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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요일
마렉 플라스코 지음, 박지영 옮김 / 세시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비요일, 우요일,13월,32일, 그리고 제8요일...
우리의 생각속에만 존재하는 날들.
그리고 우리에게 야릇한 의미로 다가오는 날들.
그런 날들속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비요일과 우요일의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13월과 32일의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그러다 다시돌아와보면 그자리.
작가 박범신이 작품속에서 최고의 순수성으로 추천해주었던 아그네시카를 만났다.
아그네시카가 머무는 곳에는 폐허와 술과 슬픔과 좌절과 절망이 있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희망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녀를 순수하다고 봐줬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꾸미지 않는 그녀의 내면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욕망과 처해진 상황을 하나의 꾸밈도 없이 그대로 보여주며
또한 그대로 느끼며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우울한 감정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왜 이러는거지? 도대체 뭐가 문제인거야?
지은이 마렉 플라스코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출생하여
스물여섯 살에 작가로 성공을 거두었으나 조국을 잃고 망명길을 떠나야 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다는 말에,
모순투성이인 폴란드의 암울한 현실을 폭로하고 인간 본질의 문제를 심도있게 파헤친,
이라는 말에 그렇구나,하면서 배경을 이해하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인간이 이토록까지 처절한 우울감속에 빠질수도 있는것인가를 되묻고 있었다.
시대적 배경이 아무래도 가슴에 와닿지가 않았다.
이념과 사상의 기로에 서있으면서 자신에 대한 분노를 어쩌지 못하는 오빠를 바라보던
아그네시카의 시선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져 있었을까?
아주 평범한, 지독히도 평범한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들.
그들에게 찾아갈 희망은 아직도 흙탕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무겁게 내려앉은 회색빛 하늘과 멈출것 같지 않은 비를 바라보며 절규하는 아버지.
어디고 꺼져버리든지,뒈져버리든지 하라니까!
이대로 가다간 내가 미쳐버리겠어! 어떤 결판을 내든지 해야지.
병이 들어 죽음을 바라보는 아내, 사랑과 이념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해 술로 사는 아들,
그리고 딸이 얽켜있는 비좁은 일상속에서 잠시만이라도 탈출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일요일은 빗줄기에 가려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고독을 외쳐대는가?
가슴속에는 그토록 많은 사랑과 열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전해줄 수 없는 공허함만을 한가득 품고 살아가는 까닭에
우리는 모두 외로운 것일까?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전쟁같다. 때로는 처참하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제8요일을 그린다.
하지만 우리는 설령 오지 못한다해도 희망을 기다린다.
내일은 괜찮아질거라고 주문을 외고, 오늘까지만이야 하면서 최면을 건다.
그렇게 털어내고 털어내고 또 털어내면서 산다.
아마도 그렇게 믿고 싶은게 들키고 싶지 않은 속내일것이다.
그래서 기다리고 갈망하고 꿈을 꾸는 것일게다.
좀 더 나은 내일을.
어쩌면 이미 지나쳐갔을 제8요일을.
어쩌면 저 앞에서 나를 기다려줄 희망의 제 8요일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기 위한 벽이 있는 그 작은 방을 아그네시카는 찾지 못했다.
사방이 벽으로 가린 방을, 아니면삼면만이라도 괜찮다고 말하던 아그네시카는
결국 그 방에서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었다.
자유롭게 사랑을 나눌 그 작은 방, 제8요일이 머금은 희망이란 존재가 그녀를 찾아와 주었을까?
/아이비생각
아침이었지만 여전히 하늘은 흐려 있었고, 어제 하루 종일 쏟아부었던 비는이제 멎어 있었다.
"하늘은 뭐가 불만인지 그토록 쏟아부은 비만으로는 부족해서 아침부터 또 저렇게잔뜩 구름에 가려 있구나.
이러다간 이번 주 한 주일 내내 온통 장마로 잡쳐버리는 게 아니냐?"
하늘을 잔뜩 노려보면서 아버지가 불만스럽게 옆에 서 있는 아그네시카를 보고 말했다.
"아아,오늘이 어제의 일요일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의 긴 한탄이었다. <208쪽 마지막 문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