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왜 돈이 되는가? - 종교, 믿음을 팔고 권력을 사다
김상구 지음 / 해피스토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라는 말처럼 마주 대하는 게 정말 껄그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빤히 보이는 일인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말하지 않는다. 그 불편한 것들이 내 앞을 당당하게 활개치는데도 그냥 흘깃거릴 뿐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그 의식이 점점 더 팽배해져가고 있는 걸 보면서 가끔씩 느껴지는 위기의식이 두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끔씩은 목소리를 높여 외치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 어쩌면 살맛나는 세상일런지도...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 우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씩은 이렇게 조목조목 따져보아야 할 때도 있다. 더구나 우리의 의식을 좀 먹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런 목소리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이미 그 불편함을 드러내놓고 있다. 믿음이 왜 돈이 되는가? 도대체 믿음이 왜 돈이 되어야 하는가? 내가 묻고 싶었다. 갈수록 비대해지는 교회의 몸집을 보면서 그 안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믿음이라는 게 나는 궁금했었다. 어디를 가든 눈만 돌리면 자동적으로 시선에 잡히는 십자가들.. 유난히 뾰족하고 높은 십자가를 보면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저 십자가가 하나님 똥구멍을 찌르겠다! 똥구멍 찔린 하느님 엄청 아프겠다!

요즘 한창 화제가 되었던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시시비비는 정말 흥미로웠다. 이미 예견되어진 일이 눈앞에 펼쳐졌을 뿐인데 뭘 그렇게 떠들어대는 것인지.... 얼마전 나라를 대표한다는 대통령마저 공과 사를 구분짓지 못하는 행동으로 이미 도마위에 올랐던 일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아마 후대에도 종교앞에 무릎꿇은 대통령으로 길이 이름을 남기지 않을까 싶다. '종교인'과 '신앙인'은 다르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종교과 신앙은 무슨 차이일까? 내 짧은 소견으로 말해본다면 종교는 하나의 형식이며 틀일 뿐이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이 되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마음을 잃어버린 채 종교인으로 살기를 원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뿐만이 아니라 이미 종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는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개신교 장로라는 위치는 개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인한 마찰이 생겨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부 충성심 강한 자들의 소행이었다고는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일전에 사찰 입장료를 두고서 일반인들의 원성을 샀던 일로 비추어볼 때 이득이 생기지 않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다지 크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성향이 있다고 봐야 한다. 종교계에서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그 뒷모습을 들여다보면 '잇속챙기기'나 이미 가진 것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그림자가 분명하게 보인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교회만을 위한 대출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신도수가 그 대출금액을 조정하는 잣대가 된다는 것을.. 그러다보니 믿음은 당연히 돈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고, 너나 할 것 없이 건물위로 십자가를 세우며, 앞다퉈 신도를 모집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차지한 면적이별로 크지 않은 우리동네만 하더라도 건물위로 삐죽 올라선 십자가를 세어보니 열 개정도나 된다. 건물 몇 개만 건너뛰면 또다시 마주치는 게 교회라는 말이다.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이 교회 저 교회의 전도지를 받아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몇 미터 앞에서 또다른 교회의 전도지를 받아야 하는 우리동네의 현실만 보더라도 왠만한 대한민국 사람은 모두 천당갈 표를 사놓은 셈이다. 돈을 내고 사야하는 천당행표... 바로 그 표가 문제였을까? 금권선거가 난무하고 대형교회가 날로 늘어가는 이유를 따져보자고 한다면 간과할 수 없는 진실임엔 분명하다.  대한민국 은행에 교회만을 위한 대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책이 많은 도표와 실제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꼬집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암담하다. 권력화되어가는 개신교의 거대한 몸뚱이가 드리우는 그림자가 우리 사회를 잠식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는 명확하다. 종교계에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세금을 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논리적이다. 그냥 개인적인 의견만으로 그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글쓴이의 주장에 99%는 공감한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기 전에 우리의 종교계가 먼저 자성을 했어야만 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외면하는 정치계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 주변을 끝없이 맴도는 만들어진 것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여기서도 만나게 된다. 종교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에 대한 편협함은 극에 달하고 있다. 만들어진 영웅들의 모습에 화가난다. 물론 그 영웅들을 폄하하거나 부정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단지 잘못되어 오류를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그냥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참고자료로 끼워넣은 일본의 '종교법인법' 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굳이 지면을 늘려가면서까지 그것을 알려주고자 하는 글쓴이의 절절함이 거기에 담겨 있다. 믿음이 왜 돈이 되어야 할까? 이러다가 중세의 면죄부가 다시 부활하는 건 아닐까?  팍팍한 현실속에서 작은 위안을 얻고자 선택한 사람들의 믿음을 돈의 가치로 여기는 세태가 서글프다. 성스러워야 할 이미지가 천박한 이미지로 변신하는 중이다. 책속에서 언급되어진 많은 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단지 개신교의 현실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우리의 종교계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단순히 그들만의 '잇속챙기기'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을 좀먹고 있다는 데 나는 공감한다. 이렇게 민감한 부분을 책으로 엮어내기까지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려움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쓴이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많은 사람이 제대로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사실 나는 이렇다할 종교를 갖지 못했다. 이제는 부적처럼 인식되어져가고 있는 개신교의 현실도 마음 아프고, 조용히 자아성찰을 하며 지내야 할 사찰들이 세속화되어가는 모습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정치속으로 뛰어들어 핏대를 세우는 카톨릭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물론 일부겠지만 그 소수로 인해 다수는 욕을 먹는 것이다. 그 모든 불편함을 우리가 만들어낸 것인데 누가 누구를 탓할까? /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쾌한 심리학 - 생활 속의 심리처방
와타나베 요시유키 & 사토 타츠야 지음, 정경진 옮김 / 베이직북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생활 속의 심리처방이라는 부제가 오히려 책제목과 딱 맞아떨어진다. 그만큼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는 말이다. 우리가 흔하게 겪어왔던 상황들을 통해 그 때의 감정이나 심리변화, 혹은 그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그러면서도 심리학에 대한 정의를 그리 어렵지 않게 풀이해주고 싶어한다. 대체적으로 심리학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뭔가 전문적인 냄새가 나는 게 사실이다. 왠지 어려울 것 같고, 다가서고 싶지만 왠지 꺼려지는 그런 느낌 말이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들켜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게 일반적인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 내면에 깔려진 묘한 상반성을 보게 된다.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숨기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분석하는 게 심리학일까?  책 뒷부분에서 마주친 질문이 재미있다. 마음이 뭘까? 마음이라는 게 정말 있는 것일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행동에서부터 오는 것이라는 말..  책 속의 말을 빌려보자면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윤리 관념'이나 행동을 조절할 줄 아는 '자제력'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마음이라는 게 어떤 규칙에 대한 상황대처쯤일 듯 한데.... 예전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받았을 충격에 대해 그저 수동적으로 반응했다고 한다면 지금은 그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과정이나 방법쯤의 하나가 바로 마음의 이치를 다스린다는 心理學이라는 말이다.

더 쉽게 말해본다면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언가에 이끌리는 그런 것을 말하는데 결국은 내가 속한 외부세계로부터 전해지는 자극과 상관관계라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가 웃거나 울거나 화를 내거나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하는 그런 감정들이 내 의지와는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까?  그 사람이 겪는 사회적 현상이 성격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을 일전에 읽었던 <성격의 발견>이라는 책에서도 본 적 있는데 역시 이 책을 통해서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결국 성격이라는 말과 마음이라는 말이 어느정도는 서로 통한다는 뜻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 파고들면 머리 아프다. 그러니 일단 심리학이라거나 마음이라거나 하는 추상적인 개념은 한쪽으로 치워버리고 이 책을 읽게 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과 마주칠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강하게 와 닿았던 것은 긍정적 강화와 부정적 강화라는 말이었다. 우리 속담에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무엇이든 억지로는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좋은 말도 여러번 들으면 싫증난다고 아무리 좋은 일이라해도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 의욕이 상실되어버린 채 그것으로부터 도망칠 궁리부터 하는 게 사람마음이란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길들여지기'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무언가에 길들여지게 되었을 때의 상황은 극과 극이다. 항상 있어 주었기 때문에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는 것과 어느날 갑짜기 없어져버리면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 바로 그 길들여진다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우리가 흔히 말하고 있는 주부의 가사노동이라거나 학교나 직장으로 가야하는 아침의 일상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바로 그런 예이다.  하지만 여기서 놓칠 수 없는 게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라는 말처럼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나 자신의 마음상태를 바꿔가면서 의미를 부여하라는 말이 바로 긍정적 강화다. 그런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주변 사람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자주 들어왔던 것 중에 내가 내 자신에게 칭찬하기가 있다. 해 보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인데 알면서도 잘 안되니 그게 문제다. 부부싸움의 유형중에서 가장 나쁜 게 회피형이라는 말이 있다.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만  길어지다보면 더 깊은 골이 패이게 된다. 그러니 싫다는 감정을 앞에 두고서 싫지 않다고 믿기 보다는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게 더 낫다는 말이다.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것을 강화하지 말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강화를 키워야 한다는 게 말의 초점인 것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이 책속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은 그야말로 시시콜콜한 우리 주변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치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사람처럼 내 자신을 한번 더 돌이켜보라고 말한다. 늘 그렇다. 누군가의 문제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문제다. 싫은 사람을 좋게 볼 수 있는 마음도,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중요하게 만드는 마음도 모두가 내 안에서부터 시작인 것이다. 바로 그런 힘을 키워나갈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게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생활 심리학...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생활 심리학이 아닌게 있을까?  전문적인 용어를 많이 쓰지않고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면 장점일게다. 복잡하고 팍팍한 이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일까? 남의 마음을 읽고 싶어하고 읽어야만 하는 요즈음의 세태가 왠지 씁쓸하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인생의 도시 - 우리 시대 예술가 21명의 삶의 궤적을 찾아 떠난 도시와 인생에 대한 독특한 기행
오태진 지음 / 푸르메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울에 중앙동, 행운동, 성현동, 청룡동, 온천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좀 더 알아듣게 말해본다면 지하철 서울대입구역 부근의 동네이름이다. 설마했다. 그런데 정말로 이름을 이렇게 바꾸었다는 걸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제는 번듯한 아파트촌이 되어버렸는데 봉천동이라는 이름이 달동네 이미지를 풍긴다는 이유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개명신청을 했다는 소식까지는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름이 바뀌었다. 하늘을 받들고 산다는 동네, 봉천동.. 산비탈길로 쭈욱 이어지던 판자집들.. 아주 오래전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신림동과 봉천동 사이에 커다란 산이 하나 있었다.  애들 교육만큼은 서울에서 시켜야겠다는 욕심으로 지방에서 올라오신 부모님이 서울살이를 하면서  무너져버린 가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쫓기듯이 찾았던 동네가 바로 봉천동이었다. 당시 봉천동의 은천국민학교에 입학을 시켰는데 신림동으로 이사를 가서도 오빠 손잡고 다니라고 전학을 시켜주지 않아 오빠가 졸업을 해버린 후에도 나는 혼자서 산을 넘어 학교를 다녔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산자락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처럼 아주 오래전의 기억을 안고 그 동네를 찾아가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 이름을 바꾸어달라고 신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왜 그렇게까지 하는거지? 했다. 단지 못사는 동네의 대명사처럼 불려지는 동네이름이 싫어서라는 건 내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근대사의 한페이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 않은가 말이다. 봉천동의 옥탑방에서 내 소설들이 몸을 풀었다고 말하는 소설가 조경란의 봉천동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된 기억을 한번 꺼내보았다. 그녀가 아직도 살고 있는 봉천동은 여전히 봉천동일 뿐이라고.. 

내 인생의 도시라는 제목에서부터 책 속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듯하다. 나는 그냥 누군가에게 인상깊었던 동네기행쯤이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해 주었던 곳, 자신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아주었던 곳,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곳... 바로 그런 곳의 이야기였다. 읽으면서 순간순간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모두가 아픔을 안고 살아내는거구나 싶었다. 그들의 힘겨움을 함께 나누어들고 묵묵하게 받아주었던 도시들이 책 속에 있었다. <친구>라는 영화로 대박난 영화감독 곽경택이 소개하는 부산은 그야말로 삶 그 자체였다. 됐나? 됐다! 한마디면 끝난다는 부산사람들의 속내를 볼 수 있어 정겨웠다. 아주 오래전 난생 처음으로 부산역에 발을 디디며 설레였던 순간이 기억났다. 시인 함민복이 소개하는 강화는 일전에 신문지상에서도 보았었다. 강화나들길이 생겨 그 길을 안내하고 있던 함민복이라는 이름이 가물거렸다. 무언가에 반한다는 건 참 아름다운 것 같다. 어느 한순간에 느닷없이 가슴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아버리면 그 곳을 떠난다는 게 그리 쉽진 않은 모양이다.

내게 좋은 느낌을 남겨준 글의 주인공인 시인 안도현이 들려주는 전주이야기에 솔깃해졌다. 빠른 시일내에 가 볼 예정인지라 더 큰 울림이 있었던 것 같다. 전주는 역사의 도시다. 짧은 시간으로 돌아보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기에 여름여행으로 미루어 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전주가 어울림과 나눔의 도시라는 말에 왠지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한다. 시인 유홍준과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 소개하는 진주와 해남 미황사는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인지라 마치 그곳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 설레이기까지 했다.  동대문시장을 글쓴이와 함께 어울렸을 화가 사석원의 말속에서 사람사는 냄새가 풍긴다. 민속학자 황루시가 소개하는 강릉의 또다른 모습을 보게되니 여간 즐겁지가 않았다. 도시는 유명한 관광지만 품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말고도 우리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틀림없이 있다. 그런 것들을 이 책속에서 보게 된다. 소개하는 사람 혼자만의 감정일지라도 이미 글을 읽는 사람에게로 전이되어져 오는 걸 느낀다. 그래서 판화가 이철수를 만나러 제천으로 달려가고 싶어지고, 이원규 시인을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산방에 가고 싶어지고, 서귀포 거센 바닷바람에 창유리가 휘어진다는 화가 이왈종의 거실에 한번 들러보고 싶어진다. 그들 모두가 입을 모아 한목소리처럼 말하는 것은 그 도시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는 거였다. 서울이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들을 그 도시의 자연속에서 해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연은 그렇게 묵묵하게 사람을 안아주는데 사람은 어째서 그토록이나 매정하게 자연을 떠나고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의 도시에는 그들의 아픔이 함께 있었다. 인천엔 바다가 없다고 말하는 시인 김영승의 이야기에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생활이라는 전쟁터에서 깨치고 터져도 신음조차 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그가 겪어왔던 시간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세상 입맛과 타협하기를 거부한 그의 시들은 세상을 향한 독설과 풍자를 퍼부어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내 속까지 후련해지게 만들던 지독히도 현실적인 그의 글이 참 좋았다. 그가 소개하는 도시 인천은 그의 말처럼 상처를 안고 희망을 바라보는 도시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인천의 이곳저곳을 한번쯤 다녀본 사람이라면 선악과 고저와 명암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 같다. 김영승은 말한다. 미술관 하나없는 인천이 서울의 문화에 예속되기를 자청하는 게 안타깝다고.. 인천 바다에서 다시 '바위를 뚫는 우렁찬 파도소리'를 듣고 싶다고.. 그들은 한결같이 그들이 머무는 도시가 저마다의 색깔로 빛을 발하기를 소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한가닥의 빛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들이 있어 그 도시들은 분명 환한 빛을 발하는 순간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게하여 그들의 아픔 또한 기쁨과 환희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소설가 정찬주가 머문다는 '耳佛齋'에  언젠가 한번은 찾아보리라 한다. 그래서 나도 그에게 한 수 배워보고 싶다. /아이비생각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 「반성 16」/ 김영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 함부로 하지마라 - 알면서 실수하고 무시해서 큰코다치는 일상의 대화법
스티브 나카모토 지음, 황혜숙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말을 잘하고 싶나요? 물으면 생각해볼 것도 없이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누군가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이해해준다면 더 좋겠지요? 하고 물어도 대답은 '예'다. 그런데 어떻게 말을 하면 말을 잘하는 것일까요? 다시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단지 이 책의 제목처럼 말은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만큼은 늘 가슴속에 품고 산다. 그러면서도 생각없이 뱉어낸 말때문에 자주 후회하곤 한다. 그 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어, 라거나 차라리 이렇게 말할 걸, 하는 후회... 누구나 그런 후회를 해 보았을 것이다. 수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는 말에 대해서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는 규칙 몇가지가 있다. 될수록 필요한 말만 할 것, 쓸데없이 나서지 말 것, 왠만하면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도록 노력할 것,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는 되도록 남의 말을 하지 않도록 할 것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해놓은 규칙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할 때가 많다. 말이라는 게 참 쉬워보여도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오죽했으면 칼로 상처받은 것보다 말로 상처받은 게 더 아프다고 했을까?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 속에 있었던 말을 기억한다. yes, but 화법이라고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어지는 말이다. 일단은 긍정부터 하라는 의미가 참 좋아서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긍정적인 대답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생각해보니 책 속의 대화법을 제대로 실천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썩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우선 말을 할 때의 규칙을 보자면 이렇다.  항상 미소짓는 얼굴로 해도 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을 잘 선택해야 하고,  칭찬에 인색하지 않아야 하고, 될수록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말아야 하고, 나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말을 들어줄 때의 규칙은 이렇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표현을 적절하게 보여주어야 하고, 그 사람이 어떤 의미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빨리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 어렵다. 인간관계처럼 어려운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말하기가 그 인간관계를 쥐고 흔들만큼 중요하다보니 말만 잘해도 인생의 반은 성공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목차만 살펴봐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생각하기, 판단하기, 미소짓기, 선택하기(해도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 사로잡기(오랫동안 내 말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균형잡기, 가끔은 "제 말 듣고 계시죠?" 라고 물으며 관찰하기, 경청하기, 통제하기, 칭찬하기, 질문하기, 알아채기, 조율하기, 대답하기... 각 단계별로 실천할 수 있는 명목을 제시해 주고 있는데 만만치가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깊이 내게 각인되었던 부분은 통제하기와 조율하기, 알아채기에 대한 부분이었다. 말을 하다보면 자신만의 감정에 휩싸여서 듣고 있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릴 수가 있다. 그러다보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지루해진다. 나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상대방이 내 말에 공감해준다면 신나는 일이다. 그런 것처럼 상대방도 나의 공감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바로 조율하기다. 그만큼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말일게다. 알아채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속단하지 말자'다. 속단은 금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다 들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결론에 도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오해를 미리 방지할 수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도 없을테니까.. 보너스처럼 하나 더 실천에 옮기고 싶은 게 있다면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거였다. 적당히 농담도 할 줄 알면서 재미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참 이상한 것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말하기가 더 무섭다는 거다. 그래도 한창 나이때는 많은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을 해도 떨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단 몇 명이 앞에 있기만해도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왜 그럴까? 그러면서도 늘 욕심부렸던 부분은 말을 정말 잘하고 싶다는 거였다.  말을 잘한다는 뜻으로 하는 청산유수니, 일사천리니 하는 표현처럼 유창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 군더더기없이 요점만 정확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거기다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너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게 끝맺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내가 한 말을 남들이 기억해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이러니 욕심이라는 거다. 그런데 그런 생각의 끝에는 항상 물음표가 따라온다. 그러는 너는 그렇게 하고 있니? ... 생각해본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었는지, 내가 원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말도 흘려듣지는 않았는지, 혹시라도 틀린 부분을 지적하며 그 사람을 평가하려 했던 건 아니었는지, 그 사람이 했던 말을 꼬투리 잡아 논쟁거리로 만들지는 않았는지, 그 사람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했는지... 하지만 왠지 자신이 없다. 정말 그렇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살아왔는지 자신이 없는 것이다. 문득 내가 부렸던 욕심이 부끄러워진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간의 요정
김한민 글.그림 / 세미콜론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좀 생뚱맞은 이야기부터 하자. 일전에 인왕산에 있다는  선바위를 찾아 간 적이 있었다. 나라의 큰일을 점쳤다는 국사당과 함께 둘러볼 수 있어 답사차원에서 잠시 들러본 곳이었다. 장삼을 입은 스님을 닮았다는 선바위는 무속신앙의 대상이 되는 바위이기도 하지만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이기도 하다. 이 바위를 성 안에 두느냐  성 밖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그 의미가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읽게도 하는 전설이었다. 그곳으로 오르면서 나는 정말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무속신앙의 전설이 깊은 곳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지만 선바위까지 올라가는 길에 지속적으로 보이던 그 많은 무속인들의 거처는 기분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왠지 우리를 주눅들게 만들었었다. 어떻게 이런 곳이 없어지지 않고 아직까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었다. 서울성곽 아래라서?  그것도 아니라면 인왕산 자락이라 개발이 허가되지 않은 지역이라서?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이건 밀어내고 보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이렇게 살아남은 곳도 있구나 싶어 놀랐던 것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사라져갔다. 먹고 살기 바빠  우리의 문화 따위(?)는  따질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허물고 보자는 식의 도시개발이 뭉개버린 우리의 옛숨결이 어디 하나 둘인가 말이다.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은 이 책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사라져가는 우리의 문화유산들을 안타까워하는 것 같아서다.  물론 찾아보면 아직은 많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피맛골처럼 특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무지와 외면은 뜻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터' 라는 이름표만 덜렁 남겨놓고 사라져간 흔적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개발이라는 괴물의 발에 밟혀 무참히 죽어간 것들이다. 다시 복원한다해도 그 숨결이 그대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기에 안타까운 것이다. 책의 제목 '공간의 요정'은 바로 그렇게 죽어간 곳에서 살아가던 요정이다. 자신이 머물던 공간이 사라져버려 더이상은 숨을 쉴 수 없게 된 작은 요정들을 어찌어찌 살려보려 애쓰는 작은 소녀 송이의 이야기다. 그림이 이야기와 함께 가고 있는데 내게는 왠지 글보다 그림이 더 깊이 들어온다. 그 작은 요정들을 살려내기 위한 유일한 도구가 바로 '詩'다. '詩'를 쓰는 詩지렁이와 그 詩를 먹고 사는 작은 요정들의 꿈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요정들이 먹고사는 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채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情이다. 우리가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너무 쉽게 잊어버린.. 잃어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었던 그것...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불러보는 것... 그런거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이야기다. 삭막한 현실속에서 무너져내리는 우리의 오래된 것들과 그 오래된 것들이 안고 있던 따스함.. 그러나 우리는 그 따스함을 아무 생각도 없이 버렸다. 행여나 눈이 마주칠까봐 외면해 버렸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우화라는 형식을 빌어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너무 어렵다. 너무 강한 은유가 오히려 독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생각하는 童話' 나 '어른을 위한 童話' 형식의 글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난해하지는 않았었다.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아주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던 형식이 바로 그런 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은 너무 깊다. 뭔가 보이기는 하는데 좀처럼 쉬운 느낌을 주지 않는다. 실타래처럼 꼬여있다. 그것을 내가 풀어가면서 읽어야 한다는 건 전문서적이 아닌 이상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고역이다. 답답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너무 돌아간 듯 하여 그것이 조금은 아쉽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