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틈새
마치다 소노코 지음, 이은혜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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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지만, 마지막 순간은 누구나 다 똑같다. 책의 뒷표지에 보이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말도 보인다. 삶이 끝나는 곳에서 깨닫는 나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 그렇다면 나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장례지도사다. 게다가 여자다. 여기서 '게다가'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여자'가 '장례지도사'를 한다는 걸 꺼려 한다는 보통 사람들의 의식 때문에 붙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외면 당하는 직업인 까닭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소설의 주인공이 그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마나는 일과 결혼 사이에서 갈등한다. 말이 장례지도사지 늘 시체를 마주해야 한다는 점은 바라보는 입장에서 껄끄러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해도 되지만 내 가족, 내 연인은 그런 일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눈물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활기찼다.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죠. 하고 싶은 일에서는 외면당하기도 하고, 내가 느낀 보람을 타인에게 부정당하기도 하잖아요. 건강하게 자라기만 하면 된다는 말은 어릴 때나 듣는 거고 자랄수록 힘들고 어려운 일뿐이죠. 살아보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친 놈은 어느새보면 사라지고 없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놈이 끈질기게 살아남아요. 빌어먹을 세상.(-74쪽)

일본의 장례문화를 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단편 형식으로 얽힌 여러 사람들의 장례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삶과 죽음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 않기에 많은 공감대를 불러왔던 주제였다. 아마도 우리에게 죽음이 가장 가깝게 느껴졌던 때는 코로나19를 겪었던 때가 아닌가 싶다. 왜 우리는 죽음에 대해 그토록이나 두려움을 갖는 것일까? 요즘은 나이듦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제를 가진 책도 많이 보인다. 자연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소설의 주인공이 일하고 있는 장례식장의 사장도 죽음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설정이 이채로웠다. 모든 죽음이 다 아름답지는 않겠지만 아름다운 죽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을 아름답게 장식해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얻는 동시에 무언가를 잃는다. 무언가를 바랐지만 얻지 못하면 절망한다. 제 손에 남은 것과 잃어버린 것을 헤아리며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얻었다는 것 자체가 아니다.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도 아니다. 얻었을 때 느낀 기쁨과 얻지 못했을 때 느낀 슬픔, 그 과정의 갈등과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보물이다. 그리고 그 보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가 이어간다.(-393쪽)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선 가족과 연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례지도사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마나'가 있고, 인기 작가였으나 성매매 업소를 직장으로 둔 '나쓰메'도 있다. 나쓰메의 당당함은 그녀의 소설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딸을 키우고 있는 '치와코'는 자신이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에 대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깨닫게 되고, '후코'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남편과 시댁에서 보란 듯 뛰쳐나와 자신이 하고 있던 미용사로서의 길을 가며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아무튼 답을 찾을 때까지 부딪혀 봐. 어떤 관계든 계속 부딪히면서 갈고 다듬어 가야 하는 법이거든.(-24쪽)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건 누구일까?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는 생각보다 깊히 파인다. 게다가 잘 낫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가깝다는 이유로 그사람의 마음까지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 우를 범하며 살고 있지 않은지 한번쯤은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사랑일 것이다. 세상의 눈치를 보며 살기에는 삶이 너무 짧다. 사람은 큰 슬픔을 맞닥뜨리고 좌절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들 하잖아. 하지만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 상대를 잃기 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사람도 있지. 그 아픔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어.(-373쪽)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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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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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情勤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비정규직이다. 일단 추리소설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꽤나 인기있는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작품명을 이야기한다면 많은 사람이 아하,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나미야 백화점의 기적>, <백야행>, <수상한 사람들>, <라플라스의 마녀> 등 수많은 작품이 번역되었다. <비정근>은 국내에 소개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적인 초기작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 책에는 6개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 책이 단편집이고, 초기작이라는 말을 미리 살폈더라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품고 있는 매력에 빠져 읽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름대로 괜찮은 느낌을 남긴다. 이렇게 순수한 주제를 가지고도 추리소설을 쓴 걸 보면 작가는 떡잎부터 달랐던 모양이다.

おれは非情勤... 원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교사이지만 정규직은 아니다. 정규직 교사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 빈틈을 메워주고 있다. 길어야 한 두달 정도. 그래서인지 소설속의 주인공은 차갑게 묘사되었다. 초등학생들을 주로 맡지만 아이들에게 그다지 정다운 선생은 아닌 까닭이다. 처음 출근하던 날부터 살인사건과 마주치게 되는 곤란함을 겪기도 하지만 그 학교에 완전히 젖어든 사람이 아닌 관계로 형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소설속에서 그려지는 선생과 학생들의 관계가 시선을 끈다. 작금의 현실과 무엇이 다른가 싶어서. 학생들이 교사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존경스러움은 묻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지메라고 불리워지는 왕따에 관한 이야기도 요즘의 아이들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살인의 단서를 숫자를 통해 푼다거나, 글자를 풀어 쓴 단서를 보면서 다시 하나의 글자로 꿰어 맞추는 방식의 추리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아직은 순수해야 할 아이들을 대상으로 살인사건이나 어른들의 이기심과 욕심이 가득 들어간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한다. 하지만 사건을 해결하고 난 후 주인공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달되어지는 메세지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설사 상대가 아이들이더라도 믿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의미없이 믿는 척하는 것보다 훨씬 건강에 좋아요. 정신 건강에도." 비정하게 느껴지기는 해도 이론만 가득찬 교육의 현장에서 어쩌면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세상의 이치로 다가설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살짝 공감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옮긴이의 마지막 말이 시선을 끄는 이유이기도 하다. 깊은 곳에 불신을 품고 겉으로만 믿는 척하는 교사와 부모보다, 친절함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권위와 사회에 복종시키려고 하는 어른들보다, 냉정하고 예리한 관찰로 아이들의 상황과 심리를 파악하고 곤란에 처했을 때 적절한 해결책과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비정근 교사가 더 훌륭한 어른이 아닐까.(-270쪽) 교권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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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는 척하기 - 잡학으로 가까워지는
박정석 지음 / 반석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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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く住めば都 나가쿠 스메바 미야코 ” 오래 살면 거기가 고향이라는 말이다. 우리식으로 말한다면 정들면 고향. 책을 열면 머리말에서 저자가 가장 먼저 하는 말이다. 저자는 재일교포다. 경북 영천에서 출생했으나 1991년 일본 영주권을 취득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자신이 한국인임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두 아들을 설득하여 한국의 군대에 다녀오게 한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준 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일본 아는 척하기' 라는 책의 제목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일본에 대해 아는 척하는 사람이 한두 사람일까 싶어서. 이 책은 이런 저런 잡학을 통해 일본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세계를 확인하고픈 청년들이 읽어주기를 희망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만큼 일본에 대해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마음일 것이다. 한일관계는 참 묘하다. 적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구라고 할 수도 없는 듯 하다. 그냥 저자의 말처럼 지지리도 못산다거나, 아주 못되고 나쁜 이웃을 만나지 않은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면 다행일 듯 싶기도 하고.

일본의 국가 명칭은 두 번 탄생했다. 처음에는 倭였고 그 다음이 日本이다. 국가라는 개념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에도 막부 시대 국민들은 약 260개 현(藩번)을 국가명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때 "お国はどこですか" 라고 묻는다. 일본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성이 없고, 주민표와 호적이 없으며, 여권도 없고, 자유로운 인권도 없다는 천황에 대한 이야기가 시선을 끈다. 한마디로 국민으로서의 요소를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황실 예산이나 천황가의 거주지가 도쿄돔 경기장 약 25개 규모라고 하니 놀랍다.

일본의 나라 꽃은 사쿠라(벚꽃)다. 그런데 나라 꽃이 두 종류라고 한다. 나머지 하나는 국화다. 사쿠라는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나라 꽃이고, 국화는 귀족인 천황가에게 사랑받는 나라 꽃이라고 한다. 일본 장수기업의 98%이상이 중소기업이라는 말은 내심 부러웠다. 100년 이상된 기업이 한국에는 4개 뿐이지만 일본에는 26,000개나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디지털과 아나로그에 대한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고 어필한다. 백퍼센트 공감이 되는 말이다. 우리도 이제는 빨리빨리 문화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한국을 情의 문화로, 일본을 칼刀의 문화로 비교한 것도 이채롭다. 똑같이 '혈통 중심' 사회였지만 다른 길을 걸었던 두 나라. 일본 사무라이의 生死는 실력으로만 평가받던 사회였다는 말이 흥미롭다. 다르기에 배울 것도 있고 보완적인 관계라는 저자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테레비’, ‘리모콘’, ‘백미러’, '소보로빵', '간지', '가불', '간식', '육교', '유도리', '땡땡이', '수순', '기스', '땡깡'... 알고 쓰든 모르고 쓰든 우리말 속에는 일본식 말이 많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에 앞서 알려주고자 노력하는 힘도 필요한 듯 보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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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시대 - 로맨스 판타지에는 없는 유럽의 실제 역사
임승휘 지음 / 타인의사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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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보았던 <라스트 듀얼>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중세의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열렸던 '결투 재판'을 그리고 있었는데 책으로 읽고 영화를 본 작품이기에 기억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결투 재판'은 14세기 말까지 중세 프랑스에서 지속된 법제도로 신의 이름을 걸고 싸우는 까닭에 어느 한쪽이 죽어야만 끝나는 결투였다. 즉 진실을 말하는 쪽을 신이 선택할 거라는 명제가 깔려 있다는 말이다. 귀족이라는 말 뒤에는 항상 결투라는 말도 따라오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결투를 했을까? 한쪽은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쪽은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 시킬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이 책 속에서도 귀족들이 결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귀족은 세습된다. 그리고 귀족만의 특권이 있다. 사냥도 그 특권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치켜세우기 위해 부단히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들이 입는 옷의 색을 통해서 남다름을 표현하기도 했고, 많은 사람을 초대해 특이한 음식을 내놓기도 했으며, 엄청난 돈을 들여 집을 치장하기도 했다. 살롱을 운영하며 다방면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인맥을 과시하기도 했으며, 집에서 기르는 가축으로 요리를 하기보다는 사냥을 통해 얻은 식재료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귀족이라고 해서 모두 성에 살았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 시선을 끈다. 요새의 역할이 더 컸다는 초기의 성은 나중에 주거를 위한 목적으로 바뀌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성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하니. 이 책은 구성이 조금 이채롭다. 귀족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먼저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가서야 귀족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가 많이 들어 익히 알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의 의무와 책임을 의미하는데 귀족들에게는 그다지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을 듯 싶다. 능력이 되지 못해도 다른 귀족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더군다나 값비싼 가발을 쓰고 최신 유행으로 옷을 갖춰 입는 것조차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는 말에는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그렇다면 작금의 세상에서 귀족은 사라졌을까?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그들만의 특권과 그들만의 교육시스템 역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착각일까.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브리저튼>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이해되지 못했던 장면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결혼도, 가정생활도 사랑보다는 가문을 앞세웠던 그들만의 문화. 영화나 소설 속에서 만나 볼 수 있었던 귀족들의 생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시간이었다. 강의로 들었다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조금 아쉽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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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타고 어휘 여행
책장속 편집부 지음 / 책장속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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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있는 곳이 안양이다 보니 안양의 역사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었다. 일단 안양은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없는 자유롭고 아늑한 이상향의 세계를 의미한다. 불교적인 의미로 아미타불의 정토를 말한다.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안양사 때문에 이런 지명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안양사라는 절이 있다. 정조가 수원까지 능행차를 나섰던 길에 만들었다는 만안교도 있다. 이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찾아본다면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주제가 반가웠다. 제목처럼 지하철 역명에 얽힌 유래를 말해주고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부터 9호선까지 몇 개의 역이 있을까? 277개라고 한다. 역명은 대부분 그 지역의 동 이름에서 따왔기에 대한민국의 역사를 톺아볼 수 있는 의미를 지닌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공감한다. 한 때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이름이 가난한 이미지를 품고 있다고 하여 이름을 바꾸고자 했던 곳도 있었지만 그것도 우리에게는 하나의 역사인 셈인데 거기에 이득만을 따지는 셈법이 침투하다보니 생긴 일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역명도 있지만 자신들의 이미지를 역명에 담고 싶어서 서로 다툰 경우도 있었기에 하는 말이다.

압구정역이 수양대군의 장량이라 불렸던 한명회와 얽힌 곳이라는 것, '진'이나 '포'가 들어간 이름은 물과 관련이 있고, 인덕원이나 구파발은 역참이 있었던 곳이라는 것쯤은 이제 다 알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송'이 들어간 곳은 소나무가 많았고 '류'가 들어간 곳은 버드나무가 많았던 곳이다. 길이 봉우리로 이어져 있다는 의미를 가진 도봉산의 유래도 재미있다. 불광이라는 역 이름 역시 불광사라는 절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부처님의 서광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인근에 있는 정릉천 계곡의 물소리가 맑고 고아서 이 소리를 들으면 누구든 기분이 좋아졌다고 해서 길음吉音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말이 시선을 끌기도 하고, 마을의 어느 곳을 파도 물이 잘 나와 물 긷는 여인의 옷깃을 적셔 금정리衿井里라고 불렀다는 금정역의 이름이 이채롭다. 조선시대에 시구문이었던 광희문 바깥에는 죽은 자의 명복을 빌어주는 신당이 많았다. 당시에는 神堂이었던 것을 갑오개혁 때 新堂으로 바뀌었다는 신당. 문득 생각나는 게 있다. 사람들이 많아 찾아간다는 동묘앞의 구제시장이다. 동묘는 관우를 배향한 사당이다. 그 많은 사람중에 과연 동묘안에 들어가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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