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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은 절하는 곳이다 - 소설가 정찬주가 순례한 남도 작은 절 43
정찬주 지음 / 이랑 / 2011년 2월
평점 :
산사가는 길... 이라는 말이 참 좋다. 산사를 찾아갈 때 걸어올라가야 하는 그 길이 좋은 까닭이다. 짧든 길든 절에 이르기 위해 가야하는 그 길속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있다. 물론 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이때다 싶어 밖으로 튀어나온 것일테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어 '산사가는 길'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은 절이 속세로 내려오고 있는 듯 하다. 중생이 속세의 번민을 내려놓기 위해 절을 찾아가는 것이 도리일텐데 왠일인지 그 중생을 찾아 절이 환속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절은 산에 있어야 제 맛이다. 그것도 자연과 함께 어울어져 하나의 몸체처럼 느껴진다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무소유를 화두로 삼았던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절이 존재한다면 굳이 속세로 내려올 필요가 없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자꾸만 속세로 들어오고 싶어하는 절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안타깝다. 그런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보고 싶은 욕심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일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서글프게도 지금은 '옷깃만 스쳐도 베인다'라는 말로 변해가고 있다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산중의 절을 찾아가는 지은이는 인연을 말한다. 因緣... 내가 오려고 결심했던 것이 인因이라면 나를 오게 한 그 무엇은 연緣이 아니겠는가. 인연을 생각하면 한 발짝 옮기는 것도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고 지은이가 말할 때 어쩌면 그럴수도 있겠다고 조심스럽게 공감하게 된다. 똑같은 절을 찾아가는데도 어떤 절은 언젠가 한번은 와본 것 같은 느낌을 전해주는가하면 어떤 절은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저 휭하니 둘러보기만 하는 곳도 있다. 그것이 바로 인연일 것이다. 왠지 기시감이 들 때 우리는 흔히 전생을 이야기 한다. 아마도 내가 전생에 ~~이었나봐, 하는 식이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자연과의 일체감이 깊은 절일수록 그 기시감이 커진다. 그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습게도 나는 아무래도 전생에 한그루 나무였거나 산사의 한쪽 구석에서 바람에 흔들리던 잡초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된다.
지은이가 발품을 팔아 찾아갔던 절은 남도의 작은 절들이다. 순례길이라고 말하는 지은이의 마음이 다가온다. 그 중에서 내가 찾아가 본 절도 몇 되고, 그 중에서도 능가산 개암사와 청량산 문수사는 지금까지 아주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는 절이기도 하다. 알 수 없는 것은 그런 절들은 동네사람들이 추천해주는 장소가 많다는 거다. 관광안내지나 관청에서는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는, 더 쉽게 말한다면 그다지 돈벌이가 되지 않는 절인 모양이다. 능가산 내소사는 알아도 개암사를 찾아가는 이들은 드물다. 또한 문수사 역시 교통이 편하지 않아서인지 그다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그런 절들을 찾아나선 지은이의 발길을 따라 운달산 김룡사와 사자산 쌍봉사, 영구산 운주사는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요즘은 찾아가는 절마다 불사가 한창인 곳이 많다. 경기도의 이름있는 절을 찾았다가 관음전 불사에 대해 거듭 이야기하는 통에 난감했던 기억이 있는데 여러 전각들에 관해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던 것이 그렇게 만든 이유였다. 궁금하면 물어봐야 하는 성격이니 어찌하랴! 불사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지은이의 말처럼 기왕이면 자연과 하나되는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연과 하나로 어울어진 산사를 찾았을 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평안을 잃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지은이는 성형미인과 자연미인으로 표현해 주었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절이 안고 있는 포근함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 지은이의 말에 공감하는 것은 안내판을 좀 정비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무키'라고 하면 될 것을 '수고'라 하고, ''나무둘레'라고 하면 될 것을 '흉고둘레'라고 한다. '수령'을 '나무나이'로 '노거수'를 '오래된 나무'라고 하면 얼마나 쉽고 우리말을 빛나게 하는 일인가(-165쪽) 정말 그렇게만 해준다면 눈물나게 고마운 일일 것이다.
지은이가 찾아간 절은 많았다. 찾아가는 발걸음속에서 나는 그 절의 역사와 유래와 참맛을 보게 된다. 지은이만의 눈길로, 마음으로 읽는 절의 이미지를 나도 함께 보는 것이다. 한 귀퉁이의 작은 돌부처가 더 정겨울 수도 있으며 보물이 아닌 것이라해도 마음을 빼앗길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 자리에 있어주니 더 깊은 맛을 찾아낼 수 있는 마음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을 갖고 싶다. 포장되어진 어떤 것보다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들로부터 울림을 전해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절에는 詩가 있어야 한다. 절은 한 권의 詩集이어야 한다. 이 말이 나는 너무 좋았다. 詩란 말씀 言자와 절 寺가 결홥된 것,이라는 지은이의 말이 속깊게 다가온다. 詩가 있는 山寺를 찾아 지금 당장 떠나고 싶어진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