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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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세상으로 들어가면 나는 산책하는 것보다 달리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추리소설의 경우에는 그런 현상이 더욱 더 두드러지곤 한다. 600쪽이 넘는 추리소설을 만났을때는 거의 오래달리기 수준이니 심적으로 오는 압박(?)감을 어쩌지 못한다.  준비운동과 심호흡을 한채 책장을 열어 책속 세상으로 들어서니 스밀라라는 이름의 여인이 나를 맞이한다. 스밀라.. 참 부드럽다. 느낌이 좋다. 함께 가자고 내민 손을 잡으니 영 내달릴수가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밀라는 내게 말했다. 천천히 가자고. 아주 천천히 내가 보여주는 것만 보며 따라와 달라고. 서두르지 말자고.

스밀라의 어린 친구 이사야의 죽음으로부터 스밀라의 이야기는 시작되어진다. 지붕에서 떨어져 죽은 어린 친구의 죽음 앞에서 스밀라는 그자리에 단지  '소년의 죽음'만이  존재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고소공포증이 있었던 어린 친구의 죽음이라고는 볼 수 없었던 스밀라.. 단지 그것뿐이었다. 추락사가 아닌 죽음으로 몰아갔을 무엇인가가 분명하게 있다고 믿었던, 그래서 그것만을 알아내면 된다고, 단지 그것만 알아내면 되는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겨울의 눈내린날, 단순한 추락사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던 그 눈의 이야기가 그녀를 그렇게 엄청난 모험속으로 끌어들일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조차도.

이해하고 싶다는 것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고자 하는 시도다. (55쪽)

스밀라.. 이누이트족 어머니와 유럽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 이누이트족이라 함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에스키모다. 캐나다 인디언이 '날고기를 먹는 인간'이란 뜻으로 붙여준 이름처럼 그들의 생활은 주로 수렵과 고기를 잡는 것에 있다. 그녀의 속성이 자연과 함께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린 시절을 어머니와 함께 이누이트족으로 자랐지만 어머니의 죽음 후 아버지에게로 가게 된다.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음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음이다. 눈과 얼음속에서 함께 공존하며 살았던 그녀는 역시 눈과 얼음에 관한 공부로 자신을 무장하게 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어린 친구였던 이사야의 죽음을 단순하게 볼 수 없었던 아이러니가 생겨난걸 보면 우리의 삶은 그렇게 마음먹은대로만 움직여주지는 않은 모양이다.

사람들은 시계를 도구로 삼아 서로의 삶을 묶는다. (85쪽)

결코 추락사가 아니라고 그녀는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니 다시한번만 더 수사를 해 줄수는 없는거냐고 그녀는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 수사는 해보겠지만 당신은 빠져줄 수 없느냐는 무례를 범해가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 역시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는 감정하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닐까?  그녀, 스밀라에게는 언제부터인가 이사야의 죽음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게서 믿음을 지워버린다. 무언가 있다! 그렇다면 그 무언가는 과연 무엇일까?  왜 이사야의 죽음속에서 그 무언가 알 수 없는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일까?  하나둘 밝혀지는 사건의 과정들을 앞에 두고서 문득 그녀앞에 우뚝 선 남자 수리공 페터.. 이사야라는 어린 친구를 함께 공유했었던 또 한사람의 등장이기도 한 동시에 그녀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감정의 사슬이기도 한 수리공 페터의 존재는 책을 읽어가는 내게조차도 상큼한 등장처럼 느껴졌었다.  서른이 훌쩍 넘어선 노처녀의 감정속으로 서서히 들어오는 페터와, 그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었던 이사야의 기억처럼 스밀라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무언가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손을 잡게 된다. 이쯤에서부터 나는 스밀라의 손을 놓고 나혼자 앞서 달려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스밀라는 끝까지 내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함께 가야 한다고. 그래서 내게 힘을 실어주어야만 한다고 그녀가 말하고 있는것만 같았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한가지 방법이 있다. 실제로 살아보는 것. 그 문화속으로 이사하여, 손님으로 받아달라고 부탁해서 언어를 배운다. 어떤 순간이 되면 이해가 찾아온다. 이해는 언제나 비언어적이다. 무엇이 낯선 것인지 이해하게 되는 순간, 설명하려는 충동을 잃어버린다.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그 현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259쪽)

스밀라에게 있어 그녀의 아버지는 또다른 아픔이었고, 믿음이었으며, 사랑이었는지도 몰랐다.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소망하되 서로에게 어쩔 수 없는 간격을 두고 그 거리를 좁혀갈 수 없다. 아버지에게는 젊은 무용수가 있다. 하지만 나중에야 스밀라가 알게 되는 진실.. 자신을 향한 혹은 어머니를 가슴에 둔 아버지에게는 그 젊은 무용수조차도 찾고 싶은 사랑을 대체할 수 없었다는 것을.. 수리공 페터에게서 알 수 없는 안정과 '행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되었던 스밀라의 가슴속에도 어쩌면 거부해야만 하는 것처럼 여겨왔던 그 감정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드러냈을 때의 당혹스러움이라니.. 나는 이쯤에서 눈치챘어야 했다. 어린친구 이사야와의 친분을 통해 부여잡고 싶어했었던 그녀의 가슴 저 아래쯤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던 그 깊은 고독을... 그 고독을 끌어안은 채 살아왔을 그녀의 서른 일곱해의 많은 시간들에 대해서...

어떤 사람속에는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고 관대하며 믿을 만한 개인이지만, 뼛속까지 썩어버린 상습범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어렴풋한 모습밖에는 빛 속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 (486쪽)

사실 사건은 하나였을 뿐이다. 그 무언가의 정체는 빙산과도 같았다. 보여지는 부분은 물위로 솟아오른 일각일 뿐, 그 아래로 더 많은 부분을 숨기고 있는.. 한사람씩 차례대로 등장해 주었다면 나는 아마도 오랜 기다림에 목말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숨겨진 부분을 움켜쥐고 있는 손들은 많았다. 공동체 의식을 치루듯이 그렇게 그들은 하나의 의식처럼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던 거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이미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었다면 그것은 현재일까, 과거일까?  그 과거가 죽은 시간이 아닌 살아남은 시간으로 그녀에게로 걸어와 작은 소년의 죽음이 있어야만 했던 진실속으로 그녀를 몰아갔다. 그녀는 이미 내재되어져 있는 그녀안의 은밀한 감각을 되살려 바다로 나갔고, 그 바다를 거쳐 다시 얼음이 있는 세계속으로 되돌아갔다. 태초의 모습, 그녀를 있게 해주었던 그 태초의 세계로 다시 돌아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 자연앞에서 작아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욕망은 무너져 내린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묻고 있는 자연앞에서 인간은 정말이지 비협조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자연이라는 이름의 엄마에게서 그동안 받았던 것들은 모두 잊어버린채 다시 또 달라고 손내미는 어린 아이처럼 자연앞에서 인간의 모습은 참으로 가련하기만 하다. 얼음동굴속에서 행해지던 그 파렴치한 인간의 너절한 핑게거리라니... 하지만 우리의 스밀라는 자신 스스로가 얼음이 되어 그런 인간의 오만함을 단죄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남아 있어줄까?  마지막 믿음까지 소멸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끝내는 자신이 처한 현실과 스밀라의 말을 인정하며 자신의 얄팍한 욕망을 버릴 수 있었던 수리공 페터처럼.  그녀와 그의 사랑이 마지막 남은 사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생각이 스밀라에게 들켜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사랑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를 배신해서는 안되는 것일테니까. 

옮긴이의 말을 빌어보자. 이누이트들은 눈雪을 여러가지 이름으로 부른다는..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어떤 사물도 더이상 같지 않다는 뜻이라는.. 다른 이름은 다른 세상을 보는 다른 눈眠을 의미한다는...
그렇게 보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하나의 처세술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더이상 같지 않을 모든 것들에 대한 감각.. 그 감각이 발달할수록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는 많아진다. 동물적이라는 말은 어쩌면 자연적이라는, 자연에 좀 더 가깝다는 말도 될테니 말이다. 그녀에게서 볼 수 있었던 동물적 감각 또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상황판단능력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현실속에서 그 현실만을 가슴에 안아들고 사는 사람과, 현실속에서 그 현실안에 자연의 힘을 들여놓고 그 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차이점은 상당할 것이다. 사실 이 책속 세상에서는 내가 빨리 달려나가고 싶어도 달려나갈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광범위한 작가의 지식과 체험들이 어울어져 있는 까닭이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이 책속에는 너무도 많았던 까닭이기도 했다. 책표지에 장황하게 써놓았던 어느 소설가의 당부처럼 그녀에게 더 많이 더 자주 입을 맞춰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럴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에게서 입맞춤을 당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스밀라... 이누이트족이 쓰는 자연을 닮은 의미와 유럽식 의미가 합쳐졌던 그녀의 이름.. 내면적으로는 자연속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우리의 아픈 소망이 담겨져 있던 그녀의 이름... 나는 이 책을 놓아버린 후에도 스밀라라는 이름을 사랑하게 될 것만 같다. 내게 그녀의 그 깊은 내면을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시간에 관계치않는 영화 한편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 스밀라를 위하여..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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