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신화와 고대한국 민속원학술문고 12
노성환 지음 / 민속원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체적인 목록을 살펴보면서 가장 흥미롭게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일본신화 속의 고대한국'과  '일본신화에 영향을 준 한국신화'였다. 일본신화라는 걸 자세히 읽어본 적은 없다. 단지 귀동냥, 눈동냥으로 얻어들은 짧은 이야기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신화가 궁금했던 것은 느닷없이 불어닥친 백제이야기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백제의 흔적을 찾아 떠났던 다큐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더니 종내는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중에서 가장 적은 사료를 가지고 있다는 백제, 제대로 된 백제의 역사가 없다는 말을 생각해볼 때 과연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궁금하던 차에 일본신화속에 나타난 고대한국을 보여준다는 이 책을 우연하게 만나게 되었다. 내가 무슨 역사학자도 아니고 그것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무슨 학술도서냐?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저 재미있는 신화속을 한번 거닐어나 보자는 심산이었던 것 같다. 일단은 흥미롭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들의 흔적을 어디에서 어떻게 느낄 수 있는지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일본은 우리만큼이나 민속신이 많은 나라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만큼 그들속에 잠재되어져 있는 신화나 설화는 많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우리의 고대이야기는 과연 얼만큼의 비중을 차지할까? 최고의 재물신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김유신의 이야기를 언뜻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신라장군이 어떻게해서 일본속으로 흘러들어간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당시의 일본이 백제와 친하게 지냈다는 걸 생각해보면 조금은 뜻밖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책속에서 마주친 신공왕후의 신라정벌담은 내게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다. 그들만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니 역사는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편집되어진다는 말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사실 일본속에 나타나는 고대한국의 모습은 많다. 백제인들이 건너가 이룬 역사가 작지만은 않았다는 말일게다. 어딘가로 들어가 정착하여 자신들의 터전을 만들기까지 힘겨웠던 여정은 많은 예들이 있다. 얼마전 일본천황마저도 '백제인의 후손'이라는 말을 할 정도니 그들조차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였다는 말일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은 그들나름대로의 역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일본에 가봤다는 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기를 가는 곳마다 한국과 관련된 역사나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국적인 것들은 시간의 흐름속에서 더 일본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우리것이면서도 그들만의 것인듯 느껴지는 이질감이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 일본적인 한국의 것들속에서 우리는 우리 고대의 모습을 찾아낸다. 그리고는 우리의 역사를 유추하기도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일본의 칠석신화를 비교했던 부분은 이채로웠다. 아울러 견우와 직녀라는 이야기가 어떻게 변화되었으며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새삼스럽게 다시 다가오는 계기가 된 듯 하다. 여러갈래로 해석되어질 수도 있는 하나의 이야기.. 하지만 원래의 틀만큼은 바꿀 수 없으니 어쩌면 서로 공유하게 되는 하나의 지식처럼도 느껴진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신화가 아이들 교육에 이용되었다는 것이나 한일신화를 교묘하게 비틀어 한국사람들을 일본화시키기 위한 교육에 이용되었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것뿐일까?  그 나라의 문화를 먼저 흡수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 책을 통해 일본신화에 대한 궁금증이 더 많아지고 말았다. 일본의 신화전승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는 <고사기>와 <일본서기>, <풍토기>라는 책은 기회가 되면 꼭 한번은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그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고대한국의 모습을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신화에 나타난 여신의 성격' 편에서 우리신화와 비교해 주었던 부분은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고대한국이 일본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저자의 말처럼 한국과 관련된 해석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인터넷 = 완전한 산만함... 이라는 말에 100% 공감한다. 구글을 가리켜 천사의 선물인가 악마의 유혹인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악마의 유혹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가장 인간적인 것들과 맞바꾼 기술... 이라는 말에도 100% 공감한다. 그렇게 가장 인간적인 것들과 맞바꾸더니 이제는 또 인간적인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전자책의 등장은 책의 종말일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올시다, 라고 대답하고 싶다. 책을 읽는 것은 깊이 생각하는 행위지 마음을 비우는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을 채우고 보충하는 행위였다 (-101쪽) 책 속의 말처럼 마음을 비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말에 공감할 수 없는 까닭이다. 지식을 채우는 것과 마음을 채우는 것은 분명코 다른 일인 것이다. 기계는 기계일뿐이다. 인간의 소모품이며 인간의 모든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단지 편하다는 이유로 기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방편은 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손과 발을 움직여 직접 알게되는 지식과 그저 남이 경험했던 것에 불과한 것을 찾아내 알게되는 것중에서 어느 것이 진정한 의미로 내게 다가올까?  대답은 간단하다. 내가 발로 뛰어 직접 알게되는 지식이 더 오래가고 더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적재산권이나 저작권을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주 쉽게 모든 지식을 얻는다. 어떻게? 인터넷을 통해서! 클릭한번만 하면 모든 것을 찾아내주는 인터넷이 있는데 무엇때문에 힘들여 발로 뛰어야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정보, 얼만큼이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서글프게도 우리는 많은 말들을 통해 인터넷상에 올라오는 정보를 100% 믿지 말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을 뒤진다. 왜 그러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 편하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저 편하기 때문만도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정말 중요한 것이라면 분명 사람들은 스스로 움직여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인터넷의 정보를 뒤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새로운 것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사소한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알고 있음에도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맨다 (-199쪽) 이 책속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까닭인 것이다.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찾아 헤매며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다지 인터넷서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어딜가도 그게 그거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는 까닭이다. 가끔 마음을 다해 저만의 공간을 꾸미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는데 그런 공간은 어쩌다 마주치더라도 왠지 반갑기까지 하다. 인터넷의 원래 목적은 검색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없이는 살 수 없을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문제점도 발생하게 되는 듯 하다. 우리의 관심이 신속하고 반사적으로 변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100쪽) 라고 이 책속에서 말하고는 있지만 과연 진정으로 생존을 위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분위기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지 누군가가 그렇게 하라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멀티기능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한번에 여러가지 일을 해치울 수 있는 힘..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다보니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래놓고는 집중력이 없네, 인내심이 없네, 주의가 산만하네 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탓하고 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이 책은 바로 그런면을 염려하여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장황하게 펼쳐놓은 말을 요약해보면 그다지 좋은 것만도 아니다. 뇌의 구조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러쿵 저러쿵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바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한번 읽어보시라, 얼마나 많은 폐단이 보이고 있는가를! 
뇌가 혹사당하면 산만해진다. 십자말풀이를 하면서 책읽기를 시도해보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터넷에서 지적활동을 할 때의 환경이다 (-188쪽) 
멀티태스팅을 더 많이 할수록 덜 신중해지고 문제에 대해 덜 생각하고 덜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209쪽)

누군가가 블로그와 같은 나만의 공간을 찾아왔을 때 거기에 있는 글을 전체적으로 꼼꼼하게 보고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의 공간을 찾아갔을 때 그처럼 세세하게 보고 오는가? 이 책속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아마도 그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단, 자신이 꼭 필요해서 찾아간 곳이라면 다르다. 마음도 없이 습관처럼 우리는 인터넷속을 헤매다니는 것은 아닌지 다시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길도 없는 길을 돌아다니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말이다. 책속에서 장황하게 말하고 있는 많은 폐단을 앞세우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실생활속에서 그런 것들을 보고 느끼고 있다. 언젠가 영화속에서 보았던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진화란 인간이 편하기 위해 변화하는 것이다,라는 말.. 지구 최대의 적은 인간이다, 라는 말.. 인간은 생각하기에 모든 것보다 앞서는 존재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이 책의 제목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괴물에게 우리를 맡긴채로.. 가장 인간적인 것들을 내어주면서..

인터넷이 우리를 망각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기억을 아웃소싱하면 문화는 시들어 간다 (-286쪽)
인터넷이 축소시키고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 깊이 아는 능력, 리의 사고안에서 독창적인 지식이 피어오르게 하는 풍부하고 색다른 일련의 연관관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바로 그 능력 말이다 (-213쪽) 
인터넷이 축소시키고 있는 우리의 능력... 마지막까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말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나서 나는 화가 났고, 슬펐고,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다. 굳이 이렇게 책으로 나오지 않았어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외면하려 하기에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인터넷이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의 이름, 묘호 - 하늘의 이름으로 역사를 심판하다 키워드 한국문화 7
임민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코 쉽지 않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의 이름, 묘호 - 하늘의 이름으로 역사를 심판하다 키워드 한국문화 7
임민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묘에 가서 호명을 하면 제이름을 듣고 나오는 왕이 있을까? 전에 누군가 재미삼아 물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가 정답이다. 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데도 나오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죽은 뒤 후세들이 만들어 바친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왕들은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불리우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죽은 왕들에게까지 이름을 만들어주었던 것일까? 그것 또한 간단하다. 그 이름으로 왕의 업적을 판가름했다. 한마디로 역사적인 평가가 담겨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말하다보니 결코 단순하거나 간단한 일이 아닌 듯 하다. 정말 복잡하다. 우선적으로 어려운 말부터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묘호, 시호, 종호...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이렇게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흔하게 쓰지 않는 말이기도 하거니와 지금의 세대와는 거리가 먼 말인 까닭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렇다. 묘호는 임금이 죽은 뒤 종묘에 배향할 때 신위에 쓰는 임금의 호이고, 시호는 제왕이나 재상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기려 붙인 이름이다. 존호는 보통 상대를 높여 부르는 칭호지만 임금이나 왕의 덕을 기린다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휘호라는 말까지 찾아보니 점점 더 어려워진다. 죽은 뒤에 시호와 함께 내리던 존호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시호와 묘호와 존호따위의 의미를 한꺼번에 쓰기도 했다는 말이 된다.  태조의 신주를 보면, '유명증시강헌태조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이라고 쓰여있는데 '유명증시강헌'은 명나라에서 내린 시호인 강헌을 말하며, '태조'가 묘호이다. '지인계운'은 존호이며, '성문신무'와 '대왕'은 시호이다 (-53쪽)  이보다 더 머리아프게 하는 것도 있다. 고종시호의 경우 고종이라는 묘호 2자와 8자의 시호, 53자의 존호로 무려 63자로 구성되었다!

조선시대에 재위했던 스물일곱 명의 국왕은 저마다 고유의 왕명을 지녔다. 요즘 사람들은 태조니 세종이니 하고 부르는 이름들이 왕명인 줄 안다. 물론 왕명으로 이해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본래는 묘호廟號 혹은 종호宗號 라고 해야 맞다. 묘호는 국왕이 승하한 뒤에 올리는 이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당시의 신하들도 태묘太廟니 중묘中廟니 하여 사당 이름을 태조와 중종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했다. 따라서 묘호는 사당 이름인 한편, 시호 혹은 왕명이기도 하다. (중략) ... 묘호는 두 글자로 만들어졌다. 앞의 한 글자는 시자諡字로서, 시법諡法(시諡로 사용할수 있도록 정해진 글자)에 따라 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뒤의 한 글자는 종계宗系(종가와 계통)와 조공종덕祖功宗德의 예제에 근거하여 붙이는 祖나 宗 중 하나를 쓴다 (-머리말중에서)

1. 삼국시대 국왕의 묘호
2 황제국의 묘호를 사용한 고려
3 조선, 묘호로 예를 바로세우다
4 이름으로 국왕의 공덕을 평가하다
5 3백 년, 공정왕이 묘호를 받기까지
6 대한제국의 황제, 그 아픈 이름
7 묘호의 의미
책을 펼치면 목차를 통해 이 책에서 다루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禮" 를 상징하게 되었다는 묘호..  그저 무의미하게 외워대던 왕조의 순서에서 조와 공으로 나뉜다는 것에 대해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알게 된다. 공이 있는 이는 조祖로 하고 덕이 있는 이는 종宗으로 한다는 조공종덕을 기억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끝까지 가지는 못했다. 경우에 따라서 바뀌기도 했고 또한 무시되기도 했던 듯 하다. 조종공덕을 통해 예치국가를 지향했다거나 국가 운영의 원리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좀 씁쓸하다. 시호를 정하는 일이 하나의 의례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며 안타깝게도 명분에 죽고 명분에 살았던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않은 일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늘의 뜻을 받든다는 형식을 취하며 왕에게 부여되었다는 묘호... 그 이름으로 인해서 자신의 업적이나 정통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하늘의 뜻과는 어쩐지 거리가 먼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평가는 하늘이 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수많은 당파싸움으로 인해 왕이 바뀌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왕이 되고 싶지 않았어도 왕이 되어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래놓고는 하늘이 뜻이다? 바로 그런 것이 조선이라는 나라가 아니었을까?  묘호를 일러 상당히 아름다운 의미를 두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만 말로써 말을 죽이고 살렸던 시절이었다. 가장 뚜렷하게 보여지는 정종을 보자.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던 정종은 죽은 뒤에 정통성마져도 인정받지 못했으며 왕으로써의 공적 또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묘호없이 그저 사당에 모셔졌을 뿐이다. 300년이 지난 숙종대에 와서야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았다는 것만 보아도 하늘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300년이라는 기간이 지나는 동안 몇 번 시도되어진 적은 있으나 그 썩어빠진 당쟁의 뿌리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는 정종의 묘호.. 죽었으니 알 길은 없겠으나 만약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라보는 그가 편안했을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적장자로써 제대로 왕위에 오른 이가 몇이나 된단 말인가? 또한 적장자였으나 왕위를 잇지 못한 세자도 많았다. 27명의 왕 중에서 제대로 절차를 밟아 즉위한 왕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으로 7명뿐이었다. 그것뿐인가? 그 7명마져도 해석에 따라 6명이나  8명이 되기도 한다. 그 나머지는 다른 형태로 즉위했는데, 그 형태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왕위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조공종덕이라는 원리를 제대로 따랐을리가 만무하다. 앞서 말했던 태조 이방원 역시 그 점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세世, 중中, 인仁 등 시자 한 글자가 갖는 역사의 함의는 대단히 크다. 한 글자로 국왕의 평생의 업적을 재단하여 평가했기 때문이다. 또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왕권의 정통성 문제이다. 성종과 인조는 종법에 어긋난다고 하여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왕이 아닌 생부를 왕으로 추숭했다. 그들이 덕종과 원종이다.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결행했다. 종법상의 흠결을 치유하고자 하였다. 묘호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국왕들은 남겨질 이름을 두려워했다. 국가와 왕권의 기초 수립에 ㅈ러대적인 요소로 작용했던 묘효는 그야말로 터잡이 구실을 했다. 한갖 이름인 듯이 보이나 묘호는 국가와 사회의 운영원리를 배경으로 거대담론을 형성했다. 그래서 정통의 묘호를 갖는 일에 군신의 노력은 신중했다. 묘호는 당시의 유교윤리와 국가이념, 통치철학, 역사 등 인간의 사고를 통섭하는 가치판단으로 빚어낸 창조물인 것이다 (-156쪽)

태조, 세종, 세조, 영조, 정조... 우리가 배우고 익혔던 이름속에는 정말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왕의 공덕을 평가하는 기준이기도 했고, 정통성을 부여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데 저자는 그 두 글자로 된 묘호속에서 더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역사의 흔적이 담겨있다고도 한다. 후대가 기억하는 이름이 역사라는 말에는 공감한다. 그런데 그 역사가 공정했다고는 볼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그렇게 아름답기만 했던 것도 아닌듯 하다. 생각이 삐뚤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바로 그런 의미로 인해 오백년의 역사를 간직할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이름속에서 보여지는 폐단과 어긋남 또한 밝히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진정한 역사평가가 아닐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이 조그마한 책이 아주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어려웠다. 일단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한다는 한국의 존대말이 생소했다. 서거라거나 승하라는 말을 넘어 훙서라는 말을 써야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옛의미를 살리고자 했음을 알 수 있겠으나 내게는 어려웠다는 것이 솔직한 말이다. 왕이나 왕족, 귀족 등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는 나와 있으나 대개는 왕의 죽음을 일컫는 말이었을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이 너무 어렵다보니 그 말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사실
또한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 책보다 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책을 한번 더 찾아볼 요량이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절은 절하는 곳이다 - 소설가 정찬주가 순례한 남도 작은 절 43
정찬주 지음 / 이랑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사가는 길... 이라는 말이 참 좋다. 산사를 찾아갈 때 걸어올라가야 하는 그 길이 좋은 까닭이다. 짧든 길든 절에 이르기 위해 가야하는 그 길속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있다. 물론 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이때다 싶어 밖으로 튀어나온 것일테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어 '산사가는 길'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은 절이 속세로 내려오고 있는 듯 하다. 중생이 속세의 번민을 내려놓기 위해 절을 찾아가는 것이 도리일텐데 왠일인지 그 중생을 찾아 절이 환속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절은 산에 있어야 제 맛이다. 그것도 자연과 함께 어울어져 하나의 몸체처럼 느껴진다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무소유를 화두로 삼았던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절이 존재한다면 굳이 속세로 내려올 필요가 없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자꾸만 속세로 들어오고 싶어하는 절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안타깝다. 그런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보고 싶은 욕심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일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서글프게도 지금은 '옷깃만 스쳐도 베인다'라는 말로 변해가고 있다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산중의 절을 찾아가는 지은이는 인연을 말한다. 因緣... 내가 오려고 결심했던 것이 인因이라면 나를 오게 한 그 무엇은 연緣이 아니겠는가. 인연을 생각하면 한 발짝 옮기는 것도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고 지은이가 말할 때 어쩌면 그럴수도 있겠다고 조심스럽게 공감하게 된다. 똑같은 절을 찾아가는데도 어떤 절은 언젠가 한번은 와본 것 같은 느낌을 전해주는가하면 어떤 절은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저 휭하니 둘러보기만 하는 곳도 있다. 그것이 바로 인연일 것이다. 왠지 기시감이 들 때 우리는 흔히 전생을 이야기 한다. 아마도 내가 전생에 ~~이었나봐, 하는 식이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자연과의 일체감이 깊은 절일수록 그 기시감이 커진다. 그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습게도 나는 아무래도 전생에 한그루 나무였거나 산사의 한쪽 구석에서 바람에 흔들리던 잡초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된다.

지은이가 발품을 팔아 찾아갔던 절은 남도의 작은 절들이다. 순례길이라고 말하는 지은이의 마음이 다가온다. 그 중에서 내가 찾아가 본 절도 몇 되고, 그 중에서도 능가산 개암사와 청량산 문수사는 지금까지 아주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는 절이기도 하다. 알 수 없는 것은 그런 절들은 동네사람들이 추천해주는 장소가 많다는 거다. 관광안내지나 관청에서는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는, 더 쉽게 말한다면 그다지 돈벌이가 되지 않는 절인 모양이다. 능가산 내소사는 알아도 개암사를 찾아가는 이들은 드물다. 또한 문수사 역시 교통이 편하지 않아서인지 그다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그런 절들을 찾아나선 지은이의 발길을 따라 운달산 김룡사와 사자산 쌍봉사, 영구산 운주사는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요즘은 찾아가는 절마다 불사가 한창인 곳이 많다. 경기도의 이름있는 절을 찾았다가 관음전 불사에 대해 거듭 이야기하는 통에 난감했던 기억이 있는데 여러 전각들에 관해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던 것이 그렇게 만든 이유였다. 궁금하면 물어봐야 하는 성격이니 어찌하랴! 불사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지은이의 말처럼 기왕이면 자연과 하나되는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연과 하나로 어울어진 산사를 찾았을 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평안을 잃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지은이는 성형미인과 자연미인으로 표현해 주었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는이 우리의 절이 안고 있는 포근함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 지은이의 말에 공감하는 것은 안내판을 좀 정비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무키'라고 하면 될 것을 '수고'라 하고, ''나무둘레'라고 하면 될 것을 '흉고둘레'라고 한다. '수령'을 '나무나이'로 '노거수'를 '오래된 나무'라고 하면 얼마나 쉽고 우리말을 빛나게 하는 일인가(-165쪽)  정말 그렇게만 해준다면 눈물나게 고마운 일일 것이다.

지은이가 찾아간 절은 많았다.  찾아가는 발걸음속에서 나는 그 절의 역사와 유래와 참맛을 보게 된다. 지은이만의 눈길로, 마음으로 읽는 절의 이미지를 나도 함께 보는 것이다. 한 귀퉁이의 작은 돌부처가 더 정겨울 수도 있으며 보물이 아닌 것이라해도 마음을 빼앗길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 자리에 있어주니 더 깊은 맛을 찾아낼 수 있는 마음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을 갖고 싶다. 포장되어진 어떤 것보다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들로부터 울림을 전해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절에는 詩가 있어야 한다. 절은 한 권의 詩集이어야 한다. 이 말이 나는 너무 좋았다. 란 말씀 言자와 절 寺가 결홥된 것,이라는 지은이의 말이 속깊게 다가온다. 詩가 있는 山寺를 찾아 지금 당장 떠나고 싶어진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