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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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책의 제목이 상당히 詩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서울... 나는 서울이라는 곳을 얼만큼이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서울시내를 오가면서 서울을 얼만큼이나 안다고 생각할까?  모르긴해도 서울의 거리이름이나 어디에 가면 어떤 이름을 가진 빌딩이 있다는 것쯤은 왠만한 사람은 다 알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서울속에서 마주칠 수 있는 옛숨결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그나마 종로구에서 북촌을 살려내 북촌이나 가회동의 골목길들이 유명해지긴 했다.  가끔씩 들러보는 남산골 한옥마을에서조차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양 행세하는 그 모습이 조금은 서글프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게나마 보존되어질 수 있었던 가옥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나마도 천만다행인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서울하면 왜 경복궁을 떠올리는 것일까? 이 책속에서조차 만나기로 했던 친구가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서울과 경복궁을 일치시키고 있는 게 맞는 말일 것도 같은데... 아마도 광화문이 거기에 있음으로해서 그런 현상이 생겨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창덕궁이라는 이름보다 '비원'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불리워지게 된 또하나의 궁궐도 그렇다. 

서울에 존재하는 옛숨결을 찾아 한동안 이곳저곳을 누비며 다녔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내심 놀라웠던 것은 내국인보다 많이 마주쳤던 외국인들의 모습이었다. 한번 가 보시라, 외국인들이 얼마나 많이 보이는지! 북촌의 골목길을 거닐다 사진기를 내밀던 그 노랑머리의 여인이 포즈를 취했던 곳은 아담한 한옥도 아니었고, 그 한옥을 감싸안고 있던 우리의 옛담장도 아니었다. 어느  다세대주택의 출입문에 양각되어진 십장생이 그녀에게는 색다르게 다가왔던 모양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왠지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의 것이면서도 우리의 것이 아닌듯 서걱거리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서울속의 옛숨결들.. 무슨 까닭일까 생각하다가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자괴감이 일기도 했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것을 제대로 알고자 노력하지 않으니 당연히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것을 홍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자체적인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는 말이다. 가만히 뒤돌아보면 우리세대의 부모님들은 문화라는 것 자체에 마음 쓸 틈이 없었다. 살아내야 한다는 각박한 현실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이제 와 멀리 밀쳐 두었던 우리의 문화를 끌어당길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은 생겨났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어찌보면 이것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 그렇다면 제대로 자리잡히는 과정이 되었음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보게 된다.

이 책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얼마전 정동길을 찾아나서며 옆에 해설사 한분이 함께 해 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까닭이다. 정동길은 쉽게 말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덕수궁돌담길이다.  유행가의 가사속에서도 살아 숨쉬는 곳이 바로 정동길이다. 그 곳이 한때는 경운궁이었다는 것도, 경희궁과 나란히 했던 곳이라는 것도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정동극장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중명전도 경운궁의 도서관이었다는 걸, 그곳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참 좋은 일일텐데... 하지만 답사를 하면서도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참 많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안내판에 써 있는 글을 읽어보아도 그곳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는 부족한 것들이 많이 보인다. 도대체 연도와 전문용어는 왜 그렇게 빠짐없이 나열해놓는 것인지... 알아듣기 쉽고 이해하기 편한 말로 써놓으면 안내판의 격이 떨어지는 것일까? 더군다나 요즘 보이는 안내판은 보기좋으라고 바꾸어놓는 것 같은데 빛이 반사되어 그마저도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책 속에서도 언급되어진 그 많은 표지석들은 지나칠때마다 생뚱맞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하고, 느닷없이 어울리지 않게 우뚝 서 있는 많은 동상들을 바라보면서 이 사람은 왜 이곳에 서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생각하기를 몇 번인지 모른다. 간혹 그 사람의 이름을 딴 공원에 들러 주인공의 동상을 보게되면 왜 그리도 반가웠던지... 

기대했던 것보다 알찬 내용에 놀랐다.  그림도 그림이거니와 그 그림과 함께 곁들인 우리문화에 대한 설명글이 너무나 좋았다. 세세하게 살펴보며 그 곳이 어떤 곳인가를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하는 저자의 마음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뒤에 참고했다는 책들을 살펴보면서 참 많이도 정성을 기울인 책이구나 싶었다. 그 자신 역시 서울의 시간을 온몸으로 느껴가며 발품을 팔았겠구나 싶어 고마웠다. 서울? 에이, 서울에 뭐 볼 것 있다고.. 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면서 조금은 부끄러워질 것 같다. 그만큼 서울속에서 느낄 수 있는 옛시간들은  많다.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그곳에 계신 분들과 한마디 한마디 주고 받았을 저자의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해진다. 나도 저런 마음으로 답사를 다녔던 것일까? 다시한번 되묻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스쳐지나며 미처 보지 못했던 곳들을 다시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눈으로만 보고 왔던 곳에  다시 한번 찾아가 보리라 한다. 알고자 하는만큼 알게 되고, 보고자 하는만큼 보게 된다는 말을 떠올린다. 

저자가 찾아갔던 곳은 많았다.  경복궁, 광화문 광장, 종로, 청계천, 정동, 혜화동 등....(저런데서 뭐 볼게 있겠느냐고 말하지는 말 것!) 그림으로 보여지던 경교장의 모습은 정말 안타까웠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있고, 설마~ 하면서 그냥 지나쳤던 곳도 보인다.  하지만 인사동은 이제 가고 싶지 않은 곳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인사동길에 들어서면 우리것의 느낌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내가 서울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것저것을 뭉뚱그려놓은 시장에 와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조차 힘겨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우리의 색을 잃어버린 채 우리의 길이라고 간판만 붙여놓은 꼴이다. 이곳저곳에서 덩치만 크고 실속은 없어보이는 우리의 것을 만날 때가 좋종 있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그런 곳에 우리나라를 알고 싶어하고,
느끼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이 많다는 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책장을 덮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책을 읽으면서 외줄을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우연히 드리우게 된 낚시줄에 대어가 걸린 듯한 느낌을 주었던 책이다.  이 책을 들고 서촌을 한번 찾아가 볼 요량이다. 요즘 그 지역 주민들 사이에 많은 말이 오고간다는 그 곳으로.. 그리고 잊지말고 찾아가 보리라 한다. 저자가 소개해 주었던 그 곳, 딜쿠샤를... 미루어 둔 채 목록에만 올라있던 곳을 생각한다. 마음이 바빠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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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박지원 원작, 허경진 글, 이현식 사진 / 현암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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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학창시절에 싫도록 외워야했던 부분이기도 하니.. 하지만 시험문제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열하일기>를 만나보려 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에서 다시 대하게 된 <열하일기>였으니 하는 말이다.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정조때 중국을 기행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허생전>이나 <호질>도 이 책속에서 만날 수가 있다.  우리의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각각의 책으로 나와있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허생전>의 경우 사실 박지원의 글은 아니다. 그가 듣고 정리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을 마치 박지원이 지은 글처럼 느껴야 한다는 것은 좀 그렇다. 그것도 옛날이야기 형식으로 남의 말을 빌려 적었던 글일뿐이다.  양반을 혼내주는 호랑이 이야기 <호질> 역시 남의 집에 걸린 문장 한 편을 보고  베껴와 지은 글이다. 베낀 부분에 잘못된 곳이 수없이 많았고 빠뜨린 글자와 글귀가 있어 문맥이 맞지 않았지만 대략 내 뜻으로 고치고 보충하여 글 한 편을 만들었다,는 말이 이 책에서 보인다.

흔히 우리는 박지원을 실학자라 칭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듯 하다.  중국여행을 하면서도 그가 유심히 보았던 것은 중국의 멋진 경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집을 짓을 때 벽돌을 쌓는 방법이라거나, 중국의 구들을 보고 우리나라 온돌과의 차이점을 생각해냈던 사람이 박지원이었다. 아궁이를 내는 것부터 시작하여 굴뚝을 내는 것까지 세심하게 살펴보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백성들에게 좀 더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게 할 수 있었는가를 생각했다는 말도 될테지만 그가 돌아와 이 책을 지은 후의 파장은 대단히 컸다. 정조때 그 유명한 '문제반정'을 몰고오는 계기가 되었으니 하는 말이다. '문체반정'은 사실상 글줄이나 읽을 줄 알았던 사람들의 두려움이었다. 백성이 깨이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 당시의 사대부정신을 알게 해 주기도 한다. 정조 역시도 그런 점을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책속에서도 볼 수 있지만 박지원은 한갓 글만 읽을 뿐이니 참된 학문에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한탄했다. (이런류의 말은 허생전에서도 볼 수가 있다) 새롭게 변해가는 시대를 받아들일 줄 알았던 사람들이 실학자라는 말을 들었다. 그 변화속에 적응해나가야 하고 새로움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옛날만을 고집하며 살았던 그들이 바로 사대부였던 것이다. 시대가 영웅을 낳는 것인지 영웅이 시대를 낳는 것인지 다시한번 짚어볼 일이다.

작은 책이었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책이다. 단순한 기행의 형식만을 띠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왠지 부끄럽기도 했다. 기행문의 형식을 빌려왔을 뿐 이 책을 통해 박지원이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듯 하다. 무엇보다도 <허생전>과 <호질>의 배경을 알 수 있었다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쓸데없는 명분을 내세웠던 성리학이 지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이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산 정약용이나 연암 박지원, 추사 김정희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를 따라왔던 인물이 있었는데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인조의 아들 소헌세자였다. 그 역시 변해가는 세상을 읽을 줄 알았던 인물이었다. 후에 효종이 되는 동생과는 달랐다. 만약에 그가 왕이 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안타깝게도 그에 따르른 댓가가 너무나도 컸지만 우리 역사속에도 그런 인물은 많았다. 우리가 좀 더 빨리 실학에 눈을 떴다면 어땠을까?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왠지 서글퍼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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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천국의 세계 - 신화, 전설, 경전을 통해 천국의 신비한 이야기를 듣는다
구사노 다쿠미 지음, 박은희 옮김, 서영철 그림 / 삼양미디어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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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정말로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는 사후세계라는 곳이 있어 그 곳으로 가는 것일까? 옛날 우리나라의 역사속에서도 왕이 죽으면 생전에 그가 입던 옷을 들고 지붕위로 올라가 휘휘저었다고 한다. 아직 가지 않았다면 이 옷을 보고 다시 돌아오라는 뜻으로.. 신화나 전설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사후의 세계는 지극히 평온하거나 지독히도 힘겨운 고통을 보여준다. 연인이었던 에우리디케를 못잊어 산사람은 갈 수 없다던 명계의 문을 들어섰던 오르페우스는 그토록 험한 길을 갔다왔음에도 연인을 되찾지 못했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버렸던 부모를 위하여 죽은 사람들만이 갈 수 있다는 서천서역국으로 간 바리데기가 있다. 그들이 다녀왔던 곳이 정말 죽음 후의 세상이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죽음뒤에 있을 세상에 대하여 믿지않기에 그다지 큰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궁금한 것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종교적인 의미로써의 사후세계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똑같은 현상인데 종교적인 차원에서 볼 때 죽은 자의 육신을 처리하는 방법이나 그를 위해 염원하는 모습이 각기 다르니 하는 말이다. 영혼은 정말 존재할까? 나는 죽음 뒤에 올 세계는 부정하지만 영혼의 존재만큼은 어느정도 인정하고 싶다. 물론 그 영혼이라는 것도 어찌보면 떠나보내지 못한 사람의 의식속에서 찾아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자의식(지극한 염원을 빙자한-) 일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를 보내면서 내게 찾아왔던 그 두려웠던 경험을 잊을수가 없으니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묘한 아이러니에 빠져 있다. 정말 사후세계는 있는 것일까? 있다고 믿었기에 우리는 순장이라는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을 것이다. 있다고 믿었기에 진시황릉과 같이 호화로운 무덤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죽은 뒤에 행복했을까?

그리스 신화속의 명계를 지키는 하데스. 죽은자가 그에게로 가 심판을 받기 위해 건너야 하는 강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비통의 강 아케론, 증오의 강 스틱스, 불의 강 플레게톤, 망각의 강 레테, 통곡의 강 코키토스가 바로 그것이다. 이 다섯 개의 강을 건너는 죽은자의 심정이 바로 그러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비통과 증오의 강을 건너고, 블의 강을 건넌 후 모든 것을 잊는다는 레테강마저 건넌다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통곡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각 나라마다 혹은 신화마다 다루고 있는 사후세계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윤회를 한다와 그렇지 않다로 나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 의하면 사후세계가 밝고 행복한 세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천상과 지하로 나뉘어 행복과 고통의 세계로 그려지고 있으니 흥미롭기는 하다. 또한 고통을 안고 있는 지하세계 역시 살아 있을 때의 죄과에 따라 머물러야 하는 공간이 다르며 그 기준을 정하는 방법 또한 다르게 표현되어져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표현으로 보여준다고는 해도 아주 판이하게 다른 것은 아니다. 약간의 형식만 달라질 뿐이다. 책에 의하면 그 지역의 샤먼형태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인데, 수직방향으로 나뉘는 세로형과 수평방향으로 나뉘는 가로형이 있다. 샤먼이 의식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보았던 사후세계가 세로형이라면 의식이 없어져버린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므로 어딘가의 장소라고만 칭하는 것이 가로형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근대 중국인들이 생각했던 '혼'과 넋'이라는 두 종류의 영혼이 흥미로웠다. 죽은 뒤에 각각의 길을 떠난다는 이 두개의 영혼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치루던 제례를 생각하게 된다. 사당에 모셔진 위패가 바로 '혼'이 머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반우주적 사상이라 한다는 그노시스파는 육신자체를 지옥으로 보았다. 육체안에 '령'을 감싸고 있는 '혼'이 있어 영혼 모두 육체에 갇혀 있다고 본 것이다. '령'을 가둔 '혼'과 '육체'를 물질적 세계로 보았다는 점이 왠지 마음 한구석을 일렁이게 한다. 많은 나라와 많은 신화들이 예로 등장했지만 사후세계는 그 나라의 생활상과 문화적인 상황에 따라 달리 그려진 듯 하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점이 많이 보여지기도 한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그저 단순히 죽어 천국이나 지옥을 가거나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다루거나가 아닐까 싶다.

책장을 덮으며 조금 안타까웠던 점은 우리의 신화나 전설이 안고있는 사후세계에 관한 글이 보이지 않다는 거였다.  그나마도 맨 마지막 부분에서 잠시 다루어주고 있는  무속신앙의 사후세계가 있어 다행이다. 어찌보면 우리가 알고있는 이승과 저승의 관념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과 더불어 우리의 신화나 전설도 잠깐 다루어주었으면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신화속에 나타난 신들의 모습도 그리스신화나 타신화에 못지않게 괜찮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서정오가 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신화>라는 책을 펼쳐보면 우리신화의 배경도가 나오는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스신화나 북유럽신화의 배경 못지 않은 까닭이다. 이승과 저승은 물론 하늘과 땅을 모두 다스리는 천지왕 옥황상제를 비롯하여,  천지왕의 첫째아들로써 저승을 다스리는 저승신 대별왕, 천지왕의 둘째아들로써 이승을 다스리는 이승신 소별왕의 이야기는 제우스의 형제이야기 못지 않게 재미있다.  바다를 다스리는 신 용왕과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꽃을 지키는 신으로 서천꽃밭 꽃감관과 감은장아기라는 운명신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들은 그리스신화의 포세이돈과 모이라이와 같은 존재다. 그런가하면 아들 일곱형제가 어머니를 위해 새벽에 돌다리를 놓았다는 설화는 익히 알면서 별의 신으로 칠성님과 옥녀부인이 존재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또 몇이나 될까?  염라대왕이 저승신의 우두머리라는 것은 알면서 저승길로 인도하는 저승차사가 있으며, 저승길을 지키는 저승길신도 있고, 죽은 사람을 저승길로 이끌어주는 오구신이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단순히 무속이라고 치부되기에는 왠지 껄끄러운 점이 없지않아 있는 듯 하다. 우리에게도 가이아와 같은 대지의 여신이 있으며, 테메레르와 같은 곡식의 신이 있으며, 아테나와 같은 전쟁의 신도 있다.
우리도 이렇게 멋진 신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가까이 있다고하여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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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탐정 정약용
강영수 지음 / 문이당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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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이 명탐정으로 나섰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끝내주는 탐정이었을 것이다. 정약용이 한국을 대표할 만한 실학자이자 개혁가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를 적극적으로 후원해주던 정조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어지는 그의 고난은  인물사를 읽다보면 마음 한켠을 아리게도 한다. 하기사 정조가 살아있을 때에도 그의 길은 가시밭길이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천주교도라 하여 박해를 받기도 했던 정약용. 하지만 그가 외로웠던 유배지에서 친구삼아 자주 찾아갔던 이는 승려 혜장이었다. 진정 그는 마음속에 무엇을 품어야 하는지를 알았던 것이리라. 그런 그를 탐정으로 앞세운 책이 기대가 되는 건 당연지사였다.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혹은 이 책속에 역사적인 사실이 얼만큼이나 담겨있을지 나는 그것이 더 궁금했었다. 저자는 말한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사실이 대상이지만 모든 사실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정한 관심이나 가치 판단에 근거해 과거의 사실로 구성되기도 한다,고... 이 책은 정약용이 정조의 특별한 지시로 잠행했던 기록을 우리앞에  펼쳐주고 있다. 조선의 뒷골목을 거닐었던 정약용의 기록을 전하고 싶었다던 저자의 말이 싱그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조선의 왕중에서 과연 누가 얼마만큼의 왕권을 다질 수 있었는가?  제대로 왕위에 올랐던 사람이라고 해서 왕권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었고, 반정을 통해 왕이 된 사람이라해서 왕권을 다잡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왕이었으나 왕이 아닌 자들이 제 한몸 추스리기에도 힘겨웠던 시절이 조선이라는 테두리였으니 제 뜻을 온전히 펼 수 있는 여건이 조선이라는 시대속에는 없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상황하에서도 왕들의 곁에는 누군가 한명은 머물러 마음을 나누는 역할을 해주기도 했으니 바로 정약용과 같은 이가 아닐까? 하지만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숨어지낼수도, 밖으로 당당하게 나타낼수도 없었을 그들의 처지를 바로 알아 은밀한 만남속에서 회포를 풀기도 했을 것이다. 이 소설속에서도 역시 그런 왕과 신하의 틀이  분명하게 보여진다. 

솔직하게 말해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단편을 짜맞춘듯한 이야기 형식이 껄끄러웠던 까닭이다. 사건마다 하나씩의 제목이 붙여져 마치도 그 사건이 해결되면 모든 것이 끝나 새로운 사건이 다시 만들어진 듯 보여지는 느낌이 그랬다. 사건과 사건끼리의 연관성을 알기까지는  그다지 깊은 울림도 없었고, 긴장감이나 조바심따위의 요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런 사건이 있었나보다, 하는 생각만이 찾아들 뿐이었다. 더군다나 그 사건들의 배경은 정말이지 뭐라 말해야 좋을지.... 아주 오래도록 사랑을 받았던 '전설의 고향' 이나 '전설따라 삼천리' 와 같은 글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게도 했다. 무속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적어도 역사적인 사실이라 내세울만큼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집중할 수 있는 묘미를 찾아내지 못한 채 결말을 맞이하게 되고, 그제서야 앞선 사건들에 대한 이해가 생겨났다. 그리고 나는 말하게 된다. 이거였어?

의학서? 추리물? 그것도 아니라면 역사소설? 잘 모르겠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어떤 근거에 맞춰 짜집기한 듯한 이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거기에 살짝 양념치듯이 추리극의 형태를 가미했다. 그런다음에는 그 음식이 어떤 맛을 내느냐고 묻지도 않는다. 그저 먹어봤으면 그것으로 되었다는 듯한 그런 것..... 사람이 죽은 뒤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에 대한 대목들은 왠지 생뚱맞다. 칼에 베인 채 죽었으면 이러이러하고, 독에 중독되어 죽었다면 이러이러하다는 등, 장황한 이야기속에서 검시관들이 놓치고 지나가는 부분들을 정약용이 찾아낼 뿐이다. 신기한 것은 모든 사건의 실마리가 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 꿈과 사건의 연결고리도 왠지 어색하게 느껴진다.  책속에서 정약용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정조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인지조차 맥을 잡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책을 접으며 순간 생각한다. 이 책은 그냥 썩을대로 썩은 그 시절의 사대부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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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함께 보는 우리 옛 건물 - 이용재 선생님이 들려주는 문화재 속 역사이야기 토토 생각날개 5
이용재 글.사진, 김이랑 그림 / 토토북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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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책은 독특한 문체때문에 기억에 남게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너무 가벼운 문체때문에 살짝 짜증난다고도 하지만 책이라고 다 무거울 필요는 없다. 더구나 무거운 주제로 여행을 떠나는데 말투마저 엄숙해진다면 그 여행은 정말로 재미없다. 그래서인지 가벼운 마음으로 조근조근 딸에게 설명해주는 아빠의 목소리가 좋았던 모양이다.  우리문화나 역사를 공부할 때 처음 접하기가 쉽진 않다. 낯선 용어들도 그렇지만 다짜고짜 시대의 흐름을 짚어줘야 한다고 들이대는 연대는 반드시 외워야만 하는 것처럼 거부감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연대를 외우기보다는 그 시기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파악한다면 굳이 외우지않아도 흐름을 파악하게 된다. 역사라는 것이 하나의 이야기가 발생되어지면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가져오는 까닭이다.  이용재가 딸과 함께 다녀온 이번 여행길은 '우리의 옛건물 제대로 바라보기'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가보았던 곳도 있지만 가보지 못한 곳도 많으니 내게는 오히려 숙제만 더 많아진 셈이다. 가보았던 곳조차도 내가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챙기게 되니 일석이조다. 미리 사전학습을 하고 간다해도 그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거니와 이것만큼은 꼭 보고와야지 했던 것들도 경황이 없어 빠뜨려버리고는 돌아오는 길에 아차, 했던 기억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기에 역사여행이나 하나의 주제를 생각하고 떠나는 테마여행은 시간을 좀 넉넉히 잡고 떠나는 것이 좋다. 시간에 쫓기다보면 속속들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저 눈으로만 보고 오는 관광이 되어버리고 말기에. 

조선의 5대 유학자로 꼽히는 회재 이언적이 머물렀다던 독락당은 정말 매력있다. 스스로가 주변의 산이며 바위며 시냇물에 이름붙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생김새에 따라 산의 이름을 짓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의 산이름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곳도 많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옛날의 이름이 더 정겹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산이 자줏빛 옥처럼 생겼다고 자옥산, 춤추는 학처럼 생겼다고 무학산, 땅에 떨어진 도덕을 새로 일으켜야 한다고 도덕산... 어찌 들으면 우습기도 할테다. 하지만 그 사람만의 기개를 볼 수 있는 호칭이기도 할 것이기에 더 마음이 간다. 물론 같은 걸 보더라도 보는 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너무나도 주관적인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우리는 그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는 길이니 그런 것을 품을 수 있는 아량 또한 가져볼 일이기도 하다. 회재가 독락당을 지어놓고 자계라고 이름진 냇물을 보려고 하였더니 담장에 가로막혀 시냇물이 보이지 않아 담장에 창을 냈다는 말은 정말이지 신선한 충격이었다. 담장에 창을? 얼마나 멋진 생각인지... 그렇게 해서 살 창속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이 창은 살아 움직이는 한폭의 수채화가 되었다. 아쉽다. 나는 아직 보지 못했으니...

향교는 사실 가는 곳마다 그게 그거다. 학교이니 어쩔 수 없다. 대성전에 여러 성인을 모셨고 명륜당에서 후학을 양성했던 곳이다. 그야말로 사당이기도 하고 학교이기도 한 것이다. 대성전에는 보통 공자 한 분만 모시는 줄 알았는데 경주향교의 경우를 보고 알았다. 그토록이나 많은 성인과 문인이 배향된다는 것을.  5대 성인으로 공자, 안자, 자사, 증자, 맹자를 모시며, 송조 6현으로 정호, 주희, 주돈이, 청이, 소옹, 장재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문묘18현이 있는데 설총, 최치원, 안향, 정몽주, 김광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다. 경주향교는 이중에서 5대 성인과 송조 2현, 문묘 18현을 모신다. 물론 각 지방마다 여건에 따라 모시는 분을 선택할 수 있으니 딱히 정해진 법칙은 아닌 듯 하다. 명륜당을 중심으로 동재와 서재가 나뉘는데 동재는 양반의 자식들이, 서재는 첩의 자식인 서얼들이 공부하는 방이었다고 하니 공부하는 것에도 신분차이를 둔 것은 안타깝다.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전각 경기전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전주한옥마을을 한번 보러가자고 벼르고 있으니 가는 길에 시간을 넉넉히 잡아 경기전과 전주객사는 꼭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객사는 왕명을 전하는 신하들이 머물던 여관이다. 외국 사신을 재울 때도 쓰고, 왕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곳이기도 하다. 고창읍성을 찾았을 때 객사인 모양지관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던 날이 있었다. 전주객사는 현존하는 객사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왕의 초상을 대신해 봉안하던 목패를 전패라 하는데 그 전패를 모신 곳이니 관찰사가 머물던 동헌보다도 격이 높은 곳이 바로 객사인 것이다. 전주가 조선시대에는 한양과 평양에 이어 세 손가락에 꼽히는 대도시였다는 것은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그것뿐일까? 강릉하면 떠오르는 곳이 오죽헌과 선교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곳을 떠올릴 때마다 이이와 신사임당을 생각해 왔다. 왜 그랬을까?  사실 선교장은 세종인 충녕대군의 둘째형 효령대군을 떠올려야 맞다. 형인 효령대군이 정치에 뜻이 없어 동생인 충녕이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평생을 그렇게 정치와는 멀게 살았던 효령대군은 형인 양녕대군보다 더 오래살아 91세까지 살았다. 9명의 왕을 보는 세월이었으니 엄청나게 오래 살았다. 정치에 뜻을 두었다면 아마도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살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일제도 건드리지 못한 집안이 바로 효령대군의 집안이었다고 할까?  이 선교장이야말로 제대로 풍수사상에 입각하여 지어진 집이라고 한다. 물론 그 당시와 지금의 형세가 많이 변했을테지만 말이다.

가보지 못한 거조암 영산전도 궁금하다. 그런 사찰은 비 온 뒤 살짝 안개를 머금은 날 찾아가면 금상첨화다. 책을 읽는 내내 그동안 가보았던 곳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지나간 시간들을 다시 꺼내 맛보라 한다. 도산서원을 감싸고 돌던 그 분위기하며, 소쇄원의 정겨웠던 흙담장, 여유당에서 정약용이 많은 이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 나누었을 그 마루가 다시 보고 싶어진다. 서너번을 가보았어도 다시 가고 싶은 곳중의 하나인 화성도 그렇고, 가까이 있어 좋은 아담한 남산골 한옥마을 또한 그리워진다. 책속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복원에 대한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된다.  어느날 느닷없이 불타고 있는 숭례문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복원한다고 해서 그 문화재가 안고 있었던 오랜 세월까지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복원과정에서  쓸만한 재료를 골라 다시 쓴다해도 이미 상처난 문화재는 아픔으로 기록되어질 뿐이다. 다 떨어져 헤진 옷을 기운것처럼 군데군데 얽힌 우리의 역사를 보고 싶은 건 아닐테니...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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