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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 요정
칼리나 스테파노바 지음, 조병준 옮김 / 가야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동화라는 말은 그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동화가 어느때부터인가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컨셉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왜일까? 단순히 어린시절의 마음, 동심으로 돌아가보자고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점차 잃어가고 있는 길을 찾기 위함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해 보았다. 어른이 되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찾기 힘들어지는 것들은 생각해보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단순히 순수라거나, 순진이라거나 하는 말의 의미를 떠나서라도 우리가 잃어버린 채 혹은 잊어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정채봉님의 글을 사랑해 왔다. 특히 그분께서 보여주셨던 생각하는 동화시리즈는 각권 모두를 구입해서 지금도 내가 사랑하는 책의 목록에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음이다. 아주 단순해보이지만 그 짧은 이야기들이 전해주고 싶어하는 의미는 참으로 넓고 크고 깊다. 그 짧은 이야기속에서 어렵게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환하게 빛을 발하며 나 여기 있어요! 하면서 웃고 있다. 그래서 나는 동화를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앤의 요정들은 모두 일곱명이다. 그 요정과 만나는 순간 앤은 자신을 닮은 자신의 요정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로 한다. 도,레,미,파,솔,라,시... 참 이쁘지 않은가?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일곱명의 요정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각양각색이다.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당신이 지닌 여러 얼굴들이고 당신이 지닌 성격의 여러 측면이에요. 그러니 우리를 서로 구분하는 일이 어려울 이유가 없지요...하고 요정이 말했듯이 앤은 요정들에게 명명식을 하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자기 자신의 모습과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거다.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요정들의 모습속에는 앤의 여러 모습이 판박이처럼 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지도자의 모습을 한 도, 절대 '안 돼'라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의 레, 홍보담당 미, 일 중독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파, 여행가 솔, 언제나 화해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외교관 라, 항상 무언가를 쓰고 골똘하며 혼자있기 좋아하는 작가 시... 멋지다. 정말 멋지다. 나에게도 이렇게 멋진 요정들이 있을거란 생각을 하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든든하기도 하지만 또한편으로는 그 나름대로의 모습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기도 하다.
물방울처럼 여린 모습으로 나타났던 집 없는 요정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까닭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그렇구나, 요정이 한말을 되짚어 생각해 보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자기에게 해주기 바라는 행동만을 남들에게도 할 수 있다던 말,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늦든 빠르든 언젠가는 자신이 행한 모든 행동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 온다는 것을...
언젠가 스님이 말씀하셨었다. 길가에 함부로 침을 뱉지 말아라, 그 침도 역시 내 안에서 나간 것이기에 남들이 그 침을 보면서 더럽다고 욕을 하게 되면 그 욕이 고스란히 네게로 되돌아오게 되는거란다...
결국 세상 모든 일은 당신이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달려 있어요..하던 요정의 말이 새삼스럽게 내 가슴속에 각인되어져 버린다. 뜨끔하게도...
사랑이 가슴속에 머물고 있는 한,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내 가슴속에 떠나지 않는 한,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한 나의 요정들은 내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앤처럼 나도 나의 요정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