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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할까 - 현대 성생활의 기원과 위험한 진실
크리스토퍼 라이언 & 카실다 제타 지음, 김해식 옮김 / 행복포럼 / 2011년 4월
평점 :
결혼한 여자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수다의 공통분모가 되는 소재가 있다. 시어머니 또는 시집에 관한 이야기, TV드라마나 연예인 이야기, 성에 관한 이야기등이 그런 것들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서 그런게 아닐까 싶은데 그 이면에는 어느정도의 과시욕이나 위안이 목적인 경우도 더러는 있다. 그런데 내가 마지막으로 예를 들었던 성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두가지로 나뉜다. 아무렇지도 않게 성을 이야기하거나, 표나게 내숭을 떨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이다. 나 어릴적에는 성에 관한 교육을 지금처럼 받지 못했다. 금기시되어 있는 이야기처럼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그 말들이 지금은 어디를 가도 마주친다. 그만큼 개방적이라는 말인지 아니면 성문화가 그렇게 변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가끔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았다는 아들녀석의 말을 듣다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때 '아우성'이라는 강의가 크게 논쟁거리로 떠올랐었다. 구성애라는 강사의 말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던 나는 지금도 성에 관한 한은 덮어놓고 숨길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언제였는지 언론지상에서 섹스리스 부부가 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성생활에 냉담해지는 부부가 늘고 있다는 말인데 그 원인이 각박한 현실때문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너무나도 많은 스트레스와 심리적인 위축감 등, 바쁜 생활로 인해 부부가 오붓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도 없을뿐만 아니라 감정마져도 찌든다는 말이다. 그런가하면 성생활을 등한시한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는 부부들도 있다. 그만큼 성이라는 것이 결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모양이다. 성격차이로 이혼하는 부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성적인 문제가 더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말이 들리기도 한다. 성...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길래 그토록이나 많은 상처와 위안을 주기도 하는 것일까? 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하는 것일까? 듣기좋은 말로 서로 사랑하는데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그리고 또 남자와 여자는 왜 성에 대한 관점이나 생리가 다른 것일까?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도 궁금했던 것들을 이 책을 통해 알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이야기들에 대해 거침없이 반격을 가하고 있다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반격에 대한 근거를 충분하게 제시해주고 있다는 것도. 그런데 너무 많은 걸 늘어놓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알고 싶었던 것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지 않고 그 결론에 도달하는 길을 보여주고 있는 까닭도 있겠지만, 너무 먼 과거로부터 달려와야 했기에 솔직히 힘들었다. 아주 오래된 고대인들의 문화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너무나도 흡사한 유인원들의 생활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많은 예를 제시해주고 있다. 수렵이나 채집생활을 하며 이동했던 시절과 집단생활을 해야 했던 시절, 그리고 인간이 농사를 짓게 되면서부터 달라지는 생활패턴에 따라 여자와 남자, 암컷과 수컷의 반응 또한 달라진다는 것이다. 필요에 의해서 달라지는 많은 것들... 머리는 좀 아프지만 책을 읽으면서 놀라움이 생겨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려운 이야기지만 어느정도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결혼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성문제의 크기는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똑같이 성에 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만들어낸다. 끝도없이 제기되는 정조관념, 일부일처제나 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에 관한 것들, 요즘 부쩍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중년 남성들의 젊은 여성을 향한 애정관, 어째서 동성애는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여성과 남성이 느끼는 성적 오르가슴에 대한 것들을 장장 5장에 걸쳐 길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명이라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는 그리 좋은 것만도 아니라는 것, 우리의 모든 순간들은 이미 만들어진 어떤 틀에 넣어져 짜맞추어진 듯이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게해서 우리는 타성에 젖은채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우습지도 않게 머리속을 꽉 채워버리고 말았다. 그럼으로해서 편집되어지기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책을 써내고 있는거라고...
조금 장황스럽기는 했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어진 것인지 이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듯 하다. 자신의 본성을 문명이라는 거대한 괴물에게 밟힌 채 제대로 드러내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 혹은 세상을 지배하는 몇몇의 두뇌들에 의해 만들어진 틀에 끼워져 많은 것이 희생되어지고 있다는 것. 다시 떠오르는 그 한마디를 되새긴다. 진화는 인간의 편리성에 의해 달라지는 변화과정일 뿐이라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문명의 형태는 진화일까? 사람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퇴화되는 것일까? 책을 덮으면서 나는 愚問을 앞에 둔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