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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마르탱 파주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림원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존재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지금 내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일까? 이따위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왜 사는 것일까? ... 짜맞춘듯한 지성이 싫어서, 다른 사람에 의해 평가되어지는 인격이 싫어서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탈출시키고자 하는 한 남자가 있다. 세상과 타협하기 위해 그가 처음 선택했던 알코올 중독자되기는 맥주 반잔에도 알코올 과민반응을 보이는 육체적인 한계에 부딪혀 포기해야 했고, 두번째로 선택했던 자살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들었던 자살강의는 어떻게 자살할 것인가를 확실하게 알게 해주긴 했으나 자살에 대한 생각을 없애버리고 말았다. 살고 싶지 않았지만 죽고 싶은 마음도 없던 그가 바보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선언하는 순간부터 나는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앙투안...
그의 바보선언문을 살펴보자. 단순한 사람은 행복하다, 깊이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작용이 아니다, 장수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은 전혀 지적이지 않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회적인 자살이다 왜냐하면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까발려지고 벗겨져 종종 그것을 죽이게 되기 때문이다, 지성은 곧 질병이다 왜냐하면 생각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까닭이다... 이 바보선언문을 가만히 살펴보면 어느정도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한 사람은 복잡한 사람에 비해 행복하다는 그의 말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그는 약간 정신을 놓고 원인이나 진실, 현실따위를 모른채로 살고 싶어 했다. 현실을 모른 채 그냥 살고 싶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건 현실도피가 아닐까? 세상의 편견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고, 매사를 분석하고 껍질을 벗겨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기를 바랬다. 다시한번 들여다보아도 부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차마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주제가 아닐까 싶어서.
사실 바보가 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만들어진 것들로부터 떨어져 나온다면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삶이야 말로 바보스러운,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바보처럼 산다는 말에 왠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도 각박하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것들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는 말일 게다. 때로는 바보스럽게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여기 이 책속의 남자 앙투안이 꿈꾸는 삶이 어쩌면 그 자연스러움의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이들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유령놀이가 어쩌면 우리에게도 필요한건 아닐까? 다른 사람의 판단이 나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버튼이라고 말한다면 억지일까? 바보가 된다는 것은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앙투안이 꿈꾸었던 바보는 남에 의한 내가 아니라, 나에 의한 나로써 살고 싶어했던 욕심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끝없이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면서도 현실은 몰개성화 되어가고 있는 아이러니라니... 그렇다면 나는 과연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진정한 바보가 될 수있다면 오히려 행복한 삶에 한발짝 다가가는 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럴수도 있겠다는.... 하지만 책속의 말이 나의 생각에 비수를 꽂는다. 인생은 수표와 신용카드를 먹고 사는 동물이다(-134쪽), 가장 쉽게 부패하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임을(- 151쪽)..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던 앙투안은 그 뒤로 별탈없이 행복하게 살았을까?
마르탱 파주의 <완벽한 하루>를 읽고 색다른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한번 더 그의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은 쉽게 다가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는 게 더뎠다. 이제 막 글을 배운 사람처럼 더듬거렸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도 '난해하다'라는 말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수도 있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