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의 흔들림 - 영혼을 담은 붓글씨로 마음을 전달하는 필경사
미우라 시온 지음, 임희선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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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난 후 무의식적으로 뱉어낸 말은 "참, 맑다!" 였다. 그냥 이 소설의 느낌이 그랬다. 소설속의 등장인물들이 그러했으니 이 소설을 쓴 저자도 그렇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에 입가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이런 맑은 느낌의 글을 언제 읽었는지... 막연한 향수같은 것이 느껴졌다.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외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그 어떤 것에 대한. 손편지를 언제 썼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소설은 호텔리어인 쓰즈키와 서예가인 도다의 만남부터 시작한다. 별로 내키지 않았던 도다와의 만남이었지만 비지니스와 얽힌 까닭으로 어쩔 수 없이 도다를 찾아가는 쓰즈키의 발걸음이 가벼웠을리 없다. '영혼을 담은 붓글씨로 마음을 전달하는 필경사'라는 부제에서 보이듯 이 소설의 주된 흐름은 서예를 따라간다. 필경사는 손글씨로 글을 적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도다와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쓰즈키는 도다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증이 인다. 그러나 쉽게 속을 보여주지 않는 도다. 쓰즈키와 도다가 편지 대필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고 책을 소개를 하고 있지만 소설의 밑바닥에 깔린 주제는 그렇게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분히 일본적인 소설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느낌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진심'을 잃어가고 있는 듯 하다. 너나 할 것 없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 이 소설은 차분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소통에 대하여. 잘 모르거나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서로 돕고 보완하는 게 맞는 거라고. 가상의 현실을 통해 마음없이 글자만 주고 받는 이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말도 있듯 서예를 대하는 도다의 모습만으로 쓰즈키는 도다라는 사람에 대해 미루어 짐작하지만 도다의 어두운 과거를 알게 된 쓰즈키는 그에게 다가가던 발걸음을 멈칫거리게 된다. 인간적으로 끌림을 느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세상의 기준이 그를 망설이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지냈던 시간들은 말한다. 도다가 너에게는 어떤 의미였느냐고. 결국 쓰즈키는 도다가 자신을 위해 밀어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잠시 멈칫거렸던 마음을 힐책하며 도다에게 달려간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씩 맞추어 나감으로써 우리의 인간관계는 훨씬 더 좋아질 수 있는 것이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다시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책을 읽는 내내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글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장면들이 그려졌던 까닭이다. 작가의 필력도 좋았겠지만 그만큼 번역의 힘도 만만치않았다는 말일 터다. 틀에 짜인 듯 형식에 맞춰 살아가던 쓰즈키의 시선, 그리고 느껴지는 대로 자유롭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도다의 시선을 통해 읽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서예를 통해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선 두 사람의 마음이 표현된 한시 한편을 마음에 담는다. 글씨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담긴다는 진리가 이채롭게 다가왔다. /아이비생각

君去春山誰共遊 그대 가고 나면 봄 산은 뉘와 함께 노닐까?

鳥啼花落水空流 새 울고 꽃 떨어지고 하릴없이 냇물이 흐르네.

如今送別臨溪水 지금 냇가에 서서 그대를 떠나보내니,

他日想思來水頭 그대를 그리는 마음이 쌓이면 이 냇가에 또다시 오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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