 숙종이 빨리 정신을 차렸으면 하는 바램을 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 녹아있는 권선징악의 의미는 상당히 큰 듯하다.  

 

이야기는 김만중이 유배처인 남해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책을 읽기 전에 어쩌면 고전풍으로 엮어내지 않았을까 내심 조바심이 났었는데 의외로 책장이 잘 넘어갔다. 가볍게 일렁이는 파도처럼 남해에서의 일상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음이다. 어쩌면 그가 유배지에서 정말 저렇게 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막힘이 없다. 작가라고해서 왜 극적인 장치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가 받아들였던 유배처의 모든 일상을 통해 김만중이란 인물을 그려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왕실의 일족으로 상당한 권세가였을 그의 면모가 특별하게 튀지않고 남해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얽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또한 그를 찾아와 자신의 심중을 털어놓는 백성들의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마져도 느껴진다. 백성들과 얽히지 못하는 양반님네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잔잔함... 이 작품의 매력은 그 잔잔함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일상과도 같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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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중고차 사기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것들
이일구 지음 / 참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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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최대 목적은 이익이다.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장사라면 당장 접어야 옳다. 손해보고 판다느니, 남는게 없다느니하는 말들은 분명 거짓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기에 조금이라도 깎아 싸게 사려고 하는 게 또한 사는 사람의 심정이다. 그런데 물건을 보고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게 쉽지만은 않다. 물론 어떤 종류의 상품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더구나 조금이라도 제품의 구조나 상태를 알아야 하는 것이라면 더욱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 전문적인 분석을 요하는 제품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차가 그런것 같다. 나처럼 운전은 하되 차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중고차를 산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경제적인 여건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중고차를 찾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얼마전 지인으로부터 중고차매매를 하는 사람을 알고 있으면 소개시켜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거두절미하고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그 사건 하나로 좋았던 관계가 원수처럼 변하게 될까 두려웠던 탓이다.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세상에 너무도 많은 탓이기도 하다. 세상을 믿지 못하고 어떻게 사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믿음이라는 게 쉽게 생겨나지 않는 까닭을 생각하면 가끔은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말도 될테니 말이다.

 

책을 읽고나서 남편과 가장 먼저 주고 받았던 말은, "우리가 중고차를 사기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정말 좋은 차를 싸게 살 수 있었을까?" 였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속이자고 드는 사람 이겨낼 재간은 없었을 듯 싶다. 나는 필요해서 찾아간 사람이고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팔아야 하는 쪽이니.. 그럴까봐 믿을만한 사람을 통해서 찾아간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팔고나서 나몰라라하는 태도에 엄청 화가 났었다. 잘 모르는 내가 생각해봐도 중고차는 살 때 그 진실된 모습을 알 수 없다. 그럼 언제 아느냐고? 당연히 그 차를 되팔때다. 나에게 팔 때는 있는 흠도 어떻게해서든 가려 좋게 포장하려 할 것이고, 내게서 살 때는 없는 흠도 어떻게해서든 잡아내야 하는 게 그들이 할 일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법적으로 아무리 이렇게해라 저렇게해라 한다고 한들 그다지 큰 효과는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종종 이런 생각도 해본다. 세상에 싸고 좋은 물건이 있을까? 물론 아주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의 이치로 따져보면 싸고 좋은 물건을 만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며느리도 모른다는 중고차의 가격.. 그래서 중고차 사기전에 이런 저런 정보도 많이 얻고, 여기저기 기웃거려가며 나름대로 알아보기는 한다. 중고차를 사고자 마음 먹은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중고차 구입절차라거나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한다는 것쯤은 아마 알고 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좋은 딜러를 만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도 없을것이다. 우리가 중고차 시장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중고차 딜러가 어떤 사람들인가도 어느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중고차를 사러 가기전에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주워 들을만큼은 들었다. 자, 이제 중고차 시장으로 가보자. 과연 좋은 물건을 싸게 살수 있을까? 해마다 중고차를 사고파는 문제로 신고되는 건수가 많아진다고 하는데 과연 얼만큼이나 알고 있어야 속지않고 살 수 있는것인지.....

 

걱정, 걱정, 걱정.... 모든 일에는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상식이 왜 그렇게도 많은지.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왜 이리도 무지한가 한심스러울 때도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중고차를 제대로 사기 위한 협상의 기술> 정도는 알고 가야지 한다. 타이밍도 중요하고, 분위기도 중요하고, 밀고 당기는 순간의 어법도 중요하고... 이것도 일종의 심리전이다. 많이 알고 있는 자를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심리전. 나를 속이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하면 조금이라도 덜 속을까하는 심리전. 그리고 어떻게하면 저 사람을 조금이라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하는 심리전. 세상 모든 일은 심리전의 연속이라는 생각에 씁쓸하게 웃으며 책장을 덮는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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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뿔 1
고광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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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격정의 세월이 있었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거리를 날아다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처음엔 너만의 일이었다가 점점 나의 일, 우리의 일로 변화되었던 그런 사건들이 하나둘씩 불거져 나오던 그런 때가 있었다는 말이다. "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 는 말도 안되는 말이 세상속을 떠다니고 우리는 너나 할 것없이 어이없음에 치를 떨었었다. 세상의 모든 고요가 모여들던 그 아침을 나는 기억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교복을 입고 등교하던 단발머리 여학생들의 궁금증이 풀리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일이 생겨났고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아닌 누구라 할지라도 그 영화를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화려한 휴가>... 그 영화가 개봉되고 나는 아들녀석의 손을 잡고 영화관을 찾았다. 어린 녀석이 무엇을 알까마는 엄마의 기억속에는 이런 일들도 있었단다, 말해주고 싶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원하지 않았던 일과 마주치는 순간도 있을거라고. 나 역시 그 공간속에 있어보지 않아 그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중의 한명일테지만 한시대를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은 아팠다. 정말 저런 일이 있었나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던 아들녀석의 목소리를 내가 기억하는 한, 많은 사람의 기억속에 아픔으로 남겨질 저 날들을 작가는 다시 되새김질하여 꺼내놓고 있다. 아직 다 삭지도 않은 그것에 대해 다시 말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그 마음을 가늠해보고 싶은 욕심이 인다.

 

5.18... 이야기는 처참했던 광주를 배경으로 두고 시작되어진다. 지방신문의 한 기자가 나이어린 깡패의 칼에 찔려죽고, 그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고자 하는 또 한명의 기자를 따라가며 무서운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과연 이 시대의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추리형식을 택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적인 묘사를 너무 장황하게 펼쳐놓아 짐짓 이야기가 늘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하는 말이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전해주고 있는 이야기속에서 긴장감이나 긴박한 그 무엇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자료조사와 수많은 수정을 거쳐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8년이나 걸렸다는 말을 보았다. 작가는 아마도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다 담아낼 수 없음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책속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돌아다니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알 수 없는 지루함이 밀려오기까지 했다. 무언가를 사러 재래시장을 갔는데 길 양편에 늘어선 상인들의 물건을 보며 아무것도 사지못한채 스쳐지나는 것처럼.  

 

말하지 않아도 눈치챌 수 있는 진실은 많다. 굳이 들춰내지 않아도 모두가 해답을 알고 있는 일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밖으로 끌려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를 미칠것 같게 만드는 일도 많다. 이 책속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가슴속에 구멍하나씩 안고 산다. 누구나 가슴속에 오래된 뿔 하나쯤 숨기고 산다. 그 구멍속으로 세월이라는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시린 가슴 부여안고 꺽꺽거리며 속울음 삼키는 순간이 있다. 누가 되었든 무슨 일이 되었든 하나쯤 걸려들기만 하면 그 감춰둔 뿔을 드러내 들이받아버리겠다고 벼르며 살아가고 있는 순간들도 있다. 이렇게 아픈 이야기가 잊혀질 수 없는 까닭은 나보다 더 큰 구멍, 나보다 더 오래된 뿔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 때문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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