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척학전집 : 훔친 철학 편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5년 12월
평점 :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철학자들의 이론을 앞서 설명하기보다 그 이론이 어떻게해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점이 이채로웠다. 예를 들면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말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가,이다. 니체가 살았던 시대는 격변의 시대였다. 중세 이후 유럽을 지배했던 기독교적 가치 체계가 힘을 잃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교회에 갔지만, 많은 지식인들은 이미 신을 믿지 않았다. 그런 위선을 견딜 수 없었던 니체가 했던 말이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살인자들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위인을 얻을 것인가?" 아무런 맥락없이 그저 "신은 죽었다!"라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플라톤이 육체를 멸시하고 이데아의 세계를 찬양했던 것 또한 그가 병약했기 때문이었으며,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를 설파한 것은 그가 평생 우울증을 앓았기 때문이었다.
한 아이가 태어나 자란다. 걷기 시작하고 자신과 엄마외의 존재들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색다른 병이 생긴다. 왜? 모든 것에 대해 묻는다. 왜? 그런 아이에게 엄마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자신이 지금까지 배워온 것과 사회의 통념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돌아오는 단 하나의 답은 안돼! 왜 안될까? 끝없는 호기심을 대하는데는 끝없는 인내심이 필요한 까닭이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아이는 알게 된다. 음, 이쯤에서 나의 호기심을 접어야겠군. 대체적으로 우리의 삶은 그렇게 시작되고 호기심을 접기 시작할 무렵 공통된 것들을 배우게 된다. 공통된 것들이라 함은 모두가 똑같은 것을 배운다는 말이다. 그런 삶의 형태 속에서 간혹은 철학에 대해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철학은 어렵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니 철학은 학문이 아니라 태도라는 말이 보인다. 그리고 모든 것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플라톤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동굴에 살고 있다. 각자의 동굴 속에서 빛에 따라 만들어지는 그림자를 실제라고 믿으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동굴 밖으로 나가길 꺼린다. 자신의 믿음에 오류가 날까 두려워서. 슈레딩거의 고양이를 떠올린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을 떠올린다.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처한 환경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진다. 그래서 철학이 필요한 것일까? 그렇다 해도 철학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알고 있으면 척하기 좋은 지식의 파편들이라는 책표지의 문구가 시선을 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알고 있어도 척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알았던 왜? 병은 어른이 되어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왜? 라고 묻는 순간 사고의 개념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철학의 첫걸음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비생각
가장 큰 오해는 "무위 = 아무것도 안 하기"다. 노자가 게으름을 찬양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오독이다. 무위는 억지로 하지 않음이지, 아무것도 안 함이 아니다. 자연의 흐름에 맞춰 행동하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물은 흐른다. 하지만 바위를 정면으로 밀지 않는다. (-222쪽. 노자의 무위자연편)
제자 자공이 물었다. "평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한 글자가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서(恕)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 서(恕)라는 글자를 뜯어보자. 마음 심(心)과 같을 여(如). 마음을 같게 한다는 뜻이다. (-228쪽. 공자의 仁편) 서(恕)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남도 원한다는 뜻이다.
당신은 살아 있다. 당신은 떠날 수 있다. 관계를 끊을 수 있다. 사과할 수 있다. 다시 시작할 수있다. 타인이 당신을 "이런 사람"이라고 규정해도, 당신은 행동으로 그것을 뒤집을 수 있다. 선택의 자유가 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과 그것에 지배 당하는 것은 다르다. 시선을 의식하되, 그 시선이 당신의 선택을 결정하게 두지 마라. 살아 있는 한, 당신에게는 출구가 있다. 그 선택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출구 없는 방에 갇히는 것이다.(-291쪽.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