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이름, 묘호 - 하늘의 이름으로 역사를 심판하다 키워드 한국문화 7
임민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코 쉽지 않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의 이름, 묘호 - 하늘의 이름으로 역사를 심판하다 키워드 한국문화 7
임민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묘에 가서 호명을 하면 제이름을 듣고 나오는 왕이 있을까? 전에 누군가 재미삼아 물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가 정답이다. 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데도 나오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죽은 뒤 후세들이 만들어 바친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왕들은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불리우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죽은 왕들에게까지 이름을 만들어주었던 것일까? 그것 또한 간단하다. 그 이름으로 왕의 업적을 판가름했다. 한마디로 역사적인 평가가 담겨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말하다보니 결코 단순하거나 간단한 일이 아닌 듯 하다. 정말 복잡하다. 우선적으로 어려운 말부터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묘호, 시호, 종호...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이렇게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흔하게 쓰지 않는 말이기도 하거니와 지금의 세대와는 거리가 먼 말인 까닭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렇다. 묘호는 임금이 죽은 뒤 종묘에 배향할 때 신위에 쓰는 임금의 호이고, 시호는 제왕이나 재상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기려 붙인 이름이다. 존호는 보통 상대를 높여 부르는 칭호지만 임금이나 왕의 덕을 기린다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휘호라는 말까지 찾아보니 점점 더 어려워진다. 죽은 뒤에 시호와 함께 내리던 존호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시호와 묘호와 존호따위의 의미를 한꺼번에 쓰기도 했다는 말이 된다.  태조의 신주를 보면, '유명증시강헌태조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이라고 쓰여있는데 '유명증시강헌'은 명나라에서 내린 시호인 강헌을 말하며, '태조'가 묘호이다. '지인계운'은 존호이며, '성문신무'와 '대왕'은 시호이다 (-53쪽)  이보다 더 머리아프게 하는 것도 있다. 고종시호의 경우 고종이라는 묘호 2자와 8자의 시호, 53자의 존호로 무려 63자로 구성되었다!

조선시대에 재위했던 스물일곱 명의 국왕은 저마다 고유의 왕명을 지녔다. 요즘 사람들은 태조니 세종이니 하고 부르는 이름들이 왕명인 줄 안다. 물론 왕명으로 이해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본래는 묘호廟號 혹은 종호宗號 라고 해야 맞다. 묘호는 국왕이 승하한 뒤에 올리는 이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당시의 신하들도 태묘太廟니 중묘中廟니 하여 사당 이름을 태조와 중종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했다. 따라서 묘호는 사당 이름인 한편, 시호 혹은 왕명이기도 하다. (중략) ... 묘호는 두 글자로 만들어졌다. 앞의 한 글자는 시자諡字로서, 시법諡法(시諡로 사용할수 있도록 정해진 글자)에 따라 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뒤의 한 글자는 종계宗系(종가와 계통)와 조공종덕祖功宗德의 예제에 근거하여 붙이는 祖나 宗 중 하나를 쓴다 (-머리말중에서)

1. 삼국시대 국왕의 묘호
2 황제국의 묘호를 사용한 고려
3 조선, 묘호로 예를 바로세우다
4 이름으로 국왕의 공덕을 평가하다
5 3백 년, 공정왕이 묘호를 받기까지
6 대한제국의 황제, 그 아픈 이름
7 묘호의 의미
책을 펼치면 목차를 통해 이 책에서 다루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禮" 를 상징하게 되었다는 묘호..  그저 무의미하게 외워대던 왕조의 순서에서 조와 공으로 나뉜다는 것에 대해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알게 된다. 공이 있는 이는 조祖로 하고 덕이 있는 이는 종宗으로 한다는 조공종덕을 기억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끝까지 가지는 못했다. 경우에 따라서 바뀌기도 했고 또한 무시되기도 했던 듯 하다. 조종공덕을 통해 예치국가를 지향했다거나 국가 운영의 원리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좀 씁쓸하다. 시호를 정하는 일이 하나의 의례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며 안타깝게도 명분에 죽고 명분에 살았던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않은 일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늘의 뜻을 받든다는 형식을 취하며 왕에게 부여되었다는 묘호... 그 이름으로 인해서 자신의 업적이나 정통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하늘의 뜻과는 어쩐지 거리가 먼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평가는 하늘이 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수많은 당파싸움으로 인해 왕이 바뀌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왕이 되고 싶지 않았어도 왕이 되어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래놓고는 하늘이 뜻이다? 바로 그런 것이 조선이라는 나라가 아니었을까?  묘호를 일러 상당히 아름다운 의미를 두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만 말로써 말을 죽이고 살렸던 시절이었다. 가장 뚜렷하게 보여지는 정종을 보자.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던 정종은 죽은 뒤에 정통성마져도 인정받지 못했으며 왕으로써의 공적 또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묘호없이 그저 사당에 모셔졌을 뿐이다. 300년이 지난 숙종대에 와서야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았다는 것만 보아도 하늘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300년이라는 기간이 지나는 동안 몇 번 시도되어진 적은 있으나 그 썩어빠진 당쟁의 뿌리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는 정종의 묘호.. 죽었으니 알 길은 없겠으나 만약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라보는 그가 편안했을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적장자로써 제대로 왕위에 오른 이가 몇이나 된단 말인가? 또한 적장자였으나 왕위를 잇지 못한 세자도 많았다. 27명의 왕 중에서 제대로 절차를 밟아 즉위한 왕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으로 7명뿐이었다. 그것뿐인가? 그 7명마져도 해석에 따라 6명이나  8명이 되기도 한다. 그 나머지는 다른 형태로 즉위했는데, 그 형태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왕위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조공종덕이라는 원리를 제대로 따랐을리가 만무하다. 앞서 말했던 태조 이방원 역시 그 점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세世, 중中, 인仁 등 시자 한 글자가 갖는 역사의 함의는 대단히 크다. 한 글자로 국왕의 평생의 업적을 재단하여 평가했기 때문이다. 또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왕권의 정통성 문제이다. 성종과 인조는 종법에 어긋난다고 하여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왕이 아닌 생부를 왕으로 추숭했다. 그들이 덕종과 원종이다.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결행했다. 종법상의 흠결을 치유하고자 하였다. 묘호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국왕들은 남겨질 이름을 두려워했다. 국가와 왕권의 기초 수립에 ㅈ러대적인 요소로 작용했던 묘효는 그야말로 터잡이 구실을 했다. 한갖 이름인 듯이 보이나 묘호는 국가와 사회의 운영원리를 배경으로 거대담론을 형성했다. 그래서 정통의 묘호를 갖는 일에 군신의 노력은 신중했다. 묘호는 당시의 유교윤리와 국가이념, 통치철학, 역사 등 인간의 사고를 통섭하는 가치판단으로 빚어낸 창조물인 것이다 (-156쪽)

태조, 세종, 세조, 영조, 정조... 우리가 배우고 익혔던 이름속에는 정말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왕의 공덕을 평가하는 기준이기도 했고, 정통성을 부여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데 저자는 그 두 글자로 된 묘호속에서 더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역사의 흔적이 담겨있다고도 한다. 후대가 기억하는 이름이 역사라는 말에는 공감한다. 그런데 그 역사가 공정했다고는 볼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그렇게 아름답기만 했던 것도 아닌듯 하다. 생각이 삐뚤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바로 그런 의미로 인해 오백년의 역사를 간직할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이름속에서 보여지는 폐단과 어긋남 또한 밝히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진정한 역사평가가 아닐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이 조그마한 책이 아주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어려웠다. 일단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한다는 한국의 존대말이 생소했다. 서거라거나 승하라는 말을 넘어 훙서라는 말을 써야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옛의미를 살리고자 했음을 알 수 있겠으나 내게는 어려웠다는 것이 솔직한 말이다. 왕이나 왕족, 귀족 등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는 나와 있으나 대개는 왕의 죽음을 일컫는 말이었을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이 너무 어렵다보니 그 말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사실
또한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 책보다 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책을 한번 더 찾아볼 요량이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절은 절하는 곳이다 - 소설가 정찬주가 순례한 남도 작은 절 43
정찬주 지음 / 이랑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사가는 길... 이라는 말이 참 좋다. 산사를 찾아갈 때 걸어올라가야 하는 그 길이 좋은 까닭이다. 짧든 길든 절에 이르기 위해 가야하는 그 길속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있다. 물론 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이때다 싶어 밖으로 튀어나온 것일테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어 '산사가는 길'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은 절이 속세로 내려오고 있는 듯 하다. 중생이 속세의 번민을 내려놓기 위해 절을 찾아가는 것이 도리일텐데 왠일인지 그 중생을 찾아 절이 환속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절은 산에 있어야 제 맛이다. 그것도 자연과 함께 어울어져 하나의 몸체처럼 느껴진다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무소유를 화두로 삼았던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절이 존재한다면 굳이 속세로 내려올 필요가 없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자꾸만 속세로 들어오고 싶어하는 절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안타깝다. 그런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보고 싶은 욕심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일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서글프게도 지금은 '옷깃만 스쳐도 베인다'라는 말로 변해가고 있다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산중의 절을 찾아가는 지은이는 인연을 말한다. 因緣... 내가 오려고 결심했던 것이 인因이라면 나를 오게 한 그 무엇은 연緣이 아니겠는가. 인연을 생각하면 한 발짝 옮기는 것도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고 지은이가 말할 때 어쩌면 그럴수도 있겠다고 조심스럽게 공감하게 된다. 똑같은 절을 찾아가는데도 어떤 절은 언젠가 한번은 와본 것 같은 느낌을 전해주는가하면 어떤 절은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저 휭하니 둘러보기만 하는 곳도 있다. 그것이 바로 인연일 것이다. 왠지 기시감이 들 때 우리는 흔히 전생을 이야기 한다. 아마도 내가 전생에 ~~이었나봐, 하는 식이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자연과의 일체감이 깊은 절일수록 그 기시감이 커진다. 그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습게도 나는 아무래도 전생에 한그루 나무였거나 산사의 한쪽 구석에서 바람에 흔들리던 잡초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된다.

지은이가 발품을 팔아 찾아갔던 절은 남도의 작은 절들이다. 순례길이라고 말하는 지은이의 마음이 다가온다. 그 중에서 내가 찾아가 본 절도 몇 되고, 그 중에서도 능가산 개암사와 청량산 문수사는 지금까지 아주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는 절이기도 하다. 알 수 없는 것은 그런 절들은 동네사람들이 추천해주는 장소가 많다는 거다. 관광안내지나 관청에서는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는, 더 쉽게 말한다면 그다지 돈벌이가 되지 않는 절인 모양이다. 능가산 내소사는 알아도 개암사를 찾아가는 이들은 드물다. 또한 문수사 역시 교통이 편하지 않아서인지 그다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그런 절들을 찾아나선 지은이의 발길을 따라 운달산 김룡사와 사자산 쌍봉사, 영구산 운주사는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요즘은 찾아가는 절마다 불사가 한창인 곳이 많다. 경기도의 이름있는 절을 찾았다가 관음전 불사에 대해 거듭 이야기하는 통에 난감했던 기억이 있는데 여러 전각들에 관해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던 것이 그렇게 만든 이유였다. 궁금하면 물어봐야 하는 성격이니 어찌하랴! 불사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지은이의 말처럼 기왕이면 자연과 하나되는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연과 하나로 어울어진 산사를 찾았을 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평안을 잃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지은이는 성형미인과 자연미인으로 표현해 주었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는이 우리의 절이 안고 있는 포근함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 지은이의 말에 공감하는 것은 안내판을 좀 정비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무키'라고 하면 될 것을 '수고'라 하고, ''나무둘레'라고 하면 될 것을 '흉고둘레'라고 한다. '수령'을 '나무나이'로 '노거수'를 '오래된 나무'라고 하면 얼마나 쉽고 우리말을 빛나게 하는 일인가(-165쪽)  정말 그렇게만 해준다면 눈물나게 고마운 일일 것이다.

지은이가 찾아간 절은 많았다.  찾아가는 발걸음속에서 나는 그 절의 역사와 유래와 참맛을 보게 된다. 지은이만의 눈길로, 마음으로 읽는 절의 이미지를 나도 함께 보는 것이다. 한 귀퉁이의 작은 돌부처가 더 정겨울 수도 있으며 보물이 아닌 것이라해도 마음을 빼앗길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 자리에 있어주니 더 깊은 맛을 찾아낼 수 있는 마음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을 갖고 싶다. 포장되어진 어떤 것보다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들로부터 울림을 전해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절에는 詩가 있어야 한다. 절은 한 권의 詩集이어야 한다. 이 말이 나는 너무 좋았다. 란 말씀 言자와 절 寺가 결홥된 것,이라는 지은이의 말이 속깊게 다가온다. 詩가 있는 山寺를 찾아 지금 당장 떠나고 싶어진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 이색박물관 편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시리즈 1
이용재 지음 / 도미노북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궁극의 문화기행... 이 책 한권이면 박물관 여행은 끝이다? 제목부터가 상당히 자신감 있다. 사실 박물관에 관한 책은 많다. 이색박물관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얼굴내미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매혹을 느낀 것은 박물관을 통해 우리문화사를 살펴볼 수 있다는 소제목때문이었다. 작가의 이력을 보면서 문득 '행복한 사람'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저자가 쓴 책을 한번 찾아보았더니 꽤 있다. 우리문화에 대한 기행이 대부분이다. 그 문체는 어떤가? 이 책만 그런줄 알고 미리보기를 해 보았더니 작가의 문체는 한결같다. 박물관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알몸을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거침없이 들이댄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박물관이라는 것이 그리 쉬운 분위기는 아니다. 뭔가 엄숙해야 하고 떠들면 안되는 그런 분위기.. 한마디로 말하자면 너무나도 무거운 분위기다. 그 분위기에 눌려 박제되어진 문화를 눈으로만 보고 오게 되는 게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형식을 탈피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 신기한 것은 처음엔 약간의 거부반응이 이는 듯 해도 결국엔 그 말투에 동화되어버린다는 거다. 오히려 그렇게 다가오는 박물관이나 그 박물관이 품고 있는 우리의 역사가 더 편하게 느껴지니 이게 무슨 일인지...

그냥 책으로만 배우는 우리문화나 역사는 따분하다. 그리고 너무 짧고 얕다. 그래서 우리는 박물관을 찾아가는지도 모르겠지만.. 박물관을 말할 때마다 내가 하는 소리로 박제되어진 역사라고 한다. 그래서 내게는 틀 안에 갇혀진 우리문화보다 자연속에 어울어진 우리문화를 찾아가는 것이 훨씬 매혹적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보고나서 나는 생각을 바꿔보기로 마음 먹는다. 박물관을 대하는 나의 편견을 깨자고.. 내가 그렇게밖에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는 말이다. 재미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문화기행은 가벼운 문체와는 달리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그 무엇이 있다. 박물관의 형태보다도, 무엇을 전시하고 있는가보다도 그 박물관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왜 이 박물관이 우리곁에 머무는가를 한번 더 짚어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도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이력에 대해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하여간 재미있다.

박물관이 만들어지는 경로가 특이하다. 몇 안되는 대한민국 건축가들의 생각을 함께 읽을 수 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주 멋진 생각으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박물관을 설계하고 만드는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마져도 들게 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박물관은 사람과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갖은 위엄과 갖은 명분으로 사람위에 올라서고 싶어하는 박물관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이다. 죽어있는 박물관보다는 살아 숨쉬는 박물관을 통해 우리의 아이들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것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난다. 건축가들이 열심히 설계하고 만든 건축물의 기공식을 할 때 정작 그자리에 있어야 할 만든사람의 이름은 초대장에 적혀있지도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단 한번도 와보지 않았던 높은 양반들만이 그 기공식에 초대되어진다고... 그래서 건축가는 슬프다고 했던가? 하여튼 이 책속에서 거론되어지는 몇 안되는 건축가들의 이름만큼은 기억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마력이기도 하다.

쇳대박물관, 허준박물관, 한국고건축박물관, 무주곤충박물관, 왕인박사유적지, 상주자전거박물관, 장생포고래박물관, 테디베어박물관, 제주 유리의 성... 등등 저자는 전국을 떠돌며 이색박물관을 다녀왔다. 가고 싶은 곳도 많아 군침을 흘리지만 여건상 쉽게 찾아질 수 없는 박물관이 더 많아 아쉽다. 우선 내고장의 박물관부터 찾아볼 일이다. 그렇게해서 하나씩 하나씩 찾아가다보면 언젠가는 갈 수 있으리라 한다. 얼마전에 다녀왔던 진천의 종박물관이 생각난다. 종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던 시간이기도 했지만 미세한 차이로 종소리가 다르게 들리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귓전에 남아있다. 우리의 종소리가 그런 울림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었다. 몇 번을 듣고 또 듣다가 아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곳이기도 했는데 저 많은 박물관들이 나를 기다려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레인다.

그런데 영월 책박물관은 어떻게 되었을까? 개인적인 사재를 털어 강원도 산골 폐교에 책박물관을 만들었을때만해도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월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데... 하지만 얼마전에 신문을 통해 그 책박물관이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영월군에서 폐교를 비워달라고 했다고.. 썩어빠진 관료주의의 행태를  견뎌내지 못하고 쫓겨나야 할 박물관장은 그 많은 서적들을 어찌해야하는지 태산만한 걱정을 하고 있다고.. 언제까지 우리는 뜻있는 사람들의 기를 꺾어가며 관료주의체제를 이끌어가야 하는 것인지 기사를 보면서 엄청 화가 났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궁금증이 수그러들지가 않았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는 말이 있다. 영월에 가면 변함없이 책박물관이 우리를 맞이해 줄 수 있기를.. 그가 뜻한바를 짓밟지 않고 그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정체제로 거듭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찰 어느 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 사찰에 담긴 상징과 의미
목경찬 지음 / 조계종출판사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하고 쉽게 알려주는 사찰의 모든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