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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일상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적 고뇌를 가족과 나누는 것은 무리이다. 일상과 존재의 경계에서 가족간의 절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95쪽)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던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엄마'라는 단어때문이었다고 말해도 틀린 건 아닐것이다. 왠지 내 가슴속에서는 '엄마'라는 단어가 삶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까닭이다. 별로 잘나지도 않은 '엄마',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엄마', 그다지 이쁘지도 않은 '엄마'.. 나이 마흔을 넘어서야 나는 '엄마'라는 단어 앞에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엄마'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지만 우리 가족에겐 늘 그것이 허락되어지지가 않았다. 산다는 거에 쫓겨 시간을 느끼지도 못했던 나의 '엄마'에게도 자신만의 집이 있었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있었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시는 나의 '엄마'의 가슴속에도 '엄마의 집'은 붉은 색의 한을 품은 채 건재하게 살아남아 있다는 거였다. 그랬구나, 우리 엄마에게도 엄마만의 집이 있었구나, 느껴야 했을 때 나는 눈물을 흘렸었다. 고스란히 엄마를 닮아가는 것 같은 나의 생활들이 나는 싫었었는데...
"우린 무언가를 할 때마다 실패도 하고 상처도 입고 후회도 하지. 마음이 무너지기도 해. 사는 동안 몇 번이고 마음이 무너지지. 하지만 중요한 건 다시 하는 거야"
"그럴 때, 난 쉬운 일만 해. 심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만 하지. 쉬운 일도 규칙적으로,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힘이 생겨. 그리고 시간이 가면, 그게 무엇이든, 새롭게 새작할 수 있어.걱정마." (122쪽)
부쩍 부쩍 커가는 아들녀석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마음에 상처입는 것이 싫어서 사실상의 기대감이란 것은 아예 저만치로 밀어버린채 그렇게 살아왔던 날들.. 이 책속에서 끝없이 미워하고 더없이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바라보면서 얼핏, 어쩌면 서로의 존재감속에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순속에서도 피어나던 하나의 실낱같은 희망이란 줄기를 찾아낸다. 나도 엄마니까. 책속의 엄마처럼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엄마라는 거니까. 심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나의 일상은 늘 심각함 투성이였다. 그야말로 별 것 아닌 것들 때문에 나 스스로의 힘을 퇴적화시켜버리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던 나의 시간을 보면서 어느날 남편이 말했었다. 당신, 뭐 좀 해보지 그래?
세상이 아전인수의 장이며 거짓말의 바벨탑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은 성숙일까? 절망일까? 아니면 그게 바로 삶일까? 그런 때면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마음이 차갑게 식곤했다. 겨우 스무살에. (169쪽)
뭘? 내가 뭘 해야 하는데? 오래도록 맞벌이를 하면서 놓쳐버렸던 나의 시간들이 망쳐놓았던 것은 너무도 많았다.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아이곁에 머물지 못했던 거였는데. 엄마라는 직업으로 돌아왔던 나에게 남편이 했던 말은, 그냥.. 뭐 당신이 해서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해보라는거지..거기에 머니가 따라오면 더욱 더 좋고... 말끝을 흐리던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순간 위선을 읽어내 버렸었다. 세상 모든 것들은 가면을 쓰고 산다. 세상 모든 것들은 모두가 겉과 속이 다르다. 이건 내가 일찌깜찌 터득한 진리다. 확실한 진리. 믿어야 한다. 그래서 아프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을 걸어놓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아팠다. 순간순간 제 몸에 집을 달고 다니던 달팽이와 거북이를 떠올려보고 나도 그렇게 내 집을 짊어지고 다닐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무겁겠지? 제 몸하나 들어갈 집일뿐인데도 그것은 분명히 무거울 것이라고 나는 지레 짐작을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나만의 집짓기를 아주 무서워했다. 내 엄마처럼 그렇게 붉게 물들어가고 있는 나의 집을 인지하지 못했다.
진실은 실은 표면에 드러나 있는데, 보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그 많은 진실들을 다 놓쳐버리고, 우린 무지와 오해 속을 살아간다. (176쪽)
진실은 어디에도 있다. 진실은 어느곳엘 가더라도 나를 따라온다. 그렇게 내가 느낄 수 있는 거리에서 내가 만지면 전해줄 수 있는 많은 감정을 가지고 나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피해 시선둘 곳을 찾아 헤맨다. 그래놓고는 안보인다고 그렇게 말해버리고 만다. 그래놓고는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돌아보며 후회를 한다. 책속의 엄마, 미스엔처럼 어느날 문득 산책을 가듯이 그렇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
"넌 타락이 뭐라고 생각하니?"
"타락이란,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사는거야" (229쪽)
서로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사랑이었다고 인정하지 못하는 호은의 엄마와 아빠에게는 어쩌면 호은이라는 다리가 있었기에 그 사랑을 버릴 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의 아픔속에서 스스로 걸어나오지 않으려 애쓰던 아빠의 모습은 어쩌면 두려움이었을까? 자신의 자식도 아닌 승지를 키워가며 참회할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가고 있다던 이념의 투사 아빠에게는 독약같은 의미로 다가왔을 사랑은 어쩌면 삶 그 자체의 모습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내야 할 현재속에서의 정체성은 바뀔 수 밖에 없는데... 굳이 최루탄으로 인한 쓰라림이 아니었다고해도 어쩔 수 없이 변해야만 하는 것들은 너무도 많은데...
"우리가 사랑이라는 개념의 자를 가지고 들이대는 순간, 사랑은 없단다. 어디에도 없어." (206쪽)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랑은 머물러 있기 위해 애를 쓴다. 내가 보아주기만 하면 사랑은 언제나 나를 보고 웃어준다.
"혼자 있는 사람이 외롭다는 건,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오해야"
".....그러면?"
"사람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어서 외로운 거야" (270쪽)
'엄마의 집'을 읽으면서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러갔다. 눈 앞에 펼쳐지는 글자 하나하나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렇게 묻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뭐냐고. 너에게 있어 너는 무엇이냐고.. 늘 혼자라고 생각하며 살아냈던 나의 시간들조차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오는 싯점에서 내게로 찾아왔던 '엄마의 집'은 내게도 어서 집한채를 지을 수 있는 힘을 키워야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386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작가의 글은 그다지 읽고 싶지 않았기에 피해왔었다. 늘 습관처럼 들고나오는 정체성이란 거대한 화두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는 우울.. 한 시대를 배경으로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우울의 시간들이 너무 싫기도 했다. 내 삶의 모티브처럼 언제나 중요한 건 현재일 뿐이라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던 까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나왔던 시간속에도, 지나쳐가야 할 시간속에도 나의 현재는 분명히 존재할 테니까... 하지만, 정말 하지만, ... 모든 사람들은 외로울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어른들이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까지도 저렇게 힘껏 받아들이는 사람들인가... 가슴이 뻐개지도록 밀고 들어오는 진실들을 받아들이고 또, 승낙없이 떠나려는 것들을 순순히 흘려보내려면 마음속에 얼마나 큰 강이 흘러야 하는 것일까. 진실을 알았을 때도 무너지지 않고 가혹한 진실마저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인 것이다. (254쪽)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부터는 어른입니다, 하는 표시선이 그어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속에 흘러야 한다는 그 물줄기가 언제쯤이면 도랑을 지나 개울을 건너 강으로 도착하게 될까? 바다까지는 바라지 않기로 한다. 그저 그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흘려 보내는 그런 강이 내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흐를 때 진정 나는 어른이 되겠지....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