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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괜찮다고 말해줘요!
탁기형 글.사진 / 신원문화사 / 2011년 4월
평점 :
포토에세이... 사진 한 장으로 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가끔 이렇게 사진을 잘 찍는 이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경탄의 지경까지 이를 때가 있다. 무슨 거창한 풍경을 찍는 것보다 너무나 일상적인 삶의 순간속에서 찾아낸 단 한 장의 사진에 마음이 울컥할 때도 있다. 그렇게 이 책은 우리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사진으로 쓰는 일기?' 쯤이라면 될 것 같다. 지금은 훌쩍 커버린 아들녀석이 가끔 갓난아기였을 때의 앨범을 보면서 궁시렁거린다. 나 나름대로는 육아일기를 사진으로 쓴 건데 도대체 왜 이런 사진을 찍은거냐고 투덜거린다. 한창 사춘기여서 제 몸을 드러낸 모습이 싫은게다. 그래도 나중에 어른되어 다시보면 엄마한테 고맙다고 할 걸? 했더니 머리만 긁적인다. 슬쩍 들여다보니 정말 별걸 다 찍어 놓았다. 그런데 바라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바로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사진의 매력은 아닐까? 이 책속에서 마주치는 사진 한 장, 한 장이 모두 귀하게 다가온다. 일상적인 삶속에서의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는 책속의 말에 공감한다.
한 우물만 파왔던 사진기자의 중간성적표, 라는 머리글을 보면서 책의 제목을 생각한다. 지금도 괜찮다고 말해줘요!... 정말이지 책제목, 끝내준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왠지 모르게 내게 착, 달라붙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한 줄의 글이 두세개의 뜻을 갖기도 하는 어려운(?) 한국말로 볼 때 지금까지도 괜찮다고 말해달라는 것과, 지금이라도 괜찮다는 말의 의미를 떠올리게 된 거다. 살아오면서 내가 수도없이 하고 싶었던 말, 지금도 괜찮다고 말해줘요!.. 늘 부족하기만 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책장을 넘겨가며 마주치는 그 장면들이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가끔은 살포시 미소도 짓게 한다. 나도 이랬던 때가 있었는데, 싶었던 순간도 있다. 145쪽에 보면 외계인이라는 소제목과 함께 꽃잎이 몇 장 남지않은 꽃이 보이는데 사진기를 들이대던 작가가 문득 거기서 외계인의 모습을 보게 되는 장면이다. 그런데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도 거기서 외계인의 얼굴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웃어버렸다. 정말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귀도 있는 외계인의 얼굴이다. 동화된다는 것은 좋은 일일까? 누군가와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좋은 일일게다.
part별로 담겨진 주제가 다르다. 일상에서 순간적으로 마주친 사소함이라거나 사람들을 통해 빛을 볼 수 있는 작가의 감성이 놀랍기도 했다. 또한 내 인생의 하나뿐인 특별한 순간처럼 자신이 겪어왔던 일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순간을 포착하는 즐거움도 함께 보여준다. 원하지 않았던 시간속에서 우연하게 찾아온 기회를 사진속에 담았을 때의 환희가 글을 통해 내게 전해지기도 한다. 사진에 곁들여져 양념같은 역할을 하는 짧은 글이 참 좋았다. 자작나무를 보여주면서 우거진 자작나무 숲을 보고 싶었던 소망을 이루었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작가는 그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때문에 나는 그토록이나 강하게 그것을 원했는가? 라는 의문부호 하나를 남겨준다. 못내 아쉬움으로 남겨진 사진 한 장의 기억은 그야말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추상적이거나 멋지기만 한 풍경을 보여주는 사진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상보다는 현실쪽에 더 무게를 두는 성격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일상적인 모습을 그럴듯하게 잡아낸 사진이 더 살갑게 다가온다. 거기에 알 듯 모를 듯 한 생각거리를 담아준다면 더 훌륭하다.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야말로 별 것인 우리의 일상. 128쪽의 사진을 본다. 물레방아 인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나는 개를 촬영하고, 한사람은 그런 나를 뒤에서 촬영하고, 또 따른 누군가는 그런 풍경을 모두 촬영하고... 그렇게해서 한 장의 사진속에 세 개의 피사체가 어울렸다. 그런데 묘하게도 잘 어울린다. 그런게 일상일 것이다. 모두 다른 듯 하지만 비슷한...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모를 뿐, 세상은 늘 이렇게 돌고 돈다. 책장을 덮으며 내게 말한다. 지금도 괜찮다고..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