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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에서 빈둥거리다 길을 찾다 - 명문가 고택 편 ㅣ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시리즈 3
이용재.이화영 지음 / 도미노북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좋겠다. 저런 곳을 맘껏 다닐 수 있어서.. 그런데 마냥 가서 보니 좋겠다는 말은 아니다. 알고 보니 좋겠다는 말이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나같은 초보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니 볼 수 없는 많은 것을 글쓴이는 볼 수 있어 좋겠다는 말이다. 뭐, 가서 보고 느껴지는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말도 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의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또한 글쓴이처럼 건축을 공부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부러울 뿐이다. 글쓴이의 책을 처음 본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보면 기분 나쁠수도 있는 반토막 말투가 재미있다. 필요없는 사족을 붙이지 않아 내게는 더 깔끔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한껏 부풀린 위엄과 격식이 보이지 않아 오히려 더 정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책은 어려워야 맛이 날까? 그렇지는 않다. 특히나 이렇게 골치아픈(?) 문화를 찾아다니다보면 우선 재미있게 풀이해주는 해설사의 말이 더 귀에 잘 들어온다. 그래서 재미있다. 어쩌면 그렇게 풀이를 잘 해주는지 눈물날 만큼(?) 고맙기까지 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거다. 7량가구 곱은자 집... 이 말, 나는 여기서 처음 들었다. (처음 듣는 말이 이 말뿐일까마는..) 그런데 글쓴이도 낯설다고 의뭉스럽게 말한다. 낯선 말이라고 하면서도 자상하게 풀이해주는 그 대목에 문화재 사랑이나 독자 사랑을 숨겨놓은 듯 하다.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가 7개라는 거다. 천장의 높이는 마치 대웅전을 보는 듯 아득하고. 엄청난 규모의 한옥이라고 보면 된다. 곱은자집은 ㄴ자 집 말하는 거고. (-216쪽) 답사를 다니면서 가장 불만스러웠던 점이기도 하다. 도통 알 수 없는 전문용어만 빼곡하니 읽다보면 은근 화가 날 때도 있다. 이렇게 쉽게 풀이해 알려주면 좀 좋아?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세종께서 한글을 만드실 때 최만리가 반대했던 이유중의 하나, 백성이 글을 알고 깨우치게 되면 부리기만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그런 모양이다. 아직도 관료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억지인가?
사실 고택이나 종택을 찾아가봐야 보통 사람들이 제대로 그 뜻을 알기는 쉽지 않다. 공포가 어떻고 도리가 어떻고 반자가 어떻고 해봐야 머리만 아프니 가장 기본적으로 집의 구조나 살펴볼 뿐이다. 음, ㅁ자형 주택이군! 여기가 안채, 여기가 사랑채, 여기가 행랑채, 그리고 집 뒤로 돌아가 음, 여기는 사당이군! 한다. 물론 많이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하나씩 배우기도 하지만. 그러니 그런 곳을 찾아갈 요량이면 그 집에 살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던 사람인지, 가족이나 주변인물로는 누가 있는지 대충이라도 알고 가는게 많은 도움이 된다. 나만 하더라도 집을 지은 형식에 대해서 백날 봐봐야 머리만 아프니 그 집을 통해 그냥 역사의 흐름을 배우고 온다. 가능하다면 문화해설사와 동행하는 게 좋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알고 가면 문화해설사와 대화도 나눌 수 있어 꽉찬 시간으로 만들수 있다는 말이다. 뻘쭘하게 덜렁 집 한채만 보고 오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재미있다. 글쓴이같은 해설사를 만난다면 그날의 답사는 대박이다. (그게 어렵다면 그냥 이 책 한 권 들고가도 괜찮을만큼 글쓴이의 해설이 좋다는 말도 될 듯...)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그런 집들은 대부분 볼 수 있는 영역과 볼 수 없는 영역이 정해져 있다. 현재도 후손이 살고 있는 살림채쪽은 들여다보지 않는게 예의라는 말이다. 글쓴이와 같이 공식적(?)으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곁들인 사진이 재미있다. 글 반, 사진 반인데 굳이 작은 것까지 찾아다니며 들여다 보지는 않는다. 주인공과 발을 맞추려하지 않고 주변을 맴돈다. 보여주는 사진을 통해 또한번의 해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글쓴이의 해설이 더 깊이 각인되는 듯 하다. 그저 사진기만 들이댄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야말로 바라보기다. 문화재 바라보기가 아니라 그 안에서 흐르고 있는 시간을 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마치도 글쓴이가 그 안에서 탐방객을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독특하다. 그런데 그런 독특함에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이 방에서 저 방을 보고, 대청마루에서 마당을 내려다 본다. 가끔씩은 훔쳐보기도 한다. 멀리보기가 관건이다. 마치 먼 곳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가까이 보아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린다. 하긴 눈앞으로 가까이 끌어당겨봐야 덜렁 서 있는 집 한 채뿐이니 멀리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까이보는 건 글쓴이처럼 건축을 전공한 사람들의 몫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찾아간 곳과 연관되는 사진들이 많이 보인다.
역시 많은 걸 다시 배우고 새롭게 알게 된다. 아하, 이제 알았다! 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 많다. 언젠가 보았던 굴뚝위의 뒤집어진 항아리가 연가였다는 걸 알게 된다. 둥주리 양자라는 말이 새의 둥지처럼 처자식을 포함한 일가족 전체를 통째로 들여왔다는 뜻이라는 걸( 세상에나, 이렇게 들이는 양자도 있었구나!), 전주 학인당 편에서 창을 낸 합각을 처음 보았고, 전주 한옥마을이 국제 슬로시티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기가 막히게도 문화재청 1년 예산이 4천억인데 부자동네 강남구의 1년 예산도 4천억이란다. 명재고택 안마당의 장독이 800개였다고? 그래서 엄청 났었군! 나같은 아줌마가 엄청 좋아할 명재선생의 유언이 끝내준다. "제사상에 떡을 올려 낭비하지 말 것이며, 일거리가 많은 음식과 기름이 들어가는 전도 올리지 마라".. 근데 정말 그렇게 했을까?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을까? 문화해설사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고 하긴 했었다. 나도 저 집안 며느리나 될 팔자였다면, 싶다. 글쓴이가 상주 우복종가를 통해 말해주던 '진양三姓'중의 하나니까 ^_____^*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진주姜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었다. 선비집안이라고. 어렸을 적에 진주河씨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었는데 진주鄭씨에 대해서는 많이 못들어 본 듯 하다. 글쓴이에게 감사!
고택기행을 마무리하며,를 읽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했던건지 그제사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우리의 뿌리를 찾음으로써 길을 찾는다- 는 말을 보면서 몇 해전에 아들과 친정엄마를 모시고 찾았던 시흥 관곡지가 떠올랐다. 姜씨집으로 시집을 와 팔자에 없는 종가집 며느리가 되어버린 엄마는 그곳을 관리한다는 후손의 집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거기서 만난 할머니와 姜씨네 얘기를 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셨던 거다. 그런데 뿌리를 찾는다는 거, 그거 다음 세대에서도 통할까? 그걸 가르쳐주고 알려주는 게 우리 세대가 할 일이라면 조상이 얼마나 높은 관직에 올랐었는가, 몇 명을 배출했는가를 따지는 허울좋은 겉치레보다 그 정신만큼은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책 속에서도 말하고 있는 현실이 그다지 서글픈 일은 아니다. "학봉 종손이면 회사 생활때 대접해 주지요?" (-그래야 하는거야? 그래야 한다면 왜 그래야 하는거지?) "사람들이 학봉이 누군지도 모름"... 당연하다. 자기 씨는 서얼이라고 홀대하면서 자기 씨도 아닌 아이를 내세워 대를 잇게 했다는 말같지도 않은 양자제도만 보아도 예라는 게 얼마나 허울좋은 이름이었는지를 따져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대표 예학자였다는 사계, 그가 말했던 '예'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왜곡된 것들이 너무 많은 까닭이다. 거기 서린 기의 움직임을 보고자 한다면 우선 알아야 한다. 글쓴이의 말처럼 보고나서 아는 것보다는 알고 난 뒤에 보아야 더 큰 느낌이 온다고 나는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 고매한 '깨달음'은 차치하고라도. /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