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화로 만나는 동물지식백과 1 - 놀라운 동물의 몸
파멜라 히크만.에타 케너 지음, 이일형 옮김, 팻 스티븐스.그레그 더글라스 그림, 권오길 / 청림아이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 이거요 이거! 제가 전에 말했었잖아요..
뭐가? 도대체 뭘 보고 그러니?
책을 펼쳐들고 시원스럽게 펼쳐보던 아들녀석의 수선스러움에 아이 곁으로 다가갔다. 며칠전인가 퀴즈를 낸다고 하더니 세상에서 가장 큰 조개가 뭐냐고 물었었다. 정답은 '거거'다.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조개 '거거'는 어른 세 명을 합친 것만큼 무겁고 크기도 욕조만하다고 나와있다. 와, 진짜로 이렇게 큰 조개가 있었네? 거봐요, 제 말이 맞죠?  아주 자랑스러운 듯이 엄마를 쳐다보는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는다. 동물의 세계뿐이랴? 곤충, 식물...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비껴가지 못한다. 어릴때부터 그렇게 곤충을 좋아하더니 지금은 뭘 봐도 귀엽다고 장난감 취급을 한다.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소중한 거라고 함부로 대하면 안되는 거라고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그야말로 동물백과사전이다. 일반적인 사진이 아니라 사진에 가까운 세밀화로 그려져 아이가 다가가기에는 부드러워 괜찮은 듯 하다. 

죽을 때까지 쓰는 이빨이 3000개나 되는 나는 누구일까요?  엄마의 젖을 하루 200리터나 먹어대고, 몸무게가 하루에 90킬로그램씩 늘어나게 되요. 나는 누구일까요?  다 자라도 키가 겨우 15센티미터밖에 안되는 나는 누구일까요?  입 안에 125개나 되는 날카로운 이빨이 달려 있답니다. 이 이빨을 앞뒤로 움직여서 먹잇감의 몸 위에 구멍을 내는 누구일까요? .....

정말 신기하다. 내가 체험할 수 없는 세계의 신비로움은 말로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 세계에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감정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이 책을 보다보면 만약에 내가 ~~~라면? 하는 시리즈가 나온다. 만약에 여러분이 하늘다람쥐라면 이러이러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설명을 붙여 놓았는데 아이가 보기에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적인 참고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실험실에서는 엄마와 함께 혹은 아이 혼자서도 과학의 세계로 근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작은 실험실 코너에서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어렵고 힘든 실험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실험예를 들어주어 아주 좋았다는 거다. 실험이라는 게 실질적으로 실험을 하는 아이가 그 실험의 결과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까닭이다. 너무 어렵게 접근하다보면 혹은 너무 준비물이 많아야 한다면 이미 시작할때부터 실패다. 그런데 이 책속의 작은 실험실은 그런면에서보면 합격이다. 

여러분은 여름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보통은 겨울잠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겨울이 오면 동면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동물에는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다고만 아는 게 대부분의 경우가 아닐까 하는데, 이 책을 통하여 여름잠에 대해 알게 된 아들녀석의 반응은 새삼스러웠다. 엄마, 여름에도 잠을 잔대요!  몸의 형태나 오감에 의한 정보, 그리고 사는 곳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정보등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은 참으로 많다. 일일이 그림으로 그려주며 설명해 놓았다. 문체도 엄마가 이야기해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되도록 쉬운 말로 풀이해 놓은 것도 괜찮았다. 굳이 흠이라고 말한다면 책장을 넘기면서 갑작스럽게 만나지는 동물의 클로즈업된 모습이다.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동물그림이라면 괜찮겠지만 주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는 동물의 모습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라, 아이와 엄마가 함께 책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장을 넘겼는데 예고도 없이 크고 선명한 색깔을 한, 구불구불하게 몸을 말고 있는 왕뱀이나 독뱀의 모습이 느닷없이 펼쳐지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검은톤의 배경색속에서 야행성 동물의 크고 밝은 커다란 두 눈을 만나게 된다면?  동물의 어느 특정부위를 크게 그려놓아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런 것들과 마주치고 나면 책장을 넘기는 게 조심스러워지곤 했다. 엄마의 욕심으로 아직 어린 유아기의 어린아이와 이 책을 보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이상의 아이들이 본다면 조금 나을 듯 하다. 곁들여놓은 세부적인 설명만으로도 아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크고 선명한 그림이 있는 덕에 아들녀석이 실감나게 책을 보고 있다. 가끔씩 툭 튀어나오는 약간은 혐오스러운(?) 몇 장면만 너그러이 봐줄 수 있다면 간접적인 체험학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 엄마 이것봐요. 이거 정말 신기하지요? 와, 이런 것도 있구나~ 책에 빠져 있는 아들녀석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솔직히 종교적인 관념에 강한 거부감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일단은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신교들의 영향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종교적인 흐름을 본다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굳이 <이슬람교>라거나, <코란>이라거나 하는 종교적인 의미의 말들을 까발리고 싶지 않았다. 종교적인 색채를 떠나서 이것은 명백한 인권유린이란 생각이 들었다면 단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아프가니스탄이란 나라에 대해 내가 얼만큼이나 알고 있을까? 언론지상을 통해서 들어왔던 몇개의 단어로 그들을 감히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지도를 찾아본다해도 내게는 현실감이 전혀 없는 일일테니 말이다. 이 책속에서 그야말로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사람으로 살지 못했던 마리암과 라일라, 두 여인의 삶을 보았다. 하늘아래 그런 세상이 있을거라는, 아니 그런 세상도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있었지만 실제적인 것으로 느낄수가 없었던 어느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 책속에서 재판관이 했던 말이 떠올라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여자는 남자와 뇌부터가 달라, 여자는 사고할 수가 없게 되어있지...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당장 뛰어나가 그 사람의 혀를 잘라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이 여인들의 삶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마리암...
그녀에게 있어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하녀였던 엄마를 두었다는 이유로 모두에게서 내쳐져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러 오는 아버지란 존재를 목빠지게 기다렸던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어둡고 칙칙한 자신의 삶보다는 밝고 넓을것만 같았던 아버지의 집을 찾아나섰지만 냉담한 아버지의 모습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다시 돌아온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엄마의 죽음. 세상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던 엄마와, 가끔씩 찾아와 세상을 이야기하던 아버지. 세상을 알고 싶었고 가족을 알고 싶었고 아버지의 삶을 알고 싶었던 마리암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녀곁에 남겨져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여자는 오직 참아야 한다는... 그녀의 나이 열네살에 아버지의 생활속에서 쫓겨나듯이 해야만 했던 결혼생활은 어땠는가?  계속되어지는 유산으로 인하여 그녀의 삶은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 집에 속해있는 하나의 물건에 불과할 뿐이었다. 차라리 하녀였다면 나았을까? 비참함속에서 그녀에게 달려왔던 것은 깊은 절망뿐.
라시드...
마리암의 남편이다. 전통적인 이슬람교도인듯 하지만 상당한 기회주의자이다. 탐욕스러움의 상징물처럼 느껴지는 남자. 구두장이를 하고 있지만 나름대로의 처세가 상당히 강한 편이다. 마리암에게 부르카를 입혀 세상으로부터 그녀를 차단시켰던 남자. 오로지 전통과 형식에 얽매인 채 사랑과 따스함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인간. 결국 마리암의 손에 죽게되지만 안됐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라일라...
마리암이 전통에 희생되어진 여자였다면 그나마 조금은 변화되어진 세상을 느낄 수 있었던 여인이다. 선생이었던 아버지의 교육 덕택에 가난했지만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여자도 배워야 한다, 앞으로는 너와 같은 여자의 힘이 많이 필요할 거라던 아버지의 격려와 믿음속에서 자라나지만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사랑하던 남자와 가족을 모두 잃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 찾아온 불행의 덩어리는 그녀에게 얼마만큼의 인내와 시련을 안겨주려는지.
타리크...
라일라와 어릴적부터 알고 지내던 이웃이지만 후에 라일라의 연인이 된다. 라일라에게는 어쩌면 하나의 희망적인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남자를 보고 있으면 사랑만 있다면 힘겨운 세상도 살아낼 수 있을것 같다. 그가 있었음으로 라일라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타리크를 통해 그녀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를일이다.

마리암과 라일라... 그녀들은 허울뿐인 전통에 얽매인 채 살아가는 여인과 그것에 대항할 수 있는 조금은 진보적인 여인의 모습을 상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웃집의 아줌마와 소녀였던 두여인이 한남자의 소유물로 전락해가는 과정은 지독하다. 그야말로 처참했고 또한 비참했다. 사랑하던 남자 타리크의 아이를 위하여 라시드의 아내로 남기로 했던 라일라와  자신의 삶속에 느닷없이 뛰어든 라일라의 존재를 바라보아야 했던 마리암의 마음속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살아 숨쉬고 있었을까? 아니 살아 숨쉴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기는 있었을까?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똑같이 절망뿐인 삶을 살아내던 두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같은 여자로서 미안함과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그녀들에게 그런 삶을 내려준것이 그들의 신이라면 차라리 없어져 버리는 편이 더 나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라일라에게 딸 아지자가 태어남으로 인하여 두여인은 드디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고 그때부터는 모든 아픔을 함께 나누기 시작한다. 아니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기 보다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었다는 말이 맞을게다. 짐승같은 남편에게서 도망을 치던 순간에도, 다시 붙잡혀와 허리띠의 바클에 살점이 터지고 피가 튀기던 그 순간에도 그녀들은 하나였다. 그녀들은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라일라와 아지자를 통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받게 된 마리암으로써는 진정 그들을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새 엄마와 딸의 모습으로 변해가던 마리암과 라일라의 그 진한 사랑이 내 눈가에 눈물로 맺혀져 왔다. 절망과 희망사이에서 곡예를 하듯이 살아내던 두여인의 모습이 눈물겨웠다.

라시드와 타리크... 하나는 절망이었으며 또 하나는 희망이었다. 끝없는 질책과 매질로 두여인에게서 사람으로써의 의미를 빼앗아 갔던 라시드. 나는 무심코 우리의 조선시대를 떠올렸다. 그시절의 우리 여인네들과 아프간의 여인네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람대접 못받기로야 우리의 여인네들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라일라의 아주 작은 희망마져도 짓밟아버린 라시드의 모습은 도저히 인간이었다고 말할 수 없었음이다. 마지막까지 라일라의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었던 타리크가 안고 있었던 희망이라는 이름. 어쩌면 라일라가 희망을 사랑했었기에 그녀는 끝까지 살아남아 고향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말하지만 나는 종교적인 색채를 드러내는 것을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들어보시라.. 여자들은 항상 집에 있어야 한다. 이유없이 거리를 나다니는 것은 옳지 않다. 거리에서 혼자 다니다가 걸리면 곤장에 처해진 후 귀가시킬 것이다. 여자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얼굴을 보여선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심하게 맞을 것이다. 화장품은 금한다. 장신구도 금한다. 멋있는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상대방이 말을 걸지 않으면 말하지 말라. 남자들과 눈을 마주치면 안된다. 공공장소에서는 웃지마라, 적발되면 곤장에 처해질 것이다. 손톱을 치장하지마라, 적발되면 손가락 하나를 자를 것이다. 계집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 없다. 여학교는 즉시 폐쇄될 것이다. 여자들은 밖에서 일을 하면 안된다. 간통하다 적발되면 돌로 쳐 죽일 것이다. 이를 명심하고 복종하라...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선언인가 말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법을 만들어 툭하면 여자들을 매질하던 있을 수 없는 일들. 또한 그런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야 했을 여인들. 그 여인들은 도대체 왜?  지금같은 세상속에서 도대체 그들은 왜?  불쌍하기도 했지만 화가 났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렸다. 도대체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해.

이슬람교도가 아니면, 이슬람교도가 보이는 곳에서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곤장을 맞고 감옥에 갇힐 것이다. 이슬람교도를 개종시키려다가 잡히면 처형될 것이다...라는 그들만의 법칙도 보였다.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그들을 개종시키러 갔던 우리의 잘난 종교인들이 생각났다. 그야말로 무례하고 자만스러운 모습이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다른 문화에 대한 몰이해, 타자에 대한 몰이해는 물리적 폭력과 다를 바 없다는 것에 나는 감히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니 다른 문화와 민족, 그리고 다른 종교에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는 말에도 나는 적극 찬성하는 바이다.
이 세상속에서 마리암과 라일라처럼 살아왔던, 살고 있는, 살아야 할 여인들을 위해 우리는 뭔가 해야만 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잠시 머리숙여 기도를 해본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서의 기술
제니스 A.스프링 지음, 양은모 옮김 / 메가트렌드(문이당)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복잡하고 험난한 세상을 살면서 혹은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습득해야 할 것들은 얼마나 많을까?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고 용서에도 기술이 필요한 세상이니 더 말해 무얼할까 싶으면서도 어찌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어내야 하는 모든 일들에는 우리가 모르른 또다른 규칙같은 의미들이 많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용서의 기술>이란 책의 활자를 보면서 한번 마음을 닫아버리면 어지간해서 열지 못하는 내자신을 먼저 생각해냈다.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성격은 아닌지라 한번 화를 내면 그 마음을 영 다스리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먼저 이 책이 필요하지 싶었던거다.  처음 책을 받아 보았던 느낌대로 (사실 나는 딱딱한 양장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 책의 내용이 내게로 전해지길 바랬다. 그런데 왠걸? 읽고 또 읽고 나는 제자리만 맴돌고 있었으니... 

책속에서 만나지는 수많은 유형들의 심리전들은 가히 총을 쏘고 대포를 날려대는 전쟁보다 더 심각하게 다가왔다. 우리에게 혹은 나에게 아픔을 주었던 존재들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누구였을까? 그리고 또 무엇이었을까? 감히 말하건데 나를 아프게 했고 나를 화나게 했었던 존재들은 바로 내 곁에 있었다. 나의 주변을 항상 떠돌고 적어도 나와 가깝다고 느껴지는 존재들이 나를 화나게 했고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다시 또 똑같은 쳇바퀴의 삶을 살아내는 것은 아마도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용서라는 의미때문이 아니었을까?  용서의 기술이라는 말보다는 그냥 용서하는 방법에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혹은 부모가 아이에게, 아이가 부모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주고 받음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직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처를 받은 쪽과 상처를 준 쪽의 느낌과 의미가 서로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다.  겨우 그것때문에? 뭐 그런걸 가지고?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상처로 받아들여지는 입장에서는 엄청 큰 의미로 다가온다는 거였다.

"당신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엄격한 기준과 고정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대단히 나쁜 일이라고 과대평가한다"-<124쪽>
문득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잣대를 가지고 산다는 말이 떠올랐다. 남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하는 모든 것들이 거기에서 비롯되어진다고 늘 생각은 하면서도 살아가는 일상이 어쩌면 나의 틀에 타인을 맞추고 싶어 안달을 하곤 했던것이 다반사이니...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를 따져 묻기 전에 다시한번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되돌아보는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그런 후에 다시한번 상대방을 바라본다면 좀 더 쉽고 빠르게 문제가 해결되는 거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예로 들어준 모든 유형들이 몇번씩 반복되어지고 있었던 까닭에 조금은 지루했던 면도 없지않아 있었다.

내게만큼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느낌들을 나는 이 책의 말미에 있었던 부록, 유년의 상처가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서 아하, 싶었다. 그렇구나, 그렇겠구나... 그러면서 나는 가슴이 아팠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마음의 상처들이 알게 모르게 나의 삶을 지배하고 그 상처들로 인해 나로 모르는사이에 마음을 닫아버린 채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정말로 나를 섬뜩하게 만들었다. 한아이를 둔 엄마로써, 그리고 내가 살아왔던 유년의 기억들을 되새겨보며 가슴 한쪽이 시리기도 했다. 누군가의 입장에서 생각해주고, 누군가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 누군가에게 먼저 배려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테지만 그야말로 끝없이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은 강조하고 강조해도 넘쳐나지 않는 말이 아닐까 싶다. 용서에도 과연 기술이 필요한 것일까? 지금 나는 내 자신에게 묻고 있다. /아이비생각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고 우리 모두는 불가피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상처 입힌 사람들은 그들이 야기한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아픔을 달래는 향유를 발라 준다면 그 때 상처 입은 사람은 그것이 진심임을 알고 회복하게 된다. 사랑처럼 치유는 보살피는 관계에 있을 때 성공한다. 사람은 혼자 사랑할 수 없으며 혼자 용서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8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앤의 요정
칼리나 스테파노바 지음, 조병준 옮김 / 가야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동화라는 말은 그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동화가 어느때부터인가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컨셉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왜일까? 단순히 어린시절의 마음, 동심으로 돌아가보자고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점차 잃어가고 있는 길을 찾기 위함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해 보았다. 어른이 되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찾기 힘들어지는 것들은 생각해보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단순히 순수라거나, 순진이라거나 하는 말의 의미를 떠나서라도 우리가 잃어버린 채 혹은 잊어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정채봉님의 글을 사랑해 왔다. 특히 그분께서 보여주셨던 생각하는 동화시리즈는 각권 모두를 구입해서 지금도 내가 사랑하는 책의 목록에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음이다. 아주 단순해보이지만 그 짧은 이야기들이 전해주고 싶어하는 의미는 참으로 넓고 크고 깊다. 그 짧은 이야기속에서 어렵게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환하게 빛을 발하며 나 여기 있어요! 하면서 웃고 있다. 그래서 나는 동화를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앤의 요정들은 모두 일곱명이다. 그 요정과 만나는 순간 앤은 자신을 닮은 자신의 요정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로 한다. 도,레,미,파,솔,라,시... 참 이쁘지 않은가?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일곱명의 요정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각양각색이다.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당신이 지닌 여러 얼굴들이고 당신이 지닌 성격의 여러 측면이에요. 그러니 우리를 서로 구분하는 일이 어려울 이유가 없지요...하고 요정이 말했듯이 앤은 요정들에게 명명식을 하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자기 자신의 모습과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거다.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요정들의 모습속에는 앤의 여러 모습이 판박이처럼 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지도자의 모습을 한 도, 절대 '안 돼'라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의 레, 홍보담당 미, 일 중독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파, 여행가 솔, 언제나 화해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외교관 라, 항상 무언가를 쓰고 골똘하며 혼자있기 좋아하는 작가 시... 멋지다. 정말 멋지다. 나에게도 이렇게 멋진 요정들이 있을거란 생각을 하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든든하기도 하지만 또한편으로는 그 나름대로의 모습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기도 하다.

물방울처럼 여린 모습으로 나타났던 집 없는 요정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까닭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그렇구나, 요정이 한말을 되짚어 생각해 보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자기에게 해주기 바라는 행동만을 남들에게도 할 수 있다던 말,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늦든 빠르든 언젠가는 자신이 행한 모든 행동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 온다는 것을...
언젠가 스님이 말씀하셨었다. 길가에 함부로 침을 뱉지 말아라, 그 침도 역시 내 안에서 나간 것이기에 남들이 그 침을 보면서 더럽다고 욕을 하게 되면 그 욕이 고스란히 네게로 되돌아오게 되는거란다...
결국 세상 모든 일은 당신이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달려 있어요..하던 요정의 말이 새삼스럽게 내 가슴속에 각인되어져 버린다. 뜨끔하게도...

사랑이 가슴속에 머물고 있는 한,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내 가슴속에 떠나지 않는 한,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한 나의 요정들은 내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앤처럼 나도 나의 요정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구판절판


정치는...부자놈들이 아무에게도 빌려주지 않는 장난감이지요.-39쪽

고통은 늘 여기 있지만,그렇다고 내가 걷고 말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다.-477쪽

인간들은,행위가 아닌 말이 힘을 갖는 세상, 최고의 능력은 바로 능변인 세상에 살고 있다.-7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